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복수노조 허용, 한방에 훅 가기 전에 반대해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복수노조 허용, 한방에 훅 가기 전에 반대해야"

[기고] 기업별 복수(復讐)노조 허용하려는 정부의 속내는?

2010년 시행 예정인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를 놓고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협상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내년 시행'이라는 원칙을 고집한다. 현재 노동계의 요구는 "복수노조는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은 노사 자율로 한다"는 것이다. 경영계 가운데는 이른바 '무노조 경영'을 하고 있는 삼성과 포스코가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 내부에서 전혀 다른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 <프레시안>에 "민주노총은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기존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노동계 안에서 '복수노조 금지'라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3년 전, 한국노총이 두 조항의 3년 유예를 합의했을 때 "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가로막는 어용"이라 비판하기도 했었다. 하부영 전 본부장의 문제제기가 노동계 내부에서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편집자>


"정부의 진짜 속셈은 복수(複數)노조인가, 복수(復讐)노조인가"

▲ "진짜 쟁점은 이게 아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별 복수노조는 노동 탄압을 통해 노동조합을 해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심각한 문제다."ⓒ프레시안
뭔가 논의가 잘못 되고 있다.

신임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를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한다. 내년 1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으니 불과 3개월도 안 남았다.

지금까지 나오는 얘기를 보면, 노동계와 정부의 대립은 이런 내용이다. 복수노조의 경우, 일단 양 측 모두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과반수 노조에게 교섭창구를 단일화할 것이냐 아니면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냐가 쟁점이다. 전임자 임금 문제의 경우 법으로 지급을 금지할 것이냐 아니면 노사 자율로 결정하게 둘 것이냐가 대립지점이다. 각각의 쟁점에서 전자는 정부의 의견이고 후자는 노동계의 요구다.

그런데 진짜 쟁점은 이게 아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별 복수노조는 노동 탄압을 통해 노동조합을 해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이제껏 '반노동 정책'으로 일관하는 정부가 왜 국제노동기구(ILO)가 권고하는 복수노조를 허용해주려고 하는 것일까?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선의에서? 그렇게 보기 힘들다.

정말 정부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면 현재 삼성과 포스코 재벌이 벌이고 있는 노조 탄압에 대한 처벌이 우선되어야 한다. 공무원 통합노조에 대한 탄압도 즉각 중지해야만 한다. 이 땅은 아직도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유령노조를 설립하거나 노동자에 대한 미행과 감시, 추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심지어 백주대낮에 납치와 테러까지 자행되는 나라이니 말이다.

현재 자본과 정권은 노사관계가 사측에 의해 지배되는 곳에서는 노동3권을 유린하는 방법으로,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노조를 분열시키고 무력화(소수화) 시키는 방법으로 민주노조운동을 말살하려 하고 있다. 그런 현 정권에게 진정한 노동3권과 결사의 자유를 바란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복수노조 허용이 내년 원칙이라고 주장하는 정부의 진짜 속내는 노동조합의 운영 원리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노동조합은 단결투쟁의 원리로 운영된다. 하나의 기업에 2, 3, 4개의 복수노조는 곧 노동자의 분열을 의미하며 결국 각개격파 당하고 말 것이다. 노동자에게 있어서 노조 설립의 자유란 계급적 단결의 무기로서 자주적 노조를 중심으로 통일된 단결투쟁을 전개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노동자들을 분열 약화시키는 것과는 인연이 없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1사 1노조, 1국 1산별 1노총을 향해 전진해야 하며, 지금 민주노총은 한국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그 방향으로 나가는 과도적 단계를 지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의 진짜 목적은 이러한 흐름을 차단하는 데 있다. 또 민주노총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ILO의 결사의 자유 권고 조항'을 악용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현재의 조건에서 ILO의 결사의 자유 권고 조항을 영구불변한 노동자들의 보편적 가치로 착각하고 형식 문구에 기계적으로 얽매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법이란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자기 목적과 계급투쟁의 역관계에 따라 그 용도와 성격이 변하는 유동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현재의 민주노조운동 조건에서 'ILO의 결사의 자유 권고 조항'은 더 이상 민주노조운동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과 정권의 민주노총 무력화에 기여하는 조항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노동계는 직시해야만 한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다 놓친다"

일본의 노동운동 역사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반노동자적인 신자유주의 정권 하에서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은 기존 민주노조는 깨뜨리고, 신규 노조 설립은 어렵게 만들어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을 단숨에 망하게 만들 수 있는 독소 조항이라는 것을 말이다.

일본에서 도요타 노조와 노사관계를 30년 이상 연구한 교수가 2006년 울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가장 큰 관심사가 일본의 기업별 복수노조의 역사적 결과였기에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그는 "지금 도요타 노조의 전신은 회사의 사주에 의한 반장 노조였으며, 기존 노조 조합원들은 회사 측의 차별정책에 의해 3년도 못 버티고 탈퇴해 반장 노조에 가입했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노조는 급격히 조합원 수가 감소하고, 끝까지 유지하려던 소수 활동가들은 회사의 개별 탄압을 극복하지 못하고 징계 해고나 자진 사퇴를 하는 것인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 그가 전한 얘기였다.

일본의 이런 기업별 복수노조 경험은 우리의 반면교사였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운동에 던지는 경고이기도 했다.

만일 현행대로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설립된다면 기존노조에 대항하는 회사의 조장과 반장들이 주축이 되는 노조가 복수노조로 설립되며 분열의 길을 걷게 된다. 소위 회사의 말을 잘 듣는 어용노조에 모든 지원이 쏟아지고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차별한다면, 과연 민주노조가 3년은 버틸 수 있을까?

회사가 인사와 승진, 연장과 특근근무, 고용문제까지 차별을 일삼는데 3년을 버틸 조합원은 없을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민주노조와 어용노조의 차별까지 허용되면 현장에서 민주노조 깃발을 지킬 힘이 없어진다.

"만일 현대차에 복수노조가 생기면? 1년 안에 소수노조로 전락할 수 있다"

▲"지금도 보수언론은 현대차지부가 금속노조를 탈퇴하기를 원하며 각종 이간질과 분열책동을 일삼는데, 만일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어떻게 될까?"ⓒ프레시안
이는 민주노조 운동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갖고 있어 매번 보수언론의 타깃이 되는 현대차지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지금도 보수언론은 현대차지부가 금속노조를 탈퇴하기를 원하며 각종 이간질과 분열책동을 일삼는데, 만일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어떻게 될까?

그 미래는 도요타 노조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의 '조반장협의회'가 별도의 노조가 된다고 가정해보자. 3000명의 조반장이 1인당 딱 3명씩만 빼간다면 9000명이 새 노조로 옮겨와 순식간에 1만2000명 조합원이 된다. 여기에 회사 장악력이 높은 사무일반직(1만 명)과 판매·정비(8000명)가 대거 이동하면, 4만5000명의 현재 노조가 1만 명도 채 안 되는 소수 노조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미 대세를 빼앗긴 기존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주눅이 들어 눈치만 살피게 된다. 만일 회사가 인사, 승진, 연장, 특근, 배치전환 등 고용불안까지 조성하며 협박하는 차별정책을 펼치면 1년도 버티지 못하고 탈퇴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최악의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바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며 실제 상황이다.

단지 조합원의 이탈 외에도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은 일파만파의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유일교섭단체로서의 기득권이 무너지면서 단체협약이 무력화될 수 있다. 둘째, 유니온 숍 조항은 즉각 무력화되어 조직율 하락을 가져온다. 셋째, 조합비 집단 거출방식인 체크오프시스템이 무력화되어 개인별 거출로 재정이 불안정해진다. 밑뿌리가 없는 나무가 존재할 수 없듯이 상급단체부터 해체 당할 것이다.

"민주노총, 잘 모르면 차라리 반대로 가라"

그래서 한국의 현실 무시하는 기업별 복수노조의 도입은 자본과 노동 간에 상호 선의의 경쟁을 보장하는 '양날의 칼'이 아닌 일방적인 '복수의 칼'이다.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그 장점을 유지할 대책이 없다면 오히려 단점만 남게 된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복수노조 논쟁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명백히 알면서도 어리석게 형식주의적 명분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잘 모르면 정권과 자본의 반대로 가는 게 정답이다. 민주노총은 기존 조직 노조 분열을 자초하는 기업별 복수노조를 반대하고 초기업단위 복수노조만 허용하는 현행을 사수해야 한다.

한국에서 자유는 힘센 쪽의 논리일 가능성이 높다. '노조설립의 자유'를 얻으려다 '노조탄압의 자유'만 허용하는 결과만 올뿐이다. 조직률 10%에 불과한 한국의 노동 탄압 현실에 ILO 결사의 자유는 호사스러운 허상에 불과하다. ILO가 4차례나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조항을 폐지하라고 권고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정부가 굳이 기업별 복수노조를 허용하려는 속셈은 다른 데 있다.

민주노총은 현장 조합원 대중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현재의 방침을 철회하지 않고 몰 계급적인 '결사의 자유'라는 말에 혹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점을 명심하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