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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2위 경제 대국, 기업 '사회 책임'은 '귀족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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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2위 경제 대국, 기업 '사회 책임'은 '귀족 취미'?

[곽노현 칼럼] 에토스 사회책임지표가 준 충격

사업 활동과 영향력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기업은 스스로 사회 책임 이행 여부와 이행 수준, 그리고 개선 방향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나아가서 투자자와 소비자, 협력 업체와 지역 정부 등 제3자가 특정 기업의 사회 책임 이행 여부 및 이행 수준을 파악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1사 1촌 결연이나 메세나 예술 후원 등 사회 공헌 활동을 기업 사회 책임의 전부로 생각하는 일부 '귀족 취미' 기업들에 대해 사회 책임이 그것보다 훨씬 넓은 정책과 행동을 요구한다는 점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의 답은 '사회 책임 이행 자가 진단 평가 도구'와 '사회 책임/지속 가능성 보고서'다.

기업의 사회 책임,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대세'

기업의 사회 책임 혹은 지속 가능성 책임은 우리나라의 경영학계나 법학계의 표준적인 교과서들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레토릭이나 추상적 가치 지향이 아니다. 벌써 많은 행동 강령, 평가 지표, 자가 진단 도구, 교육 훈련 도구가 개발돼 기업의 자발적 점검과 실천을 돕는다. 모범 사례의 연구 발표는 물론 창의적인 모범 사례 실험도 잇따른다. 기업들도 그냥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 가능성 보고서 혹은 사회 보고서의 이름 아래 그럴듯한 보고서를 발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재무적 사회 책임 보고서를 발간하는 대기업이 삼성전자, 포스코, 한국전력, SK에너지, 신한은행 등 80개가 넘는다. 아직 초보적 단계지만 기업의 사회 책임 정책 수립과 경영 시스템 구축, 그리고 이행 수준의 점검 보완을 자문하는 컨설팅 산업도 형성돼 있다. 한국증권거래소도 투자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FTSE4GOOD이나 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DJSI)를 벤치마킹한 '한국사회책임지수' 개발에 착수했다. 한 마디로 기업의 사회 책임은 국제적 차원에서는 늦게 잡아도 1990년대 후반기 이래 명백히 주류화 과정(mainstreaming)에 들어섰다. 우리나라에서는 '삽질 경제'의 여파로 이런 흐름이 주춤하지만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으로서 피해갈 수는 없다.

주류화 과정의 핵심 단계가 바로 일국 혹은 지역(region)의 대기업들이 중심이 돼 자발적으로 업종 공통 또는 특정 업종의 사회책임지표를 만들어내는 단계다. 이 단계에 왔다는 얘기는 대기업들이 이유가 무엇이든 이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 이롭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업 위험 관리 차원이건 대외 홍보 전략 차원이건 동기와 상관없이 이 단계에 오면 선두 기업 간에 일종의 경쟁 심리가 작동해 모범 사례도 축적되고 글로벌 기업과 업종 대표 기업의 경우 나름대로 전사적 경영 전략 및 경영 체계에 침윤과 통합이 시작한다.

대기업, 특히 글로벌 기업의 자발적 사회적 책임 기준 설정과 실천은 국가 당국과 국제 규제 기관의 더 강한 규제를 막기 위한 방편일 뿐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이런 입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의 최근 동향과 영국과 네덜란드 등 모범 국가의 입법례, 그리고 오일, 가스, 광업 등 일부 업종의 자발적 규제 실태의 내용과 의미를 잘 모르거나 애써 폄하하는 측면이 강하다.

지난 10여 년의 집중적인 연구와 실천을 통해 모범적인 기업 사회 책임 실행 체계의 구성요소로 컨센서스가 형성된, 기업 사회 책임 행동 강령 채택-상세한 부문별 실행 정책 수립-체계적인 이행 현황 자가 진단과 내부 평가-사회 책임 보고서의 작성 및 공표-외부기관의 검증 및 다수 이해관계자 협의-개선 보완책의 마련과 집행은 설령 사회 책임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돼도 그대로 유용하다. 더욱이 독재와 부패로 법치와 협치(governance)의 틀이 작동하지 않는 많은 개도국에서 사회 책임 규제 강화는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현실 맥락을 고려할 때 선진국 기업, 특히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 사회 책임 기준 설정과 실행 체계 구축은 구태여 평가절하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의 자발적 기준과 체계가 향후 글로벌 법적 규제의 기본 토대로 진화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남미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사회책임지표, 에토스

서설이 다소 길었지만 이런 얘기를 끄집어낸 동기는 기업 사회 책임의 실천에서 브라질이 우리나라보다 앞서가는 사실을 접했기 때문이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브라질의 기업 사회 책임 추동 주체는 에토스 연구소(Ethos Institute). '기업과 사회 책임 에토스 연구소'가 정식 명칭이다. 세계사회포럼의 공동 창시자의 하나인 오데드 그라지우(Oded Grajew)가 중심이 돼 만들었다.

에토스 연구소는 브라질을 넘어 남미 대륙 최대의 기업 책임 연구소로 사무국은 상파울루에 있다. 상근 직원만 50명이 넘고 현재 907개의 회원사를 두고 있다. 회원사는 총 120만 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연간 매출 총액이 브라질 GDP의 30%를 차지한다. 브라질의 대표 기업은 다 들어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윤리경영협회(윤경)격인데 위에서 보듯이 규모와 영향력에서 비교가 안 된다.

에토스 연구소는 설립 직후부터 브라질, 나아가서 남미의 기업 현실에 적합한 사회책임지표 개발을 서둘러 2000년에 첫선을 보인다. 모두 7개 분야 40개 주제로 구성된 에토스 지표는 2003년까지 매년 보완된 후 그대로 사용된다. 에토스 지표는 907개의 회원사 외에도 남미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표준적 사회책임지표로 떠올랐다. 에토스 지표는 기업 사회 책임 이행 정도에 대한 자가 진단 및 평가를 제공하며 기업 사회 책임 이행을 위해 필요한 기업 차원의 정책과 조치에 대한 학습 도구라 할 수 있다.

에토스 사회책임지표는 자가 진단용 설문지 형식으로 구체화된다. 각사는 단순히 온라인상의 설문지에 성실하게 답변하면 된다. 그러면 항목별 점수와 총점이 집계돼 나온다. 각사의 점수는 비공개로 100% 비밀이 보장된다. 각사의 항목별 점수와 함께 세 가지 다른 점수가 비교 목적으로 제공된다. 첫째, 사용자 그룹 중 '총점 기준 최상위 10개사'의 동일항목에 대한 평균 점수, 둘째, 동일 항목에 대한 사용자 그룹의 평균 점수, 셋째, 동일 항목에 대한 사용자 그룹의 최상위 점수가 그것이다. 위의 세 가지 수치와 다중 비교를 통해 사용 회사는 상대적 이행 수준은 물론 상대적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약점을 보완하라는 취지다.

에토스 연구소는 업종 공통의 일반지수 외에도 금융업, 광업, 제지업, 학교 등 업종별 지표도 따로 개발해서 제공했다. 이 중 대학교 진단 지표는 올해 초 일본 대학 평가의 공식도구로 채택돼 화제를 뿌렸다. 에토스 지표는 7개 분야로 구성된다. 첫째, 가치, 공시, 지배 구조 편이다. 둘째, 공적으로 요구받는 기업 내부 관련 사항. 다양한 고용 차별 금지 등이 해당한다. 셋째, 환경, 넷째, 공급 업체, 다섯째, 소비자와 고객, 여섯째, 지역 사회, 일곱째, 정부와 사회 편이 그것이다.

진단 평가와 교육 훈련 과정까지

예를 들어야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제2편 공적인 기업 내부 사항은 13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노조 관계, 참여 경영, 아동 미래 투자, 평등과 반인종 차별, 성 평등 제고 조치, 아웃소싱 관계, 보건 안전과 근로 조건, 직능 개발, 해고 행태, 퇴직 준비 등이 그것이다. 주로 준법 여부를 묻는 항목들이다. 기업 사회 책임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공급 업체(supply chain)에 대해서는 제4편에서 네 개의 주제로 다룬다. 공급 업체 선정/평가 기준, 공급망에서 아동 노동 예방 체계, 생산망에서 강제(노예)노동 예방 체계, 공급업체 발전 지원 체계가 그것이다. 같은 협력 업체지만 공급 업체를 넘어 유통·배급 업체 문제까지 다루진 않는다.

에토스 지표는 위의 7대 분야, 40개 주제에 관련된 기업 사회 책임을 보다 상세한 질문으로 구체화한다. 답변의 성격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각 세부 주제의 이행 정도에 대한 질문. 4단계 이행 수준 중 각사에 해당되는 수준을 골라서 체크하면 된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베스트 이행에 가깝다. 둘째, 단순한 예/아니오로 답변할 수 있는 문항. 셋째, 정량적 지표, 즉 수치와 통계의 제시를 요구하는 항목들. 정량적 지표에 대해서는 답변 의무가 없다. 다시 말해서 기업 평가 점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진지한 기업이라면 당연히 관련 정량 지표에 대한 정확한 수집 파악 및 지속적 추이 점검이 필수적이다.

모든 지표(indicator)는 벤치마크 혹은 목표의 달성 여부 및 수준을 가리킨다. 가이드라인 혹은 지침은 바람직한 행위/성과 목표(benchmark)와 그 달성 여부를 일러주는 지표(indicator)로 구성된다. 따라서 모든 지표와 문항은 바람직한 목표와 성과를 전제한다. 아니, 모든 지표와 문항에는 바람직한 목표와 성과가 숨어 있다. 그래서 에토스 설문지를 답변하는 자가 진단 과정은 관리 대상 목표와 성과 기준은 물론 필요한 경영 전략과 실행 체계에 대해 학습하고 훈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진단 평가와 교육 훈련 과정이 결여된 사회 책임론은 현실에서 조금도 작동하지 않는다. 기업 차원의 사회 책임 목표를 법과 규제의 준수에 두건, 보다 광의의 사회 책임의 실천에 두건,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국격과 브랜드 가치에 먹칠하지 않으려면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경총, 노총, 환경운동연합, 윤리경영협회 등이 산발적으로 기업 사회 책임 가이드라인을 선보인 바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업의 적용 편의를 위한 자가 진단 평가 도구나 교육 훈련 도구 개발 등 후속 조치가 없었다. 현실에서 대기업들의 철저한 외면에 봉착한 것은 그 당연한 결과다. 더욱이 업종의 성격과 비중으로 볼 때 사회책임이 특별히 강조되어야 하는 일부 업종에 대한 업종별 사회 책임 가이드라인과 자가 진단 도구 개발은 업계, 정부, 학계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사회 공헌 활동이 사회 책임 이행의 전부인 양 행세한다. 당연히 기후 변화나 생물종 다양성과 같이 지구촌의 보편적 주제에 대한 사회 책임도 CEO 레벨의 지식 자랑이나 말잔치로 그칠 뿐이다. 한마디로 언필칭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 한국의 기업 사회 책임 연구 및 실천은 위에서 비교한 에토스 연구소 하나의 체계적 연구와 실천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이 2007년에 윤리경영자율진단 지표를 개발한 것이 눈에 띄지만 전경련 지표는 에토스 지표와 달리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또한 전경련 지표는 그야말로 자율 진단 도구에 그칠 뿐 에토스 지표처럼 상대적 위상을 가늠할 방법이 없다. 이는 전경련이 윤리 경영 지표를 개발한 후 그 이용을 유도하는 데 필요한 어떠한 후속 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극적 자세로 미루어볼 때 전경련은 윤리 경영 지표의 이용을 확산하여 윤리 경영 자체를 정착시키려는 진지한 의도를 결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전경련이 매년 사회공헌백서를 발간할 뿐 윤리경영자율진단 지표를 사용하여 한국 대기업의 윤리경영백서를 만들 생각을 않는 것도 이런 사실을 증거한다.

▲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 앞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 대졸 초임 삭감 관련 전경련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경련은 당시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에서 30대 그룹 대졸 신입사원들의 초임을 28% 깍기로 했다. ⓒ뉴시스

만약 업종별 사회책임지표를 만든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건설업, 금융업, 에너지업, 백화점과 대형슈퍼마켓 등 유통업, 호텔과 여관 등 숙박업, 화학업 등에서 우선적으로 개발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용으로는 전국에 깔려있는 주점, 음식점, 제빵점, 학원, 세차장, 가구공장 등에 적용될 업종별 사회책임지표부터 개발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해외 진출 국내 기업들이 우리나라의 국격과 브랜드 가치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개도국 진출 기업용 해외 사회책임지표의 개발과 보급이 시급하다. 특히 오일, 가스, 광업 등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적용되는 사회책임지표를 하루바삐 개발하여 이들 기업이 현지 국가에서 합당한 주의 의무를 다하며 사회 책임을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8년 한국 100대 기업의 인권 정책과 실행 체계 조사 연구를 수행한 데 이어서 올해에는 기업 인권 책임 자가 진단 도구를 개발하여 선보일 예정이다. '기업 인권 책임'은 기업 사회 책임을 권리의 언어와 문법을 사용하여 구체화한 것으로서 내용적으로는 기업 사회 책임과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인권위는 머지않아 한국 최초의 기업 사회 책임 자가 진단 도구를 개발함으로써 한국 기업들의 사회 책임 진단 및 보완 작업을 실용적으로 돕게 될 것이다. 현 정부로부터 완연히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아온 국가인권위는 이렇게 남모르는 좋은 일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러한 뒤늦은 시도마저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전경련과 경총 등 경제 권력의 심기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치 권력의 심기를 동시에 건드리는 불온한 일로 여겨질까 우려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브라질의 모범적 실천 사례 소개가 이런 비이성적인 인식 가능성을 예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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