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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고리'를 끊는 '노란 리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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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고리'를 끊는 '노란 리본'처럼"

[곽노현 칼럼] 출소자 소액 대출 '기쁨과희망은행' 1년의 의미

한 출소자가 귀향버스에 몸을 실었다. 과거에 사랑하던 여성에게, 집 앞 큰 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으면 날 기다리는 것으로 알겠다는 편지를 미리 보내놓았던 터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린다. 버스가 골목을 돌면 드디어 집이다. 이제 내려야 할지, 그냥 지나쳐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두려운 마음으로 눈을 가늘게 떠본다. 주렁주렁 노란 리본을 매단 커다란 나무가 환하게 웃는다. 눈물이 핑 돈다.

9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유명한 팝송, '옐로 리본(Tie a yellow ribbon on your tree)'의 생동감 넘치는 가사는 한 출소자의 실제 경험에서 나왔다. 이 노래의 감동적인 사연이 널리 알려지면서 옐로 리본 노래는 전 세계 출소자 지원운동의 주제가가 됐다. 노란 리본을 나무에 매다는 퍼포먼스도 어디서나 간절한 기다림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출소자지원 가두캠페인 때 시민들에게 노란 리본을 달아주며 동참을 호소한다.

▲ 노란 리본을 나무에 매다는 퍼포먼스도 어디서나 간절한 기다림의 상징이 됐다. 옐로 리본의 주인공처럼 주변에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출소자의 새 출발은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2007년 '노란리본달기' 캠페인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용서와 화해를 상징하는 노란리본을 나무에 달고 있다. ⓒ뉴시스

출소를 앞둔 수형자들은 집에서 받아줄지, 직장에서 받아줄지, 지역사회에서 받아줄지, 그것이 제일 큰 걱정이다. 옐로 리본의 주인공처럼 주변에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출소자의 새 출발은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머지 반의 성공은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데 달려있다. 출소자는 대부분 특별한 기술이나 경험이 없다. 십중팔구 신용불량 상태로 저금통장에는 땡전 한 푼 없는 경우가 많다. 사회관계도 단절돼 손 벌릴 곳도 마땅치 않다.

대부분의 출소자들은 먹고사는 방편으로 막노동을 전전하거나 노점상이나 트럭장사를 시작한다. 운 좋게 주변에서 사업자금을 변통한 유경험자는 자그만 점포를 얻어 소규모 창업에 나선다. 드물지만 취업에 성공하는 이도 있다. 친지가 아닌 이상 십중팔구 전과사실을 숨긴다. 순진하게 전과사실을 털어놓는 순간 취업기회는 100% 날아간다. 도무지 신뢰가 안 간다는 데 누구를 탓하랴.

전과사실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금지법이 있는 것 아니냐고?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출소 후 상당기간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국가인권위법상 '형이 실효된 전과'를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 기타 차별행위만 금지되기 때문이다. 관련법률에 따르면 형의 실효는 출소 후 최소한 5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출소 후 5년간은 사용자가 전과사실을 이유로 고용을 거부하거나 취소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현행법의 정리된 입장이다.

이러한 현행법의 규정은 출소자를 철저하게 사회방위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서 전과자가 일정기간(출소 후 5년)동안 준법시민으로 착실히 산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사회방위적 관점을 거둬들이고 일반시민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 현행법의 입장이다. 출소 후 5년간은 출소자의 재범위험이 높기 때문에 사용자의 고용차별을 허용하는 편이 사회방위의 관점에서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맞는 생각일까? 출소 후 5년은 사회방위를 위협하는 출소자의 재범위험기간이기도 하지만, 출소자의 재사회화를 위협하는 일반인의 차별위험기간이기도 하다. 출소 후 5년을 재범위험기간과 차별위험기간 중 어떤 것으로 볼지는 일차적으로 출소 후 5년간의 위험부담을 출소자와 사회 중 어느 편에 지울지에 달려있다. 또한 어떤 선택을 할지는 궁극적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재범률이 떨어지고 사회통합이 원활할지에 달려있다.

출소 후 5년을 재범위험기간 혹은 사회방위기간으로 설정하여 고용차별 등 전과차별을 허용하는 건 재범방지의 관점에서 어리석고 위험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출소 후 5년간 고용차별의 벽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취업을 못할 때 출소자를 기다리는 건 재범과 교도소행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회방위 목적의 고용차별 허용은 이처럼 사회방위 실패로 귀결될 내재적 동력을 갖는, 잘못된 선택이다.

내가 만나본 출소자들은, 제2의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수없이 다짐해도 주변의 삐딱한 시선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다보면 어느새 출소의 기쁨과 재활의 희망은 간 데 없고 깊은 좌절과 원망으로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적으로 출소자들은 가난하고 학력이 낮은데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험상궂은 이력을 갖고 있다.

출소자는 독특한 소수자그룹이다. 일반적인 소수자집단이 사회적 차별과 박해를 받는 이유는 소수자 개개인의 선택이나 행동과 무관하다. 또한 소수자 개개인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것도 아니다. 출소 전과자들은 그렇지 않다. 범죄요인을 아무리 구조의 탓으로 돌려도 범죄행동에 대한 개인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죄 값을 치루고 나왔지만 개인적 도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곧바로 회복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소자들의 범죄행위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저발전 지역사회에서 성장하며 무수한 내적 상처를 내장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삶의 기술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범죄책임을 아무리 사회구조적으로 환원해도 일정한 개인책임이 남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출소자의 개인책임에 대한 설교만으로는 현실세계의 출소자를 차별과 좌절, 재범과 재수감의 악순환에서 빼내지 못한다.

출소자를 상대로 소규모 창업자금을 무담보 저리대출하는 천주교교정사목위원회 부설 기쁨과희망은행은 그래서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세계 최초의 출소자전용 마이크로 크레디트 금융기관으로 딱 1년 전인 2008년 6월 25일 공식 출범한 기쁨과희망은행은 출소자에게 사회방위적 관점에서 경계의 눈길을 보내는 대신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신뢰의 손길을 내민다. 설교 대신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삶의 기술과 책임에 다가가게 돕는 것이다.

기쁨과희망은행은 지금까지 19명의 출소자에게 각각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 이내의 창업자금을 지원했다. 금년 말까지 최소한 10여명을 추가할 예정이며 총지원액이 4억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쁨과희망은행은 현재 창업성공에 필요한 각종 지원기제들을 하나씩 발전시키고 있다. 여기서 관건은 흩어져있는 선의를 모아서 다양한 후원그룹을 확보하는 것, 그리하여 출소자들에게 사업과 생활의 기술을 최대한 나눠주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아래 기쁨과희망은행은 현재 법무부, 한국법무보호공단, 소상공인지원센터 등 유관기관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출소전과자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기쁨과희망은행의 성공률, 즉 대출회수율은 사회연대은행 등 다른 마이크로 크레디트 금융기관에 비해 많이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의 제한된 경험으로 판단컨대 대출회수율이 50%를 넘으면 성공적이다. 출소자 지원사업은 그만큼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과희망은행이 중요한 이유는 현행법의 태도와 정반대로 출소 후 5년 동안 출소자에게 아낌없는 신뢰와 지원을 제공하는 아주 드문 사회적 실험이기 때문이다.

▲ 지난해 세계 최초의 출소자전용 마이크로 크레디트 금융기관으로 딱 1년 전 오늘 공식 출범한 기쁨과희망은행은 출소자에게 사회방위적 관점에서 경계의 눈길을 보내는 대신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신뢰의 손길을 내민다. ⓒ뉴시스

기쁨과희망은행의 기본철학은 사무실 벽에 걸린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이 말해주듯이 출소전과자를 '돌아온 탕자'로 환대하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출소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각박하고 위선적인 사회는 반드시 치솟는 재범률의 부메랑을 맞게 돼있다. 이러한 악순환은 우리 각자가 모두 돌아온 탕자라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유독 출소전과자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도덕적 허세를 부리는 데서 비롯된다. 또한 섣부른 사회방위적 관점에 기대서 우리사회 전체를 편견과 차별의 벽으로 둘러싸인 또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바꿔놓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요컨대, 기쁨과희망은행은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속정 깊은 아버지의 기쁨과 환대의 관점에서 출소자에게 무담보 저리신용과 창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출소자의 자립재활과 사회편입을 돕는다. 기쁨과희망은행은 제2의 범죄에 대한 막연한 공포의 힘으로 세워진 대형 유리감옥을,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제2의 기회공동체로 바꾸기 위한 소중한 시도다. 그야말로 출소자의 기쁨, 재소자의 희망으로 다가가는 '빛의 기획'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오늘 창립 1주년을 맞이한 기쁨과희망은행에 많은 관심과 후원을 기대한다.

* 곽노현 교수는 기쁨과희망은행(은행장: 이영우 신부)의 창업준비위원장을 거쳐 현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후원계좌번호는 국민은행 512637-01-001051(천주교교정사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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