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단체 등 일각에서는 여전히 자문위의 권고 내용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가동한 뉴타운사업을 더욱 확대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여전히 잡음을 낮출 방도는 쉽게 찾기 어려워 보인다.
뉴타운 사업 개선 불가피
자문위가 발표한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종합점검 및 보완발전방안'을 살펴보면 그간 주먹구구식으로 뉴타운사업의 문제를 숨기려했던 자료들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이 담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거관련 시민단체에서 끊임없이 지적해 온 뉴타운 사업의 폐해가 실증적으로 잘 반영됐다. 자문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번처럼 서울시 주택사업의 문제 분석이 객관적으로 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방식의 주택사업이 중단 없이 추진될 경우 오는 2010년이 되면 주택 멸실(滅失)량은 13만6346호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뉴타운 등 재개발사업으로 새로 공급되는 주택수는 6만7134호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택 절반이 사라져버린다는 얘기다.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10년이면 뉴타운사업 등 재개발 결과 멸실 주택수가 공급주택수의 두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프레시안 |
"싸고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해 강북을 업그레이드하겠다"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호언과는 달리 이처럼 주택 공급이 오히려 크게 줄어드는 까닭은 뉴타운사업으로 공급되는 주택 대부분이 대형주택이기 때문이다. 소형주택, 임대주택 등 서민을 위한 주택은 민자사업의 특성상 수지를 맞추기 위해 외면하게 되는 게 뉴타운사업의 가장 큰 문제라는 주장이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심지어 오세훈 서울시장마저 지난해 4월 '뉴타운 관련 시민고객에게 드리는 글'에서 "뉴타운 사업의 혜택은 전적으로 집 없는 서민과 실소유자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하고, 현재와 같은 방식의 뉴타운 사업에 대한 깊은 성찰과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실제 보고서를 보면 세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재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했을 조합원마저 뉴타운에 재정착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정비사업 전 평균주택가격은 3억9000만 원이었으나 정비사업이 끝나면 5억400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거주가구 평균소득은 사업 전 207만 원에서 사업이 완료된 후 653만 원으로 세 배가량 뛰었다.
▲왕십리 뉴타운 개발 예정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이처럼 낙후된 지역을 개발해 강북을 강남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키겠다고 호언했다. ⓒ프레시안 |
보고서는 "조합원이 선호해 주민 부담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중대형 고가아파트 위주의 공급 정책이 펼쳐진 결과"라며 "원주민 재정착률 제고를 위한 정비사업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문위는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뉴타운사업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자문위가 서울시에 권고한 핵심내용은 뉴타운·재개발·재건축 등으로 각각 나뉜 서울시의 주거환경 정비사업을 5대 생활권역(도심권·동남권·동북권·서남권·서북권)별 특성과 주택 수급률 등 현실을 감안해 광역 개발방식으로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문위는 그 이유로 "광역 개발방식으로 전환하면 도로·공원·학교 등 기반시설을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아파트 위주의 개발에서 벗어나 원룸과 기숙사형 주택, 부분 임대형 아파트, 단지형 다가구 주택, 소규모 블록형 주택 등 다양한 주택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여전히 미흡한 점 많아…난항 지속될 듯
새 개발방식을 권고한 자문위는 오는 20일 오후 2시 시청 서소문별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이 결과를 최종 반영해 서울시에 제안할 예정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자문위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될까? 여전히 불만의 목소리가 더 커 보인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주거연합)은 16일 자문위 발표에 대한 논평에서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서슴없이 했다. 비판 이유는 뉴타운사업으로 야기되는 핵심 피해에 대한 구제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먼저 세입자의 주거안정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뉴타운지역 가구수의 70%에 달하는 세입자를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원주민 재정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문위 역시 이런 문제는 지적했지만 대안으로 제안한 '소형저가주택 모델 개발'은 추상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주거연합은 밝혔다.
나아가 전세대란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은 지금의 뉴타운사업 속도를 늦추고 순환재개발 방식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거연합은 지적했다. 지금처럼 동시다발적으로 26곳에서 뉴타운사업이 이뤄지면 재개발 기간 동안 세입자를 포함한 원주민은 전세를 찾느라 큰 곤경을 겪기 일쑤다.
경제위기로 부동산가격이 급락하기 전 실제 서울시 전세값은 뉴타운 문제로 들썩였다. 합동재개발방식에 의한 전면철거를 재검토하고 구역별 순환재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자문위 보고서에 따르면 가재울 뉴타운지구의 경우 정비구역지정 후 주변지역 전셋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가재울 뉴타운 지구 인근 지역의 전셋값 추이. 정비구역지정 이후 전세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자료 : 서울시 제공). ⓒ프레시안 |
주거연합은 특히 개발이득 환수장치를 강력하게 구축하지 않는 한 뉴타운사업이 개발이익을 좇는 대형주택건설 사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공공성 강화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농어천 뉴타운 사업 추진 움직임도
문제는 시민단체의 주장, 자문위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정부 차원에서 뉴타운사업을 대폭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부작용이 이처럼 크게 드러남에도 이 대통령이 시장 시절 보여준 가장 대표적 정책이라는 점과 현재의 여당을 있게 해준 정책이라는 점, 부동산 침체기 활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등이 맞물린 결과다.
뉴타운사업은 아예 전국적으로 뻗어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경북 봉화 등 일부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농어촌 뉴타운사업' 추진 움직임이 구체화되는 것이 증거다. 서울시의 문제점이 전국적으로 뻗어나간다면 부작용 역시 커질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정부는 뉴타운 관련 규제를 더 완화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서울시장마저 문제를 지적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아예 뉴타운사업 자체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동작뉴타운 지역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뉴타운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집단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왕십리 뉴타운 대상지역 세입자들은 여전히 서울시를 상대로 끈질긴 투쟁을 벌이고 있다. "뉴타운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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