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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무조건 동업만 하면 손님이 찾아올까?

[反MB를 넘어 ②] 옆집보다 맛있게 만들 궁리를 해야

'촛불'이 꺼진 후 이명박 정부의 행보는 많은 이를 불쾌하고 불안하게 하고 나아가 분노하게 만들었다. 필자 역시 이러한 사람 중의 하나다. 검찰의 과잉수사·기소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의 후퇴가 현격히 진행되고, 집권당이 사법부를 공공연히 겁박하여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태롭게 하며, 국정원은 여기저기 간섭하고 돌아다니고, 부자 중심·이윤 최고·환경 무시로 요약되는 경제정책은 일방적으로 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진보·개혁진영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권을 '파쇼 정권' 또는 '독재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파쇼'나 '독재'라는 용어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정치적 욕설이라면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방향이 계급편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고, 통치행태가 헌법적 기본권을 약화하고 소수파를 무시하는 "다수파의 전제(專制)"로 가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사회과학적 규정(規定) 또는 집권전략을 위한 프레임 설정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이러한 인식으로는 잘못된 대책이 나오기 때문이다.

MB정부, 더도덜도 아닌 YS 수준

▲ 재래시장에서 왕만두를 먹으며 '친서민' 이미지를 고양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이명박 정부의 행태에서 박정희, 전두환 정부의 폭력적 지배의 모습이 종종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김영삼 정부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현 집권세력의 원형은 한나라당의 뿌리인 '민주자유당'에 있다. '3당 합당'을 통한 민주자유당의 창당은 '1987년 헌법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시한 한국의 보수 세력이 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고 또 이 속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감행한 '자기 업그레이드'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따르는 각 세력이 "구국의 결단"―당시 김영삼의 표현을 빌자면―을 내려 김영삼을 앞세우고 그 휘하에서 힘을 합친 것이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를 자랑하며 군대에서 '하나회'를 쳐냈지만, '법치'의 이름 아래 진보운동과 노동운동을 강경하게 억압했고, 경찰과 검찰을 수족으로 부리고 대법원장을 임기 전 끌어내렸으며, 안기부를 정권안보를 위해 뛰게 했고, 세계화와 성장주의를 밀어붙이는 경제정책과 대결적 대북강경책을 고수하였다. 당시 야당은 김영삼 정부를 "문민독재"라고 부르기도 하였지만 별 대중적 반향은 없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명박 정부가 '1987년 헌법체제' 안에서 합법적으로 탄생한 보수연합정부이며, 현재의 퇴행적 모습도 아슬아슬하지만 여전히 '1987년 헌법체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컨대, 전쟁이나 경제공황 등과 같은 비상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국 사회를 '1987년 헌법체제' 이전으로 급격하게 돌려보내지는 못할 것이며, 이는 민주화운동의 거대한 성과이다. 이 점에서 한국 정치는 기본적으로 OECD 소속 국가 수준의 정치체제, 마르크스주의 용어를 빌자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이르렀다.

'파쇼 독재' 명명의 오류

종종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좌빨"이라고 막말을 퍼붓고 "북진통일"을 외치는 조갑제, 서정갑, 김동길 씨, 그리고 시도 때도 없는 추태를 보이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한국 사회의 극우 보수 세력은 분명히 이명박 정부의 지지기반이며, 이명박 정부는 몇몇 정책을 통하여 이들의 바램과 이익을 충족시켜 주며 이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명박 정부는 중도 세력까지 포괄하려는 구도를 잡고 걸어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극우에서 중도까지의 카드를 다양하게 사용한다. 한나라당의 인적 구성 역시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이를 직시하지 않고 이명박 정부를 '파쇼 독재'라고 부르며 '악마시'하는 것은 정부에 대하여 부분적 흠집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승리를 위한 프레임 설정은 아니다. 그러다간 이명박 정부가 조금만 '좌 클릭'해도 비판의 예기(銳氣)는 꺾이고 비판의 방향은 어긋나게 되며, 나아가 진보·개혁 진영의 고유한 의제까지 잃어버릴 위험은 커진다.

대중을 향하여 이명박 정부는 '악마'라고 실컷 외쳤는데, 이 '악마'가 조금만 '착한 일', 예컨대 "친서민실용정책"을 추진하거나 또는 '천사'의 얼굴을 보이면, 예컨대 당외 "신진 인사"를 영입하거나 당내 "개혁파" 인사를 앞장세우면 대중은 "어, 악마는 아니잖아"하며 박수를 치게 된다.

근래 야권에서 논의되는 '반MB 민주대연합론'은 이런 위험을 안고 있다. 독재 세력과 "야합"을 한 김영삼 정부에 대항하여 '반YS 민주대연합'을 결성하여 투쟁하자는 전략이 먹히지 않았던 것처럼,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이러한 전략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민주대연합론'의 효용은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묻고 따지는" 연대로

이명박 정부의 계급적 편향과 반(反)헌법적 행태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다. 뿔뿔이 흩어진 진보·개혁진영의 연대는 역시 분명 필요하다.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사이에도 연대를 가능하며 필요하다. 그러나 이 연대는―어느 광고의 문안을 차용하자면―"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식이어선 안 된다. 이명박을 넘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 없는 선거용 연대는 실현되기도 힘들고, 실현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묻고 따지는 과정에서 감정 상할까 두려워 말아야 한다.

사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사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에 더 이상 나빠질 감정이 어디 있는가. 오히려 이명박을 넘어서는 각자의 비전과 정책,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현재의 역량에 대하여 묻고 따져야 연대의 기초가 만들어질 것이다.

대중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민주주의의 후퇴가 벌어지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2008년 전국의 거리를 가득 채운 '적극적 대중', 즉 촛불 시민이 다 사라졌겠는가. 촛불 시민이 아닌 '소극적 대중'도 현재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직시하면서도 이를 감내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요컨대, 대중은 이명박 정부라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의 의의와 한계를 직관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모두 감지하고 있다.

반면, '적극적 대중'과 '소극적 대중' 모두는 절절하게 '반MB'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 '반MB=김대중·노무현으로의 복귀'라는 공식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반MB=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공식은 알아듣기 힘들다. 교육, 주거, 일자리, 복지 등의 분야에서 이명박을 넘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취약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갖고 있는 '1987년 헌법체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고 간결하게 알려주지 않고서 이명박을 '파쇼 정권' 또는 '독재 정권'이라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대중은 움직이지 않는다.

박근혜는 '반MB'의 내용을 준비하는데

옆집 자장면 맛이 지겨워지기 시작한 손님에게는 차별화된 요리법으로 만든 새로운 자장면을 제시해야 한다. 아니면 짬뽕이나 볶음밥을 특화하여 도전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과 개선노력 없이 우리 중국집은 공동운영한다고 홍보해봤자 손님은 관성처럼 옆집으로 갈 것이며, 머지잖아 투자금은 날아가고 동업은 깨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옆집 자장면은 업그레이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박근혜 의원이 2009년 "아버지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라고 밝힌 것에 주목한다. 진보·개혁진영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그는 진보·개혁의 의제를 차용하여 '반MB'의 내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최근 세종시 논쟁에서는 자신을 지역균형발전의 수호여신으로 만들었다.

요컨대, 진보·개혁 진영이 선명하면서도 대중적인 독자 의제, 콘텐츠, 프레임을 내세우지 않은 채 "MB 싫은 사람 다 뭉치자"식으로 나간다면, 이는 항상 뒷북치기가 될 우려가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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