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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마을의 '화해'와 신지호 의원의 '과거사위 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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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마을의 '화해'와 신지호 의원의 '과거사위 통폐합'

[기자의 눈] "돈 몇 푼 아끼자고 유족들 痛恨을 짓뭉개나"

6.25 당시 공권력에 의해 많은 양민들이 살해당했던 아픈 과거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진상규명을 하고 화해 작업을 하면서 주목을 끌었던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는 가운데 지난 19일 열린 세 번째 합동 위령제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손님'이 참석했다.

▲ 구림 마을 위령제에 참석한 노병현 영암경찰서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프레시안

바로 노병현 영암경찰서장이다. 어청수 경찰청장 명의의 조화도 제단 옆에 놓여졌다. 이들이 이날 위령제에 참석한 까닭은 지난해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1950년 10월 좌익토벌작전을 벌이던 경찰이 구림마을에 진입해 민간인 62명을 사살한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경찰이 불법으로 주민들을 사살한 민간인 희생 사건"이라고 결정을 내리고 "희생자 유족에게 사과하고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위령제에 참석한 노 위원장은 주민들 앞에서 추도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이 재조명되고 이제야 고인과 유족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계기가 만들어져 다행"이라며 "비록 전시였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신변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권력에 의해 적법한 절차 없이 주민이 희생된 사건에 대해 깊은 성찰과 함께 유감과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 ⓒ프레시안
경찰은 구림마을 외에도 6.25 당시 경찰의 위법한 행위로 인한 민간인 희생 지역의 위령제에 참석해 '사과'를 해오고 있다. 지난 9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금정굴 학살' 희생자 위령제에는 이기태 일산경찰서장이 어청수 청장을 대신해 참석, 추도사를 낭독했다.

금정굴 사건은 1950년 서울 수복 후 경찰이 부역자를 색출한다며 주민들을 굴 안에 가둬놓고 총살한 사건으로 발견된 유해만 150구가 넘고, 500여 명이 당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다.

비록 각 지역에서 읽혀지는 추도사의 내용이 똑같고 표현의 수위도 '반성'이 아닌 "성찰", '사죄'가 아닌 "유감"으로 다소 미흡하다는 반응이지만, 경찰 책임자가 직접 위령제에 참석해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의 뜻을 나타낸 것만으로도 진일보한 성과로 평가된다.

경찰 추도사

반세기전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과 좌우대립의 혼란 속에서 이곳 고양 금정굴과 한강변 등 억울하게 희생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 여러분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국가 차원에서 사건의 진상이 재조명되고 이제서야 고인들과 유족 분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계기가 마련되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비록 전시였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권력에 의해 적법한 절차 없이 주민이 희생된 사건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함께 다시 한 번 유감과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아울러 오랜 세월동안 인내하며 지내오신 유족 여러분의 슬픔을 달래드리고 고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적극 노력해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이러한 슬픈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항상 주민을 섬기며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새로운 경찰의 모습으로 다가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나라당 과거사 위원회 '통폐합'에 유족들 반발

이와 같은 과거사 진상규명과 위령사업을 통한 화해작업으로 인해 고인들과 유족들의 50여 년의 '말 못할 한'을 푸는 작업들이 더디지만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각종 과거사 위원회 폐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유가족들의 불안과 분노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이다. 신 의원은 20일 무려 15개의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노근리, 제주 4.3사건, 태평양전쟁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과거사 관련 활동을 모두 진실화해위 한 곳으로 통폐합 하는 것이다.

신지호 의원 제출 법안 주요 내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소관사무에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삼청교육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6·25전쟁 중 적후방지역 작전수행공로자에 대한 군복무인정 및 보상등에 관한 법률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위원회의 소관으로 규정된 업무를 추가함


신 의원은 개정안을 제출한 이유에 대해 "정부 내에 설치·운영 중인 각종 과거사 관련 위원회간 기능의 유사·중복을 없애고 정부위원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법정 존속기한이 있지 아니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등 13개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각각 폐지하고, 이 법에 따른 진실·화해위로 하여금 그 기능을 통합·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진실·화해위의 업무범위를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군의문사 위원회도 폐지해 진실화해위로 통합하는 안을 신 의원과 정부가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과거사 정리와 성격이 다른 '특수임무수행자 보상', '한센인사건 피해자 지원'과 같이 진실화해위의 설립 취지와 활동 성격이 다른 분야까지 일괄적으로 포함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정부도 다른 위원회의 존치 필요성을 인식해 군의문사위만 통폐합 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성격이 다른 위원회까지 통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의 권고사항 처리를 기획하고 점검하는 기획단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총리실에서 행정안전부로 격하됐다.

또한 관련 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과거사 정리 작업 자체를 격하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족들의 통한을 돈 몇 푼에…"

'한국전쟁 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는 20일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의 이러한 책동에 대해 과거청산 발목잡기를 통해 대한민국 모든 구성원들을 도탄지고(塗炭之苦)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대국민 선전포고라 규정한다"며 "통폐합 저지와 철저한 과거청산을 위한 투쟁의 결의를 거듭 다짐한다"고 경고했다.

범국민위는 "위원회의 성격과 제기 배경, 진실규명 상황이 전혀 다르고 아직 출범하지도 않은 위원회들마저 무도건 1개로 통폐합하겠다는 것은 단순무지한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며 "통폐합 추진으로 뻔히 과거청산의 작업에 혼란이 예상되는 것을 알면서도 통폐합을 추진한다는 것은 과거청산을 무력화시켜 발목을 잡겠다는 이야기밖에 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범국민위는 "진실화해위는 현재 자체 사안만으로도 예산과 조사인력 부족 등으로 신청사건의 30%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고, 각 위원회들도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각기 그 입법목적과 규정에 따라 국회가 승인한 예산범위 내에서 어렵게 활동하고 있다"며 "피해자와 가족의 목숨을 내놓은 그 유족들의 통한과 투쟁으로 이뤄낸 과거청산에 돈 몇 푼, 자리 몇 개로 효율성 운운하는 천박함을 당장 걷어치워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군 의문사 위원회 위원장이 장관급인데 장관 하나를 두면 평균 1억5000만 원 정도는 소요된다"며 "굳이 개별 위원회를 다 만들어서 거기에 장관급을 두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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