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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표절 공방 이제 그만 결판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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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혀> 표절 공방 이제 그만 결판을 내자!"

[기고] 주이란 작가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주이란 작가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박근형이라고 합니다. 제 호는 만 번 참겠다는 뜻으로 '만인'으로 지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박근형 씨가 두 분이나 계시기 때문에 제 호도 밝힙니다.

저는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고, 책을 두 권 썼습니다. 중국 쓰촨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프레시안>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면 제가 쓴 글들이 나옵니다. 지금은 사람이 싫어 15년 전 결심을 조용히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평생 소설 딱 한 권만 쓰겠다."
▲ <혀>(주이란 지음, 글의꿈 펴냄) ⓒ프레시안

지금 <프레시안>에서 벌어지는 주이란·조경란 표절논쟁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결국 터져야 하는 일이 터졌습니다. 제가 잘 아는 사람이 1960년대 겪은 실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시골 출신입니다. 20살 때 서울로 올라와 자취 생활하며 열심히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스승은 없었습니다. 혼자 갈고 닦았습니다. 처음 시나리오 신춘문예에 응모했습니다. 제목은 '아름다운 분노'. 신문을 보니 자기 작품을 칭찬하면서 동시에 이러 저러한 이유로 떨어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심사평이 있었습니다.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1년 동안 또 갈고 닦았습니다. 제목은 '마해(魔海)'. 역시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또 1년이 지났습니다. 또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람이 화났습니다. 그 심사위원장은 널리 알려져 있는 대학교수였습니다. 하루는 이 사람이 그 교수 강연을 예고하는 짧은 기사를 봤습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불 같은 성질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젊은이가 건방지게 이 사람 왼팔을 낚아챘습니다. 그 교수는 순식간에 그 젊은이와 다방으로 갔습니다. 그 젊은이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에게 사과 두 개가 있네. 똑같은 사과일세. 그러나 하나는 그냥 주운 사과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열심히 키운 사과일세. 자네라면 그냥 주운 사과를 좋아하겠는가, 자신이 열심히 키운 사과를 좋아하겠는가?"
"큰 차이 없는 같은 사과라면 자신이 열심히 키운 사과를 좋아하겠습니다."
"그래서 자네가 떨어졌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보기에 자네는 분명 재능이 있어. 하지만 아직 갈고 닦아야 하네. 그러니 일단 나한테 배우게."
"하지만 저는 돈이 없습니다."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일단 배우게!"


그리하여 그 둘은 1주일에 한 번 다방에서 만나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습니다. 이 사람은 1주일 동안 열심히 창작한 시나리오를 보여줬고, 그 교수는 미흡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우리나라 작가들은 1997년까지 원고지에 손으로 글을 썼습니다. 신춘문예를 심사하는 사람은 원고지 뭉치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주최 측은 원고지 겉면을 뜯고 제목만 다시 써서 심사위원들에게 보여줍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누가 쓴 글인지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손으로 글을 씁니다.

스승이 제자 글씨체를 모르겠습니까? 그 교수가 이 사람 작품을 일등으로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수와 싸워야 했습니다. 자기 제자 작품을 당선시키기 위해 스승들이 고군분투하는 것입니다. 그 다른 심사위원도 우리나라 시나리오 역사에 이름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전화가 왔습니다. 1년 동안 돈도 안 받고 열심히 지도해 준 그 교수가 흥분했습니다.

"야! 너 됐어!"

당시 서울 시내 집 한 채를 충분히 사고도 남는 거액을 상금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 관행에 따라 눈물을 머금고 일정 액수를 몰래 심사위원들에게 돌리며 인사해야 했습니다. 그 때 자기 스승에게 수업료도 갚았습니다. 그래서 손에 남은 실제 수령액은 얼마 없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현실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훗날 저에게 이런 말도 격분하며 했습니다.

"응모 작품 원고를 돌려주지 않는 것은 나쁜 놈들이야! 심사위원장 활동만으로도 엄청 바빴던 아무개가 어떻게 그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단 말인가!"

지금은 이런 일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근거는 없습니다.

어린이 박근형은 결심했습니다. "나는 독자들에게만 평가 받겠다!"
▲ <혀>(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프레시안

오늘(2008년 10월 18일) 서점에서 주이란 작가의 <혀>를 읽었습니다. 다른 단편은 안 읽었습니다. 조경란 작가의 <혀>도 안 읽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이 무엇인가?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10년 이상 글쓰기를 갈고 닦은 사람입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글 잘 쓰는 비결은 세 가지 밖에 없습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

저는 10년 전 <토마토>라는 장편소설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이 책 작가 이름도 까먹었습니다. 제 평가는 이렇습니다. "잔소리다!" 당신이 쓴 <혀>, 제 평가는 이렇습니다. "문학이다!"

기교를 중시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제가 말합니다. "이 바보들아! 감동적인 명문은 기교가 아니라 진실이야! 이것은 책과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야!" 그래서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로부터 멸망한 가문에서 훌륭한 소설가가 나왔다."

감히 말합니다. 아무리 분량이 두꺼워도 기교로 가득 찬 책은 쓰레기입니다. 아무리 분량이 석 자 밖에 안 되도 목숨을 바치는 진실이 담겨 있으면 그것은 감동적인 문학입니다. 바로 이렇게.

"사랑해!"

당신이 쓴 <혀>는 허구입니다. 소설이니까. 그러나 진실이 있습니다. 직접 읽어보면 압니다. 문학이란 새로운 지평선을 보여주는 유용한 표현수단입니다. 그렇지 않고 '문학을 위한 문학'은 잔소리입니다. 당신 작품은 문학입니다. 글도 깔끔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상상력도 매우 뛰어납니다.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는 글이 아닙니다. 어떤 분야든 성공하려면 최소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 타고 나야 한다. 둘째, 매일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한다.

저는 확신합니다. 당신은 타고 났습니다. 그리고 매일 열심히 갈고 닦았습니다. 오래간만에 훌륭한 신예의 작품을 만나서 오늘 기뻤습니다. 지금 문제는, 조경란씨가 정말 당신 작품을 표절했는가? 먼저 이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표절과 도용도 훌륭한 창작일 수 있다. 첫째, 무명 작가가 유명 작가 작품을 도용하면 괜찮습니다. 둘째, 유명 작가도 다른 장르 작품을 재가공해서 판매하면 괜찮습니다. 셋째, 유명 작가가 같은 장르 작품을 도용하더라도, 도용했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도용하면 괜찮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첫째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 사례 하나만 봅시다.

진달래꽃

박근형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통쾌하게 웃으며 보내오리다.


이것은 제가 쓴 시입니다. 표절입니까? 네, 표절입니다. 도용입니까? 네, 도용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괜찮습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모른다면 대한민국 지식인이 아니며, 이 작품은 전혀 다른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명제는 <다빈치코드>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막달레아 마리아와 부부관계였다! 이것은 1980년대 서구 역사학에서 매우 유명한 논문이었습니다. 작가는 이 논문을 소설로 바꿨습니다. 표절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셋째 명제는 논문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논문은 표절과 도용이 가득 찬 글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각주와 결론 뒤에서 떳떳하게 도용했다고 밝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제국>도 괜찮습니다. 이 작품 줄거리는 <장미의 이름>의 도용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서문에서 참고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주이란·조경란 표절 공방은 어떠한가?

첫째, 주이란이 조경란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조경란이 주이란을 표절했다는 주장입니다. 둘째, 다른 장르 작품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같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표절했다는 주장입니다. 셋째, '참고했다', '표절했다' 이런 말 전혀 안 하고 표절했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주이란 작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경란 작가는 분명 벌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 주이란 작가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지금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당신이 조경란 작가이고, 주이란 작가의 작품을 표절하지 않았다면, <프레시안>에 반박문 한 편도 보내지 않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작가입니까? <머시멜로 이야기> 진짜 번역자가 따로 있다는 폭로가 나왔을 때, 정상적인 번역자라면 적극적으로 공개 반박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의심 받은 그 번역자는 반박을 못했습니다. 지금 그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주이란이라는 무명 작가가 자기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조경란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으며, 조경란은 비판할 가치도 못 느껴 아예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사태가 커졌습니다. 무시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무엇인가? 이렇게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이 두 작가와 전혀 인간 관계가 없는 뛰어난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 33명을 공고로 모집하십시오. 물론 자원봉사입니다. 이 33명이 일주일 동안 두 작품을 혼자 집에서 열심히 읽습니다. 그리고 각자 미리 정해놓은 형식으로 평가서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평가위원장이 정리해서 최종평가서를 작성한 뒤, <프레시안>에서 전문(全文)을 공개합니다.

저는 조경란 작가가 주이란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조경란 작가 작품을 읽지 않았으며, 조경란 작가의 반박문도 못 봤습니다. 만약 조경란 작가가 이 해결 방법마저 '동의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조경란 작가가 나쁜 짓을 한 것입니다. 만약 최종 보고서가 "주이란이 거짓말했다"고 결론 내린다면 주이란 작가가 나쁜 짓을 한 것입니다. 결국, 둘 중 하나는 사실상 매장당할 것입니다.

이제 진실 공방 그만 합시다. <프레시안>이 결론을 유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결합시다!

주이란 작가!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훌륭한 소설가입니다. '글의꿈' 김태환 사장은 훌륭한 작가를 발굴했습니다. 바로 이런 작가를 적극 도와줘야 합니다.

주이란 작가!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굳이 만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인연이 있다면 만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저는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사인해 주세요."

2008년 10월 18일 서울 지하 단칸방에서

만인(萬忍) 박근형(朴根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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