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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재개발지역 서민들은 화염병을 들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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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왜 재개발지역 서민들은 화염병을 들게 되나"

비합리적 보상비·불투명한 제도 문제…정부·서울시는 "뉴타운 강행"

용산에서 일어난 6명의 사망사고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철거지역 세입자들이 왜 극렬한 저항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미미하다.

수십년 간 계속된 재개발 사업 행정상의 문제가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이지만, 이를 수정하기 위한 목소리는 정치·행정권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재개발 대상 지역 주민들만이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재개발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황당한 보상비'…세입자는 '봉'?

29일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3구역에서 만난 이원실 가재울3구역 상가세입자대책위 총무의 목소리는 격앙됐다. 조합이 세입자 의견을 묵살하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밀어붙인다고 그는 말했다. 가재울뉴타운은 총 4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1구역과 2구역은 이미 새로 들어선 아파트에 분양이 시작됐고 3구역도 95%가량 철거됐다.

▲이원실 가재울3구역 상가세입자대책위 총무는 치킨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지만 개발업자와 조합이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살 길을 찾기 위해 일부 한나라당 의원이 말하는 '테러범'이 될 수도 있다. ⓒ프레시안
도시 재개발 사업은 주민공람-관리처분인가-명도소송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지역 재개발 용도를 결정하고 이를 지역 주민에게 알리는 것이 주민공람이고, 재개발지 주민에게 적정한 보상 수준을 결정하고 재개발 공사가 허가되는 단계가 관리처분인가다. 관리처분인가가 내려지면 모든 재산권은 조합으로 귀속된다.

당연히 단계별로 마찰이 빚어지기 일쑤다. 당장 뉴타운을 비롯한 대부분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들은 주민공람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사업이 강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2개 이상 일간지에 공고하거나 전수조사를 통해 원주민 의견을 모아야 하는데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가재울의 경우 서대문구청에서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본격적인 마찰은 바로 관리처분인가 단계에서 발생한다. 보상수준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 시행규칙 47조에 따르면 상가세입자의 경우 공익사업 실시로 인한 휴업기간에 발생하는 영업용 자산의 감가상각비, 인건비, 시설비, 이전비 등 다양한 비용을 감정평가 결과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 뉴타운 사업은 민자사업이지만 토지보상법 적용을 받는다. 주택세입자 역시 토지보상법 시행규칙 54조와 55조에 근거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세입자들은 감정평가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재울3구역에서 4년 가까이 하숙방 사업과 주차장 대여, 해장국 장사를 해 온 신현미 씨(53)는 "조합이 황당한 수준의 보상비를 쥐어 주고는 용역깡패를 시켜 철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신 씨는 하숙방 30개와 주차장 합계 99평 만을 대상으로 총 보상비 1675만 원을 받았다. 해장국 집은 아예 평가에서 누락됐다. 그는 "처음 들어올 당시 비가 새는 등 시설 상태가 엉망이었다. 투자비만 2억 원이 넘게 들었다. 당신 같으면 말도 안 되는 보상비를 받고 가게를 비워주겠느냐"고 했다.

주거세입자 역시 법이 정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쫓겨나기 일쑤다. 왕십리뉴타운 지역 세입자들은 조합을 상대로 설 연휴 기간에도 철야농성을 벌였다. 관련법이 조합에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이사비 등을 세입자에 지급토록 명시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지연 왕십리 세입자대책위원회 여성부장은 "세입자 권리를 찾기 위해 조합은 물론 구청과도 1년 넘게 싸웠다. 그런데도 세입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핍박 받았다"고 말했다.

돈 없으면 가옥주도 밀려나…재개발지 곳곳 '화약고'

비단 세입자뿐만이 아니다. 영세 가옥주 역시 제대로 된 자산평가를 받지 못한다.

29일 국회 의원회관 1층 대회의실에서 민주노동당 주최로 열린 '뉴타운·재개발 중단을 위한 공동토론회'에 나온 이미정 응암9구역 비대위 대표는 "감정평가는 조합에서 선정한 2개 업체가 실시했는데 평가 당시 조합은 '본 평가 전에 하는 사전평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한 번의 평가로 조합원들 자산이 모두 평가됐다. 그나마 실시한 평가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허술했다. 4층 건물을 평가하는 시간이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타운·재개발지구 비대위 대표연합은 가옥주들이 참여한 단체다.

▲가재울3구역 대책위 사무실에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가 크게 걸려 있다. 이 총무는 "투쟁현장에서 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사람들이 노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중가요가 무언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투쟁'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게 됐다. ⓒ프레시안
뇌물이 오간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대표는 "감정평가사와 철거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뇌물이 오고 간다. 이 문제를 조합원 중 일부가 양심선언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양심이 있었던 조합원만 기소유예 처분됐다"고 했다.

결국 가옥주들 역시 '투쟁'에 나서게 된다. 개발이익은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새로 들어설 아파트에는 도저히 입주할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뉴타운 사업지의 경우 도시기반시설이 35% 이상 들어서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 가옥주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이들 사업비를 모두 가옥주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어떻게든 적은 돈을 쥐어주려고 가옥주들이 머리를 싸매는 이유다.

김수창 전국뉴타운비대위 부회장은 "서울시에서만 1000여 곳에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사업성 평가가 이뤄진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여기에 자산평가는 시가의 30% 수준에 불과한 공시지가로 행해진다. 사업비는 일반 공사보다 더 높다. 건설현장에 만연한 비리까지 더해져 조합원의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세입자와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결국 제대로 된 이익은 일부 조합원과 건설업체만 챙긴다. 건설업체는 조합으로부터 수익을 챙기고 설사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주기로 해 비빌 언덕이 있다.

"재개발 지역 산다는 이유만으로 나라는 우리를 버렸다"

재개발 보상절차는 협의가 무산될 경우 수용재결-이의재결-행정소송의 단계를 밟도록 돼 있다. 하지만 관리처분인가가 이미 내려졌다면 어떤 법적 대응도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이원실 총무는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용재결 신청을 준비했다. 하지만 조합이 곧바로 건물 명도소송을 걸었다. 수용재결 과정에서 자산 재평가를 받을 근거 자체를 없애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만약 소송에서 조합이 승소한다면 집을 비우지 않은 사람은 곧바로 조합으로 재산권이 넘어간 건물을 '불법 점유'한 범법자가 된다. 조합은 철거를 밀어붙일 근거를 얻게 된다. 억울한 지경에 빠진 사람들이 버틴다면 용산에서처럼 결국 경찰력이 투입돼 문제를 해결한다. 전형적인 재개발 사업의 시나리오다.

▲철거 예정지에 붉은 스프레이로 '이주완료'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가재울3구역은은 사람들 대부분이 모두 빠져나간 데다 철거로 곳곳이 흉흉해져 마치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프레시안

아직 상가를 비우지 않고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가재울3구역의 장모 씨(52)는 "재개발 사업은 한마디로 '미친 사업'이다. 용산 사람들을 우리는 이해한다. 우리도 저런 상황이 닥치면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떨어진 영업보상비는 1200만 원이다. 보상비와 권리금을 합쳐봐야 인근에 새로 장사를 시작할 곳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가재울3구역에는 약 60상가 정도가 남아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생계를 제대로 꾸릴 수 없다. 일괄철거가 원칙이지만 이미 부분철거가 군데군데 이뤄져 손님의 발길을 찾기 어렵다. 이에 더해 용역회사 직원, 일명 '용역깡패'가 수시로 이들을 괴롭힌다. 경찰은 수수방관한다. 이들은 지난해 5월 대책위를 구성한 후 8월부터 자경단을 만들어 밤마다 순찰을 돈다. 용역깡패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이원실 총무는 "용역깡패가 하는 짓을 나열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폭행은 물론이고 절도, 수도 파손, 전기 차단 등 갖은 영업방해를 한다. 아주머니가 계신 가게만 골라 찾아가서 협박한다. 밤에는 몰래 화재를 일으킨다. 가게가 훼손되는 것이 두려워 상인들이 집에도 안 가고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했다.

대책위 사무실에 머물러 있던 한 나이든 상인은 "재개발 지역에는 법도 없다. 재개발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나라는 우리를 버렸다. 이게 공산주의지 민주주의냐. 돈 없는 놈은 다 나가죽으라는 게 제대로 된 나라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재개발 제도 전면 손질 불가피"

재개발 사업을 근본적으로 손질하지 않고서는 '제2의 용산참사'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재개발 사업을 손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주원 나눔과미래 지역사업국장은 무엇보다 모든 재개발 사업의 근간인 도정법 손질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정법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공공임대주택을 추가 건설해야 한다. 개발 방식도 지금과 같은 밀어붙이기 식이 아니라 광역공영개발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발 과정에 주민들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조합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공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단기대책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정법을 손보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장 곳곳에서 일어나는 잡음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그는 "동절기 철거 금지, 경비업법 및 행정대집행법 개정, 뉴타운 원주민의 주거안정기금 조성, 사업 속도 조절 등이 당장 확정돼야 한다. 이런 것은 행정기관의 의지만 있다면 신속하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29일 민주노동당 주최로 열린 뉴타운·재개발 중단을 위한 토론회. 이날 세입자와 가옥주들은 토론회가 끝난 후 연대해 재개발 사업에 맞서겠다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프레시안

지난 16일 서울시 주거환경정책개선 자문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날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은 성명서를 내고 "세입자 주거안정 대책과 뉴타운사업 속도 조절책이 구체적으로 보강돼야 한다. 특히 개발이득 환수장치를 필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제도 보완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서울시 "재개발 중단 없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정부와 서울시는 재개발 사업, 특히 뉴타운 사업을 더욱 강경하게 밀어붙일 태세다. 경기침체기에 재개발만큼 확실히 건설업체의 수익원천이 되는 사업은 없다. 정부는 심지어 뉴타운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30일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조례 개정안' 의결 소식을 발표하며 "재정비촉진지구 내 도시재정비 사업 시행자에게 건축공사비와 세입자 이주비 등을 서울시가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이 다음 달 열리는 시의회 임시회 심의를 통과하면 민간사업자가 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때 총 공사비의 40% 이내 금액을 융자받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서울시가 민자사업에 시 재정, 곧 시민의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재개발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뇌물수수, 세입자대책 등 보완책은 여전히 허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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