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는 이번 철도파업에서 감동을 느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나는 이번 철도파업에서 감동을 느낀다"

[기고] 철도노조의 '사회공공적 노동운동' 시도

노동조합이 파업을 할 때면 흔히 그랬듯이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도 보수언론의 공세가 거세다. 이번에도 역시 "시민을 볼모로 한 파업"이란다. 노동자와 시민을 피해의 원인 제공자와 피해자로 분리시키는, 판에 박힌 보도 방식이다. 하지만 일간지에 선보인 철도노동조합의 파업 광고를 유심히 본 사람은 노조의 입장에서 무언가 색다름을 느꼈을 것이다.

"저희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열차를 세웠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위험을 방관할 수 없습니다. (…) 철도노조는 시민과 노동자의 공동 바람을 실현하는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을 지향합니다."

철도 노동자에게는 시민과 노동자가 서로 다른 몸이 아닌 하나의 '우리'다. 또한 이 광고의 문구에는 지금까지 철도 노사 간 교섭을 어렵게 했던, 그러나 이번 철도 파업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핵심 길목이 되는 쟁점이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철도의 공공성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철도공사는 노사교섭의 범위를 넘는 의제라며 교섭이슈로 삼기를 거부했지만, 철도노조는 줄곧 파업의 이유로 철도의 공공성을 내걸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열차를 세웠습니다!"**

파업 돌입 직전 마지막 노사교섭에서 철도 노사가 부닥친 쟁점은 다음 네 가지였다.

첫째는 2006년 장애인 요금 할인축소분의 원상회복 문제였다. 철도공사는 출범 이후 경영적자를 이유로 유아, 학생, 장애인 등 사회적 교통약자에 대한 요금 할인을 축소해 왔다. 이에 철도노조는 아무리 적자라도 사회적 약자의 철도 이용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원상회복을 주장했다. 철도공사가 계속 이를 거부하자 철도노조는 최종교섭에서 요금할인 정책을 전향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처로서 2006년의 축소분이라도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안을 마지막 요구안으로 던졌다. 철도공사는 이것도 역시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가 할인분 손실을 보상해주지 않는 한 원상회복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철도공사의 차기 사외이사로 이용자 대표 1인을 공사 사장이 제청하는 문제였다. 철도는 시민의 일상생활과 직접 연관되는 공공서비스인 만큼 철도 서비스 제공자와 철도 이용자가 철도 운영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내고 운영을 감독해야 한다고 철도노조는 주장했다. 철도의 공공성은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며 구체적으로 공공참여 이사회 구성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관료들이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 공기업의 관행,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불온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이런 철도노조의 요구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에 철도노조는 최종교섭에서 철도공사 사장이 차기 사외이사 교체 때 이용자 대표 1인을 제청하는 방안으로 요구를 압축했다. 공사는 이 요구도 거부했다.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에 따라 철도공사의 사외이사는 공사 사장이 제청하고 기획예산처 장관이 임명한다. 따라서 공사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임에도 '경영권'의 특권적 성역은 깨어지지 않았다.

셋째는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문제였다. 꿈의 열차라는 고속철도에서 일하는 승무원들의 업무는 과거 철도청 체제에서는 철도청이 직접 주관하는 것이었으나, 철도공사 체제에서 위탁업무로 전환됐다. 현재 KTX 여승무원 372명이 (주)철도유통(구 홍익회)에 1년 단위 계약직으로 고용돼 일하고 있다. 동일한 고속열차 안에서 기관사들은 철도공사의 정규직원으로, 승무원은 외주회사에 관리가 위탁된 직원으로 일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철도노조는 계약직 승무원들을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해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것을 요구했고, 철도공사는 고용주체가 아니라며 확답을 회피했다. 철도공사는 파업 이후 이루어진 노사대화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시민중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절충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철도공사가 KTX 승무업무를 외주업체에 위탁하는 체제를 중단하고 직접 관할하는 체제로 전환하면 금세 해결되는 문제다. 물론 기획예산처의 공공부문 업무 외주 확대지침을 거슬러야 한다는 데서 철도공사 경영진의 용기가 필요하다.

넷째는 해고자의 전원 복직 문제였다. 철도공사에는 67명의 해고자가 있다. 철도노조는 이들이 개인적 비리, 업무 해태로 해고된 것이 아니라 '반세기 어용 철도노조 민주화(1994~2000년)', '돈벌이 철도민영화 반대(2002년)', '정부합의 불이행에 대한 항의(2003년)' 등을 내건 투쟁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이니 이번 단체교섭에서 전원 복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도공사는 최종교섭에서 인사규정(해임은 3년, 파면은 5년이 경과한 자는 신규입사가 가능)에 저촉되지 않는 17인만 복직시키겠다고 응답했다. 이는 철도노조가 거부했다. 어용철도 민주화는 이미 사회적으로 승인받았고, 철도민영화는 노무현 정부의 민영화 포기로, 정부 약속(2003년 4월 20일의 합의)의 불이행에 대한 항의는 법원 판결(2003년 6월 28일 파업의 책임 중 60%는 정부에게 있다는 판결)로 노조 투쟁의 정당성이 인정됐기 때문에 선별 복직은 '원칙과 의리'상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밥그릇 투쟁' 넘어 감동 주는 철도파업**

나는 철도노조의 요구 내용들을 보면서 무척 기쁘다. 노동운동이 새롭게 변하기를 노심초사 고대해 오던 중에 가뭄 속 단비와 같았다. 이번 철도노조의 요구 중 '금전'과 관련된 요구는 노조원들 자신의 임금 인상이 아니라 사회적 교통약자를 위한 요금 할인이다. 이사회 참여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대변한 것이다. KTX 여승무원 정규직화를 요구한 철도 조합원들 자신은 이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다. 철도노조는 일찍이 철도산업 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조합가입 문호를 개방했으며, 이번 파업을 준비하면서 정규직 조합원들의 호주머니에서 비정규직 구호기금까지 거두어 놓았다니 놀라울 뿐이다.

물론 단체교섭에 내세운 전체 요구에는 철도 노동자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내용들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 담판을 하는 최종교섭에서 철도노조는 이런 것들을 모두 부차적인 것으로 돌리며 진정성을 갖고 철도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투쟁에 초점을 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철도노조는 공무원에서 공사 직원으로 전환되면서 발생한 공무원연금 관련 불이익 문제를 뒤로 미루었다. 주5일제 적용을 위해 필요한 2250명의 인력 증원요구도 후순위로 돌렸다. 처음에 강조했던 고속철도 부채의 정부 인수 요구는 사측도 동일한 입장임을 확인하고 교섭 테이블에서 내려놓는 지혜도 발휘했다.

나는 사실 이번 철도파업을 지켜보며 지지하는 입장을 넘어 감동하고 있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어느 라디오 아나운서의 멘트를 듣고 소름이 끼쳤다. 그 아나운서는 이번 철도파업의 핵심 쟁점이 해고자 복직이라면서 "철도노조가 요금할인 등 공공성 있는 이슈를 구실로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려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라디오 뉴스에서는 철도노조가 여전히 시민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노동자성과 시민성을 분리하지 않은 혹독한 대가**

철도공사의 강경대응이 예사롭지 않다. 노조의 파업 돌입 이틀 만에 387명, 사흘째에는 총 2244명을 직위해제했다. 심지어 이철 사장은 지난 2003년 맺은 단체협약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한 조항들을 이번 기회에 손보겠다고까지 경고했다. 노동자와 맺은 단체협약을 자기 마음대로 변경해도 되는 것으로 아는 CEO가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어쨌든 철도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투쟁이니 그들의 몫이라고 하자. 하지만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도는 그들 앞에서 '시민'이라는 우리들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그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고 핀잔을 주고, 그들이 공적 요구를 내걸면 노조활동 범위를 넘어서는 정치투쟁을 한다고 비판한다. 우리는 철도 노동자를 시민으로부터 분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 속에서 자신의 노동자성과 시민성을 떼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철도파업에 대한 반격이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철도 노동자들이 새롭게 만들어가려고 한 '사회공공적 노동운동', 그들은 이를 너무 일찍 한국사회에 선보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