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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정말 미쳐버리겠어. 갈 데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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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햐, 정말 미쳐버리겠어. 갈 데가 없어"

[뉴타운 현장] 부자들의 '고품격 주거' 위해 서민 25만명 삶터 빼앗겨

지난 18대 총선을 전후로 뉴타운은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이 됐다. 자신의 지역구를 새로운 뉴타운 지구로 선정되게 만들겠다는 한나라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뉴타운 추가 지정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밝힘에 따라 야당은 여당 후보들의 공약이 '거짓 공약'이라며 정치적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누구도 정작 뉴타운 개발을 하고 있는 곳에선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목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재직하던 당시 강남을 대체할 '고품격 주거지'를 만들겠다면서 시작한 뉴타운 사업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에 주목해야 진짜 정치공방을 벌여야 할 지점이 어딘지 알 수 있다. 거기에서 논쟁을 시작해야 '욕망의 정치'를 뛰어넘는 대안이 찾아질 것이다. <프레시안>은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뉴타운 개발에 관한 기사를 지속적으로 게재할 계획이다. 편집자

앞으로 2년이다. 오는 2010년까지 서울 전역에서 10만여 가구가 부서진다. 그리고 이를 대체할 가구 8만여 세대가량이 폐허 위에 들어선다. 2만여 세대는 새 거주지를 찾아 떠나야 한다. 이른바 '강남·북 균형 발전'의 기치를 내걸고 지난 6년여 간 내달려온 뉴타운 개발의 결과다. 이미 개발지 곳곳에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정부는 말한다. "이주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이주비를 지원해주고 새로 건설될 임대아파트 입주권도 준다"고 말이다. 정부 말만 들으면, 뉴타운 사업에는 패자가 없어야 한다. 지역에 남을 사람은 '새로운 도심으로 태어난' 새 아파트에서 살아갈 수 있고, 다른 곳으로 옮길 사람도 경제적 이득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건 폭탄돌리기다. 대략적인 통계 수치로는 80%가 넘는 거주민이 새 터전을 찾아 정든 곳을 떠나게 된다. 서울에서 새 집터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서울시 26곳에서 뉴타운 사업이 진행된다. 이곳 모두가 '강남 수요를 대체할' 목적으로 생겨나는 단지다. 그러면, 도대체 서민이 사는 동네는 어디에서 찾아봐야 하나. 정부가, 서울시가, 정치인이 약속한 장밋빛 환상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절망하는 거주민…"갈 곳이 없다"
▲ 왕십리 주민에게 뉴타운 개발은 큰 기대를 안겨주었다. 이제 기대는 '절망감'으로 뒤바뀌고 있다.ⓒ프레시안

지난 2002년, 1차 뉴타운 개발지로 선정된 왕십리 재개발 지역을 4일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왕십리 뉴타운 지구 제3구역'이다. 왕십리 뉴타운은 세 곳으로 구역이 나뉘어 동시에 개발될 예정이다.

주민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갈 곳이 없다'는 공포는 조합원, 세입자를 가리지 않았다.

6년 전 이곳에 월세를 얻어 정육점을 차린 이모 씨(52.여)는 '어떻게 되든 빨리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싸서 왔죠. 완전 창고같은 건물에 투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장사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뉴타운 개발한다고 발표가 났어요. 그거 알았으면 안 왔지. 여기서 애 아빠랑 평생 장사하려 했는데…"

그는 자포자기한 듯 보였다. 현실적으로 재정착이 불가능하리라 직감한 것이다. 조합과 보상금 합의가 된다 하더라도 이 정도 크기의 점포를 내기는 어렵다. 이 씨의 얼굴에는 인터뷰 내내 감정변화가 엿보이지 않았다.

평당 500만 원에서 2000만 원…민간주도 개발로 갈 곳 잃은 세입자들

도대체 지난 6년 간 땅값이 얼마나 올랐기에 재정착이 불가능하다는 소리가 나올까. 왕십리 뉴타운 제3구역의 경우, 개발 전 평당 500만 원 가량하던 20평짜리 한옥 시세가 지금은 평당 2000만 원대에 달한다. 현재 개발 중인 30평형대 아파트의 조합원 분양가는 4억 원이 넘는다. 이 정도 자금을 감당할 주거민은 별로 없다. 지역 인근 ㄹ부동산의 김모 중개사는 "6억 원에 분양권을 파는 사람도 '이거 12억 갈 건데 지금 싸게 파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왕십리는 다른 뉴타운 개발지에 비해서도 오름폭이 비교적 큰 편이라고 한다. ㅍ부동산의 이기찬 중개사는 "이 지역에 조합원 아파트 배정 비율이 45% 정도다. 보통 뉴타운 개발지의 경우 50~60%대니, 이곳의 조합원 비율이 낮은 편이다. 그만큼 일반인에 분양할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니 투자매력이 높다. 이 때문에 개발 지역 전체 땅값이 올랐다"고 말했다. 투자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뉴타운 개발지에 임대아파트를 건설한다고 했다. 세입자의 경우, 단순히 생각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뉴타운에 개발되는 임대아파트 수는 극히 적다. 제3구역의 경우, 새로 건설되는 아파트 총 2098세대 중 임대아파트는 357세대다. 3구역에만 세입자 가구 수가 1000여 세대에 달한다. 357세대에 들어가는 운 좋은 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변 지역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
▲ 왕십리 뉴타운 3구역은 오밀조밀한 골목길에 옛 가옥이 밀집돼 있다. 금형, 미싱공장 등 소규모 생산 공장이 모인 것도 특징이다.ⓒ프레시안

'주거권 실현을 위한 주민연합'의 임덕균 조직국장은 "민간 주도 개발의 폐해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행정 당국이 민간에 뉴타운 개발 상당 부분을 맡기면서 수익성이 낮은 임대아파트 비중이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왕십리 뉴타운 1, 2 구역에서는 4대 건설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개발에 참여했다. 이 컨소시엄에 들어오기 위해 로비전이 치열했다고 들었다. 기업은 수익을 내야 하니, 자연히 임대아파트 비중이 낮아진 것"이라고 언급했다. 1, 2구역의 임대아파트는 16평형 하나만 공급된다. 13평·17평·20평으로 나뉘어 공급되는 3구역과 다르다.

길음뉴타운, 재정착률 17.1%에 불과

재앙이 커질 수 있다. 비교적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는 길음뉴타운의 경우, 조합원과 세입자의 재정착률은 17.1%에 불과하다. 100가구 중 83가구가 다른 지역으로 밀려났다. 길음의 사례를 25곳 뉴타운 개발지 전체에 단순 적용하면 약 25만 7000여 명 가량이 터전에서 쫓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삶의 질은 뉴타운 개발로 인해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불안감은 세입자와 조합원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극한 처지로 몰리면서 한 푼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조합원과 세입자 사이에도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집주인은 자기 돈으로 세입자 이주비를 대야 하니 걱정, 세입자는 전세 가격이 폭등하니 갈 곳이 없어 걱정이다. 물론 세입자는 절대적으로 약자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산다는 세입자 박모(29) 씨는 벼랑 끝으로 몰려 있었다.

"집주인이 2년 전, 저희 몰래 집을 팔아버렸어요. 그러고는 아무 일 없는 듯이 세입자 지위로 살아온 거죠. 지난 달 중순쯤이었나? '내가 집을 팔았으니 너희도 나가야 한다. 5월 12일까지 집을 비워라'고 통보해왔어요. 세입자가 다 나가야 조합에 소유주 이주비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 거죠. 갈 데가 없다니까 사글세라도 얻으래요. 안 나가면 도시가스도 끊어버리겠대요. 죽으라는 거와 뭐가 달라요?"

"돌멩이를 던지니 물이 튀지"

뉴타운 개발지의 집값이 올랐다면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면 될 터이다. 서울시는 주민들에게 이주를 위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주비 몇 푼으로 인근 지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햐, 정말 미쳐버리겠어. 난 여길 뜨려는 사람이야. 그런데 갈 데가 없어. 성수동? 초고층 아파트 들어온다니까 땅값이 확 오른 거야. 거기도 한 세 배 올랐다지? 이게 말이 돼?"

왕십리에서만 10년을 넘게 살았다는 임모(53) 씨는 한숨을 쉬었다. 인근 지역 집값마저 덩달아 뛰어버려 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실제 성수동 두산위브 아파트 105㎡(약 34평형)의 경우, 지난 2005년 3억 8000만 원 가량이던 매맷가가 현재 6억 원이 넘는다.

서울 인근 도시로 이동하는 일도 쉽지 않다. 서울을 생활권역으로 하는 수도권 대부분 지역 아파트 매맷가가 서울을 뺨친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사람은 '내 집'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임씨는 당당한 자택 보유자에서 세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개발 지역 땅값이 오르면, 주변 지역도 덩달아 뛴다. 이기찬 중개사는 "뉴타운 지역에 돌멩이를 던지니 주변에는 물이 튀듯 파급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미 뉴타운 지역은 값이 오를 대로 올라 돈 많은 몇 사람을 제외하면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없다. 나머지 사람들은 인근 지역에 집값을 문의하러 다니게 된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이 집을 찾아 나서게 되니 수요가 폭등한다. 인근 지역 집값도 당연히 뛴다"고 밝혔다.

새 아파트 공급, 오히려 줄었다

뉴타운 개발 효과로 서울시가 홍보한 것 중 하나는 공급 확대였다. 주택 수요가 많아 집값이 오르는 만큼, 공급을 늘려 주택시장 안정을 꾀한다는 논리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뉴타운 개발은 오히려 주택 수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관악구 신림뉴타운의 경우 사업 후 가구 수는 6885가구가 된다. 그런데 현재 주민등록상에 등재된 세대수는 8478가구다. 뉴타운 사업으로 4분의 1에 달하는 가구가 줄어드는 셈이다. 성북구 장위뉴타운에서는 5000세대 가량이 갈 곳을 잃게 된다.

뉴타운 사업이 효과 없음은 지난달 21일, 오세훈 서울시장도 인정한 바 있다. 오 시장은 최근 '언론사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뉴타운 사업으로 시민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주택 호수(가구수)는 늘어나지만 실제 살 수 있는 세대수 기준으로는 오히려 줄어든다"며 "뉴타운 사업 과정에서 오히려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난은 더욱 심해졌다"고 밝혔다. 그가 한나라당의 압박에도 '추가 뉴타운 사업은 없다'고 못을 박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 왕십리 뉴타운은 '투자처'로 인식된 지 오래다. 여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란 인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프레시안

뉴타운 사업, 이미 실패한 정책

기본적으로는 서울시의 뉴타운 사업 철학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시의 초점이 '서민'이 아닌 '고품격 주거지'에 맞춰졌다는 말이다. 처음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뉴타운 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이 정책의 목표가 그랬다. "강남의 주택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고품격 주거지를 만들어 강남·북간 주거 수준의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고품격 주거지 조성을 위해서는 일반인을 위한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야 한다. 인근 역세권 개발도 잘 이뤄져야 한다. 민간 참여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민간이 개발한 고급 아파트값이 지역 전체 땅값을 밀어올린다. 서민은 그만큼 더 재정착의 꿈에서 멀어진다. 지역민이 처음 기대했던 '장밋빛 환상'은 이미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른 다음에야 깨진다.

지난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뉴타운 사업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 됐다. 개발 대상 지역의 거주민 절대다수는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새로운 개발'을 기대하는 듯하다. 동작에서, 도봉에서, 성동에서 주민들의 기대감은 표로 드러났다. 서울시와 정치권 모두 지금까지 주민들의 욕망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그러나 대다수 거주민들에게 그들이 부은 기름은 화마(火魔)를 키우는 격이었다. "보완 대책 없이 이대로 가다간 서울 지역 경제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임덕균 조직국장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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