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실을 알고 나면 아주 놀랄 것도 아니다. 사실 민주노총의 공식 입장은 주요 대기업 사업장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다. 이들 지부가 최근 발간한 소식지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복수노조에 반대하는 입장이 실려 있다.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노동조합 내부가 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견된다. 사측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집행부가 들어서면 자신들이 사주한 몇 개의 노동조합을 이용해 분명히 내부의 분열을 조장할 것이 분명하다. (현대차지부 소식지, 10월 16일자) 복수노조 허용은 어용노조의 기생을 활성화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한다! 복수노조가 금지된 상태에서 1사 1노조의 환경이 만들어지고 그런 환경 속에서 기존의 건전한 계급적 노동조합이 어용노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 자본이 언제든지 복수노조 하에서 어용노조를 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아차지부 소식지, 9월 28일자) |
노동운동 무형의 자산 : 현장의 역동성을 믿고 세상을 뒤집겠다는 기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지만, 필자의 짧은 노동운동 경력으로도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문구들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복수노조 금지조항'이야말로 "악법 중의 악법"이었고, "어용노조의 기생을 활성화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독소조항이라는데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의견이 같았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로 "3조 5호 철폐"는 노동절 집회나 노동법 개정투쟁 때면 외치는 앞순위 슬로건이었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민주노조운동의 제2노조 설립을 봉쇄하기 위해 노동조합법 제3조 단서 제5호에 복수노조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따라서 "3조 5호 철폐"는 곧 "복수노조 금지조항 철폐"를 뜻했다. 3조 5호에 대한 노동자 대중들의 불만과 인식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대중적 슬로건으로 '복수노조 허용'보다 '3조 5호 철폐'가 채택될 정도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 하부영 전 본부장은 '3조 5호 철폐'와는 정반대로,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별 복수노조는 노동 탄압을 통해 노동조합을 해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까지 해석한다. 하부영 전 본부장은 그 스스로 1987년 7월 24일 현대자동차에 회사가 주도하는 어용노조가 설립되자, '자주적 단결권 쟁취'를 내걸고 싸웠던 당사자다. 어용노조 퇴진과 민주노조 인정이 하부영 전 본부장의 당시 구호였다.
도대체 지난 세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곳곳에 수많은 민주노조가 결성될 때 사용자들은 비밀리에 유령노조를 설립하는 방법으로 노동탄압을 자행했다. 웬만한 노조치고 유령노조 설립신고를 철회하는 투쟁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복수노조만 허용되면 현장 대중들의 힘을 모아 사측이 세운 허수아비 노조를 단숨에 갈아엎을 수 있다는 패기와 기개가 있었다. 노동자가 단결하면 거대한 힘을 낸다는 사실, 그래서 철옹성 같은 '자본가 세상'을 뒤집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렇게 '3조5호 철폐'는 노동자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열망이 되었다.
한국노총 사업장 내의 민주파를 전체 민주노조운동과 한 몸으로 엮어준 것도 바로 이 슬로건이었다. 그 때문에 한국노총은 수차례에 걸쳐 정부 및 사용자와 함께 복수노조 허용을 유예하는 야합을 단행했다. 단순히 국제노동기구(ILO) 권고나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의 조직을 선택하거나 결성할 권리가 있다"는 결사의 자유 때문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노동운동의 역사가 '복수노조 전면 허용'을 깃발에 아로새긴 것이다.
그런데 오늘 민주노총 소속 대기업 사업장의 입장은 과거 한국노총의 목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변화의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에게는 현장 노동자들을 믿고 단결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웅대한 포부는 없다. 노동운동이 쌓아온 '무형의 자산'도 지난 10~20년 세월 속에서 잃어왔다.
반장노조가 두려운가? 그럼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를 껴안으라!
▲"만일 현대차에 복수노조가 생기면? 1년 안에 소수노조로 전락할 수 있다"는 하부영 전 본부장의 논리는 '무형의 자산'을 갉아먹어온 결과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프레시안 |
그러나 이 논리가 사실이라면 현대차지부는 오래 전부터 어용노조가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각종 선거와 총회에서 조·반장들과 사무일반직을 동원하면 안정적인 과반수가 되는데, 뭐하러 사측이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반장노조를 별도로 설립하겠는가?
물론 위 논리에 일말의 진실은 있다. 만약 10여 년 전이었다면 누구도 이런 논리에 수긍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패기와 기개를 가진 현장 노동자층이 두터웠기에, 자본이 조·반장을 동원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형의 자산'을 지난 세월 갉아먹었기 때문에 조합주의·관료주의가 득세하고 현장조직력이 약화됐다. 그 결과, 이제 대기업 사업장 곳곳에서 실리주의·어용 집행부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부영 전 본부장의 논리는 '무형의 자산'을 갉아먹어온 결과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방책은 완전히 다른 것이어야 한다. 우선 자본과 뜻을 같이하는 조·반장 등 관리자 숫자가 저렇게 엄청난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거기에는 IMF 이후 대공장에 엄청나게 늘어난 사내하청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사실 사내하청이란 것이 저임금으로 데려다 불법파견 형식으로 부려먹는 제도이다. 따라서 사내하청업체는 인력파견업체에 불과하며, 작업장에서 전반적인 관리·감독은 원청인 현대차가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본은 정규직·비정규직 모두에 대한 관리·감독을 위해 일정한 혜택(직책수당, 현장작업 면제 등)을 주며 조·반장 숫자를 늘리고 자신의 입장으로 포섭한다. 그나마 현대차니까 3000명 수준이지 조선업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내하청 숫자가 정규직 규모를 넘어서게 되어, 대략 정규직 조합원 3명 당 1명꼴로 직·팀장 등 관리자 직급을 달게 됐다.
자본은 이렇듯 관리자로 포섭하는 수단을 쓰며 현장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있는데 민주노조운동은 어떠한가? 바로 곁에서 일하면서도 저임금과 고용불안, 차별과 착취에 신음하는 이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의 가장 강력한 토대와 지지세력이 되어줄 비정규직 노동자들조차 껴안지 못하고 있다. 3000명의 조·반장이 두렵다면 1만 여 명에 달하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하면 된다.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외주 부품업체의 수십 만 미조직 노동자까지 조직하기 위해 나선다면 대체 3000명이 무섭단 말인가?
자본의 편에 선 두터운 특권층의 탄생은 엄청난 규모의 비정규직 투입에 비밀이 있다는 것을 곱씹는다면, 기업별 복수노조 금지 주장이 민주노조운동의 용기가 아니다. 차별과 고용불안에 신음하는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들을 두터운 노동의 지지층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정면승부의 길인 것이다.
복수노조 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밑바닥 노동자들이다
▲ 정부가 추진하는 법 개정의 가장 큰 독소조항은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아니라, 다수노조에게 배타적 교섭권을 주는 '창구 단일화'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복수노조가 아니라 창구 단일화다.ⓒ프레시안 |
앞서 거론한 대기업 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현 체계에서도 얼마든지 금속노조나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현장 노동자들의 뜻을 모아 대중운동으로 집행부를 바꿀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럴 포부와 용기를 가진 활동가가 있느냐, 과연 금속노조나 공공서비스노조 등 현재의 산별노조가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다.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걸림돌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러나 밑바닥 노동자들은 다르다. 지역(일반)노조들은 곳곳에서 신규 조직화를 하면서 사측이 세운 유령노조나 어용노조와 맞닥뜨려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설사 노조설립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정부가 추진하는 '창구 단일화'가 법제화되면 노동3권을 송두리째 잃게 된다.
이를 보여주는 간단한 증거가 이미 우리 옆에 있다. 현대자동차 안에는 이미 사내하청노조가 별도로 조직되어 있다. 사실상 '복수의 노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같은 금속노조 소속이긴 하지만 교섭과 파업은 다른 체계로 돌아간다. 그런데 창구 단일화가 되면 다수노조가 교섭권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기 때문에, 현대차지부는 교섭권을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비정규직지회들은 그나마의 권리를 다수노조인 현대차지부에 헌납해야 한다. 현대차의 경우 원·하청이 같은 금속노조에 있으니까 모순이 덜 드러날 수 있지만, 현대중공업처럼 정규직노조의 성격과 사내하청노조의 성격이 충돌하는 경우 사내하청노조는 권리를 빼앗기게 된다.
여기에 복수노조 논란의 핵심 중 하나가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 개정의 가장 큰 독소조항은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아니라, 다수노조에게 배타적 교섭권을 주는 '창구 단일화'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복수노조가 아니라 창구 단일화다. 사업장에 여러 개의 노조가 자신의 실력만큼 자율적으로 교섭권을 가질 수 있는 '자율교섭권 쟁취'가 목표여야 한다.
만일 자율교섭권이 쟁취된다면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민주노조운동의 실력발휘 여하에 따라 역관계가 바뀌게 된다. 다시 한 번 현대차를 예로 들어보자. 사측이 아무리 조·반장을 동원해 다수노조를 세우더라도, 민주노조를 사랑하는 수천의 조합원들이 별도의 노조로 조직되어 전체 노동계급의 이해를 받아 안고 싸우게 된다면? 차별과 고용불안에 신음하는 수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함께 조직하여 구속·해고 등 노동탄압에 굴하지 않고 투쟁한다면?
단순조립라인 생산의 특성상 이런 상황은 자본에게 있어서 '재앙'과도 같다. 1년 365일 사업장 내에서 노사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되며, 그에 따른 비용을 엄청나게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빅브라더 하나와 1년 1회 교섭으로 땡치자!"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대다수 사용자들은 지난 20여 년 간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해왔다. 사내하청노조의 투쟁이 벌어질 때에도 원청노조라는 '빅 브라더'를 통해 통제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이 '무형의 자산'을 잃게 되자 "복수노조 허용하되 창구단일화 하면 민주노조 박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정부와 자본 측 일부가 밀어붙이려는 것이다. 가증스럽게도 ILO 권고까지 들먹이면서 말이다.
'자본의 칼'을 어떻게 다듬어 '노동의 칼'을 만들 것인가?
하부영 전 본부장의 글 중에 전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언급이 하나 있다. "법이란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자기 목적과 계급투쟁의 역관계에 따라 그 용도와 성격이 변하는 유동적인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복수노조 허용은 자본 측이 두려워하는 요구였는데, 이제는 노동 측이 현장의 역동성과 조직력을 잃으면서 계급투쟁의 역관계가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조운동의 대응은 복수노조 반대가 아니라, 과거를 되새기며 자본이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복수노조 허용을 쟁취하는 길이어야 한다.
그 대안은 앞서 몇 차례 강조했지만, 잃어버린 '무형의 자산'을 되찾는 길이다. 현장의 역동성을 믿고 웅대한 패기를 가진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물론 조건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에 이를 되살리는 것 또한 달라져야 한다. 앞서 제시한 것처럼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들을 민주노조운동의 든든한 원군으로 조직하는 일은 좋은 출발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복수노조 허용은 '자본의 칼'이 아니라 '노동의 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과거 역사를 참조하면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현장의 역동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고민하자. 대기업 사업장 시스템을 마치 '복수의 노조'처럼 운영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다시 현대차를 예로 들자면, 현재 시스템은 울산의 5개 조립공장과 전주·아산공장이 사업부 체계로 하나의 노조에 묶여 있다. 이를테면 1공장 사업부, 2공장 사업부, 전주위원회, 아산위원회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각 공장별 현안에 편차가 심해서 독립적인 교섭과 투쟁이 요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미 라인속도(uph)나 인원(M/H)협상은 각 사업부 대의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 사업부나 위원회별 현안에 대한 교섭과 투쟁의 권한을 과감하게 현장에 위임하는 방안은 어떠한가? 마치 사업장 안에 여러 개의 노조, 즉 1공장 지회, 2공장 지회, 전주지회, 아산지회 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산별 시대로 가는 마당에 웬 역행이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이 오히려 '산별 정신'에 걸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즉,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있어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분할을 넘어 최대한 넓게 조직하되, 투쟁의 권한은 현장 노동자들이 쥐는 방식이다. 각 지회별로 편차는 존재하겠지만 어떤 지회가 사업부 비정규직까지 모조리 조직하여 단결된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하는 모범을 만들어 낸다면, 앞다퉈 다른 지회들도 그 모범을 따르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서 얘기한 상황, 즉 1년 365일을 사업장 내 분쟁이 지속되기 때문에 자본은 교섭비용을 줄이기 위해 양보를 고민하게 된다. 아니, 상황이 이렇게 발전하면 정권과 자본 측이 스스로 앞장서서 '복수노조 결사반대'를 외치게 될 것이다.
뒤늦은 반성 : 노동운동가여, 당당하게 '커밍아웃'하라!
물론 나는 이런 제안이 짧은 시간 안에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받아들여지리라 믿을 만큼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다. 사실 나 스스로가 그동안 복수노조가 반드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복수노조 시대를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준비하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해야 할 사람이다. 복수노조 허용을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노동의 칼'로 벼려낼 수 있는데, 그저 원칙만 강변해왔을 뿐 실질적 준비는 회피해왔다. "하려고 하는 자는 행동으로 말을 입증하고, 회피하려는 자는 말로 행동을 변명한다."
그러는 사이 이명박 정부는 창구단일화를 밀어붙일 기세이고 자본 측 일부도 지지를 보내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어느새 대기업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조운동 다수가 사실상 복수노조에 반대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정권과 자본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면서 뒷구멍으로는 거래를 시도하려 할 것이다. 신임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복수노조·전임자 문제를 원칙대로 강행한다고 떠벌이는 것은, 거래를 위해 몸값과 판돈을 키우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동계의 양보를 종용하려는 것이다. 이미 수차례 기꺼이 야합에 동참한 이들은 물론이고, 민주노조운동의 주류도 침묵하거나 심지어 은근히 야합을 바라는 분위기마저 조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거래의 항목은 무엇이 되겠는가? 단연 이명박 정권이 국정 제일의 과제로 내세우는 '노동 유연화'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리해고 요건 완화와 맞바꾸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 하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정리해고 문제는 조직노동자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게 나올 것이므로 쉽지 않을 것이다. 혹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사에서 조금 비켜서 있는 파견허용업종 확대, 직업안정법·비정규법 개악이 거래 항목이 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복수노조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밑바닥 노동자"라는 말이 현실이 되고 말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밑바닥 노동자들을 희생양 삼아 자기 밥그릇만 지키려 한다"는 이데올로기 공세까지 덤으로 얹어주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동안 앙상하게 원칙만 되뇌어왔던 과거를 뼈아프게 반성하는 뜻으로 한 가지 제안을 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이 글은 하부영 전 본부장의 글을 논박할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동안 수면 밑에서만 논의되던 민주노조운동 주류의 입장을 용기 있게 발표했다는 점에서 하부영 전 본부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한다.
오히려 이번 계기를 통해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진 우리의 계급의식을 깨우기 위해 치열한 논쟁의 광장을 열기를 희망한다.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버린 '민주노총의 공식 입장'은 '화석화'되어 버린지 오래 아니던가? 그런 것 염두에 두지 말고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솔직한 자기 생각을 밝혀주길 바란다. '커밍아웃'을 하고 당당하게 논쟁의 광장을 열어주시라. 그 속에서 나처럼 나태해진 이들이 다시 한 번 생기를 머금고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양날의 칼'을 '노동의 칼'로 벼려내기 위한 풍부하고도 구체적인 대안과 상상력을 생산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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