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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대한민국 국회를 고발해주세요"

[오건호 칼럼] 기초노령연금이 보내온 편지

난 기초노령연금이다. 세상에 선보인지 3년째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체 노인 중 70%인 약 360만 명이 매달 8만8000원씩 나를 만나고 있다. 올해 소요되는 재정만 3조5000억 원이다. 받는 사람의 수나 예산 규모에서 막중한 사업이다.

요사이 보편복지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자는 여론에 힘입어 등장한 용어다. 아이들에게 급식이 보편복지라면, 어르신들에게 내가 보편복지다. 65세에 도달한 대부분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일부 지급하는 제도이니 말이다. 며칠 전 언론보도를 보니 사람들 중 절반이 노후준비 능력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고령화가 심화되는 시대를 맞아 내 어깨가 갈수록 무거워진다.

나에게 무심한 사람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에 대해 무심하다. 내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재정을 마련해야 하는 정부는 애써 나의 존재를 모른 체하고, 시민단체들도 나를 푼돈으로 가볍게 여긴다. 나를 받는 어르신들 역시 침묵하긴 마찬가지다.

난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 의해 3년째 나의 법적 권리가 유린당하고 있다. 이번 2월 국회에선 혹시나 나를 챙기는 노력이 있을까 기대했으나 또 좌절이다. 내 사연을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까?

나는 2007년 여름에 태어났다. 애초 계획이 없던 아이였으나 국민연금 개정 논란 과정에서 덧붙여 생겨났다. 당시 정부는 국민연금의 법정급여율을 60%에서 40%로 대폭 깎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당연히 사람들이 이에 분노했고, 인터넷에선 '국민연금 8대 비밀'이 돌아다니며 안티국민연금 분위기를 강하게 조성했다.

그래서 조정안이 나왔다. 국민연금 급여율 인하를 보완하기 위해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대다수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랫동안 나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해왔던 노동단체, 시민단체들의 노력이 일부 결실을 맺은 것이다.

제도내부자만 챙기는 '엄격한' 국민연금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정말 자부심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금액이 작다며 무시하지만 난 미래 크게 자라날 새싹 같은 존재이다. 잠시 내 자랑을 들어보시라.

보통 공적 노후복지제도로 국민연금을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지닌 한계도 참 크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들에게만 나중에 연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경제활동인구 2400만 명 중 무려 1000만 명이 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젊었을 때도 어려운 처지에 살고, 늙어서도 연금 혜택에서 제외되는 '사각지대'에 있다. 국민연금은 지금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혜택을 주지만(직장가입자의 경우 본인부담 보험료의 3.6배를 연금으로 받게 됨), 노동시장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참 엄격한 놈이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 그러나 난 정말 괜찮은 놈!

이에 비해 난 '사회연대' 그 자체다. 대한민국 노후복지체제에서 나의 출생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나를 받는 노인의 수가 획기적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고령화에 따라 전체 인구 중 노인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나를 받을 자격을 갖는 '노인 70%'의 수도 자동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노인 수는 약 52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이다. 이후 노인 수는 2030년에 1000만 명, 2050년엔 1600만 명으로 전체 인구 4200만 명의 약 40%에 달한다. 그래서 2050년에는 노인 1600만 명의 70%인 1100만 명이 나를 받게 된다. 이렇게 나는 대한민국의 노후 보편복지의 기둥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둘째, 나의 급여율 10%는 수치로 보면 작지만 이것의 갖는 의미는 그렇게 작은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과 비교해 보자.

국민연금에서 말하는 급여율은 가입기간 40년을 기준으로 설정된 법정급여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입기간이 20년을 조금 넘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실제 당신들이 받을 실질급여율은 법정급여율 40%의 절반인 20%가 된다. 당신이 20년 동안 매달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납부하면, 나중에 평소 받았던 월급액의 20% 정도를 국민연금으로 받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당신들이 나를 위해 따로 보험료를 낼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65세에 이르고 상위 30%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당신은 나를 받게 된다. 국민연금 전체가입자의 월평균소득의 10%를. 이는 20년을 매달 보험료를 내야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액의 절반 금액이다.

2007년 연금법 개정 당시 사람들은 모두 손해를 보았다고 분개했다. 국민연금 급여율은 20% 포인트 낮아지는데, 새로 도입된 나의 급여율은 10%에 불과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거래의 손익계산이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가입기간을 감안하면 국민연금 급여율 20% 인하는 기초노령연금 급여율 10%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급여율로 보면, 서로 비겼다고 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계층적으로 새로운 복지효과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급여가 깎이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에 가입해 이후 연금 수혜를 받을 제도내부자이지만,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포함해 대다수가 서민 노인들이다. 실질 금액으로 보면 국민연금 급여 인하 몫과 기초노령연금 도입 몫이 비슷하지만, 계층적으로 보면 두 연금의 상호교환에서 상당한 재분배효과가 생겨난 것이다.

나는 축복받지 못하며 태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받는 노인의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고, 상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인들이 내 혜택을 본다는 점에서 괜찮은 놈임에 틀림이 없다.
▲ 기초노령연금 도입은 노인복지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나라당이 현행법의 틈새를 악용해 기초노령연금의 급여율 인상을 가로막고 있다. ⓒ뉴시스

3년째 가로막힌 내 성장

그런데 오늘 이렇게 내가 억울해 하는 건 권력을 지닌 자들이 현행법의 틈새를 악용해 의도적으로 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국회에서 국민연금법과 기초노령연금법이 함께 의결되었다. 그런데 국민연금 급여율 인하와 내 급여율 인상 방식이 약간 다르게 결정되었다.

국민연금 급여율은 2028년까지 20년 동안 단계적으로 40%로 낮추는 방식이 법에 명시되었다. 그래서 우선 급여율이 2008년에 60%에서 50%로 인하되고, 2009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인하되어 2028년에 40%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반면 나의 급여율은 2008년 5%에서 시작하되 2028년까지 10% 상향한다는 목표만 정하고 구체적 인상방식은 2008년 1월부터 국회에 설치될 '연금제도개선을 위한 위원회'로 위임되었다(기초노령연금법 부칙 제4조의2).

당시 난 몇 달만 지나면 나의 인상방식이 정해질 것이라 믿었다. 사람들이 그만큼 나를 세심하게 생각한다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연금개선위원회는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 결과 국민연금 급여율은 2008년 50%로 인하된데 이어 올해 49.0%까지 낮아졌으나, 나는 여전히 5%에 묶여 있다. 지금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176만 원의 5%인 8만8000원이다. 만약 내가 국민연금 인하와 연동해 상향되었으면 급여율은 5.5%, 금액은 9만7000원이어야 했다. 새로 회기가 시작되는 올해 4월부턴 다시 5.75%로 올라 10만1000원이어야 한다.

내 성장을 막고 있는 이들-정부와 한나라당

최근 나는 왜 국회에서 내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내 급여율이 올라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이명박 정부는 [제3차 사회보장 장기발전방향]을 마련했다. 여기서 정부는 내 문제와 관련해 임기 중에 국민적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만 밝히고 있다. 이미 법에 명시된 급여율 상향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을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임기 이후 과제로 미루고 있다. 게다가 나를 받는 노인의 수도 점차 줄이려는 방침을 일찍부터 세워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나라당도 정부와 보조를 맞추어 법에 정한 연금개선위원회 설치를 매번 반대하며 논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나의 법적 권리마저 무시하는 정부의 방침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정부와 한나라당의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부자감세, 4대강 사업 등으로 재정건전성 문제에 직면해 있어 추가 재정지출이 따르는 내 급여율 상향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이를 위한 확실한 방법으로 아예 국회 연금개선위원회 설치를 미루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지나치다. 정부와 여당이 법에 정해진 어르신 복지를 이렇게 유린하다니 말이다. 2007년 대선 며칠을 앞두고 대한노인회 주최 후보토론회에서 기초노령연금을 20만 원까지 드릴 수 있다고 약속했던 사람이 바로 현 대통령인데 말이다.

대한민국 국회를 고발해주세요

최근 청년유니온 이야기를 들었다. 88만 원 세대들이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나섰다. 무엇보다 기존 노동조합에 기대지 않고 당사자들이 나섰다는 점에서 새로운 변화이다. 꼭 이 사람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풀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처지를 다시 돌아본다. 새로 노동시장제도도 정비하고, 사용자들과 교섭도 해야하는 청년유니온에 비하면 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국회가 법이 정한대로 일을 하면하면 되는 일이다.

나를 받는 당사자들은 어르신들이다. 나의 억울함을 푸는 데 당신들이 직접 나서면 얼마나 좋을까? 어르신들이여, 대한민국 국회를 고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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