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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마을은 제주 4·3사건에서 무엇을 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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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구림마을은 제주 4·3사건에서 무엇을 배울까?

[기고] 국가기구의 개입과 지속적 토론의 중요성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경험한 정치사상가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깊은 사색을 통해 인간과 공동체의 삶이 이러한 절대적인 악(惡)을 경험한 이후에 지닐 수 있는 두 가지 상태에 대해 고찰했다.

첫째, 홀로코스트와 같은 과거의 끔직한 역사로 인한 공동체적 삶의 파괴와 개인적 죽음 등과 같은 결과는 결코 돌이키거나 회복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이러한 경험 이후에 인간은 또다시 언제 그와 동일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항시 살게 된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 현대사에서도 제주 4·3사건 중 민간인 학살 사건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이 한반도에 사는 개개인과 또한 공동체의 삶에 이와 같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흔과 함께 불확실한 미래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회복 불가능한 상흔'과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다행히도 최근 세계적으로 이러한 과거 비민주적 정권이 저지른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 유린 사례가 많이 밝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국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희생자 및 그 가족과 사회단체,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과거 사건에 대한 재해석, 처벌 및 교정 등 정책적 요구를 하고 있으며 국가 역시 화해, 발전, 혹은 사회 안정 등의 여러 미래지향적인 목적을 갖고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아르헨티나, 칠레, 그리고 남아공의 진실위원회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제주4·3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등이 설치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전남 영암 구림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대단히 크다.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자체적으로 좌·우익을 아우르는 희생자 조사 사업을 벌이고, 그를 통해 마을 공동의 신원을 모색하며, 더 나아가 화해와 통합을 지향하는 모습은 상당히 선구적이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적극적인 좌·우익 가담자를 위령사업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논쟁과 위령사업의 재정적 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 대해 제주4·3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운동 과정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몇 가지 논의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추모대상의 범위'에 대한 토론 자체가 중요하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정의가 말해주듯이 제주4·3사건에서의 민간인 희생은 구림마을과 상당히 유사한 좌·우익 양쪽의 폭력에 의한 학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4·3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있어서 지난 세월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며 제주도의 이 과정은 어쩌면 구림마을 사람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미래일 수도 있다.

제주에서는 1993년까지 매년 4월 3일 두 공간에서 서로 다른 위령·추모행사가 열렸다. 한 곳에서는 제주4·3연구소 등 사회단체와 학생들의 주도로 추모제를 지냈고, 다른 한 곳에서는 제주도 4.3사건 민간인 희생자 반공유족회의 주도로 위령제를 지내 왔다. 이런 위령행사가 1994년에서야 비로소 제주도의회의 중재로 하나로 합쳐 진행됐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를 추모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항상 불거져 나왔다. 이러한 문제는 최근 제주4·3위원회의 희생자 심의 및 결정 과정에서도 제주4·3사건의 희생자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라는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위령사업 대상의 범위에 대한 논쟁은 어느 한 순간에 무 자르듯 마무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주4·3사건의 경우처럼 다양한 목소리의 사람들이 수 년 간 끊임없는 토의와 토론을 통해 그 기준을 만들어 온 것이고 이것 또한 중요한 진상규명의 작업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림마을 주민들의 공동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비둘기 숲에 깃든 공동체 호남명촌 구림〉에서의 진상조사와 명예회복 사업은 위령과 명예회복 사업의 마무리가 아닌 주요한 시작인 것이다.

***'용서'와 '약속'에는 반드시 국가기구의 협력이 있어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운동은 제주도 내외 다양한 사회 세력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힘, 그리고 지속적인 지원과 상호견제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1992년부터 1994년에 이르는 시기에 상당히 중요한 세 가지 사건이 존재한다.

1992년 다랑쉬굴의 유해발굴과 그로 인한 제주4·3사건의 대중화와 전국화, 1993년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 구성, 그리고 1994년 제주도의회의 중재로 이루어진 합동위령제의 개최 등이 그것이다. 이 세 사건은 진상규명 운동에 큰 활력이 되었고 전환점이 되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제주도의회 내 4·3특별위원회의 구성은 기존에 민간에서만 논의되던 제주4·3사건을 공신력 있는 국가기구가 논의한다는 점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운동의 흐름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아렌트는 민간인학살 이후 인간이 처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치유할 수 있는 두 가지 행동 방식을 제시한다. 첫째, 회복 불가능한 과거를 치유하고 인간과 공동체에게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행동은 '용서'다.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상처, 그리고 과거로 인해 굴절되어버린 삶에 대한 유일한 해결법은 용서라는 것이다. 오직 용서를 통해서만 공동체는 진정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불확실성의 바다 속에서 '확실성의 섬'으로 작용하면서 불확실하고 두려운 미래를 극복하게 해주는 행동은 '약속'이다. 이 '용서'와 '약속'만이 그리고 이 두 행동의 결합으로만이 진정한 화해는 이뤄진다는 것이다.

구림마을의 경우는 용서를 위한 큰 걸음은 좌·우익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같은 지면에 올림으로써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약속을 향한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걸음이고 이 과정에는 반드시 공식적 국가 기구와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

***국가기구의 개입은 '제3자 개입'이 아니라 '결자해지' 차원**

공식적 국가기구와의 협력은 단순한 재정적 도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가적 차원의 진상규명 노력은 과거 국가 공권력에 인한 희생에 대한 국가의 총체적 책임을 의미한다. 구림마을의 민간인 희생은 결코 단순한 사적 집단이나 단체의 행위 결과가 아니다. 희생자 수가 명백히 이야기해주듯 많은 수가 대한민국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고 나머지 경우 또한 북한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 기구의 개입은 제3자의 불필요한 개입이 아닌 당사자의 개입이고 결자해지(結者解之)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구림마을의 자체적인 노력은 현재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노력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제주도에서도 마을 혹은 일부 유족들의 자체적인 노력이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과 결합되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인 예도 있다. 어려운 시절 순수하고 자체적인 힘으로 시신 수습, 묘지 마련 및 위령비 건립을 이룬 백조일손 유족회나 현의합장 유족회의 노력은 결코 그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퇴색되거나 변색되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계속되어야 할 '진실 규명' 작업**

나는 제주4·3사건을 보며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결코 제주도에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국가 범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번 정권에 의해 정치적 수단으로 등장한 민간인 학살은 그 뒤 계속해서 등장하며 끊임없이 한국 현대사를 물들이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주도의 사건은 제주도민만의 사건이 결코 아니며, 구림마을의 사건 또한 구림마을 사람들만의 사건이 아닌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는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민간인 학살과 같은 사건은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과 이성 등 인간성의 총체적인 상실과 파괴라는 점에서 동시대에 살고 있는 전 인류, 또한 더 나아가 후세에 대한 범죄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기구에서 인류에 대한 범죄에 대해 시효와 국경 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구림마을에서 일어난 사건 또한 이런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결코 일회성 작업이거나 명쾌한 종점이 있는 작업이 절대 아니다. 제주4·3사건의 경우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었지만 진상규명 운동은 그 이후에도 현재까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확정은 단지 하나의 시작일 뿐인 것이다.

진상규명 운동은 결코 순조로운 길이 아니다. 이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나아가지 않으면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구림마을 사람들도 이해하듯이 이 과정은 후대에 걸쳐 꾸준히 지속되어야 할 작업인 것이다. 꾸준히 지속될 때만이 현재의 피해자 중심 및 상황과 개요 중심의 기록이라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온전한 '진실' 규명의 기록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하 박스>

* 필자인 김헌준 씨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정치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학위 논문으로 「한국(제주4·3사건)과 남아공의 진상규명 운동 과정과 진실위원회 비교연구」를 준비중이며 현재 자료조사차 제주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민간인 학살의 과거사 문제를 한나 아렌트 등의 정치사상과 연결시켜 살펴보는 그의 연구는 많은 관심을 끌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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