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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위기 논쟁, "위기다"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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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동운동 위기 논쟁, "위기다" "아니다"

[토론회]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 vs "새로운 모색기일뿐"

"어디까지 이야기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외부에서 악용될 수 있고, 노동운동세력간 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태에서 내부에서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절박성에 기초해 나왔다. 보다 공개하고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정길오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박승옥, "비정규, 이주노동자 외면하는 노동운동은 썩은 노동운동"**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전태일 열사 34주기를 맞아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한국 노동운동,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연 토론회는 예상대로 치열한 논쟁의 장이 됐다.

1부 '전태일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인가'의 주발제자는 '왕자병 걸린 노동운동' 이란 글로 10년만에 노동운동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박승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그는 이날 발제를 통해서도 현재 노동운동에 대해 고강도 비판을 쏟아냈다.

박 연구원은 먼저 전태일열사 정신의 현재적 의미를 ▲나보다 더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 ▲ 양심과 사회정의에 대한 각성 ▲성찰과 학습 ▲결단과 실천으로 규정한 뒤, "전태일 정신을 한국 노동운동이 계승하고자 한다면 비정규직 문제, 연소여성노동자문제, 이주노동자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끌어안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또 "자본이나 정부의 주장처럼 대기업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임금이 고임금은 아니지만 정작 노동운동의 정신이 죽어가고 있는 게 문제"라며 "자신보다 훨씬 더 어려운 비정규직노동자, 납품업체 노동자, 항청노동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의 정신이 없는 노동운동은 조직이기주의만 남는 썩은 노동운동"이라고 혹독히 비판했다.

그는 이어 "산별노조 건설을 외치면서 왜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조직화는 소홀히 하는지, 비정규직의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을 왜 우선하지 않는지 심각하게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채 졸고 있는 노동운동"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끝으로 "오늘날 전태일은 노동운동은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한다"며 "심각한 자기반성과 통절한 인간선언이 절실하다"고 발제를 맺었다.

***박석운, "노조, 힘이 강하다고 착각하지 말라"**

토론자로 나선 전국민중연대 박석운 집행위원장은 노동운동이 보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를 포괄해야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건설 전략과 관련, "산별노조 건설 이후 비정규직을 포괄하겠다는 생각은 노동운동이 백전백패하는 지름길"이라며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 간판을 바꾸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미조직 비정규직을 산별로 조직하는 것이 바로 산별노조 건설"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해 "조직 노동자들이 허심탄회하게 다 털어부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시기처럼 전국적인 부흥이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조직 형식주의와 당위론에 그치고 만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왕자병'을 언급하며 "노동운동이 매우 힘이 강하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너무 한심하다"며 "양대노총이 총파업을 한다지만 비정규 개악법이 과연 저지될 수 있는가.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총공세에 버틸 여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의 힘은 강하지만 잠재력에 머물고 있다"며 "잠재력과 현실적 힘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잠재력을 실천적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에 대한 토론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그러면서도 박승옥 연구원의 문제제기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했다.

그는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이나 위기감이 절실한 탓이라고 보지만, 노동우동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게 극적인 과장이나 과도한 표현으로 치닫는 경향성이 보인다"며 "보수언론들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발제자의 주장을 이용, 노동운동을 매도하고, 도덕성을 폄하하거나 적대감을 표현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언론에 대고 외부에서 노조를 비판하는 방식보다는 노동내부적 시각과 언어로 노동운동의 혁신을 촉구하는 내재적 비판 방법론을 사용하는 신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노총, "대기업노조 더이상 사회적 약자 아니다"**

2부 '한국 노동운동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에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가는 책임있는 주체 뿐만 아니라 노동 외부 교수진과 학자들이 나와 치열한 격론을 벌였다.

한국노총 정길오 정책본부장은 사회자로부터 "위험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고백"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노동내부의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정 본부장은 '노동조합운동의 현 단계의 고민'이란 제하의 발제문을 통해 "고임금 대기업 사업장의 파업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현실에서 노동운동 진영은 야간수당까지 포함된 임금, 해당기업의 지불능력, 저하되는 노동소득분배율을 제시하며 항변했지만, 다른 노동자와 국민들로부터 얼마만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단지 정권과 자본 그리고 보수언론의 노동에 대한 왜곡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적지 않은 대중들이 더 나은 조건을 가진 대기업 집단의 연속되는 파업에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는 대기업 노조들을 더 이상 사회적 약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들 자신은 노조 조합원보다 사회적 약자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런 인식이 완전히 틀렸다고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노조의 전투적 방식은 대중의 외면을 가져오는 원인"이라며 "대안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비타협적인 총파업은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야기하는 주범으로 인식돼 국민일반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표면상 전투적이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실리를 추구하는 기업별 노조에 기초한 대기업 중심의 투쟁방식은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위기 아니다. 과도기일 뿐"**

반면 민주노총 오길성 부위원장은 현재 상황을 '위기'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다.

오 부위원장은 "지금은 위기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하는 과도기"라며 "위기라면 노조가 매번 수세적·방어적 투쟁에 머무를 텐데, 민주노총은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을 준비하고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기획국장도 "노동운동은 전진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비정규문제나 사회적 공공성을 끌어안고 있는 부분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이어 "위기냐 아니냐는 단지 관점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조돈문 카톨릭대 교수도 "위기론은 90년도 초반에도 있었다. 민주노조가 시작된 이래 한번도 편할 날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물론 내부에서보면 아쉽고 안타까운 문제도 있지만, 이것을 굳이 위기라고 규정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위기냐 아니냐란 문제설정보다 내부자는 긴장감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외부자는 위기라는 말 대신, 내부 활동가들을 칭찬하고 인적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최근 논쟁을 보면 역할이 뒤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기라고 주장할 때 정확한 계량화된 지표를 가지고 주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태주, "노조간부,현장이 얼마나 붕괴되고 있는지 모른다"**

반면에 한국노동교육원 박태주 교수는 노동운동 주체들이 보다 치열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민주노총에서 위기가 아닌 과도기라고 주장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그대로 민주노총이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돌파가 가능한지 의문이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현장이 얼마나 붕괴되고 있는지 간부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 내부의 양극화와 그에 따른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뼈저리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1월 중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과연 힘있는 대공장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문제를 자기 문제로 끌어안고 나서줄 것인지 의문"이라며 "96년말 파견법 도입시 노동법개악투쟁과 같은 분위기와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노동운동 위기 타개책으로 "노동운동은 기업의 울타리, 조합주의와 경제주의를 넘어서 사회적 대타협, 다양한 관심을 끌어안는 산별노조 건설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와 자본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같은 근본적 요구에 당황하고 있다"며 "어차피 들어주지 못할 바에야 완전히 노동계를 배제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근본주의적 요구가 아닌 정부와 자본의 움직임을 면밀히 파악하면서 실현 가능한 목표와 전략을 도출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허영구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은 그러나 "물적 기반이 붕괴된 상황에서 섣부른 사회적 대타협에 나설 경우 노조 자체가 소멸되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사회적 대타협의 전제 조건은 노동이 자본과 정부가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힘을 구축하고 있을 때"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일본 노동운동은 바로 사회적 대타협을 하다가 결국 소멸의 길에 들어섰다"며 "현장의 정치의식을 공유하고, 투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부의 정치력과 교섭력만 노조의 힘이 아니다"라며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단결된 힘과 그것을 추동해 낼 수 있는 현장 활동가들의 역량 강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현장 활동가의 헌신성 강화"**

현장 활동가들이 보다 헌신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호규 금속연맹 사무처장은 "현장은 큰 위기에 빠져 있다"고 단언했다. 김 처장은 "민주노조 중 가장 힘이 세다는 현대자동차 노조도 예전과 같은 정치의식과 사회적 연대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정풍운동을 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김 처장은 "현장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은 힘들다. 시급한 것은 현장을 복원하는 일"이라며 "전태일 열사가 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것처럼 노조간부들과 현장활동가들은 붕괴되는 현장의 심각성을 각인하고 보다 철저한 헌신적 활동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시간 남짓 동안 토론 참가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에서 향후 노동운동의 합의점 도출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노동운동 핵심주체들이 공개석상에서 노동 내부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나아가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한 최초의 자리였다는 점에서 이날 토론회의 의의는 컸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노동운동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이같은 토론은 계속 필요하다는 게 참석자들의 중론이었다.

이날 토론은 박승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최상림 전국여성노조위원장, 오길성 민주노총 부위원장,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김형기 경북대 교수, 김호규 금속연맹 사무처장, 박태주 한국노동연구원 교수,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국장, 조돈문 카톨릭대 교수, 허영구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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