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발언이 잇따른 노동자의 자살과 분신으로 냉랭해진 노동정국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사진1>영정사진
***노 대통령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이와 같은 발언을 하며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지난 29일 3부 장관 담화문이 자신의 이런 뜻을 담지 못했다며 장관들을 심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이 발언을 두고 노동계는 "적어도 노동자들이 왜 이렇게 줄이어 분신하고 목매달아 항거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읽기 어렵다"라며 '충격을 넘어 절망'이라는 반응이다.
***그들은 '타도'가 아니라 '호소'를 위해 목숨을 던진 것이다**
최근 노동자들의 분신은 과거 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노동자, 학생들의 분신과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과거 분신을 통해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이들이 당시 대통령들에게 '호소' 따위는 하지 않았다. '타도'해야할 대상에게는 어떠한 권위도 정당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항거에는 현실의 모순에 대한 '분노'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일궈내기 위한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분신사태를 보면 이들에게 대통령은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호소'의 대상이다. 지난 대선 TV광고를 장식했던 전경들의 방패 앞에 홀홀 단신으로 맞서 있는 '인권 변호사'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의 이미지에 대한 막연한 희망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원테크 이해남 금속노조 지회장은 유서를 통해 "대통령께서 예전에 변호사 시절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셨던 때도 있었지요?"라며 "저희 세원테크 사태와 관련해 몇 차례 청와대 신문고에 진정을 했지만 여지껏 묵묵부답이군요. 제가 마지막 희생자가 돼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이용석 비정규직노조 광주본부장은 "대통령에게 또 한번의 근심이 되면 어쩌나 생각이 들지만, 아버지를 여윈 저에게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로써 감히 상담을 하고자 합니다"라며 시작한 편지에서 "전 공부방을 갈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평등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가르쳐 온 내가 이런 현실에 복종하여 참아왔습니다"라며 "인간대접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어찌 학생들에게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르치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님 제발 저의 고민을 들어주십이요"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이용석 본부장은 지난 6월에 작성한 이 편지를 완성도 못하고 끝내 부치지 못한 채 숨지고 말았다. 혹시라도 이 편지가 대통령에게 전달돼서 그가 답장이라도 받았으면 그가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해남 지회장과 이용석 본부장의 분신에 돌아온 대답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대답 뿐이었다.
<사진2>유서
***노 대통령과 문재인 수석의 한진중공업 인연**
처음 이 발언을 접하고 노동담당 기자로서 대통령의 발언 의도를 해석하기 위해 상당한 고민을 했다.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당시 발언 배경을 꼬치꼬치 캐묻는 등 전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해들은 바로는 노 대통령이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과 분신으로 노 대통령 및 청와대 관계자들이 상당히 당황하며 많은 고뇌를 했다고 전해진다.
민주노총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91년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이 의문사를 당했을 때 노 대통령은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자격으로 진상조사단 위원으로 활동했고, 문재인 수석은 1994년 한진중공업 노조가 LNG선상 파업을 벌일 때 파업 주도 혐의로 구속된 당시 노조 사무국장이었던 김주익 위원장의 변호인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미뤄볼 때, 노 대통령의 발언이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된다"라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즉, 노동자 몇 사람이 자살을 하고 분신을 했다고 해서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들이 또 죽음으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 하는 불행이 거듭될 수 있다. 이러한 불행이 다른 사회갈등에도 퍼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국가의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고뇌 끝에 내린 '냉철한' 발언일 수도 있다.
***사회의 무관심이 이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러나 이는 상황을 바라보는 정확한 시각이 아닐뿐더러 올바른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
우선 그들이 왜 죽음을 택했는가. 정부는 과연 이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는가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은 1백29일동안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다 끝내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 그 역시 노조 간부를 맡으며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고, 구속수감과 출감을 거듭하며 사측의 노조탄압에 맞서 싸워왔던 사람이다. 그러나 사측은 어떠한 제재를 받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본부장. 그는 공부방 교사로 자원봉사 하는 등 그 스스로가 이 땅에서 소외와 차별로 고통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임에도 자신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차별을 호소하며 노동부 앞에서 한 달여간 1인시위도 벌였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 산하기관이 아니던가.
그러나 사회는 이들에게 무관심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고자 함이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등져야 했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기자로서 부끄러운 고백을 한 가지 하겠다. 한진중 김주익 위원장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빠지겠다'는 것이었다. 이래서 기자들이 욕을 먹는 직업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1백29일간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고공농성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드는 생각은 자괴감이었다. "넉 달이 넘는 동안 난 왜 이들에게 관심을 못 가졌고, 또한 김 위원장과 똑같은 고통을 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져있었다.
<사진3> 시위
***현실이 어렵다. 그러나 아직 시신은 크레인을 못 내려오고 있다**
최근 정부가 '2만 달러 시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런 거시적 구호 속에 기층 민중들의 삶은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삶이 노곤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2만 달러'의 환상이 아니라 절망에 빠진 이 땅의 노동자와 민중, 농민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라도 안겨줄 수 있는 이른바 '지도자'들의 따뜻한 관심이다. 결코 "분신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 아니다.
"아직도 85호기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김주익 위원장의 시신과 중환자실에서 기계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이해남 지회장과 아직도 장례식을 못 치르고 있는 이용석 본부장의 주검 앞에서, 분노와 절망에 도탄하고 있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최소한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대통령이 보여야할 예의이다"라고 말한다면 나이 서른이 채 안된 기자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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