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고위 성직자들의 '보수화' 극복이 과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고위 성직자들의 '보수화' 극복이 과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30주년] DJ "한반도문제, 남북이 주도해야"

7·80년대 민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고,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 됐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 30돌을 맞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념행사를 갖고 사제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을 가졌다.

***7,80년대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정의구현사제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결성은 1974년 7월 고 지학순 원주교구 주교 구속이 발단이 됐다. 지 주교는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법살인에 대한 불같은'양심선언'으로 독재정권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구속된다. 지 주교 구속의 파장은 컸다. 평소 지 주교를 존경해온 천주교의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긴급대책 모임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두 달 뒤 1차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이들은 삼엄한 유신체제하에서도 전국 성당에서 지 주교의 석방과 인혁당 사법살인의 진상을 용감하게 설파, 박정희 유신체제의 뿌리를 밑둥채 흔들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지 주교가 석방된 이후에도 이에 그치지 않고, 이후 민중이 독재정권에 신음하고 고통받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민주화운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역사학자가 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란 글을 발제한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가 회고한 사제단의 족적은 한국의 반독재-통일운동사 그 자체였다.

"천주교 사제단은 민주화 운동 시기 사제단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행동을 보여줬다. 즉 정부에 의해 조작된 인혁당 사법살인의 실체를 밝히고, 온 언론이 재갈 물려있을 때인 80년 5월30일에는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을 밝혔으며,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사건에 대한 진상을 발표하며 호헌철폐운동을 전개해 전두환 정권의 장기집권 음모를 좌절시켰다. 또한 89년 당시 대학생 임수경씨의 방북 사건에도 '민족통일과 화합'이란 정신으로 임씨를 적극 옹호했다. 이밖에도 독재정권하에 자행된 크고 작은 부당한 행위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서 교수는 "파렴치한 독재권력을 공고히 하고 영속시키기 위해 폭압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리하여 다른 민주주의세력이 활동하기 어려울 때 강렬한 투지력으로 상대방의 공세를 정면으로 맞받아치며 위기 또는 어려움을 돌파하고 민주화운동을 전진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사제단의 역사적 역할을 높게 평가했다.

***"고위 성직자들의 보수화로 90년대이후 활동 침체"**

하지만 80년대 민주화 대투쟁기를 거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진행된 가톨릭의 노골적 '보수화'로 사제단의 대응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침체국면에 빠져들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공용득 한국외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30년 활동의 정치적 평가'라는 발표문을 통해 "가장 로마적으로 알려진 한국교회는 1970년대 이후 소수이지만 진보적인 주교들이 점차 전체적으로 보수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10년전인 1994년의 정의구현사제단 20주년 심포지움의 한 지적을 상기시키며, 이른바 "고위 성직자들의 보수화"를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공 연구원은 "이는 1980년 후반이후 한국사회의 보수화 경향과도 시기적으로 일치한다"며 "교황의 두차례 방한으로 교황청의 영향력 확대는 1980년 후반이후 주교단의 보수적 분위기를 강화하였고 교회 지도부의 대사회 발언과 사회참여를 위축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게다가 1980년 이후로 선임된 주교들의 대부분이 보수화 성향의 인사로 분류되면서, 이러한 고위 성직자들의 보수화는 가톨릭 교계의 계층적 특성(신도의 중산층화)으로 인해 교회 전체의 보수화를 가속화시키는 동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공 연구원은 결론적으로 "사제단 활동의 취약성은 교회 내부적 위계질서와 보수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이슈가 현안이 되었을 때는 전체교회의 단합된 힘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적극적 대응이 가능했으나, 이슈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것이거나 이데올로기 문제로 심화되었을 때는 강한 교회내적 반발 때문에 약세화되고 말았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이돈명, "사제단,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더 헌신해야"**

이처럼 간난신고 끝에 창립 30돌을 맞은 정의구현사제단인만큼 참석자들의 관심사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사제단 대표 문규현 신부는 개회사에서 "분단조국 십자가를 지고 온 지 30년이 됐다. 30년을 한결같은 마음, 지향으로 그리스도 정신을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들의 과거를 겸허하게 규정한 뒤, "지난 30년은 청년의 열정으로 살아왔다면, 이 순간은 지난 시간을 차분히 되돌아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며 창립 30돌 의의를 밝혔다.

함세웅 천주교사제단 고문은 "교회는 민중의 것이며 또한 교회 그 자체가 민중이어야 한다"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던 천주교 사제단은 앞으로는 남북화합과 남북통일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천주교사제단과 모든 고난과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던 이돈명 전 민변회장은 천주교 사제단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미있는 조언을 했다.

이 회장은 "좀 모자라는 듯해도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매맞고 갇혔기 때문이며, 그 중심에 천주교 사제단이 있었다"고 높게 평가하며 "그러나 천주교사제단은 지난날 고생과 땀에 연연해 해서는 안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가 가능한 미래를 위해 더욱더 헌신해야 한다"고 채찍질했다.

이 회장은 "지난 30년이 민중 서러움과 아픔을 함께 했기 때문에 의의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민중들과 더불어 사제단이 행동할 때 30년 고락이 더욱 빚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의 족적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마음으로 재출발하라는 격려 겸 독려의 소리였다.

***DJ, "한반도문제만큼은 남북이 주체적으로 풀어야"**

이날 기념행사장에는 가톨릭신자이기도 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부부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7·80년대 천주교사제단과 함께 고난을 함께 했던 김 전 대통령 역시 이날 소회가 남다른듯 싶었다.

김 전 대통령은 "천주교사제단이야말로 참되고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가난한자는 배부르게 하고, 부자는 맨손으로 돌려 보내라고 했으며, 목마른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주라고 했는데, 천주교 사제단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충실히 따랐다"고 지난 30년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노동자, 시민운동가, 종교인들이 고문당하고, 감옥가고 싸웠기 때문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만들어지는 등 아시아에서 가장 빚나는 민주국가를 이룩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향후 진로와 관련, "천주교 사제단은 민족의 통일 문제에 더욱 진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북핵문제로 일촉즉발의 위험에 한반도가 놓여있다"며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발뻗고 잘 수는 없으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지만, 한반도 문제만큼은 남과 북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며 "천주교사제단은 이 문제에 적극 동참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오후 3시부터 진행된 이날 행사는 심포지엄, 기념행사, 만찬을 끝으로 장장 6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유신시대 대표적 조작사건이었던 인혁당 관련 유족들과, 언론자유수호 운동의 물꼬를 텄던 동아투위 관계자들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또한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최초로 인지,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벽안의 시노트 신부도 참석, 당시 상황을 증언한 <현장증언: 1975년 4월9일>(빛두레 간)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