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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가 '혀'에 꽂혔나? 독자 무시하지 말라!"

[기고] <혀> 표절 논쟁에 뛰어든 또 하나의 혀

서론에 부쳐

나는 독자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의 작가들을 먹여 살리는 중이다. 물론 탐욕스런 혀를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말이다. <혀>라는 작품을 표절 당했다고 비수를 던진 주이란 작가나 그 비수가 혀에 꽂혔는지 묵묵부답인 조경란 작가는 이 사건의 쌍방 당사자가 아니다. 정작 날아온 비수에 날을 세우고 있는 쌍방 당사자 중 한쪽은 독자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두 명의 작가와 돈을 주고 그 책을 사다본 다수의 독자와 벌이는 게임이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문학 서적을 잡기 시작했다. 책벌레는 아니라도 틈만 나면 꾸준히 책을 잡아왔으니 독서 경력 40년이 넘는다. 독서 경력 40년이라면? 주이란 작가는 삼십대 초반이다. 조경란 작가는 사십대에 들어서기 직전이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독자인 나는 택배로 도착한 두 개의 <혀>를 내리 굽어볼 만한 경력을 갖고 있다.

언젠가 나는 촛불 집회에 참석했었다. 모든 혀들이 '고시 철회', '명박 타도'를 외치는 혀의 바다에서 내 혀는 움직일 줄 몰랐다. 오히려 안으로 움쭐움쭐 기어들어갔다. 겁먹은 게 분명했다. 나는 촛불을 높이 들지도, 아래로 내리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우왕좌왕하다가 사람들을 좇아 광화문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혀가 말을 듣지 않는다. 답답하다. 혀를 어떻게 하든지 밖으로 밀어내어 남들처럼 구호를 외치려 낑낑댔다. 그러나 비겁함에 물들여진 혀는 좀처럼 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참 동안 목을 빼고 입술을 삐죽삐죽 대던 끝에 겨우 혀가 한 바퀴 돌아갔다. 물론 입속으로 나만 알아듣게, 그것도 잔뜩 신경을 써야 겨우 들릴 듯 말 듯한, 그런 소리가 입속 저 끝에서 '고시 철회~' 했다. 그 다음에는 더 작은 소리가, 아주 작은 소리가 꼬리를 흐리며 '명박 타도~'하고는 얼른 목구멍 속으로 쏙 기어들어갔다. 이만하면 촛불 집회에 참석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슴을 쭉 펴고 멀리 바라봤다. 명박산성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배후 세력-이렇게 뒤에 쳐져 있으면 바로 배후 세력이 아닌가, 얼른 뛰어가 사람들 틈에 끼었다. 선두 세력을 처벌한다는 말은 없었다. 그러니 죽을 힘을 다해 선두 세력이 되어야 한다. 이리저리 비집고 들다보니 어느덧 나는 명박산성 바로 밑에까지 밀려갔다. 혀의 바다는 점점 사나워지더니 이내 파도가 되어 그 산성을 넘고 있었다. 성은 컨테이너로 축조되었기에 그 틈새로 안이 들여다 보였다. 그 안에는 경찰이 중세기사 복장에 투구를 쓰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별안간 혀가 근질근질해지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요동하며 밖으로 자꾸 나오려는 혀를 입술로 꼭 틀어막았다. 진땀을 흘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하던 짓을 하면 탈이 난다는데,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나 내 입술은 명박산성처럼 견고하지 못했다. 혀가 돌아버렸는지 아니면 급성공주병에 걸려서 발작했는지 끙끙 안간힘을 다하여 꼭 다물어진 두 입술 사이를 꾸물꾸물 거칠게 비집었다. 어? 어?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이내 밖으로 터져 나온 혀는 경찰의 면전에 들이대 '메롱~' 하고 말았다. 아차,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부터 오늘의 대통령까지 다 겪어 길들여져 온 내 혀가… 내 혀가… 별안간 반역을 하다니, 얼굴에 촛불을 달다니…. 그것도 지엄한 왕권이 넘치는 경희궁 앞에서 말이다.

얼른 몸을 돌려서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안 하던 짓을 기어이 하고 만 혀를 혀로 욕하면서. 혀는 손가락 끝에도 달렸다. 펜이나 자판을 통해 나온 혀는 백지에도 척척 박힌다. 나는 문예지에 가끔 혀를 내밀었다. 과감하게 내 혀로만 잔뜩 채워진 책도 한 권 내었다. 그러나 돈은 못 벌었다. 척박한 문학세계에 뛰어들어 봐야 처자식 굶기기 안성맞춤이니 힘들여 글을 써야 할 이유를 못 느꼈다. 또 내가 아니라도 좋은 글을 쓸 작가들이 많다는 막연한 신념이다. 그 대신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의무, 독자의 의무에는 충실하다.

나는 내 영혼을 뒤흔들 작가를 늘 기다린다. 정말 기막힌 작품이라서 그 작가가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고 내 혀로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쓱쓱 싹싹 게걸게걸 이틀이건 삼일인건 마구 핥아 줄 작가 말이다. 며칠 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되었다. 프랑스 작가의 그 작품을 사 볼 예정이다. 주이란의 <혀>는 9800원, 조경란의 <혀>는 1만1000원, 각각의 할인 혜택은 10%이다. 현찰을 주고 <혀>를 끌어다 놓은 나는 혀의 제왕이라 할 수 있다. 최소한 두 <혀>를 굽어보는 내 방구석에서 말이다. 군침이 돌며 내 혀가 꾸물꾸물 축축해진다. 여기까지가 독자인 내 혀의 전부라는 것을 밝혀둔다.

주이란 작가의 <혀>
▲ <혀>, (주이란 지음, 글의꿈 펴냄) ⓒ프레시안

먼저 지금까지의 사안을 정리해 보자. 2008년 9월 26일에 주 작가는 "저는 '영혼'을 도둑맞았습니다"라는 기고문을 <프레시안>에 올렸다. 이 글을 통해서 나는 <혀> 논쟁을 알았다. 사실 <혀>라는 제목의 작품은 또 하나가 있다. 주이란 작가가 봤는지 모르겠지만 2007년 <세계일보> 공모 당선작인 김희진 작가의 단편 소설 '혀'이다. 이 소설은 암시와 상징으로 점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사고를 주제에서 조금도 이탈시키지 않았으며, 극치를 달리는 작가의 상상력에 내 혀가 밖으로 축 늘어졌던 기억이다.

며칠 동안 나는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조경란 작가의 반박문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엉뚱하게 올라온 글이 방현석 소설가의 "'혀' 표절 공방이 유발시킨 오해에 대한 해명"이었다. 방현석 작가는 주이란 작가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준 모양인데,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자기는 이 '매력 없는' 공방에서 발을 빼겠다는 말이었고, 이는 촛불 집회에 참가했던 내 혀보다 더욱 비겁해 보였으니, 이는 나만의 생각일까? 혀가 낑 하며 눈을 흘긴다. 그렇기를 바란다. 평양감사도 저 싫다면 그만인데 대학교수라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놓을 수도 없고…. 이리저리 검색하다보니 <한겨레> 최재봉 기자가 이 논쟁에 대해 쓴 칼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쉽사리 가려지지 않을 테니, 진실은 당사자만이 알고 있을 거라는 판에 박힌 말. 그런 말은 지금 당장에 나라도 할 수 있다며 혀를 쏙 내밀어 주었다.

2008년 10월 6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참다못해 "조·중·동은 '집단살해'를 하려는가"라며 일성을 날렸다. (☞ 관련 기사: "조·중·동·문단은 '집단 살해'를 하려는가?" )영혼을 도둑맞았다며 울고불고 다니는 신인작가 주이란의 호소에 왜 조경란 작가는 무반응이며, 조경란 작가를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쓴 <동아일보>는 도대체 뭣하는 곳이냐는 분통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조경란 작가는 <조선일보>에서 주는 동인문학상을 받았다나, 쯧~ 별안간 혀가 차진다. 그날 <프레시안>에도 소설가 김곰치 씨의 기고문이 올랐다. (☞ 관련 기사: "이 엽기적인 '표절 의혹'에 왜 침묵하는가" )두 작품의 해설까지 곁들여 주이란 작가의 손을 들어줬는데, 이때에 나는 혀를 꼬물거리며 두 작품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주이란 작가의 '혀'는 저돌적이며 기발한,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독자를 휘감은 다음 명쾌한 논리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해학의 힘이 있다. 이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유명한 남미 작가 마르케스의 <백년간의 고독>을 연상케 한다. 맛보는 혀, 거짓말하는 혀, 사랑하는 혀는 시종일관 현대인의 탐욕과 집착을 상징하며 그 엽기적인 결말은 통쾌하다. 이 작품이 신춘문예에서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김곰치 작가는 이렇게 우수한 작품이 왜 떨어졌는지 모른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더욱 강렬하며 인상적으로 잘 쓸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게 흠일 수도 있고, 혹시 다른 신문사에서 이미 당선된 공모작 제목이 똑같은 '혀'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밝힐 점은 김희진 작가의 '혀'와 주이란 작가의 '혀'는 그 주제와 전개, 배경과 뉘앙스가 다르기에 조경란 작가처럼 표절 시비가 개입될 여지는 없다.

독자인 내가 아쉬웠던 점은 주이란 작가의 혀가 왜 '스스로 자멸'하지 않았는가에 있다. 주이란의 '혀'는 첫 부분에서 윤리적인 암시를 던지고, 혀를 처단해야 할 이유를 쭉 나열하는 과정으로 현대인을 묘사한다. 그러고 나서 '양심의 각성에 의한' 혀의 처단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 양심의 각성을 빼버리면 어떨까? 혀가 탐욕과 집착의 정점에서 양심의 각성에 의해 처단 받지 않고, 자기의 혀마저 탐내어 스스로를 질겅질겅 잡아먹는, 양심이 마비된 혀 스스로가 완벽한 파멸로 치닫는 맹렬한 과정으로 줄거리를 이어가서, 소설 전체가 메타포 형식을 취했으면 더욱 좋았을 성 싶다. 또한 작가가 의도하는 혀의 윤리도 반전을 통해 더욱 돋보였을 것이다.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 본 이 작품은 착상이 신선했고 의외성과 논리성이 무난했다. 신인인 만큼 작가적 역량을 조금 더 보강해야겠지만 전체적으로 잘 짜인 작품이다.

조경란 작가의 <혀>
▲ <혀>(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프레시안

사실 이 글을 안 쓰려다가 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이란 작가의 통박에 조경란 작가는 시종일관 묵묵부답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인작가라지만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 신춘문예를 주최한 <동아일보>도 말이 없다. 일설에 의하면 조경란 작가는 주이란 씨가 자기를 헐뜯어 유명해지려는 '나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이런 발설 뒤에는 조경란 작가 자신이 아주 유명한 중견작가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논점은 누가 더 유명하냐에 있지 않고 작품 자체에 있다. 아무래도 조경란 작가는 나서지 않을 기미니깐 밖에서 떠드는 사람끼리 노닥대자.

나는 사실 여류작가의 소설은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조경란 작가의 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그가 유명한지도 모르고, 이번 사건으로 처음 그의 작품을 대했다. 그래서 300쪽이 넘는 분량을 한 번 보고 다시 재독에 들어가서 이번에는 책 말미의 30쪽이 넘는 김화영 문학평론을 대조해가며 봤다. 참으로 인내력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나에게는 여류작가에 대한 편견이 있다. 일부 여류작가의 소설은 뭔 소리를 하는지 참 알아듣기 힘들다. 겨우 겨우 소설을 다 읽어내는 '독한 짓'을 하고 나면 밤새 졸음을 참아가며 잔소리를 듣긴 들었는데 뭘 들었는지 전혀 머리에 남지 않는, 그런 느낌이 종종 들기 때문이다. 조경란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복합적 구도로 줄거리를 이끌어 가는데 필요한 독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기에 읽어내기가 참 어렵다. 거기에 이탈리아 음식과 재료를 외래어 그대로 막 갈겨썼기에, 마치 외국서적을 서투른 번역가가 한글로 번역해 놓은 듯하여,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모욕감과 수치심이랄까, 솔직히 작가의 국적마저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조경란의 <혀>를 딱 잘라 말한다면 급조된 소설 같다. 짜깁기한 소설이란 말이다. 300여 쪽 중에서 불필요한, 정말 소설 줄거리하고 전혀 상관이 없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요리 이야기가 150쪽을 넘게 차지한다. 도대체 소설을 쓴 건지, 인터넷이나 요리책을 뒤적여 낙서를 해 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장황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요리 중에 제대로 된 요리가 있어, 군침이라도 돌면 그나마 봐 주겠지만 이 어설픈 요리책으로는 곱창전골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하여, "다 읽고 나면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조경란 작가의 바람과도 거리가 멀다.

이에 비해 줄거리는 너무도 간단했다. 그 흔한 사랑타령이었다. 정말 우리의 여류작가들 왜 이러는 거야? 이수일과 심순애만 알면 한국 여류작가의 소설사 100년의 3분의 2를 터득하고 만다는데, 사랑타령은 이제 그칠 때도 지나지 않았나? 읽어 갈수록 정나미가 떨어졌다. 김화영 문학평론가의 장황한 설명도 뭐가 그리 어려운지 도대체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었다. 사실 작품에 실린 평론이 길면 독자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다. 간단한 작품 소개로 독자를 이끌어야지 교육까지 시켜가면서, 읽는 법을 가르쳐줘 가면서 읽게 하면 안 된다. 조경란의 <혀>는 동인문학상까지 받은 중견작가의 작품치고는 수준 이하고, 독자에 대한 모독이라는 판단이다. 얼렁뚱땅 해내느냐고 손만 힘들었지 밥은 설었다.

표절이 맞는가?

조경란 작가의 <혀> 표지 뒷면에는 '사랑하는, 맛보는, 거짓말 하는 혀'라는 소제목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는 주이란의 '혀'에서 확고히 틀어잡아 끌고나가는 소재다. 나는 왜 이 글을 조경란 소설의 겉표지에 붙였는지 이해가 안 간다. 사랑하고 맛보고 거짓말 하는 혀는 주이란 작가의 '혀'에 붙여야 할 말이다.

조경란 작가의 <혀>에서 혀가 뭘 사랑했는지, 한석주가 주절거린 사랑한다는 말? 지하도에서 벌어진 노숙자와의 뜬금없고 황당한 오럴섹스? 사실 이 장면에서는 오히려 주이란의 사랑하는 혀가 생각난다.

'맛보는 혀'도 마찬가지다. 요리는 무진장 많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이 혀에 닿아 생생한 느낌으로 독자에게 전달되지도 않을뿐더러, 소설에서는 혀보다 요리 방법과 소개에 중점을 두었기에 맛보는 혀가 없다. 이것도 주이란의 혀가 월등하고 제격이다.

'거짓말 하는 혀'는 어떤가? 거짓말을 또렷이 부각시켜 소주제로 삼는 구석을 조경란의 소설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도 역시 주이란의 거짓말 하는 혀에 확실히 적합한 말이다. 조경란의 <혀>는 중반까지는 너절한 요리 이야기고 개 이야기다.

표절을 비교적 선명하게 추적해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은 소설 후반부이다. 여기서부터는 배경과 뉘앙스, 혀를 자르는 장면으로 치닫는 클라이막스까지 내가 두 작가의 소설 중에 누구의 것을 읽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전개와 문장이 어떠하든 문학적 힌트와 착상은 표절로 생각된다. 조경란 작가가 주이란 작가의 작품을 심사했던 사람이라면 그런 의혹은 당연할 것이다.

결론에 부쳐

나는 지금도 조경란 작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지만 헛일 하는 것 같다. 너희들은 짖어라, 나는 내 길만 가겠다는 오뚝한 성깔에서 비롯된 침묵인지 모르지만, 소위 중견 작가라면 자기 때문에 울고불고 다니는 신인 작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

표절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당당히 대답하면 될 일이요, 표절이면 표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니깐, 그러면 입 다물어야 되나? 아하, 그렇다. 표절이기에 입 다물다가 정 참지 못하겠으면, 너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나를 헐뜯는 거야, 하고 몰아치면 되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배후 세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경란 작가가 그토록 비양심적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냥 오만하다고나 할까, 그래뵈도 중견 작가요, 동인문학상까지 수상한 작가인데, 그깟 신인을 일일이 상대를 해야 되냐고.

그렇다면 독자인 나는 도대체 뭐냐? 딴죽을 걸고 들어온 얄미운 신인 작가는 그렇다 쳐도 당신의 책을 사 본 독자에게는 한 마디 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나는 독서 40여 년이다. 한 마디로 작가인 당신이 살아온 세월보다 더 오랜 독자의 경력을 지녔다. 나도 소설을 쓰겠다면 당장에 쓸 수 있다. 최소한 된장찌개 하나 정도는 잘 끓여 내올 수가 있다. 다만 귀찮아서 안 쓸 뿐이다. 그 대신 책값을 또박또박 지불하고 내 대신 잘 써주는 작가의 작품을 사보는 것이다. 글을 마치는 순간 내 혀가 밖으로 몸을 쑥 드러내더니 메롱~ 한다. 독자의 혀를 무시하지 말라는 뜻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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