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13일 "국보법 폐지는 아직 시기상조지만 개정은 필요하다"고 국보법 폐지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나라당이 밝혔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 과거 여러 차례 국보법 폐지를 주장한 바 있어, 그의 이날 폐지 반대 발언을 놓고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 추기경, "국보법 폐지 지지 보도 잘못됐다"**
김 추기경은 이날 오전 혜화동 가톨릭대 주교관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일부 언론에서 내가 국보법 폐지를 지지한다고 보도했는데, 이것은 본인의 뜻과 달리 전달된 것"이라고 전여옥 대변인이 전했다. 진영 비서실장도 "김 추기경이 '내 뜻과 달리 전해졌다'고 말했다"고 확인했다.
김 추기경의 이같은 발언은 '국가보안법 폐지 천주교 연대'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각 정당은 민족화해와 상생을 바라는 국민요구에 호응해 국보법 폐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내일신문 등 일부 언론이 "김 추기경이 '천주교 연대'의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진보원로'와 '보수원로'가 국보법 폐지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풀이한 데 대한 반응인 셈이다.
김 추기경은 "젊은 신부들이 국보법 폐지에 힘이 돼달라고 할 때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말했고, 명단에 고문으로 넣겠다고 했을 때 빼라고 했는데 의지와는 달리 그대로 뒀다"고 말했다는 게 한나라당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한마디로 말해 '국보법 폐지'는 가톨릭내 "젊은 신부들의 의견"일뿐 자신의 생각은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이 원하는 게 남남분열 아닌가"**
김 추기경은 또 이날 "(국보법 논란으로) 나라가 분열되고 편가르기가 되는 '남남분열'이 큰 걱정"이라며 "북한이 원하는 게 남남분열이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한나라당이 전해, 김 추기경이 최근 국보법 개폐 논란을 인권 차원이 아닌'국론 분열'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냈다.
김 추기경은 또 "국보법에 대한 입장을 조만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김 추기경은 이번 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은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박 대표에게 당부했다.
김 추기경은 또 "여성이 고생하고 있다. 꿋꿋하게 나라를 화합으로 이끌어달라"며 "지금 상황은 하느님의 도움없이는 안되는 상황이다. 요즘 나라를 위해 기도를 훨씬 많이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고 박 대표를 수행한 당관계자가 전했다.
김 추기경은 이밖에 지난해 인터넷에서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됐기 때문인 듯 "요즘은 인터넷을 보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김 추기경 방문에는 박 대표외에 진영 비서실장, 전여옥 대변인, 박진-고흥길 의원이 동행했다.
***김 추기경, 여러 차례 국보법 폐지 주장**
김수환 추기경의 이같은 발언으로 한나라당은 '백만원군'의 도움을 얻은듯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김 추기경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위상을 볼 때 한나라당의 '폐지 반대'가 커다란 정당성을 얻게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작 가톨릭내에서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 추기경이 국보법 폐지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 9일 천주교연대의 성명외에도 과거에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폐지 천주교연대는 지난 9일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15 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는 국보법은 엄청난 모순이며 위선"이라면서 "17대 국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인 과제를 즉각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1999년 발족한 천주교연대는 김수환 추기경을 고문으로,함세웅·문정현 신부 등 성직자 50명,천주교인권위·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33개 단체가 참가하고 있는 천주교내 최대 단체다.
하지만 이 성명은 김 추기경 주장대로 "젊은 신부들의 의견"으로 치부한다 하더라도, 김 추기경은 이에 앞서 국보법 개폐 논란이 불붙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여러 차례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시국성명에 서명한 바 있다.
한 예로 지난 1999년 8월5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16개 시민-인권단체의 '양심수 석방과 국보법 폐지를 위한 캠페인' 행사때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고산 조계종 총무원장, 김지하 시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등 각계 원로인사 99인은 '인권선언'을 통해 "양심수와 국보법 문제의 해결은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 존중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라며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등은 국보법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추기경 등 각계인사 1만3천6백10명은 또 김대중정부 출범 3주년을 맞은 지난 2001년 2월21일 서울 중구 성공회 대성당에서 '개혁쟁취를 위한 1만인 시국선언'을 갖고 부패방지법-인권위원회법 제정과 국보법 폐지 등 3대 개혁입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었다.
이날 시국선언에는 김 추기경을 비롯한 김중배 참여연대 공동대표, 단병호 민주노총위원장 등 1백명여명이 직접 참석했었다.
이같은 김 추기경의 과거 전력을 볼 때 김 추기경의 이날 '국보법 폐지 반대' 입장 표명은 '인권' 차원이 아닌 '국론분열' 우려 차원에서 제기된 것으로도 해석가능하나, 종교인이 최우선 잣대는 인권이어야 한다는 가톨릭내 반발이 만만치 않아 앞으로 가톨릭 안팎에서 적잖은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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