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5% 성장? 문제는 가계경제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5% 성장? 문제는 가계경제야!"

[反MB를 넘어⑤] 부자동맹 VS 서민·중산층 경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대부분 언론은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인 베어스턴스, 리먼 브라더스, 그리고 메릴린치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에 주목했다. 부동의 1위를 자랑했던 씨티은행이 파산하여 국유화 절차를 밟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인 GM의 몰락에 초점을 맞추었다. 초대형 은행들과 기업들이 파산하고 그 여파로 수십억 이상의 연봉을 받던 펀드 매니저들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는 충격에 경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아 파산했던 수백 만 저신용 미국 서민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일자리를 잃고 의료보험 자격마저 상실하여 비참한 상황에 내몰렸다는 사실이다. 금융위기 발발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골드만삭스를 비롯해서 정부의 구제 금융을 받은 대부분의 은행들과 기업들이 실적을 회복하고 보너스 잔치까지 재연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집과 일자리를 잃은 서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위기 이후 일자리를 잃은 800만 실업자의 존재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이처럼 이번 금융위기는 대형 금융회사나 대기업에게만 피해를 준 것이 아니라 서민들에게 훨씬 가혹한 피해를 주었던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대형 금융회사였지만 이들은 구제 금융으로 살아난 대신 서민들은 진정한 피해 당사자이면서 아직도 구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경제위기 취약계층에게 집중되다

이는 미국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한국도 이번 경제위기로 십자포화를 맞은 계층이 다름 아닌 취약계층이다. 이는 13년 전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은 한보, 기아와 같은 유력 대기업에서 시작되어 이들에게 대출을 해준 은행으로 확산되었다. 때문에 당시까지 매우 안정된 직장이었던 대기업과 은행의 정규직이 정리해고 고통을 당하면서 경제위기 피해가 중소기업, 서민에게까지 급격히 확산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은행이 위기의 시작점이었던 것은 동일했지만 정부의 외환유동성 공급과 자본 확충 지원 덕분에 파산까지 내몰리지는 않았다. 대기업은 이미 상시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을 빡빡하게 운영하던 상태였고 투자기피 경향으로 부채를 줄인 탓에 금호그룹 등 무리한 인수합병을 한 그룹을 제외하면 유동성 어려움을 피했다. 쌍용차 대규모 정리해고 사례도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금융위기 복판에서 글로벌 경쟁기업들이 부실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정부 세제지원 혜택과 환율조건을 등에 업고 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은 시장 지배력을 높이며 수익률을 경신하기까지 했다.

대신 임시, 일용직, 자영업, 중소기업은 거의 외환위기 당시에 준하는 충격을 받았고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지금도 체감 경기 회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상용직 노동자는 경제위기로 잠깐 증가폭이 둔화되었다가 회복되었지만 일용직은 2010년 1월까지 추락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임시직은 정부 희망근로 효과로 잠깐 회복되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특히 13년 전 외환위기로 정리 해고된 직장인이 몰리기면서 과잉 팽창되기 시작한 자영업은 이번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에 속한다. 엎친데 덮친 겪으로 대형 할인마트의 기업형 수퍼(SSM) 확장으로 그 피해가 가중되었다.

취업형태가 임시 일용직일 가능성이 높고 자영업 종사 비중이 많은 여성의 일자리 피해 또한 심각했다. 남성의 고용은 반전되기 시작했지만 여성은 경제위기 이후 한 번도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 답답한 현실은 이들을 보호해줄 거의 유일한 고용안전망인 고용보험은 정규직 중심으로 가입되어 있어 일용직이나 자영업, 청년에게는 전혀 안전망 구실을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상대적인 고환율 환경 아래에서 대기업들이 수출 부진을 회복하여 실적을 올리고 있는 동안 중소기업은 환헤지 파생상품인 키코(KIKO)피해로 그나마 올린 수익을 까먹어야 했다. 2009년 중소기업이 입은 키코 총 손실액은 2조4000억 원으로 그 해에 집행된 정책자금의 42%나 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법원도 키코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 2차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287개 중소기업에서는 구조조정 고통이 뒤따르고 있고 나머지 중소기업들도 실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표 1> KIKO 거래 및 손익 현황(2008.1∼2009.8)

주: 1) 계약잔액은 '09.8월 현재 기업이 은행에 매도해야 할 콜옵션 금액
2) 실현손익은 계약이 만료, 청산되어 '업체수' 와 '계약잔액'에 포함되지 않은 계약에서 발생한 손익
자료: 금융감독원(2009. 10). 중소기업 연구원 재인용

대기업, 부유층 위주 경제정책이 서민경제위기 가중시켜

신자유주의 경제위기를 앞두고 '기업 프렌들리'를 표방한 신자유주의 정권이 취임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감세로 투자와 소비를 촉진시키면 경제 전체가 활성화되는 적하효과(trickle down)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새 정부의 경제정책의 요체였다. 나아가 4대강 사업과 같은 대규모 국책 토목공사로 성장률을 높이면 고용창출도 보증된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은 경제위기 현실에서 서민경제에 재앙에 가까운 후과를 남기고 있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 감세를 실시하고 종합부동산세를 완화시키는 정책은 투자와 소비증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반대로 경기부양을 위한 막대한 재정지출이 불가피한 여건에서 세수를 줄여 재정적자폭을 키웠을 뿐이다. 2009년 재정적자는 51조 원에 달했고 2010년 말에는 누적 국가채무가 400조 원을 넘을 정도로 국가 빚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가 총 22조 원을 들여 밀어붙이고 있는 토목사업과 4대강 사업으로 성장률 지표는 올라가서 2009년 역성장을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전혀 고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2009년 건설부문 고용은 전 산업 부문 가운데 일자리가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 유력 건설업체에게 대규모 수주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결말이 난 것이다.

대기업, 고소득층, 유력 자산계층, 대형 건설 업체가 정부의 지원 아래 경제위기를 피해가는 동안 다수의 서민과 중산층은 정부정책으로 인해 그 피해가 가중되었다고 할 것이다. 감세로 세수가 줄어들었는데 불구하고 대형 토목사업 지출을 늘렸으니 필연적으로 경제위기 시점에서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안전망에 투입될 재정 여력은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부유층 중심의 경제운영이 서민과 중산층의 생계를 압박하면서 정부의 지지율이 추락하고 전 대통령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비화하자 정부는 2009년 하반기부터 이른바 '중도실용-친 서민'정책을 내걸면서 국민에 대한 선무정책을 배합하기 시작한다. 등록금 취업 후 상환제, 미소 금융, 사교육비 경감 대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은 채 선심성 서민 정책만으로 실효를 거두기에는 상황이 너무 악화되었다. 서민금융을 만들겠다며 설립한 미소금융 실태를 보자. 지난해 12월15일 미소금융재단이 처음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실제 시행된 실적은 238명에게 16억 원이 대출된 것이 전부이다. 시간이 지나도 수천 명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경제위기 와중이던 지난해 9월까지 은행에서 대출을 할 수 없는 저 신용 서민들이 대부업체에 대출을 받은 숫자는 무려 115만 명에 이른다. 이중 1/3가까이는 생활비가 쪼들려 받은 것인데 이자율이 무려 최고 49%에 이른다. 덕분에 대부업체들, 특히 2000년 이후 합법적으로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지난해에 20%의 고성장을 기록했지만 서민들이 감당해야 할 이자비용은 급격히 늘어났다. 미소금융이 이를 대체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것이다.

체감경기 5%성장 전략을 위한 모색

"우리 경제가 연간 8% 성장을 해도 중산층이 혜택을 보는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성공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월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한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화두는 지표경기와 체감 경기의 격차가 구조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표경기가 정부 공언대로 5%성장을 한다고 해도 국민들의 가계경제가 5%성장할 확률이 지극히 낮은 것이다. 때문에 향후 경제의 핵심 목표는 지표경기 5%성장이 아니라 여전히 제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체감경기 5%성장에 맞춰져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 금융화, 작은 정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 수단들은 이번 금융위기로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세계 각국이 금융규제 강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고소득층 증세를 저울질 하고 있다. 수 차례 하이닉스 매각 무산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글로벌 금융시장 위축으로 민영화는 하고 싶어도 매수자가 없어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 정부조차 작은 정부는 고사하고 역대 가장 큰 정부로서 재정을 운용하고 있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기업과 부유층 감세를 해주면 투자와 소비 촉진이 뒤따라온다는 가정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복지 시스템을 확대하는 대신 대형 토목사업으로 성장률도 올리고 고용도 확충될 것으로 기대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미소금융과 같은 곁가지 서민정책으로 서민의 체감경기를 끌어올리기에는 여건이 심각히 악화되었다.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을 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짜고 정책기조의 대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성장인가 분배인가 하는 전통적인 보수-진보 도식도 극복하고 국민들의 삶과 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성장전략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 특히 지표경기에 얽매여 국내총생산(GDP) 성장이나 부동산 가격 상승, 주가 상승 등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 "GDP는 경제 분석의 좋은 지표가 아니"라고 선언하면서 "금융이윤과 부동산 값 상승에 따른 성장은 허구"라고 지적하고 있는 스티글리츠 교수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지금까지 가계 경제를 희생양으로 하여 기업과 은행, 자산시장이 팽창하고 그 결과 외형적인 지표경기를 끌어올렸던 식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어서. 국가와 기업, 은행과 자산시장들이 가계경제를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방식의 한국경제를 재설계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안정된 고용에 의한 성장, 저축에 의한 성장을 하면서 기업과 가계, 은행과 가계가 나름대로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발전해왔다. 당시에는 고용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기업의 고질적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문제였고, 은행들은 대기업 편향적이고 관치가 개입된 자금 운용이 문제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경과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고용안정에 의한 성장이 아니라 고용배제적인 단기실적주의 성장이 일반화되었고 대신에 고용은 항상적인 불안정성을 띠게 되었다. 반대급부로 당장의 소득 보전을 바라는 가계는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 의존도를 키워갔다. 그리고 그 자금은 은행에서 대출상품을 구매하여 해결했다. 미래 소득에 대한 불확실성에 개별적으로 대처하고자 각종 보험 상품을 구매해야 했다. 저축에 의한 성장체제가 부채에 의한 성장체제, 자산시장에 의한 성장 체제로 변질된 것이다. 이번 경제위기로 인해 고용불안이 커지고 가계 부채 문제가 전면화 되면서 이 시스템은 특히 서민과 중산층에게 취약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우리 경제가 '가계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민경제', '서민과 중산층의 체감경기를 개선하는 경제'로 전환하자면 무엇보다 기업이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국가가 사회 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기업과 가계, 국가와 가계가 안정되고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선 외환위기 이후 구조화된 고용불안의 기본 원인인 노동 유연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용 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경제 성장의 파생물로 고용확대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고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성장을 담보하는 전략, 즉 '고용을 통한 성장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즉, 정부가 모든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항상 고용창출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산업정책을 펼 때에도 고용창출효과가 높은 산업을 집중 육성하며, 고용유발 효과가 높은 분야에 재정을 집중 투입하는 재정정책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고용 기여여부에 따라 조세에 차등을 두는 조세정책을 편다는 것이며 고용유지가 가능하도록 고용 연계형 중소기업 정책을 편다는 것이다.

동시에 지금껏 한 번도 가계경제를 위해 제대로 된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는 국가가 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계경제를 위해서 적극적인 경제 정책을 펼 것을 주장해야 한다. 특히 이번 경제위기가 취약계층에게 집중적인 피해를 주고 있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사회 보장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가계 경제의 안정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국가적 사회 안전망 해체를 시도하면서 금융 수익을 추구했던 금융시장이 더 이상 가계 경제 희생을 담보로 성장하지 못하게 해야 함은 물론이다.

체감경기 5%성장과 가계경제의 실질적 개선, 그리고 고용을 통한 성장과 국가적 사회 안전망 향상을 경제발전의 최우선적인 가치로 삼고 서민과 중산층의 폭넓은 사회, 경제적 공감대를 만들 시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