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철도노조의 파업이 파업 돌입 나흘만인 지난 4일 종지부를 찍었다. 공공성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철도노조의 요구가 지닌 정당성이 '불법파업'이란 낙인 아래 묻힌 채 이들의 파업은 싸늘한 여론 속에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끝난 것이다.
파업 종료 이후 정부와 철도공사 사측은 파업 지도부와 파업참여 조합원을 상대로 대규모 사법처리와 징계 방침을 내놓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번 파업 역시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사법당국으로부터 수배를 받고 있는 김영훈(40) 철도노조 위원장을 6일 서울 모처에서 만나 파업 철회 이후 소회를 들어봤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공공성 확대라는 공익적 요구를 내건 이번 파업이 '불법파업'으로 낙인 찍히면서 매도당하게 된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도 파업을 통해 조합원들의 의식이 한 단계 더 고양된 점에서 이번 파업의 의의를 찾았다.
***"공공성 확대 요구는 공기업 노조의 사명"**
프레시안 : 이번 파업의 핵심 요구는 철도의 공공성 확대였다. 임금이나 연금 등 실리적 요구가 아닌 공공성 확대를 핵심 요구로 내건 이유는 뭔가?
김영훈 : 파업 돌입 이후 언론들은 이번 파업에 명분이 없다고 보도했다. 괴로웠다. 공공성 확대를 요구한 우리 파업이 어떻게 명분이 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한 이번 파업이 과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조합원들을 대규모로 연행하고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만큼 지탄받을 일인지 지금도 의문스럽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회 양극화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서비스의 공공성을 회복시키는 일이 공기업 노조가 가져야 할 마땅한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철도, 전기, 통신 등 각종 공공서비스 산업에 민영화 바람이 불었다. 자연히 '공공성'보다 '수익성'이 더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공공서비스가 '수익성'이라는 잣대로 좌지우지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구매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공공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저임금에다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대다수 서민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에서마저 소외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기업 노조의 시대적 사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비롯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바람을 잠재우고 공공성을 회복시키는 데레에 있다. 이번 파업에서 '공공성 확대'를 전면에 내건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프레시안 : '공공성 확대'라는 철도노조의 요구는 현재까지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파업의 진짜 목적이 '공공성 확대'가 맞냐는 의혹이다.
김영훈 : 파업 돌입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파업 목적에 대해 수 차례 설명했다.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노조가 자기 밥그릇 문제도 아닌 공공성 확대를 위해 파업을 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어떤 기자들은 노골적으로 '파업의 진짜 목적이 뭐냐'고 묻기도 했다.
솔직히 기자들의 의심은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그 간 수많은 노조들이 파업을 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 공익적 요구를 내걸면서도 실제 교섭 테이블에서 쟁점화한 사항은 임금 등 근로조건에 대한 것들이었다. 철도노조 역시 '공공성 확대'를 내걸고 있지만 속내는 다른 데 있지 않느냐라는 것이 기자들이 보인 의심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은 분명히 달랐다. 연금이나 임금과 같은 실리적 요구사항은 하나도 담지 않았다. 물론 이와 관련한 이면협상도 전혀 없었다. 또한 파업 돌입 전 조합원들을 교육할 때도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하지 말자고 강조했었다.
***"1년 간의 끈질긴 교육 프로그램, 조합원들 의식을 바꿔 놨다"**
프레시안 : 조합주의에 머무르기 쉬운 노동조합이 공익적 요구만을 내걸고 파업을 전개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실리적 요구를 걸지 않으면 현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노조 활동가들이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김영훈 : 교육의 힘이다. 파업에 들어가기 앞서 1년 여 동안 조합원들을 교육했고, 조합원들 간의 토론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우리는 시험을 치르고 이 자리(정규직)까지 왔는데, 우리가 왜 비정규직을 위해 싸워야 하나'란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교육이 진행될수록 조합원들의 의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 교육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이었나?
김영훈 : 이번 파업의 핵심 요구 중 하나가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였다. 이들은 공사로부터 위탁받은 철도유통(구 홍익회) 소속 계약직 노동자들인데, 이들의 정규직화에 대해 대다수 조합원들은 쉽게 납득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KTX 여승무원의 위탁 외주화, 즉 비정규직화 문제를 공사 전체의 위탁·외주화의 시발점이라고 조합원에게 설명했다. 만성 부채에 허덕이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공사 입장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해 끊임없이 위탁·외주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부분을 끊임없이 조합원들에게 주지시켰다.
여승무원이 위탁업체 비정규직이 되면, 그 다음에 공사의 정규직 중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철도 승객차장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닌가? 이런 점이 부각되자 공사와 협력회사 내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닌 바로 자신의 고용 문제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조합원 사이에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런 덕택에 다른 대기업 노조에서 볼 수 있는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둘러싼 잡음도 철도노조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 KTX 여승무원들은 형식적으로는 공사 직원이 아니었지만 이들의 철도노조 가입에 대해 조합원 사이에 반대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직권중재, 불법파업이 아닌 중노위의 불법 결정이었다"**
프레시안 : 노조가 공공성 확대 등 공익적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했지만 파업 돌입 즉시 정부의 파상공세에 밀려 나흘만에 파업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론은 여전히 대공장 공기업 노조의 파업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김영훈 :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파업이 불법파업으로 낙인 찍혔던 것이 핵심 요인으로 보고 있다. 여론은 철도노조가 내건 요구가 아무리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노조가 '불법파업'을 감행하면서까지 파업을 감행할 필요가 있느냐고 본 것 같다.
위원장인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나라를 전복하고 혁명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닌데,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파업을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파업을 시작할 때 불법파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한 표현은 '불법파업으로 내몰린 것'이다.
프레시안 :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이 된 것은 중앙노동위원회가 중재회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중재회부 결정 이후 벌어진 파업은 조건 없이 불법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말인가?
김영훈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중노위의 중재회부 결정 자체가 불법이었다는 점이다. 중노위의 특별조정위원회는 이미 지난해 12월 조정을 종료하고 중재회부를 중노위 위원장에게 권고했다. 노조의 쟁의행위 돌입이 현저하다고 판단할 경우 신속히 중재회부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 특별조정위원회의 권고 요지였다.
하지만 중재회부 결정은 3월에 내려졌다. 우리는 지난 12월 말부터 파업 돌입 전까지 꾸준히 쟁의행위를 진행해왔다. 중노위 위원장이 중재회부 결정을 내리려면 진작에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쟁의행위 중 하나인 파업에 돌입하려니까 중재회부 결정을 내렸다. 한마디로 중노위 위원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중재회부 결정이 내려진 시점이 결정된 셈이다. 이는 중재회부의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관련 법에 분명히 어긋나는 대목이다.
프레시안 : 중재회부 결정 과정에서 법률적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인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무엇인가?
김영훈 :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중노위 위원장의 중재회부 결정과정에서 위법성을 밝히고, 철도노조 파업이 절차상 정당했음을 확인하려 한다. 이미 공기업을 포함한 필수공익 사업장의 수많은 파업이 중노위의 중재회부 결정으로 파국을 맞았다. 중노위 위원장 한 사람이 노동기본권을 막고 있는 상황은 더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다.
2년 전 GS칼텍스 노조의 파업에서 보았듯이 중노위의 중재회부 결정은 노조 자체의 운명을 좌우한다. 당시 중노위의 중재회부 결정에 법률적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지난한 법적 소송을 통해 사후 확인됐지만, 현장이 무너져 버린 지금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번 기회에 직권중재 제도의 부당성과 위법성을 낱낱이 밝혀 완전히 뿌리뽑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파업 철회한 또 다른 이유**
프레시안 : 이번 파업에서 한 가지 의문점은 파업대오가 1만여 명이나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 지도부가 왜 파업철회 선언을 했나라는 점이다. 주말만 넘겼다면 지금은 유보됐지만 화물연대 파업으로 이어지면서 큰 판이 만들어 질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사법당국의 대규모 검거작전이 예상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지도부가 서둘러 파업을 철회했다는 인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김영훈 : 글쎄 큰 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승객 안전이 우선이다.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사측은 비조합원과 복귀한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열차를 운행했다. 파업철회 여부를 놓고 노조 지도부가 가장 우려한 대목은 대규모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당시 유지되고 있는 파업대오의 상당수는 차량정비를 담당하고 있는 조합원이었다. 바꿔 말하면 당시 운행되고 있는 열차는 충분한 차량정비와 안전점검을 하지 않은 채로 선로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형 참사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고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파업을 지속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
***"파업은 실패했지만, 실패한 것만은 아니다"**
프레시안 : 파업철회 선언 이후 조합원들의 업무복귀가 빠르게 진행됐다. 열차운행도 거의 정상화됐는데, 파업 이후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김영훈 : 승리하지 못한 파업이 끝날 때면 지도부에 물병과 욕설이 날아드는 일이 예사다. 노조 홈페이지에는 지도부를 성토하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파업을 거치며 조합원 사이에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가 더 강해졌다.
이는 앞서 말했지만, 이번 파업에서 처음부터 실리적 요구를 내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요구사항에 임금 문제 등을 내걸었다면, 조합원은 파업철회 직후 각자 대차대조표를 그린다. 얼마나 따냈는지를 살펴보고, 기대 이하이면 실망감을 드러내며 노조 지도부를 비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 지도부는 처음부터 실리적 요구를 걸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오랜 교육을 통해 공공성 확대가 어떤 밥그릇 문제보다도 중요하고, 결국에는 자신의 고용 문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따라서 이번 파업은 종료 이후에도 조합원들이 요구사항을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합원들은 실리적 요구를 넘어 공공성 확대라는 공익적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고무돼 있다. 파업 이후에도 현장은 살아있고, 우리의 힘은 더 강해졌다.
프레시안 : 파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표정이 밝은 이유를 알 듯 하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하느라 수고했다.
김영훈 :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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