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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저항하는 동양, 과연 가능합니까?
[동아시아를 묻다·9] 다케우치 요시미의 '근대란 무엇인가'
다케우치 요시미를 논제로 꺼내셨군요. 저도 내일(10월 14일) "다케우치 요시미의 '전쟁의 사고'가 지니는 사상사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해서 다시 읽었습니다. 발표를 무엇으로 열까 생각하는 중인데, 그의 '오카쿠라 덴신'을 인용하며 시작하기로
윤여일 수유너머R 연구원
2011.11.30 07:56:00
결국, 중국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동아시아를 묻다·8] 다케우치 요시미를 다시 읽다
지난 두 번의 글을 읽고 다케우치 요시미(竹内好)를 다시 읽었습니다. 덕분에 소중한 독서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근대란 무엇인가',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등을 읽으며 전율했던 기억이 지금껏 생생하네요. 제가 동아시아를 궁리하게 된 회
이병한 UCLA 한국학 센터 연구원
2011.11.16 08:52:00
오키나와, '집단 자결'의 역사를 아십니까?
[동아시아를 묻다·7] 동요의 체험과 동아시아라는 실감
제가 말씀드리려던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감각', '분절의 감각'의 중요성입니다. 그것이 동아시아에 관한 제 실감의 밑바탕을 이룹니다. 두 심포지엄의 참가의 기억을 꺼낸 까닭은 제가 알고 있다고 믿어온 것이 흔들리고, 제 문화적 아이덴티티가 심문받는
2011.11.10 08:26:00
동아시아 고난의 산증인, 오키나와-제주-타이완
[동아시아를 묻다·6] 지방(local)에서 지역(region)으로
동아시아를 실감하게 된 몇 차례의 일화 소개를 흥미롭게 접했습니다. 자이니치(在日) 문제가 일본과 한국의 곤경을 낳고, 중국의 혁명 경험을 공유하는 과제가 야기하는 곤혹스러움은 능히 이해할 만합니다. 균열과 적대로 얽혀 있는 이 냉엄한 현실로부터 동아시아를 사유
2011.10.27 10:12:00
동아시아 '연대'를 말하지 못하는 이유
[동아시아를 묻다·5] 동아시아에 관한 실감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본과 아시아'라는 글이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능한 문명을 탐구한 글입니다. 그러나 다케우치는 아시아의 문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직접 주장하기보다 문명됨의 조건을 따져 묻습니다. 이를 위해 서양의 문명일원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합니
2011.10.19 10:29:00
"동아시아는 여전히 '세계의 변방'입니까?"
[동아시아를 묻다·4] 동아시아로 가는 길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먼저 동아시아론의 분별이 필요함을 제기하셨습니다. '사상사적 가치에 값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따져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선별 작업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탐색해 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2011.10.05 11:43:00
'小國' 대한민국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동아시아를 묻다·3] 동아시아론의 유산화를 위해서
대화가 한 차례 오갔을 뿐이지만 답하신 글을 보니 앞으로 함께 고민해야 할 여러 대목들이 집힙니다. 답하신 글은 한 호흡으로 써 내려가신 듯하지만, 저는 되도록 잘게 나눠 논점들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화가 오가는 동안 이런 정리는 거듭되겠죠. 논점들을 차곡차
2011.09.28 08:26:00
"왜 중국이 동아시아야, 아시아 그 자체지!"
[동아시아를 묻다·2] 동아시아는 여전히 깃발이다
거두절미,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동아시아론이 과연 풍년이었던가 의아심이 듭니다. 그간의 동아시아론을 버블로 치부하고 그와는 결이 다른 새 출발을 선언하는 것은 그 호기만큼이나 치기의 혐의도 없지 않습니다. 세대론적 단절과 인정 투쟁의 욕망도 얼마간 투영되
2011.09.21 09:00:00
9·11로 시작해 3·11로 끝났다!
[동아시아를 묻다·1] 동아시아에 내재하기 위하여
제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동아시아. 외래어였다는 흔적조차 희미해진 말 아시아(Asia)에 '동(東)'이라는 방위가 달린 이 말은 담론의 대상이자 통찰의 주제로 빈번이 회자되었습니다. 동아시아론. 동아시아에 관한 담론은 탈냉전, 세계화, 지역화, 탈국경화 등의
2011.09.14 10: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