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3일 11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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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산실 인각사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9ㆍ끝>
인각사는 그 자리잡은 곳의 한적함이며 아담한 규모가, 유명짜한 큰절들과는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인각사를 처음 가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럴 듯한 절이, 그럴 만한 곳에 있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애
김대식 서울디지털대 교수
<프레시안>에 웬 <삼국유사>?
['프레시앙'이 되며] 김대식 교수
자칭 <삼국유사> 선전원이다. 언필칭 민족의 고전이라면서도 잘 읽지 않는 <삼국유사>라는 제품을 들고서, 지하철 아무 칸에나 올라타서 "이 제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민족 최고의 고전으로써, 하루 한 쪽만 읽어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하고 떠들어
거타지설화의 현장을 찾아서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8>
백령도로 가는 뱃길은 멀다. 인천에서 쾌속선 명색으로 소요시간이 네 시간으로 잡혀 있지만, 일쑤 네 시간 반 이상 걸린다. 그 뿐 아니다. 배를 타려면 날도 잘 받아야 한다. 서너 달 전에 처음으로 백령도 가겠다고 배를 탔을 때, 인천을 떠난 후 한 시간 가량 잘 가던 배
다시 진성여왕에 대하여 2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7>
위홍이 죽은 뒤 나라가 혼란에 빠져드는 과정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비교적 소상하게 서술되고 있다. 『삼국사기』 진성왕 2년조는 이렇게 적고 있다. "(진성여왕은) 이 뒤로부터 젊은 미남자 두세 명을 가만히 불러들여 음란하게 지내고 그들에게 요직을 주어
다시 진성여왕에 대하여 1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6>
오래 전에 진성여왕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그 글 말미에서, "경문왕의 딸이며, 헌강왕과 정강왕의 누이동생이며, 그에 못지 않게 숙부 위홍 각간을 사랑한 여인이기도 했던 진성여왕 운운"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뭇 단정적인 어조로 내렸던 그
'처용'이라는 수수께끼 3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5> '딴따라 임금' 헌강왕
'한두레'라는 놀이패가 있다. 벌써 몇 십년 째 있는 듯, 없는 듯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 놀이패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하자면, 춤패이기도 하고, 굿패이기도 하고, 한때는 뜨르르했던 운동권 단체이기도 해서 지금도 '한두레' 출신으로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처용'이라는 수수께끼 2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4> 처용의 행적과 정체
"제49 헌강대왕 때에 서울로부터 해내(海內)에 이르기까지 가옥이 즐비하고 담이 연(連)해서 초옥은 하나도 없으며 도로에 생가(笙歌)가 끊이지 아니하고, 풍우가 사시(四時)에 골랐었다." '처용랑 망해사'조 기사의 첫머리이다. 생가(笙歌) 즉, 생황과 노래 소
'처용'이라는 수수께끼 1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3> 기이편 '처용랑 망해사'조
『삼국유사』 기이편 '처용랑 망해사'조 기사의 한글 번역 분량은 200자 원고지 열매 안팎이다. 이 짤막한 분량의 기사를 두고 수백 편의 논문들이 씌어지고도 아직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 없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 지금까지 발표된 '처용'
어미 수달을 위한 진혼곡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2> 신주편 '혜통항룡(惠通降龍)'조
왜 사는가? 살다보면 이런 물음과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 물음을 외면 못하고 자칫 발목이라도 잡히게 되면 우리는 속절없이 그 포로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삶을 돌아보게 되고 그 삶의 뜻을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왜 사는가?
수로부인을 에워싼 미스테리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1> 기이편 '수로부인'조
강릉, 삼척, 울진으로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1박2일의 여정. 나는 『삼국유사』 기이편 '수로부인'조의 자취를 더듬어 보겠다고 벼르고 벼르다가, 매번 철쭉 피는 철을 맞추지 못하던 끝에, 제 철은 아니지만 그 행로나 한번 더듬어 보자고 지난 연말에 때아닌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