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철도의 공공성 요구하는 파업이 불법이라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철도의 공공성 요구하는 파업이 불법이라고?"

[현장르포] 파업종결 전날, 산개투쟁 철도노조원들과

"또 파업이냐"는 사람들도 있었고, "간만에 제대로 된 파업"이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또 파업이냐"며 짜증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여론과 정부, 언론의 삼각동맹 앞에서 철도노조는 파업 나흘만인 4일 무릎을 꿇었다.

'국가경제의 손실이 하루에 OOO억 원 , 무고한 시민들을 볼모로 하는 이기적인 파업, 정당한 법과 절차를 어긴 불법파업…' 등의 파업 관련 기사는 이미 눈에 익었다.

"OOO 노조의 파업에 대해 법무부, 행자부, 건교부 3부 장관은 합동담화문을 발표해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파업을 엄단함과 동시에…"라든가 "사측에서는 불법파업을 자행하는 노조와는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는 원칙적 태도를 견지하고… 지금이라도 현장에 복귀하는 노조원들은 선처하되 파업 지도부는 엄벌에 처한다는 입장을…"과 같은 발표도 너무 익숙해서 언론이나 정부에서는 미리 만들어둔 문안에 파업사업장 이름만 바꿔가며 재활용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기자들이 바빠서 그렇지 신문사는 신난다. 기사거리도 많아지고 장관 담화문이다, 사장의 '국민께 드리는 사과 말씀'이다, 조합의 반박문이다 해서 광고 요청도 쏠쏠하다.

***연행 과정에서 벌어진 백태…경찰도 비정규직은 차별하더라**

파업 사흘째인 지난 3일 오후 철도노조 파업상황실은 그야말로 눈코뜰 새 없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전 조합원들은 2006년 3월 2일 10시 30분을 기해 조직적으로 산개하라"는 김영훈 위원장의 투쟁명령 4호가 떨어짐에 따라 전국 4개 거점에 집결해 있던 2만 명 가까운 조합원들이 흩어지다 보니 별 일이 다 발생한 것이다.

경찰은 파업 참가자들을 '업무방해 현행범'으로 규정하고 연행에 나섰다. 경찰은 연행한 조합원들에게서 '업무복귀 각서'만 한 장 받고 다 훈방하는 모양이었다. 잡아둘 근거도 없고, 파업 참가 자체를 '업무방해'로 규정해 구속영장을 신청해봤자 영장이 떨어질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수배된 지도부가 걸리면 좋고, 그게 아니라도 노조원들에게 업무복귀를 압박할 수 있으니 밑질 것은 없었던 셈이다.

상황실에는 시시각각 현장 보고가 올라왔다. 교외 수련원에서 100여 명의 조합원들이 한꺼번에 연행되기도 하고, 내장산으로 100여 명의 조합원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식, 속리산 인근에는 헬기가 떴다는 소식, 경기도 안산에서는 연행되던 조합원들이 경찰버스가 신호대기에 걸린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경기도 양평에서 들어온 소식은 좀 황당했다. KTX 여승무원지부 조합원들 300여 명이 모여 있는 경기도 양평의 모 수련원에 경찰이 들이닥쳐 '해산하지 않으면 전원 연행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해와 조합원들이 책상과 의자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약 3시간 동안 대치했다.

그러나 경찰은 곧 자진철수했다. 이유인즉, KTX 여승무원들은 말하자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신분이기 때문에 철도공사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의 철수를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찰조차 비정규직을 차별대우하는 현실에 분개해야 하는 것인지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급박한 상황보고는 줄었다. 조금씩 안정돼가는 모습이었다. 소조로 분산된 조합원들이 안정된 거점을 확보했다는 보고들이 속속 들어 왔다. 산개 조합원들에 대한 취재요청에 대한 승인도 떨어졌다. 상황실에서 전화번호 하나를 받아 갖고 나왔다.

***"내 마누라도 모르는데 시민들이 우리 사정 어찌 알까" **

철도노조 상황실이 차려져 있는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약속장소인 서울 외곽 모처로 가려면 청량리역으로 가서 차를 갈아타는 것이 빠르다. 신길역에서 청량리역으로 가려면 지하철 1호선을 타야 한다.

신문, 방송마다 '지하철이 아니라 지옥철' 이라는 기사가 넘친지라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러시아워를 살짝 넘긴 탓인지, 시민들이 일찌감치 움직인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저녁 8시, 지하철 1호선은 생각보다는 덜 붐볐다.

청량리 역에서 택시로 갈아타고 한참을 가서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상황실에서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고 5분 남짓 지나니 한눈에도 '파업 조합원이다' 싶은 사람 하나가 저쪽에서 나타났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차량정비 지부 소속인 이들은 산개명령 첫날인 2일에는 지부 단위로 움직이다가 이날 오전 소조로 나뉘었다. 소조 인원은 8명.

소조원들이 맥주 한 잔 씩 하고 있다는 가까운 호프집으로 따라갔다. 거점은 바로 옆에 있는 찜질방에 확보했단다.

경계의 눈초리쯤이야 이미 각오한 바지만 역시 편치는 않았다. 조장, 부조장 순으로 소개받았다. 조장은 입사 11년차였고, 8명 중에 왕고참은 철도 32년차, 막내는 지난해 입사한 철도공사 1기였다.

철도 32년차 왕고참은 정년까지는 아직 6년이 남았다. 요즘 세상에 한 직장에 32년을 근무하고 정년까지 6년이 남은 데다가 '아직은' 직장을 잃은 걱정도 그리 크지 않다면 정말 복받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만했다.

"내가 예전에는 어용노조 활동도 해봤고 지금은 뒷방 늙은이인데, 후배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리 파업도 같이 하고 산개투쟁도 같이 하니까 좋아, 우리 또래들이 거의 다 파업에 동참했는데 이번 파업은 명분이 확실하다는 거야. 보면 알겠지만 우리 이번에 돈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 월급 한푼 올려달라는 이야기는 없다는 거야. 구조조정 반대 파업이지. 근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민주노조 이후에 생긴 해고자 복직 문제만 풀리면 파업 풀어도 된다고 생각해. 해고자 문제가 첫 번째인 거라."

다른 나라 철도노조가 그렇듯이 일제 시절부터 강성노조로 이름이 높았고 전평의 주력부대로 해방 이후에도 수차례의 파업을 주도했던 철도노조는 이승만 정권 수립 이후 이른바 '어용'으로 전락했다.

삼중, 사중 간접선거를 통해 위원장을 선출하고 위원장 자리에 앉으면 권력과 재산이 보장되던 철도노조가 위원장 직선제를 통해 이른바 '민주노조'로 다시 태어난 것은 2001년 5월이었다. 철도노조는 2002년 2월 '민영화 저지'를 내걸고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파업했고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공무원 시절에는 30년 근속해가지고 훈장도 받아야 되고 공무원 연금 문제도 있고 해서 아무래도 사람들이 나서기 힘들었지. 그런데 공사로 전환되고 나니 퇴직금도 정산됐겠다, 쓸데없는 훈장 걱정 안 해도 되고 파업하는 데 아무 부담이 없어. 그리고 공사가 되기 전에는 기능직, 일반직 간에 서로 알력도 있었는데, 공사가 출범하고 나니까 직종 간 차별의식도 거의 없어져서 뭉치기도 더 쉽고…. 공사가 된 뒤에는 파업 하기가 더 좋아졌다니까." 대선배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나머지 조원들은 토도 달지 않았다.

"밖에서 보면 이번 파업은 준비도 많이 한 것 같고 각오들도 평소 때와 다른 것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조장이 답했다.

"아까 우리 선배님이 말씀하신대로 이 파업은 임금 문제가 아니라 구조조정 반대 파업입니다. 우리가 2002년 첫 파업에서 민영화 저지를 내걸었지만 졌어요. 민영화 반대라는 게 잘 와닿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는데, 공사가 되고 보니 바로 구조조정이다 이겁니다. 민영화, 구조조정, 공공성 약화 이 3가지가 바로 한 덩어리더라 이거죠. 나도 무슨 노조 간부도 아니고 일반 조합원이지만 구조조정 반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라는 명분이 조합원들한테 이제는 먹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파업도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지기도 했고…."

"철도에서 일 년에 산재로 죽는 사람이 평균 이십 명 정돕니다. 과로사, 사고사가 대부분인데 별로 특별하게도 생각 안 해요. 늘 듣는 뉴스 아닌 뉴스죠. 지금은 조금 떨어졌지만 1998년부터 2000년께까지는 서른 명 넘게 죽어나갔어요. 일이 워낙 많다 보니까 안전규칙 같은 거 안 지키고 요령껏 하다가 사고가 나는 거죠." 부조장이 나서서 거들었다.

"내가 8년찬데 이것저것 떼면 일년에 한 3000만 원 받아요. 큰 돈은 아니지만 작은 돈도 아니죠. 연봉이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워낙 다 힘들어서 이 정도 받으면 많이 받는다 싶어 미안하기도 해요." 입이라도 맞춘 듯 자꾸 연봉 이야기다.

"사업소 측에서도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다가 막상 사고 나면 '왜 안전규칙 안 지켰냐'고 시침 뚝 떼고 나오고….차량 만지는 우리 같은 경우에 11명씩 3개조, 그러니까 33명이 하던 일을 요새는 23명 한 개조로 돌리거든요. 10명 줄어든 거예요. 그런데 또 구조조정 한다고 그러니 참…. 파업 욕하는 사람들은 이런 속사정 모르죠." 부조장의 말이 이어졌다.

"맞교대 시절에 밤 새고 집에 들어가서 잠자고 있으면 우리 마누라도 '이것도 안 해주고 저것도 안 해주고 맨날 잠만 자냐'고 욕하더라니까. 마누라도 모르는데 그걸 어느 놈이 알겠어, 아무도 모른다니까." 32년차 왕고참의 퉁명스러운 참견에 모처럼 웃음이 터져나왔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상층부와 현장의 괴리 **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습니까? 철도공사가 직고용한 비정규직이 3000명 정도이고 이리저리 철도에 관련된 비정규직까지 합치면 2만 명이 넘는다던데." 화제를 바꾸자 잠깐 대화가 멈춰졌다.

"우리 사회에 워낙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사람들이 월급을 제대로 받아야 돈을 쓰고, 그래야 내수경제가 돌아가는 건데…." 두루뭉실한, 어쩌면 들으나 마나한 대답이다.

"아니 우리 사회 전체 말고 철도 비정규직 말입니다. 파업 쟁점 중에도 비정규직 문제가 있잖아요." 아픈 곳일까? 질문을 이어봤다.

철도노조는 상시고용 비정규직, 그러니까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한, 단시간 근로가 아니라 상시적으로 철도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라는 원칙 하에 정규직 단체협약의 모든 내용을 비정규직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을 '일반 조합원'들이 알고 있을까? 동의는 하고 있을까? 말 그대로 내 밥그릇이 줄어들지도 모르는 일인데….

"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생각이 달라." 어색한 침묵이 깨졌다. "농사 지으면서 철도 와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청소하는 사람들도 다 비정규직인데, 그리고 청소하는 사람들은 파견업체 정직원이란 말이야…. 철도공사 시험 쳐서 들어온 직원들하고 어떻게 같이 대우를 해줄 수 있나?" 최고참 조원이 '용감하게' 말을 꺼냈다. 이후 잠시 더 침묵.

"우리하고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이 3명 있는데 그 중 2명은 옆에서 농사도 지으면서 파트타임 식으로 일하는 분이고 나머지 형님 한 분이 실질적으로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입니다." 부조장이 설명하고 나섰다.

"그 형님하고 우리 사이에 아무래도 벽 같은 게 있어요. 좀 없애 보려고 노력을 하는 편인데 썩 잘 되는 것 같진 않아요. 명절 같은 때 되면 우리는 얼마 보너스도 받고 별 거 아니지만 선물 같은 것도 나오는데 그 형님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돈을 좀 모아서 전달하기도 하는데…."

일단 업무의 특성상 이들은 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쉽게 접하게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맞다. 청소용역 노동자나 파트타임 노동자들을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이 대우할 수는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요구는 무조건 같은 임금이나 대우가 아니라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부당한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것이란 사실을 파업에 돌입한 조합원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인 듯했다.

참으로 어렵고 지난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가장 강력한 구사대로 떠오른 '일반 시민과 네티즌'들이 노동자들의 현실에 관심을 두지 않고 반사적으로 파업에 비난을 퍼붓는 것처럼, '일반 조합원'들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다들 자기가 짊어진 짐이 무거워서겠지만, 그 짐을 덜려면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것도 다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다.

일반 조합원들 개개인에게 의식이 부족하다고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부당한 일일 테다. 그러면 누구의 책임일까? 조합 지도부? 민주노총? 정치권? 언론?

***철도 민영화가 그리는 음울한 디스토피아 **

"안 믿어도 할 수 없지만 나는 철도 공무원 되면서 공적인 일, 공공 서비스를 한다는 게 참 좋았어요. 우리는 바리바리 짐 이고 올라오는 할머니가 있으면 짐 받아 주고 그랬거든. 철도에서 그런 할머니한테 돈을 더 받았던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제는 적자노선은 다 폐지하고 비둘기호도 없애고 돈 되는 것만 남긴다 이거에요." 얌전히 앉아 있던 한 조합원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민영화하면 더 심해지겠지. 그런 세상이 좋은 세상인가? 우리 파업 하면 다 욕하는 거 알아요. 한 10% 정도나 속사정을 알라나? 그래도 사람들이 왜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지 정말 답답해." 말할수록 더 속이 타나 보다.

'확실한 구조조정으로 과감한 민영화'에 성공한 영국의 경우 1996년부터 모든 철도사업이 분할되고 비 핵심사업은 외주화됐다. 그 와중에 비용절감을 위해 열차 자동멈춤 장치 도입이 지연되기도 했고, 1999년 10월에는 열차 탈선사고로 31명이 숨지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2001년 열차 전복, 2002년 열차 탈선 사고가 이어졌고 결국 영국 철도는 공영체제로 복귀 중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난 1987년 나카소네 내각에 의해 일본 국철이 민영 JR로 탈바꿈했다. 27만7000명의 국철 종업원 가운데 20만 명만 고용승계가 됐고 국철노조도 와해됐다. 이와 함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총평(일본노동조합평의회)은 '온건 조직'인 렌고(일본노동자연합)로 재편됐다.

자동열차정지장치 등 고가의 안전장비 도입이 지지부진해진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 경비절감을 이유로 차체도 경량화 됐다.

지난 2004년 4월 효고현의 다카라쓰카-도시샤 구간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시속 70Km로 달려야 하는 곡선구간에서 120Km로 과속하던 열차가 급브레이크로 인해 객차 7량 중 5량은 탈선, 선두 2량은 탈선 후 아파트로 돌진해 90여 명의 사망자와 450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사고를 낸 철도회사 JR니시시혼은 국철 시절에는 세계 제1의 정시안전 운행을 자랑했던 곳이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 격화된 경쟁에서 니시시혼은 고속화와 연장운행, 열차 경량화, 요금인하 등에 전력을 쏟았다. 사고 당시 JR니시시혼은 각 정차역의 발차시간을 15초 단위로 규정하며 지연 운행시 "허용속도 범위 내에서 지연시간을 만회"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지연이 된 경우 기관사에게 가차없는 불이익이 가해진 것은 당연지사. 2003년부터 기관사 직을 맡은 사고 기관사는 지연운행 등으로 인해 경고와 13일 재교육 등 3차례의 징계를 받는 등 강한 압력에 시달렸던 사실이 추후 드러나기도 했다.

"시민들도 이제는 알아야 됩니다. 나는 철도 민영화, 구조조정이 내 처, 내 자식, 내 부모한테 다 영향을 미친다고 봐요. 나는 우리를 잘라서 철도 빚도 갚고 안전도 확보된다면 다 잘라도 된다고 봐요. 사람 자르고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외주 주고 도대체 어쩌겠다는 말인지 나는 이해가 안 가요. 철도는 공공재라고 초등학교 때 다 배우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정부와 회사는 차라리 임금 올려달라는 파업, 근로조건에 관한 파업은 괜찮지만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며 경영권 침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파업은 '정치파업'이라 용납할 수가 없단다. 게다가 '일반 시민들'은 배가 불러서 파업에 나선다고 비난하니 답답한 심정이 어떨지 이해가 어렵진 않다.

***찜질방에서 보낸 첫날 밤, 그리고 파업 종결**

조장의 휴대전화로 '수면시간이 됐으니 내일을 위해 빨리 빨리 취침하라'는 윗선의 문자메시지가 자꾸 들어온다. 늦은 시간이긴 하다. 일은 안 했지만 신이문 차량기지에서 하룻밤, 산개 이후 100명이 같이 하룻밤을 보내고, 8명 분할 이후 긴장 속에서 또 하루 낮을 보낸 조원들 얼굴엔 피로한 기운이 역력하다.

그리고 8명 소조로 산개하고 나니 편하긴 한데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앞으로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단다. 오늘은 산개 이후 일단 사우나에서 한숨 돌리고 밥 먹고 뉴스 보고 당구 한 판 치고 그랬단다. 꼭 부모 품 벗어난 어린아이 같다.

일단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가까운 데 등산을 다녀오고 일과표를 짜서 움직여야겠다고 조장은 말했다. 종합상황실에서도 아마 일과표가 내려올 것이다.

"어때요? 자신 있습니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까 2002년 발전노조 산개파업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2002년 발전민영화를 반대하며 첫 파업에 나선 발전노조는 무려 38일 간 산개투쟁을 벌이며 파업을 진행했다. 언론도, 회사도, 정부도 다들 독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아까는 "아휴 우리는 발전노조처럼 어떻게 그러겠어요? 상상도 안 되네"라고 말했던 조장의 표정이 조금 단호해졌다. "언제? 언제란 말은 없어요. 무조건 끝까지지. 김영훈 위원장이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가는 거고, 말 없으면 안 들어가는 겁니다."

파업 3일차, 산개 2일차인 3일 밤. 여덟 명이 찜질방 수면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머리를 대자마자 우렁차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나 4일 오후 2시 철도노조는 현장 복귀, 파업 종결을 선언했다. 4일 간의 파업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그 다음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노조가 파업 조기종결을 결정한 데 대해 회사는 어떤 선물을 내놓을까? 두고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구속과 대량 해고 조처가 일부 철회되고, 복직투쟁의 부담도 일부 덜어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철 사장이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을 물리고 이번 기회에 기존의 단체협약 가운데 '불합리한' 조항도 싹 뜯어 고치겠다고 공언했는데, 과연 '선처'를 내릴까?

파업의 조기 종결로 철도의 상업화와 비정규직 확산에 제동을 걸려던 철도노조의 시도는 결국 무산됐다. 물론 철도노조는 앞으로도 공공성 강화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 파업을 두고 철도공사와 철도노조가 각각 써내려갈 대차대조표의 내용도 이렇게 새로운 상황 속에서 그 윤곽을 드러낼 것 같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