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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한국? '수도권주의'로는 어림 없다"

[反MB를 넘어⑥] 균형주의 vs 수도권주의

공간의 개혁, 한국사회의 개혁

세종시 논란으로 공간발전의 상황이 다시금 요동치고 있다. 최초의 소수정권이면서 진보정권으로 출범했던 참여정부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누적된 한국사회의 권력구조가 갖는 모순을 공간적으로 돌파하는 다양한 개혁처방을 내놓았다. 균형과 분권을 화두로 했던 참여정부의 국정과제는, 한국사회의 공간적 개혁에 대한 통치권자의 강한 의지가 들어갔던 것으로, 정권 5년 동안 다양한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행정수도이전, 공공기관 지방이전, 혁신도시 건설, 기업도시 건설, 지역혁신체제 구축, 제주특별자치도 지정, 광주아시아문화수도 건설 등은 모두 진보정권이 시도한 공간개혁의 방안들이다. 하나 같이 수도권에 집중된 권력의 분산과 국가균형발전을 목표로 했다.

이 중에서 백미는 행정수도의 후속 판으로 세종시 건설이다. 9부2청2처 등 총 36개의 행정 및 공공기관을 옮겨 행정중심복합기능의 신도시를 조성해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게 세종시 건설의 내용이다. 서울중심의 권력구조 재편을 전제로 하는 만큼, 세종시는 참여정부의 정책 중에서 가장 많은 논란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명박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참여정부의 색깔이 강하게 배인 세종시는 새로운 집권세력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세종시 원안은 이렇게 해서 수정을 강제 받게 되었다. 하지만 '세종시 원안'의 수정은 진보정권에 의한 공간개혁의 실험이 수포로 끝나면서 공간발전의 상황이 종전의 불균형 구조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한국의 오랜 중앙집권 구조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강한 권력집중을 불러 왔다. 그 집중도가 권력의 집중과 비례한다고 본다면, 수도권으로 인구와 활동의 높은 집중도는 오랜 중앙집권 하에서 지배엘리트들에게 몰려있는 힘의 크기를 반영한다. 수도권 일극으로 권력 집중은 비수도권 전체를 피지배의 공간으로 규정해 왔고, 또한 그 공간의 자율적·내생적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권력의 집중은 그래서 공간의 불균형 발전과 동전의 앞뒤를 이루면서 한국사회의 발전양식을 특징지어 왔다.

이 같은 공간현실에서 볼 때 국토의 균형발전은 단순히 국토정책의 의례적인 구호만 아니다. 만성적인 공간 불평등의 해소를 전제하는 균형발전은 민주적 분권사회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선택이다. 선진사회로의 진입은 발전의 기회가 모든 지역으로 골고루 나누어지는 건강한 국토구조 위해서만 가능하다. 세종시 건설은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가 21세기 선진사회로 나가기 위해 이룩해야 할 진보적 공간개혁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하다.

세종시 갈등: 공간발전방식에 관한 해석의 차이

정권이 바뀌면 세종시 건설은 중단되거나 다른 형태로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은 정권 출범이전부터 제기되었다. 이러한 기대와 달리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근 2여 년 동안 원안추진을 십 수차례나 약속했다. 세종시 반대론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끝내 거짓으로 밝혀졌다. 권력자로서의 위상이 굳어지는 시점에 이르러 그는 그동안의 대국민 약속을 하루아침에 없는 것으로 입장을 돌변시켰다. 공중파를 장악한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는 원안추진에 대한 약속이 표를 얻기 위한 거짓이었음을 고백하면서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원안의 수정이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세종시에 관한 대통령의 입장변화는 적지 않은 정치사회적 파장을 남겼다. 우선 여당 내에서 정책의 신뢰를 둘러싼 계파 간 갈등이 분출했다. 그러나 그 갈등은 추진방법에서 실용주의와 원칙주의란 차이이면서 동시에 대권을 향한 권력다툼의 연장이다. 친이와 친박 간 세종시 갈등에는 세종시의 실체적 가치에 관한 논쟁이 없다. 반면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 간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원안주의자와 수정주의자 사이의 대립 전선은 세종시 건설을 통해 이끌어내고자 하는 한국사회의 공간적 변화에 대한 전망의 차이를 반영한다.

원안의 수정(백지화)을 주장하는 측(수정주의자)은 세종시 건설로 인해 수도와 정부가 분할되어 국가적 대재앙이 들이닥칠 것이라고 호언한다. 보수적 성향의 수정주의자들은 수도중심의 공간발전 방식을 선호한다. 반면 원안을 지지하는 측(원안주의자)은 세종시 원안의 백지화를 한국사회의 공간적 변혁에 대한 꿈의 좌절로 받아드린다. 진보적 성향의 원안주의자들은 수도권 일극구조가 극복되는 공간발전 양식을 꿈꾼다. 세종시를 둘러싼 갈등은, 이렇듯 한국사회의 공간발전 방식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차이의 뿌리는 수도권에 권력적 기반을 둔 세력과 그렇지 않는 세력 간의 '공간 계급'적 대립에 있다.


▲세종시를 둘러싼 갈등은 수도권에 권력적 기반을 둔 세력과 그렇지 않는 세력 간의 '공간 계급'적 대립이다. ⓒ프레시안(박세열)

균형주의자의 꿈과 경고

서울에 권력기반을 두고 있는 세력에게 세종시 건설은 그들의 공간 계급적 이익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세종시 원안이 수도권 기득권층과 이를 대변하는 보수적 정치세력으로부터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은 행정기관의 이전을 수도분할로 등치시키고 국가중추기관의 분리가 막대한 '행정 비효율성'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들에게 '행정기관 이전의 백지화'는 세종시 원안 수정의 핵심 전제다. 수정론은 그래서 서울에 구축된 이들의 계급적 이익을 내밀히 반영한다.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헤게모니 세력으로 일상적 삶과 권력적 기반을 수도권에 입지한 사회조직과 인간관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들을 '수도권주의자' 부를 수 있다.

한편, 세종시 원안의 지지자들은 세종시를 통해 수도권 일극으로 편향된 한국사회의 공간적 변혁을 꿈꾼다. 그들이 꿈꾸는 한국사회는 균형발전이 공간적으로 실현되는 사회다. 균형주의자로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정치적·정파적 입장을 버리고 현재의 국토불균형 구조를 가지고 대한민국 호가 과연 선진국이란 바다로 향해 나갈 수 있을지를 물어보자. 선진경제 치고 대도시 권역 한 곳으로 발전의 추동력이 온통 몰려 독식의 국토구조를 가진 나라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사실, OECD 국가 중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들은(미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 전체 인구 중 수위도시의 인구가 10% 미만이다. 국토가 그만큼 건강하게 골고루 발전되어 있다는 뜻이다. 선진국의 이러한 국토모습은 경쟁력 있는 성장시스템이 공간적으로 작동하는 모습 그 자체다.

한국의 과도한 국토불균형은 단순한 지리적 격차만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의 발전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공간적으로 나타내는 모습이다. 수도권 집중이 지금과 같이 계속된다면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집적의 불경제와 그에 따른 삶의 질 악화, 경쟁력 약화를 겪을 것이 분명하다. 2006년의 OECD 보고서에 의하면, 수도권의 국제 경쟁력은 76개 주요 광역경제권 중에서 69위다. 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서울의 도시생산성은 도쿄, 뉴욕, 런던의 2분 내지 3분의 1에 불과하다. 수도권 과밀이 주 원인이다. 과밀은 수도권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드는 공간발전의 틀 속에선 비수도권은 비수도권대로 인구감소, 투자기회의 위축, 성장잠재력의 소진 등을 겪는다. 2002-2006년 사이 전국적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일자리의 98%가 수도권에 창출된 것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비수도권에서 창출된 일자리 기회가 2%에 불과하다는 것은 수도권 블랙홀로 인해 겪는 비수도권의 상대적 박탈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지금의 국토구조로는 한국사회가 선진경제로 나갈 수 없음을 함의한다.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우리는 이미 10년 이상을 서성이고 있다. 사실 이것이 말로 '잃어버린 10년'의 진정한 의미다. '중진국 함정론' 혹은 '한국 정체론'으로 불리는 이 현상은 한국의 공간 발전시스템이 갖는 지속 불가능성과 결코 무관치 않다. 균형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래서 세종시 원안의 좌절은 한국의 공간발전시스템이 갖는 병적 특질을 더욱 고착시킬 것이고, 그로 인해 한국사회의 선진화는 영구미제로 남는다. 세종시 원안의 백지화로 표상되는 '공간적 진보의 실패'는 왜 나타나는가?

수도권주의의 헤게모니화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반균형·반분권 세력의 권력화가 괄목하게 나타나고 있다. '공간적 보수주의자'라 일컬을 수 있는 이들은 참여정부로 상징되는 진보적 정치세력과의 대립을 통해 스스로의 선명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세종시 원안의 폐기 내지 백지화는 그러한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여러 방안의 하나다. 세종시 논쟁에서 드러난 반균형·반분권 세력의 주장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사회의 불균형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뿐더러, 불균형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라는 물음이다. 이들의 관점에서는 '불균형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또한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책은 허구적'이다. 불균형이 있다하더라도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굳이 문제시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허구적인 '균형발전'을 내세워 '세종시 건설을 주장하는 것은 대중인기영합주의(populism)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놀랍게도 60년대 서구 학계에 한 때 풍미했던 '균형성장 대 불균형 성장의 논쟁'을 연상시킨다. 불균형 성장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불균형은 부득이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하면서, 이를 이용해 공간정책을 펴면 초기의 불균형을 중장기적인 균형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국사회에 등장하는 불균형 성장론자들은 균형 자체를 부정하는 대신 불균형을 성장의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시장 자본주의 하에서 불균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시장경쟁이 오히려 강화되는 모습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세계는 지금 극도의 경쟁을 추구하는 시대에 와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부문, 힘 있는 부문, 선도 부문이 앞장서서 힘과 파이를 키워야 한다. 자본으로 볼 때는 '삼성'과 같은 대자본, 사회계층으로 볼 때는 창조적 중상계급, 공간적으로 볼 때는 대도시권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것으로 호도되는 세종시는 기실 수도(서울)를 분할시켜 국가 경쟁력만 떨어뜨린다. 세계는 모두 대도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만 수도 서울을 분리시켜 그 힘을 빼고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서울을 죽여 세종시를 만드는 것은 천리마를 도륙해 나눠 먹는 것과 같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친정부적 논객들은 자유시장주의를 강하게 신봉하는 자들로서 특히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현재 이명박 정부의 외곽에서 이념적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고, 그 일부는 이명박 정부의 주류 정책을 생산하는 실세로 편입되어 있다. 정부의 통제를 직접 받는 국책연구기관에도 이들이 광범위하게 포진되어 있다. 국책연구기관 중에서 맏형에 해당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그 대표적인 예다. 2008년에 출간한 보고서에서 KDI는 한국의 지역 불균형이 OECD국가 중에서 중간에 해당할 정도로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진단한 뒤, 국가경쟁력을 드높이기 위해선 허구적인 균형정책을 버리고 대도시권 육성 등 불균형 성장정책을 적극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구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쿠르그만 교수의 '집적경제에 의한 성장론'을 애용한다. 균형발전보다 효율성(경쟁의 다른 표현)이 더 중요하다는 세종시 수정담론은 국토연구원 등 공간정책을 다루는 국책연구기관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불균형 담론은 이론과 정책의 영역을 넘어 일상의 정치사회적 영역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담론의 생산자들은 이념적으로 시장자유주의자이고, 정치적으로 수구보수주의자이며, 공간적으로 대도시주의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 면모는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정치 사회적 세력의 구성분포와 일치한다. 또한 참여정부의 역점사업인 세종시 건설을 극렬히 반대하는 세력의 구성분포도 이와 같다. 다른 영역에 있지만, 세종시와 관련하여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같다. '수도이전 반대', '국가정체성 훼손', '행정 비효율성', '수도권 경쟁력 약화' 등이 그러하다. 이들의 목소리가 '초록이 동색'인 것은 시장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지배이념으로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적으로 표현하면, 이 지배이념은 수도권으로 상징되는 공간계급이익과 일치한다. 이명박정부의 등장과 함께 수도권주의가 전에 없이 헤게모니화되고 있는 것이다.

6.2 지방선거: 수도권주의를 극복하는 축제적 변혁

균형주의 대 수도권주의의 대립은 보수와 진보, 집권과 분권, 수도권과 비수도권, 국가와 시민사회, 지배와 피지배 등을 가로지르는 차이의 전선들이 중첩되어 있다. 하지만, 그 대립은 백중지세가 아니다. 보수정권에 의한 '세종시 원안의 백지화'를 계기로 수도권주의가 롤백하면서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지형지세를 지배하고 있다.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신자유주의와 맞물러 수도권주의의 패권화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균형주의로 표방되는 '공간적 진보'의 가치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참여정부가 시도했던 공간개혁의 실험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가? 그러나 아직 낙망하기엔 이르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이 시대의 진정한 변혁은 일상공간(예, 도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일상 공간은 '체제화된 권력'이 일방적으로 작동하는 곳이 아니라 일상주체들의 삶의 권리가 주체적으로 추구되고 구현되는 장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일상 주체들은 삶터의 모순을 성찰하게 되고, 또한 일상의 축제를 통해 이를 극복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실천을 르페브르는 '축제적 변혁(festive revolution)'이라 했다. 지방공간의 주체들이 그들의 삶터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수도권주의란 '거대한 공간모순'을 올곧게 성찰하고 극복하려고 한다면, 다가오는 6.2지방선거는 '축제적 변혁'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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