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전히 운송료 현실화 요구에서 협상은 벽에 가로막혀 있다. 대기업들이 교섭에도 나오지 않거나 나와서도 "모든 책임을 다 우리가 질 수는 없다"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냐"며 발뺌하고 정부는 오직 대기업을 향해서만 운송료 현실화를 촉구하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국의 항만은 컨테이너 반입이 사실상 중단되는 등 기능이 마비됐다. 주요 항만과 내륙컨테이너기지(ICD)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10%대로 떨어졌다. 조속한 협상 타결 없이는 물류 대란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화주와 화물차주를 연결하는 주선업자, 운송업체가 바라보는 이번 화물연대 파업의 원인과 해법은 무엇일까? 화물차 운전기사들과 대기업 화주들의 중간에 위치해있는 운송업체의 입장을 들어봤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 크게 만들었다"
경남권의 한 운송업체 사장 김 씨는 "이번 파업으로 여러 가지 손해가 막심하다"면서도 이번 파업을 이해한다고 했다. 또 이명박 정부의 말 바꾸기와 대기업 횡포가 이번 화물연대 파업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편 유류세 정책이 "'못 배운 기름쟁이들'은 다 나가죽으라는 얘기였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단 문제다. 지난 3월에 유류세를 전국적으로 5% 인하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뒤에 영업용 화물기사에게는 유류보조금을 감면했다. '못 배운 기름쟁이들'은 다 나가죽으란 얘기 아니냐."
화물차 운전기사들에게 지급되는 유가보조금은 ℓ당 342원까지 올랐다가 지난 3월 이후 287원으로 떨어졌다. 김 씨는 "이러니 화물차 운전자들이 열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사업용 차량의 고통이 가중되자 최근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ℓ당 1800원을 기준으로 인상분의 50%를 지원하고 유가보조금 지급 기한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이 대책에 대해서도 "우습다"고 평가했다.
"여론 안 좋아지니 바로 번복하나? 우스울 따름이다. 나는 어차피 수수료 받아서 사는 사람이니 큰 영향은 없다. 하지만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이명박에 대한 불신은 대단하다."
화물연대 파업 이후에야 한나라당과 정부, 화물연대의 협상에서 '진전된 내용'으로 등장한 표준요율제 도입에 대해서도 그는 이명박 정부의 "생색내기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노무현 정부 때 이미 다 합의됐던 것을 이명박이 집권한 뒤 부정하려다 일이 되려 커진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표준요율제 도입은 이미 2006년 합의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진행된 합의를 무시하다가 큰 화를 자초한 셈이라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었다.
"운송료 현실화 요구 묵살하며 떠넘기기만 해 온 대기업이 문제"
그는 "정부도 문제지만 대기업의 태도에도 이번 파업의 근본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상대하는 업자는 주로 중소기업인데 그들은 어디에 물건을 납품할까? 거제도에 있는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같은 곳이다. 그런데 물류비 부담은 대기업이 아니라 다 중소기업이 진다. 대기업은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중소기업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이 같은 '횡포'에 대응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김 씨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방법이 없다"며 "'내년에 입찰 없다'고 협박하면 밥줄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고유가의 부담이 모두 화물차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고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 씨는 "기름 값이 오르면 운송비가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너희가 알아서 해라'고 할 뿐"이라고 말했다.
"운송료 현실화 요구를 묵살해 온 것은 대기업이다. 그런데 운송비만 오르나? 원재료비도 다 올랐다. 약자들만 죽어나는 것이다."
"이번 파업, 운송료 현실화의 기회다"
지난 2003년의 화물연대 파업과 올해의 파업은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다. 일단 비조합원의 참여율이 5년 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더욱이 '생계형 파업'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예전처럼 날카롭지 않다.
김 씨는 "나도 이번 화물연대 파업이 생계형 파업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화물차 기사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이니 그들 사정을 뻔히 잘 알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경남에서 경기도까지 가는 비용이 2달 동안 10만~20만 원씩 올랐다"며 "이번 파업이 운송비 현실화의 기회"라고까지 말했다.
일각에서는 다단계 화물 알선구조 속에서 운송료를 떼어가는 운송업체들의 횡포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화물차 기사들 손에 가야할 운송료가 중간에서 사라지는 전근대적 물류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운송업자 전부를 매도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유령업체가 난립하는 것은 문제지만 화물차주와 회사가 직거래를 하면 당연히 차주의 이익은 늘겠지만 다른 비용도 있다. 직거래하게 되면 공장에서 화물을 옮길 때마다 일일이 화물차주와 개별 계약을 해야 하고 운송대금도 따로 지급해야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불편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