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히 문장들이 겹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성격상 물증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어서 추정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헤매다가, 결국 시간의 은폐 역량이 상황을 주도해 이 나라 지식인 사회의 무능력과 불감증이 다시 한 번 만천하에 광고되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까하여 한 마디 거든다.
조경란 씨의 내면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
▲ <혀>(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프레시안 |
불확실성의 혜택을 준다는 말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한 쪽에게 유리한 방향의 불확실성을 수용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그 불확실성이 얼토당토않아서는 안 되고, 상식적인 수준 안에서 나름대로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 보통법의 기준으로는 "합당한 의혹(reasonable doubt)"이라고 한다. 이 문제의 경우 "맛보고 사랑하고 거짓말하다가 잘려서 요리되는 혀"라는 모티브의 유사성, 그리고 단편 <혀>가 응모한 바로 그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단편소설 부문에서 조경란 씨가 예심위원이었고, 그 후 집필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정도의 기간이 지난 다음에 장편소설 <혀>가 발간되었다는 정황은 합당한 의혹이라는 문지방을 넘기에 충분하다.
주이란 씨의 의혹 제기가 합당하다는 말은 표절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이 문제를 따져서 밝힐 가치가 있다는 말일 뿐이다. 이때 가치는 당사자들의 권익이나 명예와도 상관되지만, 우리 사회의 일반적 정직 그리고 이처럼 모호한 쟁점을 나름대로 해결할 수 있는 지적 분별력을 위해서 필요한 의미가 더 크다.
주이란 씨가 제기한 의혹이 캐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은 곧 공이 조경란 씨에게 넘어갔다는 말과 같다.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주이란 씨가 의심하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입증할 책임이 일단은 조경란 씨에게 지워진다는 뜻이다. 물론 이 문제 자체가 어떤 확실한 물증이 있기 어려운 성격이기 때문에, 조경란 씨 역시 상식적 분별의 한도 안에서 불확실성의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다. 즉, 상대방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확증이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시나리오와 다른 시나리오가 정황과 부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이라도 합당한 불확실성의 수준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주이란 씨 측에서 추가적인 정황이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표절 혐의를 더 이상 씌울 수는 없게 된다.
조경란 씨가 간접적인 방식으로 답변을 하기는 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조경란 씨의 답변은 자기는 문제의 단편을 읽지 않았고, 장편 <혀>의 구상은 10년 전부터였다는 주장으로 압축된다. 읽지 않았다는 답변에는 어떤 물적 증거도 수반되지 않았지만, 이처럼 부정문의 형태로 표현되는 사안은 원래 적극적인 증거가 있기 어렵기 때문에, 이 대목에 관해서는 더 이상 따지고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다. 그리고 어떤 물적 증거도 수반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주장이 사실과 다를 여지도 배척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이 대목과 관련해서는 쌍방의 주장이 상대방의 주장을 배척하지는 못한 채, 다만 자신의 생존권만을 간신히 유지하는 상태로서, 어느 한 편을 들어 결정하기가 지극히 곤란한 상황이다.
얼핏 보면 두 번째 부분도 비슷하게 모호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10년 전 문학동네와의 계약서가 있고, 당시에 시놉시스가 이야기되었다는 출판사 사람들의 비공식적 증언까지는 있는데, 불행히도 내용이 기록된 바는 전혀 없다. 그러니까 아니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도 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대목은 부작위가 아니라 작위가 초점이기 때문에 탐사해 볼 여지가 대단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는 영역이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중에는 기약도 정처도 없이 뜬금없이 떠올랐다가 챙겨두지 않으면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상념의 조각들을 여기저기 적어서 갈무리해두는 습관 또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어도 꽤 있다. 조경란 씨의 습관이 어떤지는 나로서 알지 못하지만, 혹시 그런 조각이 날짜를 추정할 약간의 단서와 함께 남아 있다면 자신의 불명예를 명쾌하게 해소하는 방향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망록을 작성하는 습관이 없었거나, 비망록을 작성하는 습관은 있는데 이 작품만은 공교롭게 아무 기록이 안 남아 있다면 다시 미궁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그의 기억 안에는 상념의 형태로 거의 무한한 분량의 사연이 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구상을 했다면, 당시에 "맛보고 사랑하고 거짓말하다가 잘려서 요리되는 혀"라는 현재 문제되고 있는 발상, 너무 닮은 "발칙함" 때문에 표절이라고 판단한 홍세화 씨의 근거가 되었던 모티브가 통째로 구상되었는지, 그랬다면 왜 10년 동안 집필을 미뤘는지, 등의 사연을 생생한 일인칭 경험자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10년 전의 구상이 일부, 단지 맹아와 같은 상태였다면 그 후 10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그 싹이 어떤 곡절들을 거치면서 어떻게 자라서 마침내 200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 되었는지를 마찬가지로 생생한 일인칭 주체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저런 사연과 계기와 반전과 좌절과 극복에 관한 이야기들이 10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전혀 없었다거나, 있었을지 모르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글쓰기라는 것, 특히 창작이라는 것이 어떤 종류의 일인지를 조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경이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심리학자들에게는 그 자체로도 매우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될 만하다.
물론 이런 종류의 사연들은 각 개인의 내밀한 세계에 속하기 때문에, 공표하기에는 상당한 개인적 고통이 따를 것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 쪽에서는 자극적인 반문을 하지 않을 리가 없고, 거기에 대답하려면 자신의 속살을 또 더 많이 내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일을 단지 불구경하듯 재미로 지켜보는 수많은 지각없는 관중들은 또 얼마나 입방아들을 찧어댈 것인가!
이것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여성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한국의 여성에게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를 충분히 상상해서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논란을 시간의 자동적 흐름 아래 적당히 덮고 넘어가는 얼버무림을 원치 않는다면 그것이 유일한 길이다. 조경란 씨는 물론 시간이 덮어주기를 원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저작권위원회가 그러기를 원한다면 직무유기라는 단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작권위원회가 현 단계에서 취해야 할 마땅한 조치
▲ <혀>(주이란 지음, 글의꿈 펴냄). ⓒ프레시안 |
최악의 결과, 다시 말해서 개명된 사회에서 진실과 정직이 마땅히 누려야 할 존중을 묵살하고, 분쟁을 사리에 맞게 해결해나가는 지적 분별력에 가장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야 말 결과를 원한다면 이 문제를 적당히 덮으면 된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 한국 사회는 대충 넘어가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덮으려고 해도 약간의 전략-덮으려고 했다는 의도가 없었음을 가능한 한 돋을새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진행만 보면 적어도 이를 위해 크게 지장이 발생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이런 문제는 어느 쪽으로도 확실한 증거는 찾기 어렵다. 추정과 짐작과 억측들이 난무하는 와중에, 도덕적 순수주의자들은 격앙된 감정에 스스로 취해서 "더러운 세태"를 도매금으로 매도할 뿐 어떤 방향으로도 적극적인 지도력은 발휘하지 못할 것이므로, 그런저런 푸닥거리를 몇 번 거치다 보면 주이란 씨 측의 울분도 (정당한지 아닌지는 어차피 백일하에 밝혀질 수 없는 일이고) 사그라지고 "진실을 원한다"면서 꼿꼿한 척하는 기개도 꺾일 날이 있을 것이다.
확실성을 스스로 쥐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확실성을 요구하며 멋모르고 나섰다가,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현실의 두껍고 복잡다기한 더께들, 그리고 맹목적으로 분주하게 흘러만 가는 시간의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서 한낱 불나방으로 스러져 간 경우가 한둘이었더란 말이냐. 확실성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던 사람들조차 당대에는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하다가 100년, 200년, 심지어 천년이 지나서야 인정받는 경우도 드물지만은 않은 담에야!
하지만 공무를 유기하는 행위가 실정법 체계와 사법적 관행의 미비 때문에 설령 처벌받지 않고 넘어갈 수는 있을지언정, 공동체에 피해를 입히는 부끄러운 짓임을 만에 하나라도 우리 저작권위원회가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종류의 갈등을 이치와 진실과 정의의 원리에 맞춰서 해결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기관에서 솔선수범해서, 가능한 한 의도의 흔적을 덜 남기면서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비겁을 자행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녀들이 그런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적응하게 되리라는 끔찍한 전망을, 위원 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인지할 수 있는 감각이 있다면, 현 상황에서 표절 여부를 당장 판정하지는 못하더라도,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절차적 조치들은 있다.
지금 이 문제를 유야무야 넘긴다는 것은 결국 모든 부담을 후세에게 떠넘기는 짓이고, 그러면서도 이런 문제에 관해 판정을 내리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덕적 논리적 분별력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살아남는 데에 편리하다는 모순된 단서를 덧붙여 가르침으로써, 사실상 대대손손 이 땅에 의혹과 실망이 항상 풍성하기 때문에 공동체나 이웃을 신뢰할 근거나 필요는 아예 없어지리라는 예상에 전율하는 사람이 위원 중에 한 명만 있다면, 다음과 같은 절차적 조치들이 취해질 때까지 위원회의 어떤 결정에도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
① 위원회는 이 사건을 접수했다는 사실로써 이미 주이란 씨가 제기한 의혹이 "합당성"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음을 조경란 씨에게 명확하게 통고해야 한다. 아울러 이 사건이 준사법적 절차에 속한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② 위원회는 현 단계에서 입증 책임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불확실성의 혜택이 상당한 정도로 허용되는 의미에서) 조경란 씨에게 있으며, 위원회의 절차적 요구를 계속해서 거부하는 행위는 표절이 있었다고 판정을 내리더라도 더 이상의 항변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당사자 및 공중에게 명백하게 해 두어야 한다.
③ 위원회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열쇠가 될 수 있는 정보로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을 혹시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증인으로는 조경란 씨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조경란 씨에게 분명하게 통고해야 한다. 아울러 조경란 씨가 현재까지 공표한 답변은 "진실, 빠짐없는 진실, 오직 진실" 중에서 "빠짐없는 진실"이라고 보기에 매우 미흡하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④ 위원회가 조경란 씨로부터 듣기를 원하는 증언은 개인적 감성과 사상의 내밀한 부분에 해당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해서 답변은 비공개 상태에서 청취하되, 상대방 당사자 또는 (상대방이 합의하는 경우) 상대방이 신임한 대리인의 반문권은 충분히 주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명확하게 천명해야 한다.
⑤ 위원회는 이와 같은 원칙 아래 조경란 씨에게 출석 답변을 요구해야 하고, 일정한 기한 또는 횟수를 지정해서 그때까지 출석 답변을 거부하면 상대방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는 의사의 표명으로 간주한다고 통고하고, 실제 거부가 계속되면 그와 같이 판정을 내려야 한다.
⑥ 조경란 씨가 출석해서 10년 전의 구상으로부터 2007년의 발간에 이르기까지 사연을 증언한다면, 그 내용에 따라서 관련자들의 선서를 거친 증언을 추가로 청취하여 세부 사항들을 상호 검증함으로써, 불확실성 속에서나마 절차적으로 명료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정리할 방안을 찾기 위해 위원회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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