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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상업화가 교섭대상이 아니라고?"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3〉 '노사관계 후진국' 오명 언제 면하나

1998년 2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일하는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7일 동안 파업에 들어간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헬싱키의 지하철, 지상전철, 버스가 전혀 운행되지 않아 핀란드 사상 최악의 교통대란이 일어났었다. 당시 핀란드 지자체공무원노조와 운수노조에 속한 노동자 3800명이 파업에 참가했는데, 파업의 이유는 대중교통의 외주화(contracting out)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가 직접 운영하던 대중교통 서비스가 효율성과 비용절감을 이유로 외주화됨으로써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이 불안해졌는데, 이에 불만을 느낀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 파업은 법에서 정한 파업예고 기간인 2주를 채우지 못한 채 급하게 진행된 불법파업이었고, 그 뒤 노동법원도 불법파업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파업을 겪고 노사합의가 이뤄진 후 노조에 큰 금액의 벌금이 부과되었음은 물론이다. 핀란드 사용자단체의 임원은 이 파업을 두고 "무정부상태라고 불릴 만하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이 파업의 처리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중교통의 외주화 반대(한국의 기준으로 보자면 대중교통의 구조조정 반대)' 같은 노동조건 이외의 요구를 내걸고 불법파업을 벌였음에도 파업행위를 이유로 벌금 말고는 누구를 구속하거나 해고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관계부처 장관들이 성명을 내 불법파업자들에 대해 공권력을 동원해 해산시키겠다고 위협하지 않았으며, 지하철공사나 버스공사 경영진이 불법파업 참가자들을 직위해제하겠다고 협박하지도 않았다.

***'철도 상업화 반대'는 당연한 교섭 안건**

1998년의 11월, 이번에는 포르투갈 철도 노동자들이 1시간 동안의 파업에 돌입했다. 이유는 유럽연합(EU)이 추진하던 철도부문의 '상업화'에 반대하는 '유럽 행동의 날'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유럽운수노조연맹(FST)이 주도한 이 파업에는 유럽 각국의 철도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포르투갈에서는 11월 23일 오후 4시에서 5시까지 한 시간 동안 모든 열차가 멈춰 섰으며, 그 여파로 이날 저녁 무렵의 열차 편이 대부분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당시 포르투갈 철도노조 역시 요금 상승, 승객안전 위협, 노동조건 악화를 이유로 '상업화'에 반대하고 있었는데, 국경을 뛰어넘은 이 파업으로 체포되거나 구금된 철도노조 간부는 없었다.

산업규모가 크고 경제구조가 선진화된 나라들의 경우, 철도부문에서 일어나는 노사문제는 대부분 우리나라처럼 구조조정과 관련돼 있다. 2003년 1월에는 오스트리아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위협했는데, 당시 출범한 보수당 정부의 철도 구조조정 정책이 인원감축과 철도 민영화의 시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3년 3월에는 프랑스국립철도(SNCF)에서 노사분쟁이 일어났는데, 철도화물 운송시장의 개방을 둘러싼 노사 간의 입장 차이 때문이었다.

1998년 1월에는 룩셈부르크 철도노동자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항의해 파업을 했고, 2003년 1월에는 슬로바키아에서, 2005년 11월에는 슬로베니아에서 각각 철도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항의해 파업을 했다. 국영철도의 민영화 이후 '유럽 최악의 철도국'으로 전락한 영국의 경우 구조조정과 노동조건을 둘러싸고 철도파업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노조간부 체포구금은 심각한 문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노동정책을 자문하는 노동조합자문회의(TUAC) 홈페이지에 들어가 '노동권' 방을 검색해보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TUAC가 낸 보고서나 성명서가 게시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이 한국에 관한 것이다. 그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이 2005년 5월에 나온 '한국의 노동법과 노사관계에 관한 OECD 특별감시과정의 미래'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보고서는 한국의 노동권과 관련한 주요 감시대상으로 △기업 단위 복수노조의 계속적인 금지 △공무원 노조 결성권의 거부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 금지 △'필수공익 사업'에 대한 폭넓은 규정 △실업자와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부정 △노사분쟁의 제3자 통보 요건 등 여섯 가지를 꼽았는데, 감시활동이 본격화된 2002년과 비교해볼 때 "유감스럽게도 의미 있는 진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보고서는 "노조 활동, 특히 형법 314조의 '업무방해' 조항으로 인한 노조 간부의 체포와 구금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면서 "한국의 향후 노동정책 방향을 두고 볼 때 한국 정부가 노동법과 노사관계를 국제노동기준에 걸맞게 개혁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TUAC 보고서는 2003년 한국 정부가 발표한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로드맵은)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고, 핵심 노동기준에 부응하기보다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더 많이 강조하고 있다"며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촉진하고, 사용자의 직장폐쇄 권한을 확대하며, 특정 부문에서 파업 시 대체근로를 가능케 함으로써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대항권을 강화했으며,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과 관련하여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의 제안인 노사 양측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교섭에 맡기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각국 노총들의 모임인 국제자유노련(ICFTU) 홈페이지에는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이나 노조 간부에 대한 체포 소식이 자주 올라오는데, 최근 1년 동안 정부가 노조 간부를 체포 구금했다고 ICFTU가 집계한 나라는 지부티, 이란, 네팔, 캄보디아, 짐바브웨, 에디오피아, 에트리아, 파키스탄, 콜롬비아, 그리고 한국 등이었다.

***'업무방해'와 '불법파업'이라는 족쇄**

3월 1일 용산경찰서는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 지도부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출석요구 대상자는 김영훈 위원장을 비롯해 모두 11명인데, 경찰은 출석요구 시한인 3월 1일 오전 10시가 지남에 따라 일단 두세 차례 출석을 요구한 뒤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받는 등 법적인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노조 집행부는 경찰의 출석요구에 대해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노동, 법무, 건교부 장관은 "철도노조는 △철도상업화 중단 및 공공성 강화 △해고자 복직 △인력 충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교섭대상이 아니며 특히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중재 결정된 상황이라는 점을 들어 모두 명백한 불법파업"이라고 밝혔다. 담화문을 발표한 이상수 장관은 "정부는 이번 파업에 대해 그간의 일관된 기조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해 나갈 예정이며, 노동계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대화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처?**

사실 파업은 없으면 좋고, 있어도 짧게 끝나는 게 좋다. 혹자는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고 말하지만, 사실 파업을 직접 조직하고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파업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대사(大事)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파업에는 이유가 있는 법. 이번 철도노조 파업은 △철도상업화 중단 및 공공성 강화 △해고자 복직 △인력 충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노사 간 이견이 주된 이유다.

이들 요구에 대해 (건교부 장관을 뺀다면) 노동운동이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 노동자의 좋은 친구였던 노동, 법무부 두 장관이 "교섭대상이 아니다"고 입을 모으는 모양새가 꼴불견이다. 임금 몇 푼이 노동법에서 말하는 노동쟁의의 대상인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이라면, 임금보다 더 큰 영향을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인력 충원, 비정규직, 구조조정, 해고자 복직 같은 구조적인 문제는 '근로조건의 결정'과 관련된 더욱 절박한 문제다.

세 장관들은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처가 정부의 일관된 기조"라고 밝혔지만, 이 말도 참으로 한심하게 들린다. 회삿돈 수백억 원을 떼먹고 수천억 원을 거짓 처리해 국민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안긴 두산그룹 박용성 일가는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았고(물론 구속되거나 구금된 적이 없다), 역시 천문학적인 금액의 회사재산을 편법증여한 삼성그룹 이건희 일가는 검찰의 물타기 수사로 구속은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지난 연말 비정규직 집회로 특수공무집행 방해와 집시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전재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은 며칠 전 긴급 체포된 후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바로 구속되었다.

***아득한 노사관계 선진화**

대부분이 시설투자비인 철도공사의 빚을 요금인상으로 해결하지 말고 국고에서 충당하라는 게 지나친 요구일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요금할인을 없애지 말라는 게 이기적인 요구일까. 이전의 잘못된 노사관행으로 해고된 직원을 복직시키라는 게 잘못된 요구일까.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는 게 무리한 요구일까. 도대체 주요 쟁점 가운데 어느 요구가 정상적인 노사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철도노조의 파업에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위해 '참여'정부 스스로 폐지나 개선을 고려하고 있는 구시대의 유물인 직권중재를 다시 꺼내든 작태도 볼썽사납다. 노무현 정부가 철도노조 파업을 다루는 방식을 볼 때, 한국 정부가 OECD 노동관계 특별감시국 대상이나 ICFTU의 노조탄압국 명단에서 빠질 날은 아직도 아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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