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총투표 직전인 지난 26일 세 가지 요구사항을 들어 총투표 연기를 요구했던 정 후보는 투표기간이 시작된 28일 오전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아 정책연대 확약서를 철회한다"며 "총투표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 (☞관련 기사 : 한국노총 정책연대 놓고 빅3 기싸움)
정 후보가 정책연대 대상에서 빠질 경우 한국노총 ARS 총투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 단 두 명을 놓고 치러지게 된다. 모양새가 우스워지는 것.
한국노총은 일단 "후보 기호와 명단이 확정된 지난 25일까지 정 후보가 정책연대 철회 의사를 밝힌 적이 없는 만큼 투표는 그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정 후보 측의 '빼달라'는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막강 한국노총"을 외치던 정 후보가 투표 당일 오전에 이런 결정을 통보해 온 것에 격앙된 분위기다.
정동영 '투표 연기 요구 안 받아들여줘? 그럼 난 빠질래'
정동영 후보는 이날 한국노총에 공문을 보내 "27일자 한국노총의 결정은 (대통합민주신당이) 한국노총에 요청한 것 가운데 어느 것도 반영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으로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29일 오전 11시까지 우리 측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의사 표시 없이 지난 15일 제출한 확약서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정 후보 측은 이에 앞서 지난 26일 한국노총에 보낸 공문을 통해 △반노동자적 철학과 정체성을 가진 후보가 포함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 △특정 후보의 반대로 TV토론이 무산됨으로써 조합원들이 후보들의 정책적 차이를 파악하기가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점 △특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 여부가 김경준 씨의 2차 구속기간 만료 시한인 12월 5일에 드러난다는 점 등을 명분으로 조합원 총투표 연기를 요구한 바 있다.
정 후보는 "확약서 철회에도 불구하고 한국노총의 조합원 총투표에 일방적으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참여시켜 투표하는 일이 없기를 엄중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정 후보가 이런 내용의 공문을 보내 온 것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비록 28일부터 30일까지는 집중 홍보 기간으로 정식 투표가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하나 투표 기간은 이날부터 이미 시작된 뒤였다.
"여당 지지율 낮은 것이 한국노총 때문이냐"
조합원 총투표 첫 날 정 후보로부터 이 같은 '핵폭탄'을 맞은 한국노총은 "어떻게 이토록 막무가내로 나올 수가 있냐"는 분위기다.
박영삼 한국노총 기획홍보선전본부장은 "이미 25일 다 확정된 것을 이제 와서 빼달라고 하는 것은 심히 유감"이라며 "이 같은 요구는 한국노총으로서는 인정할 수 없으며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총투표 대상에서 빼 달라"는 정 후보 측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박영삼 본부장은 "이명박 후보는 TV토론을 거부하고, 민주노동당은 정책연대에 참여하겠다며 당 대표가 그 간의 발언을 사과했다가 내부에서 논란이 되니 이를 철회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은 투표 당일에서 빼달라는 요구를 했다"며 "정치권이 각자 자신들의 유불리만을 따져서 정책연대를 훼방 놓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다"고 비난했다.
일부 한국노총 관계자들은 "결국 3명 가운데 3등을 할까봐 빠지겠다는 것 아니냐"며 "여당 지지율이 낮은 것이 과연 한국노총 때문이냐"는 강도 높은 비난까지 하고 있다.
'파투' 놓고도 정동영은 '꽃놀이패'…한국노총만 '망신살'에 '위기'
사실 정동영 후보 입장에서는 이 같은 '딴지'가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총투표 결과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대로 이명박, 이회창 후보에 이어 3위로 나오더라도 "나는 총투표에서 빠진다고 한 것"이라는 '면피'가 가능하고, 혹 총투표에서 1위가 돼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대상 후보가 되면 대선 직전 '막판 뒤집기'를 위한 분위기 몰이도 되는 등 좋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이날 한국노총에 보낸 공문은 "확약서가 철회되더라도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계속할 것이며 이미 밝힌 정책질의서 답변 내용의 실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끝난다.
문제는 한국노총이다. 비록 총투표는 예정대로 강행하겠다지만 한국노총으로서는 '망신살'이 뻗친 셈이 됐다.
1년 여 추진해 온 정책연대의 모양새가 여당 후보가 스스로 빠지겠다고 선언하면서 막판에 엉망이 된 데다가 최종 성패 역시 불투명해졌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두 후보만을 놓고 치러지는 조합원 총투표 결과에 대한 주목도 및 신뢰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장 투표를 해야 하는 조합원들의 혼란도 힘든 난관이다. 정 후보가 '정책연대 철회'를 공식화한 마당에 "투표는 정 후보를 포함해 그대로 진행된다"는 한국노총의 입장이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조합원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가 문제다.
한국노총은 29일 회의를 열어 조합원 혼란을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정 후보 측이 '투표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 법률적인 검토까지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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