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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라! 그들의 '국격'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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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라! 그들의 '국격'은 위험하다

[反MB를 넘어 ④] 소수의 국격 vs 다수의 인격

새해가 밝자마자 우리나라에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국격'이 세간을 들쑤시고 있다.

지난 10일 단 하루만 해도 꽤나 많은 '국격' 기사가 살포됐다. 김윤옥 대통령 부인은 한식 세계화 관련 모임에서 "나라의 국격이 높아지는 만큼 음식도 높아"져야 한다고 했고, 사공일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상하이엑스포는 G20 정상회의와 함께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일 절호의 기회라 했으며, 김대기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장애인 체육이 국격의 잣대라 했다.

그런데 이 국격이란 게 도깨비방망이인지 아무 데나 가져다 붙이며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대입 시험인 SAT 문제가 유출된 사건이 벌어지자 청와대 참모들은 이를 국격을 훼손한 사건이라 규정했다.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은 국격을 높이기 위해 모든 국민이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고까지 역설하더니, 또 한 매체는 다이옥신 배출량 감소로 '환경 국격'을 높였다는 어리둥절한 논리를 피기까지 했다.

'국격본색'

여기서 우려스러운 것은 이렇듯 현 정부의 지도층 인사들이 '국격몰이'에 나서는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속엔 지극히 불온한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우선 그 활용 사례와 논리를 보면 그러하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 여당 의원들은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 징계가 국격 손상 행위라고 열을 올렸다. 또 이진강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국격 떨어뜨리는 방송은 걸러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는 국격이 반대쪽 정파에 대한 '공격용' 또는 억압을 위한 '통제기제'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실 지난 며칠간 국격 관련 칼럼들은 국격이 '통치용'으로 악용될 여지를 다분히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12일자 <세계일보> 칼럼 '국격은 인격의 집합체다'는 국격 제고는 국민의 관심과 참여 뿐 아니라 자발적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주장해서 출발해 "국가 발전의 걸림돌로 비난받는 정치 및 노사 관계 부문의 국격 제고"를 언급하고는 "국민 개개인이 자기 자리에서 제 할 일 열심히 하며 인격만 제대로 갖추고 여기에 약간의 정부 계획만 가미된다면 우리가 바라는 국격 제고는 자연스레 이뤄"진다는 결론으로 달려간다.

또 11일자 <헤럴드경제> 칼럼 '기본 질서 유지와 국격'은 국격의 수준을 높이고자 전 국민 질서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그렇게 된다면 "의사당 안에서의 '공중 부양' 같은 일부 의원들의 폭력난동 행위"까지도 근절할 수 있을 거라는 논리를 펼친다.

사실 이러한 논리를 펼치는 국격 기사와 칼럼을 지금 우리는 꽤 많이 접하고 있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공통된 특징은 대충 이렇다. 우선 이들은 한국인들의 낮은 질서 의식, 특히 외국 (여행)에서 목격하는 '어글리 코리안'에 대한 사례를 그들 논리의 출발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침 얼마 전 한국인 도덕 수준 세계 최하위 및 성적 욕구 최고라는 한 영국 잡지의 조사 결과가 곁들여 지면서 마치 21세기 '민족개조론'을 설파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음은 정부 관계자와 언론은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 및 노력 그리고 심지어는 전 국민 질서운동까지 들먹인다는 점이다. 이는 특정 사안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가장 대표적인 정치적 술수이다. 사회 양극화, 부동산값 폭등, 자살률과 산업재해 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비정규직 55퍼센트, 청년 실업 200만 명 등의 사회문제와 미네르바 구속과 용산 참사, 언론 사유화 등 국가적 치부를 국격의 장막으로 가리려는 것이다.

이렇듯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를 만들어내 국가가 (특히!) 도덕과 질서에 기반을 둔 '국격 캠페인'에 나서는 것은 보수의 전형적인 선전, 선동 전략 아닌가. 객관적이고도 명백한 사회 현실을 실체도 없는 레토릭(수사)로 현실을 덮어 버리는 그것 말이다.

5공 '선진조국'의 환생?

정부의 '국격 드라이브'는 매우 염려스럽다. 사실 매우 '5공스럽다.' 한국인의 열등함을 공개적으로 논하고 국민의 책임을 강조하며 이 때문에 국격이 절실하다면서 국격을 전가의 보도마냥 마구잡이로 쓰는 작금의 상황은 전두환의 5공이 독재의 이론적 방패막이로 삼았던 '선진조국'을 생각나게 한다.

이명박 정부의 '국격 높이기'는 5공의 '선진조국 창달'의 이복동생은 아닐까. 특히 국격을 높이자면서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국민의 자발적 참여'는 들으면 들을수록 무시무시하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방향에 동조하지 않으면 반국가 세력이 되는 건 아닌지 말이다.

5공이 선진조국을 앞세워 폭력을 행사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바로 국제 이벤트 개최였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은 물론이고 미스유니버스 미인대회, IPU 총회, IMF·IBRD 총회를 치르며 온 국민들 소몰이 하듯 손님 접대에 매진케 했다. 그리고 그러한 이벤트로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했고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빨갱이'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 정부 고위층이 국격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면서 공교롭게도 G20 정상회담을 국격 제고의 발판으로 삼자는 논리는 그래서 염려스러운 것이다.

이는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논리다. 우리는 이미 올림픽은 물론 월드컵 등 G20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대한 국제행사를 이미 치른 국가이고 또 G20와 동일한 격의 APEC 정상회담까지 이미 치른 국가이다. 그럼에도 G20를 마치 한국을 선진국 대열에, 그야말로 덜컥 올려놓을 행사인양 호들갑스럽게 포장하고 홍보하고 있다. APEC도 노무현 때 치른 행사라서 '나라 말아 먹은 행사'라도 되는 건가.

객관적 난국을 추상적 구호로 돌파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명박 정부는 이런 뚱딴지 같은 정치적 레토릭을 고안해 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을 잘 살게 해주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했다. 그런데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게다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끝이 보이지 않는 외부와의 싸움을 하며 피로가 쌓였는데, 이젠 세종시로 인해 아군과의 치열한 전투까지 병행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경제 문제도 자신이 없는 형국에 적군은 물론 아군이었던 박근혜군(軍)과는 백병전을 치를 판국이다.

객관적 상황은 암담하다. 이 객관적 불리함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추상적 방법뿐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우리 보수가 이제까지 애용해 왔던 국가 담론을 집어 들었다. 국가를 앞세운 선전전은 역시 우리 보수의 특기다. 국익을 앞세운 국격 드라이브로 여론의 반전과 국면 전환을 노리는 다목적 카드다. 세종시 논란도 원래의 취지인 '균형 발전'을 '국익'으로 무력화 시키면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국익에 반하는 인물로, 사익을 추구하는 인물로 만들어 버리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국격드라이브는 성공할 것인가. 아직은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국가주의 담론은 대중에게 먹혀 들어갈 확률이 크다. 한국 사회의 여론은 항상 '국가'와 '국익'이라는 깃발이 향하는 쪽으로 이동해왔다. 사실 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한국 사회의 특성이다. 선거 등 중요한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던 이데올로기도 바로 반공(남침)과 국익(경제 발전)이었다.

'국익' 때문에 미네르바는 구속하고 이건희는 사면하고

▲ 그들이 '국격'을 얘기할 때, 서민은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에 신음한다. 국격을 높이려면 복지는 땅바닥에 처박아야 하나? ⓒ프레시안
그런데 반공은 사회 구성원 중 전쟁세대가 아직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만도 한데 아무런 실체도 없는 국익이 아직도 활개 치는 현실은 이해가 쉽지 않다. 근대 초기의 식민 경험과 전쟁 경험으로 인한 피해의식인지 혹 모르겠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쩌겠는가. 국가론은 한국인의 모든 상식을 무너뜨린다. 미네르바는 국익 때문에 구속했고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은 국익 때문에 사면했다. 젊은이들조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후보 선수인 박지성 씨가 국익에 크게 기여하는 인물이라고 아직도 굳게 믿고 있는 실정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똑똑하다. 그들의 정책을 이른바 친서민 정책으로 포장해 대통령으로 하여금 시장으로 나가 떡볶이와 어묵을 마구 먹으며 상인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게 한다. 그들의 실제 정책이 사실은 그 상인들을 엿 먹이는 정책이고 말고는 나중 문제다.

그리고 담대하다. 촛불도 '니들이 지칠 때까지' 밀어 붙여 효과를 보더니 4대강 사업과 세종시도 같은 전략으로 나가고 있다. 아울러 영민하기까지 하다. 혹 그 와중에 국민들이 지칠까봐 국격 캠페인을 선사하며 지겨워하지 않을 새로운 관심거리를 던져 준다.

선진조국 시절을 이미 오래 전 떠나보낸 우리가 이제 국격의 시대를 맞이했다. 온 국민이 참여해야 한단다. 자발적으로. 잘 못 되면 우리 책임이라는 분위기다. '동참'하라는 말에 머리가 좀 띵한데 마침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다.

설 연휴 첫날 집어든 신문의 기사다. '한국 사회복지 지출 OECD 최하위권.' 부제는 '더 낮은 나라 멕시코 뿐…공공복지는 평균의 반도 안돼'라고 읽힌다. 같은 날 다른 신문. '이 대통령 '전면 무상 급식' 반대.' 부제는 '여 당직자 회동서 "복지비 증액 어려워 불가능"'이다.

'그들만의 국격'

복지비 지출은 최하위인데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증액은 안 된다고 말하니 국격은 도대체 어떻게 높이겠다는 것인지. 아이티엔 애초 100만 달러 구호금을 보내려다가 그 놈의 국격 때문에 무려 1200만 달러로 늘렸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미워서 밥을 안 주겠다는 것인가.

우리 아이들이 배곯는 게 국격인가. 국격을 높이려면 복지는 땅바닥에 처박아야 하나. 아니, 도대체 현 정부가 말하는 '국격'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긴 대통령의 '범법 카운트'는 14건에 이르고 국회에서 육두문자도 마다 않는 인물이 현 정부 최장수 장관이라고 하니 '그들의 국격'엔 우리가 모르는 비장한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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