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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용산, 냉동고를 열어라] 용산으로 이어진 길, 하지만 너무나 먼 길

1월 20일 발생한 용산 참사가 여섯 달 가까이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5명의 철거민 희생자의 시신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서울 순천향대병원의 냉동고에 있다. 유족, 철거민, 이들을 돕는 시민은 날마다 참사 현장 앞에서, 그리고 수시로 유관기관을 방문해 사과와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지만 정부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행세만 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서 용산의 재개발 조합과 시공사는 하루속히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태세다. 문정현 신부 등 참사 현장을 지키는 철거민과 시민들은 날마다 용역업체 직원의 시비를 상대해야 한다. 다섯 달 전과 비교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문화예술인이 이 같은 용산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연재를 시작한다. 6·9 작가선언 모임을 비롯해 작가, 미술가, 만화가, 사진가 등으로 구성된 '용산참사와 함께 하는 예술가들'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용산 참사에 대한 자신의 에세이를 풀어낼 예정이다. <편집자>

잔혹동화, 2009 대한민국 용산

벌건 대낮에 길 한복판에서 어린 소녀가 강도에게 맞아 죽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소녀의 주검이 방치되었다. 국화꽃을 갖다놓던 사람들의 발길도 점차 뜸해졌다. 어떤 이들은 냄새나는 주검을 왜 아무도 치우지 않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고약한 냄새도, 불편한 진실도 모두 익숙해지기 마련. 사람들은 이제 그 곁으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고, 심지어는 그 강도가 다음 먹잇감을 찾아 돌아다니는 걸 보고도 그건 그 소녀만의 불행이었다고 중얼거린다.

그곳에 가보셨나요? 용산

용산참사현장은 한강로에 위치하고 있다. 버스전용차로를 포함해서 그 앞으로 왕복 6차선 대로가 지나간다. 사건현장인 남일당 건물 뒤편으로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세 동이 보이고, 걸어서 5분 거리엔 이마트와 아이파크몰 그리고 용산CGV가 입점한 용산역이 있다. 삼각지역부터 용산역 사이는 주상복합과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용산역 부근과 용산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그 옆에 아직 철거되지 않은 대로변의 건물들은 아직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이제 그곳도 이른바 명품주거단지나 주상복합이 들어설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누군가에겐 용산이 삶의 터전이었겠지만, 내게 용산은 그저 어디론가 통하는 길목이었다. 한강대교로 진입하기 전, 차가 무지하게 막히는 곳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까. 사건 당일 뉴스에서 소식을 전해 듣고도 그곳을 바로 사건현장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적어도 그런 일이 도심 한복판에서, 그리고 용산소방서와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서 일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생존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벼랑으로 몰아세우고 불이 날 줄 뻔히 알면서도 물대포를 쏘고 컨테이너로 찍어 누른다면, 희생자들의 시신을 빼돌려 제멋대로 난도질한다면,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법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다면, 그곳은 최소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두운 뒷골목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순진한 믿음은 용산참사현장, 그 태양이 작열하는 광장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 ⓒ노순택

학살의 현장에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

남일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 다섯 분의 희생자들께 분향을 하고, 남일당 건물 옆에서 레아호프 뒤편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에서 추모미사를 드린다. 어디선가 고기 냄새가 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쪽 골목에는 철거되지 않은 건물들이 있다. 사람들이 갈비집 앞에서 고기를 굽고,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매일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미사가 열리는 곳에서 불과 20여 미터 떨어져 있을까?

남일당 건물 1층엔 분향소가 있고, 바로 그 곁엔 유가족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이 있다. 유가족과 신부님들이 매일 이곳에서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또 다시 잠드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간다. 그들은 각기 학교로, 직장으로 그리고 집으로 향한다. 어디선가는 예쁜 아기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병에 걸리고, 또 누구는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들도 그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일상의 공간에서, 광장 한가운데서 학살이 일어났고, 학살의 흔적과 주검을 곁에 두고 우린 태연히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용산으로 이어진 길

남일당 건물 바로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이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란 피켓을 들고 서 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참 다양했다. 이제야 용산참사현장을 '발견'했다는 듯이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지는 사람, 닫았던 버스 앞문을 열고 전단지를 달라던 버스 기사 아저씨, 조용히 다가와서 말없이 차가운 음료수를 쥐어주던 아주머니, 매일 그 앞을 지나 직장에 나간다며 유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간 인근주민, 피켓을 대신 들어줄테니 앉아서 좀 쉬라던 아가씨. 한 할아버지가 전단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故 이상림 할아버지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씀하신다.

"이 사람, 내가 이 사람 잘 알았지. 참 사람이 좋았어. 전에는 갈비집을 했다구. 이 아주머니도 내가 아주 잘 알지. 나도 여기 20년째 장사를 하는데,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남 일같지가…."

그들은 남의 일이 언제까지나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누군가에게 부끄럽고, 서로가 아픈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 좁고 가느다란 길로 연결되어 있다.

너무 먼 나라 용산

하지만 서로에게 연결된 그 길은 자주 끊기고, 어둑해졌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도 잘하는 거 아니에요!"

가시돋힌 말을 던지고 지나가는 아저씨, 유가족의 사진을 가리키며 '참 사납게도 나왔다'고 빈정댔다는 사복경찰, 그리고 참사현장을 지날 때마다 노골적으로 적의와 멸시의 눈빛을 던지는 사람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목에 사원증을 걸고 밝은 표정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말끔한 회사원들, 그들은 현장 쪽에는 시선 한 번 던지지 않고 반듯하게 제 갈 길로 간다. 용산에서 20여 년을 살았다는 한 아주머니는 현장을 가리키며 내게 하소연 했다.

"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저 사람들 미워해. 누가 좋아하겠어. 저러고들 있는데. 저 건물 주인은 누구야 도대체? 그럼 저 건물만 개발을 못하는 건가? 보상도 받을 만큼 받았다며?"

어디선가 많이 들은 소리다. 아! 용산참사현장에 간다는 내게 열을 올리던 그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

"그 사람들 완전 꾼이잖아, 꾼! 그 사람들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고. 그렇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망루를 짓고 화염병을 던져요? 아줌마 할 수 있어요?"

그래 꾼 맞다. 추모미사에서 유가족 대표의 말씀을 하시던 할머니는 완전히 투사였다. 할머니 입에서는 '투쟁'이란 말도, '연대'란 말도 어색하지 않게 흘러나왔다. 정말 꾼이다! 그런데 열사가 된 할아버지, 투사가 된 할머니는 6개월 전엔 그저 사람 좋은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할머니를 누가 투사로 만들고, 사람 좋은 할아버지를 누가 열사로 만들었나? 멀쩡하게 살아있던 가족이 개죽음을 당했는데 사납게 울부짖지 않을 아내가 어디 있을까? 그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불법단체 전철연'이 사실은 서로 비슷비슷한 처지에 놓인 철거민들이 서로 힘을 보내주는 품앗이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걸까? 만일 세상이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만 정의된다면, 한 번도 공감과 연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자들이라면, 전철연의 배후는 분명 수상한 이념이나 돈으로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납득될 것이다. 택시기사 아저씨와 용산에 집을 두 채나 갖고 있다는 아주머니, 그들 사이에, 그리고 그들과 용산 사이에는 너무 많은 오해와 몰이해가 놓여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만일 이 택시에 2억을 투자했는데, 3천만 원 받고 넘기라면 넘기겠어요?"

"아주머니, 저분들은 다들 세입자에요. 이 지역에서 벌써 몇 십 년씩 가게하신 분들이에요. 다른 데 가서는 살 수가 없어요. 큰 걸 바란 게 아니구요, 재개발 될 동안 장사할 가수용 상가 지어주고, 나중에 임대상가에 들어갈 권리를 달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건 마땅히 요구할 권리였구요."

그러나 그들은 성급하게 말꼬리를 끊는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없는 사람들만 불쌍한 나라지. 그러니 학생, 아니 작가라고 했나? 여기서 괜히 헛힘 빼지 말고, 가서 돈 벌어, 응?"

서로가 조금이라도 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린 사실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성급하게 내린 결론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소박한 상상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애써 그곳을 외면하고, 애써 그들을 적대시함으로써, 적어도 자신만은 그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 거라는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 6.9 작가선언 참여작가가 용산참사현장 앞 버스정류장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다. ⓒ은승완

다음 내리실 역도 용산참사역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서 추진중인 재개발과 재건축을 모두 합하면 600여건에 달한다. 당장에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개미마을'만 해도 벌써 몇 년 전부터 재개발에 대한 소문으로 들썩였다. 아직도 공동화장실을 이용할 정도로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거주민의 절반이 노인인 동네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3·4억이 넘는 없는 중대형 아파트나 고급 빌라일까?

딸아이의 친구네는 세운상가에서 악기상을 한다. 점포 주인인 줄 알았더니, 세입자란다. 조심스럽게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사업에 대해 물었더니 체념한 듯 답한다.

"아마 한다면 하겠지. 워낙에 오래되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악기상들만 모여 있는 상가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데, 참 아쉬워."

상가세입자들은 도심재개발이 이루어질 때 권리금도 못 찾고 턱없이 낮은 보상금을 받고 거리로 쫓겨난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 자리에 들어설 건물이 아무리 초고층이라 해도 그들을 위한 자린 한 평도 없을지 모른다는 걸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서울엔 점점 깨끗하고 근사한 건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젠가 스카이라운지에 올라 서울 시내를 둘러보고 곳곳에 장벽처럼 늘어선 아파트를 보고 감탄에 감탄을 했다. 저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왜 우린 아직 집을 못 샀을까? 서울 주택 공급률이 100%가 넘었다는데, 도대체 저 집은 다 누구 집일까? 집이 남아돈다는데 왜 자꾸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술까?

서울엔 허름한 골목길이 사라지고, 오래된 건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그 자리엔 초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설 것이고, 갈비집이나 호프집 대신에 대형슈퍼마켓이나 패밀리레스토랑이 들어설 것이다. 세상은 분명 더 편리해지고, 더 근사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린 그만큼 더 행복해졌나?

대학 신입생 때 재개발 지역 공부방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여름이면 실내온도가 실외온도보다 높았고, 어둑하고 냄새나는 화장실은 그나마 바깥채에 있었다. 그랬던 공부방은 가수용단지 한켠에 새 보금자리를 얻게 되었다. 공부방이 그곳으로 이사하던 날 무악동 언덕에서 마을잔치가 열렸다. 선생님들에게 '똥자루 선생님', '꼴뚜기 왕자님'이란 별명을 붙여주던 개구쟁이 명호는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 앞에서 새집이 생겼다고 뛰어다녔다. 10년이 지난 지금, 명호는 임대아파트의 주민이 되어 있을까? 모두들 은평뉴타운에 환호할 때, 친환경마을,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던 한양주택의 주민들은 삶의 터를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토지보상금을 받고 흩어졌다. 10년 전 가수용단지를 얻어냈던 무악동 주민들이나, 토지보상금을 받고 각자의 길로 떠난 한양주택 주민들은 적어도 지금 용산의 사람들보다는 행복할지 모른다. 그들은 어찌 되었든 생명까지 철거당하지는 않았으니.

2009년 여름, 우리는 여전히 용산참사역에 멈춰있다. 그렇다면 다음 내릴 역은 어디일까?

용산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라. 정부와 검찰은 사죄하라. 구속자들을 석방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라. 유가족과 용산 5구역 철거민들에게 적절한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라. 그리고 모두 꽝꽝 얼어붙은 주검 옆에서 부끄러워하고, 고통받고, 오래 동안 아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우리가 내릴 역, 또 그 다음 역은 언제나 용산참사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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