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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진정 박승옥님 주장을 '저주의 굿판'으로 보십니까"

[황광우씨 반론에 대한 재반론] "노동자간 빈부격차 직시해야"

박승옥 민주화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의 현 노동운동 비판글 <왕자병에 걸린 노동운동, 이대로 가면 죽는다>에 대해 황광우 민주노동당 전 중앙연수원장이 지난 6일 반론을 제기한 데 대해, 류동기 교사가 재반론을 제기했다.

류동기 교사는 노동운동가는 아니나, 평소 한 노동자 입장에서 느껴온 노동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박승옥 연구원의 문제제기에 전폭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글에 대한 재반론이 있을 경우에도 이를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정말 박승옥님 주장을 '저주의 굿판'으로 보십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 사는 중학교 교사 류동기입니다.

프레시안에 <'왕자병에 걸린 노동운동'에 대한 반론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이 있지만 용기가 없어 시작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으로 잘되기를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노동 운동에 대한 박승옥님의 글은 솔직히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잘 풀어 써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가 이제는 뒤를 돌아보고 잠시 숨을 고르면서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방향에 대해 성찰을 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조 활동에 대해 이제는 예전처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 않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언론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싶으시겠지만 언론은 예전보다 더 자유롭게 말을 하게 되었고, 몇몇 거대언론에 의해 통제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감히 말할 정도로 분위기는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언론은 노동 현장과 노동운동을 이전보다 더 상세히 잘 알려주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무조건 언론 탓만을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람들의 생각이 예전과 달리 많이 바뀌었습니다. 자본의 맛도 보았고, 교육의 수준도 높아졌고, 많은 부분에서 민주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민주주의를 거대 언론, 더 많이 가지려는 자본가들, 그리고 권력가들이 적극적으로 악용하기에, 황광우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우리의 글이 "누군가의 노리개감이 된다"는 주장에 저도 공감을 합니다.

어째든 사람들이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방법보다는 좀 더 민주적인 방법으로 노동운동이 전개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실의 다양한 조건이 변한만큼 우리는 현재의 노동운동에 대해 천천히 생각을 하고 좀 더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황광우님이 주장하신 내용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다소 감정적으로 글을 쓰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감정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노동운동을 시작하는 동기가 되고, 모든 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서로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타개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할 때는 감정보다는 차가운 이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누군가 자신과 다른 생각으로 말을 할 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모습을 비판하는 내용일 때일수록 더욱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박승옥님의 글에서 논란의 중심은 황광우님이 지적하신 대로 폭력적 시위와 전투적 조합주의 그리고 한국 사회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찰입니다. 그러나 황광우님의 글은 그 논란을 불러일으킨 본질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이성적 반론을 못하시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만 "노동운동을 씹어 먹지 못하여 분해하는 조중동의 언어다. 황제병이나 왕자병은 노무현이나 유시민의 형태 분석에 적합한 언어가 아닌가?"라는 말씀을 하시니, 이는 중요 논점을 비켜가고 상대의 허점이 될 만한 것을 비난하는 조중동의 언어를 몸소 실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노총의 조직률을 어설프게 전경련에 빗대어 표현한 것은 결국 현재 노조의 모습이 전경련의 모습과 같다고 시인하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전경련은 최상위 자본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대표인 척 하지만 실은 대자본가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단체입니다. 그들의 주장으로 인해 부도를 맞이하거나 강제 합병당하는 중소기업이 많고, 은근슬쩍 편승한 일부 중소자본가들은 덕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 단체가 기업체 전체의 대표성이 있다고 전제를 하고 그것과 비교할 때 민주노총의 12%는 더욱더 대표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노총도 결국은 최상위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마치 조직되지 못한 다른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전경련이 닮은꼴입니다. 아직 풀지 못한 비정규직문제와 외국인노동자 문제에 대해 잘 생각해보면, 결국 자신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자본가가 상대적 약자인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의 고혈 짜낸 돈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기 때문입니다. 즉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노동자와 중소자본가 희생으로 배가 불러가는 전경련처럼, 상대적 약자의 고혈이 민주노총의 배를 불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왜 따끔하게 충고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질타하는 것도 역시 빈약한 논리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감상적 대응에 지나지 않으며 본질적인 논점인 현재의 노동운동 모습에 대해서는 벗어난 어설픈 자기변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황광우님은 또한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현재의 민주노동조합운동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노력을 해서 만들었는데 왜 박승옥님이'때 늦은 개화, 때 이른 조락'을 이야기하냐고 질타를 하십니다. 또한 박승옥님의 글에 대해서 "우울증에 빠져드는 낭만적 지식인의 병적 심리이외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노동운동은 현실을 그대로 직시한 후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바르게 진단하고, 무엇을 준비할지 알게 되고, 어떻게 대응하고, 실천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모습을 바꿉니다. 20년 전 노동현실과 10년 전 노동현실, 1년 전 노동현실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전에 이루어온 과거의 성공에만 집착하여 현재를 보지 못하고, 아니, 안 보려고 하고, 이미 성공했던 방법들이 계속해서 성공할 것이라는 정말 무사안일적인 생각으로 현실의 많은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재를 분석하지 않고는 미래를 준비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을,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으며 박승옥님에게 '때 늦은 개화, 때 이른 조락'이라는 저주의 굿판을 접으라고 황광우님이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박승옥님이 말씀하신 것이 저주의 굿판입니까? 아니면 현재 노동운동에 대한 우려입니까? 그리고 무엇으로 '향후 20년 한국 사회를 합리적으로 바꾸어나갈 운동'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바뀐 현실도 직시하지 못하면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또한 노동현실에 대한 황광우님의 인식 정도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현실 인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기업 노동자의 연봉에서 빠지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사는 것이 팍팍하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것보다 더 적은 연봉으로 4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아예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황광우님이 주장하신 "70만의 힘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무능을 고민할 때"라는 것은 최소한 그 70만은 어느 정도 먹고 살아간다는 전제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황광우님의 고민인 '70만의 무능'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꿀지 모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같은 노동자라도 많이 받는 사람과 적게 받는 사람들과의 경제적 차이가 줄어야 한다는 것이지, 더욱 늘어나는 방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노동운동의 모습은 70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파업을 벌이는 것이지 다수의 노동자를 위해 파업을 벌이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 박승옥님이 대표성에 의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런 노동현장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70만의 힘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무능만을 고민하는 것은 배부른 노동자의 자기기만입니다.

또한 벌써 폐기되어야할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은 결국 자본가의 권력을 자신들이 대신 차지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의도가 없다면 20년 전의 현실 상황을 가지고 대안을 제시한 책으로 현재의 상황에 밀어붙이는 어리석음처럼 아직도 과거의 상황을 현재로 인식하고 그 대안을 절대 진리로 믿고 나아가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현재는 분명 노동자 사이에서도 빈부의 차이가 심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2000년 한국 정부 재정의 공룡화를 말씀하시면서 정부가 서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황광우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00조원의 거대한 부를 가져간 정부가 서민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현실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지식인이라는 분들이 왜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인지, 정말 답답하다"라고 폭발적인 감정으로 호소를 합니다. 어설픈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얼마 전 한 외국일간지는 한국의 복지 모습에 대해서 1만불인 사람들이 2만불의 복지를 실행하려고 한다고 뼈있는 지적을 했습니다. 황광우님이 요구하시는 그 많은 복지들이 과연 누구의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광우님은 투사적인 모습으로 "노동운동은 정부로 하여금 서민들의 생활비를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생활비 인하 투쟁에 앞장서는 노동운동에 전국민이 환영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황광우님의 주장은 다음의 글을 보면 모순이 생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40대의 대기업 노동자들이 받는 연봉 3-4000만원이 많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보면 4인 가구가 한 달 살기 팍팍한 돈이다. 왜냐? 너무 많은 돈을 뜯기기 때문이다"라며 많은 세금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하지만 황광우님이 원하시는 복지를 실행하려면 아마도 우리가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합니다. 3-4000만원을 받는 노동자에게 현재의 세금도 많아 힘들다고 말씀하시는데 월급을 그만큼 받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서 몇 %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보다 적게 받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현실이 고통스럽겠습니까? 민주노총이 파업으로 올린 임금만큼 임금을 올릴 수 있는 노동자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과연 황광우님이 주장처럼 '전국민이 환영의 박수'를 보내겠습니까? 민주노동당의 많은 복지 공약에 대해서 상당수의 국민들과 심지어 같은 노동자들조차도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복지와 세금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지는 못하십니까?

황광우님의 말씀처럼 물가는 너무나 살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족의 삶은 정말 최소의 생활만 가능한 정도라는 것도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해답이 과연 정부에게 모든 것을 떠미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게 떠미는 것이 결국 우리가 부담하게 된다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황광우님의 연봉 중에서 황광우님이 주장한 대로 정부에게 우리의 사회복지비용을 모두 맡기는 대신 현재 월급에서 2-300만원을 더 땐다고 하면 찬성하시겠습니까? 설혹 황광우님은 찬성하신다고 하실지라도 다른 70만 노동자가 찬성을 하겠습니까? 그러면 가진 사람들에게 부유세를 부과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씀하시겠지만 그러면 그 사람들이 이곳을 버리고 가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현재 계속 이야기되는 외화반출 사건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의 약진과 더불어 불안을 느낀 자본가들이 자신의 재산을 외국으로 빼돌리고 있는 현실의 반증입니다. 그렇다고 1945년 북한이 지주들을 죽이고 토지를 강제로 몰수 하던 것처럼 자본가들의 재산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미워했던 권력의 횡포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다시한번 가진 사람들에게 저지르자는 것인데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을 빌미로 다른 나라의 간섭과 혼란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부유세라는 것이 정의로운 법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폭력적인 방법으로 강탈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다수의 폭력일 뿐입니다.

경제성장에 맞는 복지가 가장 바람직한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1만불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면 1만불의 복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그 소득의 차이가 최소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연대가 됩니다. 그래서 노동자 사이의 정규직-비정규직과 같은 계급을 없애자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고의 틀을 바꾸어 '긍정과 설득, 성찰과 포용과 절약의 새로운 방식을 실천'하고 나누자는 것입니다.

황광우님도 자본주의 본질이 폭력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런 폭력을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행한다는 것은 결국 절대로 자본주의 논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자본주의는 자신의 부를 재생산하기 위해서 끝없는 경제발전과 성장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사람들의 관계를 고립시키고 고독하고 외롭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빈 가슴에 상품이라는 것을 채우도록 강요를 하고 그 속에 위안을 찾도록 유도합니다. 상품을 손에 넣는 순간은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허한 가슴을 채우기 위해서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상품을 구입하고 얼마 못가 버리고, 새로 구입하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 미래에 갚으라고 신용카드를 지워주고 무한정 상품을 사게 한 후 노동을 영원히 자본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순간부터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참된 노동은 아닙니다.

참된 노동운동의 목표는 노동해방이지 임금투쟁이 아닙니다. 노동해방을 노동을 하지 않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노동해방인데, 현대인들은 여가를 통해 자신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본말이 전도된 노동 현실입니다. 결국 현재의 대안으로는 아무리 투쟁을 하고 자본가와 싸우더라도 결국에는 노동해방을 얻을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여유를 가지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원하고, 더 많은 돈을 가지려니, 더 많은 권력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폭력적 투쟁 내지는, 다른 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계급을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형태의 착취에 해당하는 폭력으로 돈을 얻어내는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노동과 노동운동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박승옥님의 생태주의는 우리 안에 숨은 자본에 의해 끝없이 자극되는 욕망으로 인해 얼룩진 우리의 모습을 깨닫고, 그 자본의 논리를 깨어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제 노동운동은 경제발전, 성장의 모델을 폐기해야 한다. 더 많은 임금, 더 많은 여가, 더 많은 권력을 지향하는 노동운동은 결코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대안이 될 수도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생태주의는 황광우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쏙독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나, 밤의 연못가에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하는 고민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논리가 만들어 놓은 생명 경시, 파괴된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생태주의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로 박승옥님의 대안을 "밑 없는 독"이니 "무소유로 살아가는 법정 스님에게나 어울리는, 아직은 우리 서민에게 어울리지 않는 <꿈속의 독>일 따름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자신이 정말로 자본주의에 의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나 나올 만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의미로 말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생태적 대안을 모색하는 분이 이렇게 사고가 단순할 수 있을까"라고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노동해방의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시작을 해야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사람들이에게 의지하여 그들이 주는 떡고물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받아먹을 수 있을까? 그들이 남긴 떡고물 한 덩어리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잘 나눌까? 그들이 떡 만드는 과정에 어떻게 하면 참여할까? 고민하는 것이 노동해방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으로는 절대로 노동해방은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접 떡을 만들고 그 떡을 고루 나누고 그 나눈 떡으로 배를 채우는 모든 과정이 바로 노동해방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들과 정당하게 경쟁을 해야 합니다. 경쟁을 자본주의 논리로만 생각하여 버리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기업을 만들고, 노동자들에 의해 운영되어,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야 합니다. 자본가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본가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자본가와는 달라야 합니다. 땀이 가지는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노동자입니다. 남의 노동으로 배를 채우는 자본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본가의 기업과 노동자의 기업이 정당한 경쟁을 통해 노동자의 자본을 축적해야 합니다. 자본이 악이라고 하여 자본을 버리는 것은 자본과 자본주의를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자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고 존재해야만 합니다. 자본이 있어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노동해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자본을 모으고 그 자본을 자연과 인간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낭비를 위한 자본의 활용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자본의 활용이어야 합니다. 자본가를 적으로 상정하는 이분법이 아니라 자본가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여 노동해방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짧은 소견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옹호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닙니다. 좀 더 냉철하게 현실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쓴 것입니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돈을 지배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는 사회,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회복되는 사회, 소비가 우리의 고독을 채우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랑이 우리의 가슴을 채우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불쑥 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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