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15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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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세력 vs 촛불정부' 대립, 위기의 서막
[최창렬 칼럼] 집권세력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 선거가 다음 달 치러진다. 제1야당의 원내지도부가 구성되고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가 선출되면 21대 총선을 향한 여야 대결구도는 본격화할 것이다. 물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답방과 내년 초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한반도 패러다임에 의해 국내정치 지형도 바뀌겠지만 집권세력과 보수야권은 한층 가파른 대치를 이어갈 전망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협치' 약속은 왜 일주일 만에 깨졌나?
[최창렬 칼럼] 한국당의 퇴행과 정치의 부재
입법부·행정부·사법부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삼권분립은 대의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분점정부의 보편화에 기인한 행정부와 입법부의 대립은 마침내 국정의 교착이라는 역기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상호견제가 권력 독점의 방지라는 순기능보다 입법과 정책 기능의 마비, 부작위에 의한 국정 동력의 약화로 이어지면서 정치
특별재판부는 삼권분립과 충돌하지 않는다
[최창렬 칼럼] 민주주의의 보루 포기한 사법농단 사건
1975년 4월에 자행된 사법살인은 독재정권의 사법부가 저지른 사법만행이었다. 이른바 '인민혁명당 사건'을 날조하여 무고한 국민을 판결 18시간 만에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엄혹한 시절에도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사법은 철저히 부정한 권력의 호위무사로 전락했다.
난독증 한국당, 그 '보수통합'은 틀렸다
[최창렬 칼럼] 한국당의 책임이 크다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위가 "당헌·당규와 상관없이 전권을 가졌던 2012년 비상대책위가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진보주의 강령을 받아들였다"며 '한국당의 침몰' 원인으로 경제민주화를 지목했다. 2012년 당시는 물론 현재 및 향후의 시대정신이자 민주주의의 실질적 정착의 핵심 가치인 경제적 민주주의와 '진보적' 가치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를 드러냈다. '보수 통합'
'민주·한국 카르텔', 약자를 위한 정치는 어디 있나?
[최창렬 칼럼] 개혁 동력 약화와 정치개혁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필연적 귀결인 사회적 양극화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득 불평등이나 고령화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이 문제를 보편적인 지구적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미래에 도래할 수 있는 위험이 너무 크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고령화 속도, 저출산, 상대적 격차의 증대 등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그늘이라고 방치될 수 없는 부
'전환의 계곡'에 서다
[최창렬 칼럼] 신뢰 떨어지면 개혁은 언감생심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란 말은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경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말의 함의는 사뭇 달라진다. 고용과 분배 정의를 세우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민생이기 때문이다. 일자리와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 총체적 경제 문제가 완화될 수 없다. 그러나 경제 지표 악화로 정권 지지율의 하락추세가 멈출
통계 해석 논쟁의 이면을 보자
[최창렬 칼럼] 기득권 연합 對 노동·복지 연대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불평등과 양극화다. 개별적 경제정책과 장단기 해법들이 있겠으나 본질적으로는 사회운영 방식과 구조를 바꿔야 한다. 부정의한 관행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기득권의 이해가 지배적으로 관철되는 구시대적인 네트워크와 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이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도입과 법의 제·개정을 통해서만이
文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어떻게 봐야 하나?
[최창렬 칼럼] 당‧정‧청 기득권 논리에 굴복하나
국정지지도가 50% 미만이면 정부의 일상적 국정 수행마저도 정당성을 얻기 어려운 수치다. 하물며 기득권 집단의 저항이 수반되는 개혁 추진은 언감생심이다. 집권 2년차다. 하한기 정국이 지나면 정기국회, 국정감사 등 예산국회가 열리고 내년은 2020년 총선 한 해 전이다. 촛불혁명의 시대적 요구를 입법으로 제도화 할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문재
진보가 나라를 살린다
[최창렬 칼럼] 노무현·문재인이 진보? 노회찬이 진보다
서구에서 보수와 진보는 국가의 시장 개입 정도를 가지고 나눈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장소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는 분단과 안보 논리로 심히 왜곡됐다. 쿠데타 정권은 성장주의와 안보 논리를 명분으로 독재를 합리화했고, 근대화 이데올로기는 군부와 재벌과 관료의 동맹을 바탕으로
정치의 부재, 다시 시민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최창렬 칼럼] 시민 참여없는 개혁은 불가능
자유와 평등 사이의 화해는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불가능할지 모른다. 사유재산권의 불가침성, 시장의 절대성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도그마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국민이 주권의 담지자라는 인식도 낡은 사고로 치부되기 일쑤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박근혜의 대통령직 박탈은 한국 민주주의가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