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철거민 희생자의 시신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서울 순천향대병원의 냉동고에 있다. 유족, 철거민, 이들을 돕는 시민은 날마다 참사 현장 앞에서, 그리고 수시로 유관기관을 방문해 사과와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지만 정부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행세만 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서 용산의 재개발 조합과 시공사는 하루속히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태세다. 문정현 신부 등 참사 현장을 지키는 철거민과 시민들은 날마다 용역업체 직원의 시비를 상대해야 한다. 다섯 달 전과 비교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문화예술인이 이 같은 용산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연재를 시작한다. 6·9 작가선언 모임을 비롯해 작가, 미술가, 만화가, 사진가 등으로 구성된 '용산참사와 함께 하는 예술가들'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용산 참사에 대한 자신의 에세이를 풀어낼 예정이다. <편집자>
용산으로 가는 길 내내 쥐 생각이 났다. 언젠가 고등학교 여학생이 자기들 교실에 들어온 쥐들을 소탕하면서 썼다는 시가 떠올랐다. 쥐 한 마리 때문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교실에서 썼다는, 다들 본능대로 놀라기도 하고 적의를 드러내다가 다음 날 찍찍이에 붙어버린 쥐들을 떠올리며 썼다는 시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오니
쥐 두 마리가 찍찍이에 붙어있다
한 마리는 다리만 붙어서 몸부림치고 있고
한 마리는 옆으로 누운 채 꼼짝도 못 하고 있다
하나같이 까만 눈동자가 물에 잠긴 듯 출렁거린다
다리만 붙은 쥐는 이렇게 몸부림치는데 제발 떼어달라고 말하는 것 같고
옆으로 누운 채 붙은 쥐는 꺼져가는 눈빛으로 마지막 호소를 하는 것 같다
-'쥐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청주여고 2학년 유정현) 중.
처음에는 누구를 지칭하는 그런 말이 아니라 그냥 쥐 생각만 났더랬다. 얼마 전 아이들 수업 시간에 읽어주었던 박성우 시인의 동시 '쥐'(비닐 하우스에 해바라기 씨를 널었다/마을 안길에 심을 해바라기 씨다//근데 해바라기 씨를 쥐가 다 까먹었다//나란히 간격 맞춰 설 샛노란 해바라기/씨이/쥐 새끼가 마을 안길을 다 먹었다//마을 안길을 똥구멍으로 다 빼냈다)를 곱씹다가 고양이가 사라지고 난 마당에 찾아온 쥐떼를 생각하다가 보니 신물이 넘어왔다.
그래도 깜냥껏 1등이라도 해보겠다고, 소 머리에 올라 탔던 쥐 생각을 하거나, 가끔 마당을 쓸거나, 사무실 문을 열다가 만나는, 너무도 갸륵해 보이는 눈과 마주칠 때 생각을 하며 정말 쥐만도 못한, 어쩌다가 쥐의 가면을 쓰게 되었는지 모를 한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오래 전 어느 정권, 어느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전화 연결된 시골 사람이 했던 말이 저절로 나와 미친 놈마냥 혼잣말을 했다.
"요즘 우리 동네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이 뭔지 알아요?" "뭔데요?" "에이, 이 **이 같은 놈아! 입니다."
당황한 사회자와 극명하게 갈린 찬반론자들의 얼굴빛을 뒤로 하고 "뚜우, 뚜우~" 하는 전화 소리만 들리던, 방송 사고였겠지만 그 얼마나 통쾌한 한 마디였던가. 정치인의 몇 마디 말보다 시원하게 가슴을 쓸어내려주었던 그 한 마디! 선택적 망각을 일삼으며 질주하는 정권이다보니 마치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굴러가고 있지만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롤러코스터를 거꾸로 돌리듯 창자 속까지 쥐어짜는 세상에 다시 한 번 쏟아졌으면 하는 그 한 마디!
그래서 그런지 용산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쥐덫이었다. 찌그러진 채 옥상에 걸쳐 있는 망루를 보면 눈물부터 쏟아질 것 같아 애꿎은 쥐덫을 들여다보며 울분을 삭혔다. 기금 마련 작품전을 하고 있는 미디어센터 '행동하는 텃밭'에 쌓아놓은 쥐덫이 이렇게 처절한 작품이 되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했다.
폭격을 맞은 듯 걸쳐있는 망루 밑에는 타다 만 생삼겹살집 간판이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와 함께 뜯겨져 나가고 뿔뿔이 흩어져버린 수많은 간판들! 갯벌이 그렇듯 그대로 두면 잘 벌어먹고 살 수 있었을, 현기증 나는 마천루 자본 아래서 하루하루가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겠지만 식구들 생각에 막걸리 몇 순배 오갔을 사람들의 꿈을 송두리째 짓밟아 놓은 현장에서 공황 상태에 빠질 것만 같았다.
ⓒ이종수 |
실제로 미디어센터 옆으로 만들어놓은 '아빠의 청춘' 포장마차에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철거민들의 단란했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 앞에서, 그것도 간만에 가서 찍었을 물놀이 사진 앞에서 내 가족의 오래된 앨범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해 짠하기만 했다.
전라도에서 갓 올라와 바다도 없는 강수욕장에서 가족끼리 가서 찍었던 사진과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지어먹을 땅도 없어 집 판 쌀 몇 가마의 돈으로 낯선 도시로 이사를 와야 했던 너무나도 깡마른 아버지와 어머니가 양 옆으로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더 일찍 구로공단 삼립빵 공장 옆으로 올라온 큰아버지네 식구들이 그랬듯이 고향을 버린 이주(移住)의 역사를 오래된 활판 인쇄기가 철커덕 철커덕 찍어내는 것만 같았다. 미디어센터에서 기금 마련전으로 올라온 그림과 함께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늘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저 사진들이 왜 여기에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안방에서 식구들끼리, 친지들끼리 돌려가며 볼 때 지난한 삶을 녹여주는 것이어야 할 텐데 왜 여기 나와 걸려있어야 하는지 속이 쓰렸다.
바람 불고 춥기만 했던 고향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던 큰집 식구들과 당신이 죽어서도 거기에는 묻히지 않을 거라던 아버지를 볼 때 고향이란 단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맨몸으로 일군 쪽밭 같은 가게와 단칸방이야말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달방이자 뼈를 묻어야 할 고향이지 않을까. 가까운 친척들마저 살피지 못할 만큼 일가를 이루기 위해 삭혔어야 할 홍어 같은 속을 누가 알아주었겠는가.
숟가락 하나 밥그릇 하나 뿐인 집에 시집을 와서 뼈 닳도록 고생한 어머니들은 꽃 같은 처녀 시절 팔뚝에 한 땀 한 땀 들였던 친구들과의 약조를 꿈에서라도 지키고 싶었겠지. 마지막 손님상을 치우고 난 새벽녘, 시큰거리는 무릎을 펴고 일어서며 언젠가는 죽기 전에라도 만나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까르르 웃던 친구들과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겠지. 자꾸만 아버지, 어머니의 빗장뼈를 들춰서 만난 듯한 혼곤한 꿈자락이 느껴져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못다 한 이야기를 가슴에 접고 저 차가운 시멘트벽에 뼈를 묻는 마음으로 살았을 사람들.
ⓒ이종수 |
때가 되면 이 골목에 들어와 김치찌개를 시키고 가정식 백반을 시켜서 먹었을 사람들이 있는 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걸치고 노래방에도 가고, 횟집에서 기분도 낼 참이었던 사람들이 있는 한 새벽 늦게 손님상을 치우면서 철갑을 두른 듯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을 것이다. 비가 새고 하수도 물이 거꾸로 올라와도 저 달방에 깃들어 살았을 것이다. 칸막이 하나만 치우면 길거리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드난살이, 실적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보험사 영업장도 아니고 갈수록 하늘을 찌르는 저 막대 그래프 같은 첨단 빌딩들 때문에 멀쩡한 달방들이 뜯겨져 나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사람들, 그들이 여기에 살았고, 비 오면 거리에 납작납작 붙는 은행나무 잎처럼 한몸이었던 삶터.
ⓒ이종수 |
무엇이 더 아름다워야 하고, 하이! 서울이어야 하는 것인가. 재활용 피티병으로 둘러씌워놓고 아름답지 않느냐며 마치 저 그늘의 삶까지 디자인하겠다고 덤비는 비뚤어진 무뇌의 영혼 앞에 걸치고 선 망루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종수 |
오늘도 저들은 비웃기라도 하듯 고단한 삶이 생지옥의 불길에 생삽겹살처럼 타버린 혼이 돌아가지 않은 땅에 저 망루를 짓고 진압 훈련을 하고 있다. 그날 그랬던 것처럼 전투함 같은 컨테이너를 타고 내려와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곤봉 세례를 퍼붓고 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오싹 드는 살기를 띠며 적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아니 적으로 분장한 동료들에게 더 가열차게 저항하라고 실전처럼 맞서라고, 그래야만 성공적인 진압 훈련이 된다고 비웃고 있다. 대통령이 대형마트 때문에 죽겠다는 시장 사람들에게 옛날에는 끽소리도 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이렇게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 좀 좋으냐고, 한 쪽 눈은 통째로 바치겠다고 하던 하나님을 향하고, 한 쪽 눈은 없는 사람들을 경멸하듯 바라보듯 한다는 인터넷 논객의 말처럼 저들은 따뜻한 가슴이란 말 한 마디 겪어보지 않은 냉혈 자본 동물처럼 굴고 있지 않은가. 죽음의 나락으로 밀어 떨어뜨려야만 자기들 삶에 속도가 붙고 영원할 거라고 믿듯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기계들을 보라. 권력과 함께 후안무치의 정신으로 올라가는, 털끝만큼의 사랑 없이 저들만의 성전에 바치겠다며 그리는 조감도를 보라.
ⓒ이종수 |
그러나 저들이 세운 가림막 뒤의 용산에서 본다. 금방이라도 거짓으로 가득 찬 대한뉘우스를 띄울 것 같은 가림막 뒤의 용산에서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일궈온 자본의 심장이 돈이면 다 되고 권력이면 납죽 엎드리는 이지러진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본다. 먼 남미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가 '시는 슬프고 음악적인 곱사등이란 걸/저 멀리/경계에서 경계까지의 정오의 발자국을/시가 알려준다는 걸'(<불완전한 탄생>중에서) 하고며 '난 신이 아파하던 날 태어났어' 하고 말했던 것처럼 용산의 고통 속에서 내 시 또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용산과 작가 사이의 간극을 제대로 보고 시를 써야 한다는 뼈아픈 다짐을 해본다.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진실로 몸으로 맞서는 자가 벼랑에 설 수밖에 없는 땅
자본에 살어리랏다 치고는 너무 갸륵한 몸으로 창자를 끊어내며
끝내 목숨줄 하나 붙들고 싸우다 죽어 사리를 남기는 땅
일찍이 상아탑이 우골탑이 되었듯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짠하고 솔찬했던 사람들이 벼랑 위에 세운 보탑(寶塔)
기름진 몸에 호의호식해서 생긴 지병에 신자유주의를 기념하는 빌딩들 사이
제 몸에 기름 부어 등신불이 되어버린 사람들, 아니 정령 그럴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이
살고자 했던 사람들을 몰아세웠던 그 자리
분화구처럼 뚫린 달방 구멍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건네는
용산에서 본다, 먼 전방으로 떠나는 새벽기차 같은 용산에서
저들이 부수고 또 부수더라도, 거꾸로 가는 역사 앞에서
망루를 세우고 지킬 수밖에 없었던 진실을 본다
우리가 지키고 가슴에 세워야 할 보탑을 본다, 펜을 들고 붓을 들어
저 헛헛한 허공 중에 풍경처럼 매달아두어야 할
뼈아픈 진실을 본다
졸시 <용산에서 본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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