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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는 갔지만, 저항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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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열사는 갔지만, 저항은 계속된다"

[현장] 비정규직 이용석 열사 1주기, 서울 자전거 선전전

10월26일. 이날은 25년전 박정희대통령이 살해된 날이기도 하나,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원 이용석씨가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며 분신한지 꼭 1주기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씨의 분신은 그동안 가려져왔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고, 작년 하반기 비정규직 철폐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노동계에서는 그를 '열사'로 부른다.

이날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연맹(위원장 이호동)은 이용석 열사가 분신한 종묘공원에서 고인을 기리며 11월 총파업의 승리를 다짐하는 조촐한 '열사정신계승 공동실천주간 선포식'이 있었다.

***"정부, 이용석 열사의 외침을 공허한 메아리로 만들어"**

정신계승사업회 김태진 집행위원장(공공연맹 부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정부는 비정규직 천국을 만들려고 한다. 처음부터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결국 이용석 열사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총파업을 반드시 성사시켜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호소했다.

특수고용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학습지 노조의 정종태 재능교육 위원장은 격려사에서 "어느 누구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용석 열사의 뜻을 기려 힘을 모아가자"고 말했다. 민주노총 이혜선 부위원장도 "이용석 열사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남은 사람들이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11월 총파업 투쟁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는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성사시키자"며 총파업 의지를 다졌다.

민주노동당 이병현 노동위원장, 1년째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명동성당농성단' 아누와르 대표, 1백72일째 장기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정오교통 방남철 위원장 등은 "지금 노동자는 떨어질래야 더 떨어질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일치된 투쟁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선포식은 여느 집회와 달리 대형 음향시설이나, 수많은 군중은 없었다. 대신 1백명 남짓 소수의 인원과 노랑·빨강·녹색 등 각양각색의 풍선들과 자전거가 자리했다. 행사를 준비한 공공연맹 측이 ‘열사정신계승주간’ 첫날 행사로 자전거 선전전을 기획했기 때문이다.

코스는 이용석 열사가 분신한 종묘공원에서 출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별관, 국회 앞을 거쳐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 까지 거리다. 이 코스는 지난해 이용석 열사 분신과 그의 분신을 지켜본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했던 경로다.

***쉽지 않은 출발**

자전거 행진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열사정신 계승! 비정규직 철폐!'가 적힌 오색 풍선을 하늘로 날리고 1백여명의 자전거 선전전 참가자들이 각자 자전거를 불하 받았지만, 정작 도로로 나갈수가 없었다. 경찰들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주최측은 행진이 아닌 자전거 이동이기 때문에 막을 근거가 없다고 말해도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정치적 주의주장이 담긴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가 경찰의 주장이있다. 경찰의 바리케이트에 갖혀 30여분간 실랑이 끝에 경찰은 4대씩 10분 간격으로 길을 터주었다. 이를 지켜본 한 50대 시민은 "교통을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경찰이 너무 고압적으로 행동한다"며 혀를 찼다. 그 사이 학생을 가장한 경찰이 대열에 숨어있다가 신분이 발각되는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옥신각신끝에 오후3시가 조금 지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서울 대로를 자전거로 질주하는 것은 모두 처음인 듯, 약간은 상기된 모습이었다. 조금 전의 경찰과의 갈등은 깨끗이 잊은 모습이다. 때아닌 자전거 행렬에 길에 서 있는 시민들이나, 차에 탄 시민들도 신기해 하는 표정이다. 간혹 자전거에 올라탄 기자를 보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 "목적지가 어디냐?"라고 호기심 섞인 질문을 건내기도 했다.

***이주노동자 '나렌'**

옆을 지나는 한 참가자에게 말을 붙였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였다. 이름은 나렌(36). 그는 안산에서 10년동안 노동을 했고, 현재는 명동성당 농성당 투쟁단에서 근 1년째 '강제추방저지와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해 투쟁 중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서울대로를 마음껏 질주하는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를 통해 이전 이주노동자 관련 취재 당시 만났던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4월 강제출국된 명동성당 농성당 대표 샤말 타파씨는 네팔에서도 노동운동 중이라고 했다. 샤말 전 대표는 네팔에서 민주노총과 유사한 노조인 'GFOND'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또 샤말 대표 강제출국을 규탄하며 임신 중에도 수십일동안 단식농성을 감행한 라디카씨는 이번 달 해산하고 지금은 지방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나렌씨는 말했다.

나렌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1차 집결지인 서울역사박물관에 다달았다. 아직 시작인지라 지쳐보이는 기색은 없다. 5분 휴식후 다시 출발.

***비정규노조대표자, "이제 시작이다. 첫술에 배부르겠나"**

이번에 류재운 예술비정규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지난 9월 일주일간 열린우리당 당의장실 점거농성의 주역이다. 계량한복 차림에 긴머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힘차게 패달을 밟고 있었다.

"총파업 준비한다고 바쁘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류 위원장은 "뭐 항상 그렇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내심 이번 총파업 투쟁 준비가 비정규직 노조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었던 터라, 구체적인 사업을 물었다. 그는 즉답 대신 "비정규노조대표자들이 아직 운동경험이 적고, 나이도 어려서 조직 사업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 일을 많이 벌이고 있지 못하다"고 답했다. 관련해서 민주노총 총연맹과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는 현장분위기에 대해서는 "비정규직은 스스로 주체로 서기보다는 정규직에 의존하려는 분위기가 있고,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을 다소 귀찮아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시작이다. 한걸음한걸음 나가야 한다. 첫술에 배부르겠나"라며 과거보다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자전거 행렬은 서대문 사거리를 지나 공덕 교차로에 이르렀다. 몇 차례의 오르막길 때문인지 몇몇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흘렀다. 주최측이 나눠준 음료수를 몇 모금 마시고 담배를 피는 사람들도 있다. 다소 힘들어 보이는 김태진 집행위원장에게 말을 건넸다.

노조 간부들은 현장 노동자 만큼 고되다. 수많은 문건을 읽고, 정리하고, 작성해야하고, 각종 사업들을 차질없이 준비하려면 야근을 밥먹듯 한다. 사실상 노조 간부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자기만의 시간은 거의 챙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운동 평소에 하나"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하죠. 숨쉬기 운동”라며 농담으로 받아친다. 사실 그에게는 운동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에게 이용석 열사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이용석 열사는 그동안 부각이 안되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다"며 "공공부문 비정규 투쟁을 3년은 앞당겼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 앞 두개의 농성단, "그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다"**

서강대교를 지나 여의도에 진입했다.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전국교직원노조(위원장 원영만)와 장애인이동권연대(대표 박경석) 사람들과 약식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각각 사립학교법과 장애인이동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들 농성단 대표의 간략한 정치발언이 있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는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투쟁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버스를 타게 해달라는 요구를 위해 차가운 길바닥에 자리를 깔았다"며 "정부는 저상버스 도입을 '권고'한다는 입장이고, 이동권연대는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장애인 복지시설인 정립회관 대책위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21C에도 민주화 투쟁은 있다. 정립회관 노조원과 힘없는 장애인들이 회관 민주적 운영을 주장하며 힘센 장애인들과 수백일째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 윤희찬 조직국장은 "사립학교법은 지나치게 사학재단을 감싸고 있다"며 "D 대학은 이사장이 수백억을 횡령했지만,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학재단이 포탈한 재산세만 제대로 거두면, 굳이 민노당처럼 부유세를 신설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전교조와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은 사뭇 자신들의 투쟁 '비정규직 차별철폐'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다들 진지하게 경청한다. 구권서 시설노조 위원장은 "장애인이나, 전교조 선생님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힘은 없고, 소외된 사람들이지만, 누구보다 정의롭고 떳떳한 존재라는 점에서 같다"라며 "같이 할 수 있을 때는 힘있게 연대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성원하는 관계가 되야 한다"고 말했다.

***도착, 차별이 있는 곳에 저항은 있다**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바람도 한결 차가워졌다. 최종 목적지는 이용석 열사가 근무하던 영등포에 위치한 근로복지공단. 지휘 차량의 안내방송에 따라 힘있게 패달을 모두 밟았다. 경찰 순찰차가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호위(?)해주기도 했다.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어보였다. 지난해 10월26일 이용석 열사가 분신해 중태에 빠져 병원에 긴급 후송되고, 남겨진 사람들은 여기까지 와서 울분을 터뜨렸다.

공공연맹 이상훈 미조직비정규실장은 "검게 타 들어간 이용석 열사를 가슴에 묻고 처절하게 싸우던 작년 10월26일 밤을 기억하는가"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 한상익 부위원장은 "이용석 열사의 뜻을 제대로 계승했는지 자문해 보면 자괴감이 든다"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힘있게 연대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한 부위원장은 이어 "앞으로 10년이 걸릴 지 20년이 걸릴지라도 이용석 열사의 깊은 뜻을 헤아리며 차별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힘있게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위원장의 반성적 결의는 3시간에 걸친 자전거 여행의 피로감에 다소 젖은 참가자들의 의기를 다시한 번 되살렸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앞 정리집회를 끝으로 이날 자전거 서울 선전전을 마무리했다. 저녁 도시락을 먹고 다시 오후 7시무렵부터는 열사정신계승 문화제로 이어졌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지나, 차별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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