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대동중공업 위원장(이석행), 상업은행 노조부위원장(이용득)이던 시절 우연히 알게 돼 '22년 우정'을 쌓아왔다는 두 사람의 대담을 <경향신문>이 13일 보도했다.
두 사람 모두 '노동운동의 위기'라는데 공감했다. 다만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달랐다. 이 위원장은 "노조 조직률 10%선마저 깨졌고, 대중성을 상실했다는 측면에서"와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이석행 위원장은 "조직률 저하나 언론을 통해 비친 노동운동의 모습 속에서 국민들이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 분명 위기임이 맞다"면서도 "조직률의 경우 정규직을 일방적으로 비정규직으로 내몰아 조직률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조합원 수는 줄었지만 대학교수, 공무원, 석·박사, 의사 등 조합원이 질적으로는 늘었다"고 말했다.
이용득 "노동운동이 언론에 '거리'를 주고 있지 않은가"
이 위기의 원인에 '교육'과 '언론'이 한 몫하고 있다는 점도 두 사람은 동의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이탈리아에 갔을 때 공항이 파업을 해 제 날짜에 출국을 못한 것을 보상해 달라 항의했더니, '이탈리아에서는 중등과정에서부터 노동조합의 파업을 가르치고 있다. 파업은 천재지변과 똑같다'고 대답했다"고 소개했다. 이용득 위원장도 "선진국에선 초등학교 고학년 과정에 노동교육이 있다"며 "우리가 공교육에서 노동과목을 넣자고 했을 때 정부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언론이 노동운동을 외면하게 된 데에는 시각차를 나타냈다. 여기서 '대중성 확보'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차가 드러난다. 이용득 위원장은 "언론이 한국의 파업현장의 부정적 면만 부각시키고 있는데, 우리가 언론에 그런 '거리'를 주고 있는 셈"이라며 "자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현재로선 우리가 파업에서 얻으려고 하는 목적은 부각되지 않고 방식만 부각되고 있다"며 "유연한 파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리한 방식이 두드러지도록 하지 말자"고 말했다.
'현대차 무분규' 파업에 대해서도 이석행 위원장은 "언론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는데, 왜들 그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다"며 "이번에 만족할만한 (회사 측) 안이 나오니까 끝난 것일 뿐이지 파업을 안 하려고 몸부림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용득 위원장은 "이 사회가 크게 의미두지 말라고 해서 안 두게 되는 건 아니잖은가"라고 반문하며 "현대차가 대표적인 노사조직이라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다 보면 여론을 의식 안 할 순 없다"고 역시 '대중성'에 비중을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용득 위원장은 '투쟁의 방식'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이용득 위원장은 "이제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은 유효하지 않은 시대"라며 "전투적 조합주의, 투쟁을 위한 투쟁은 안 된다고 이석행 위원장이 말한 바 있으나 투쟁 중심의 운동을 선호하고 강조하는 일부 세력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꼬집었다.
이용득 위원장은 이어 "혁명시대에는 사회를 바꾸는 주체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할지 모르나 지금 우리 사회에선 안 맞는다"며 "그런 측면에서 한국노총은 사회개혁적 조합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석행 "싸움다운 싸움을 제대로 해야겠다"
이석행 위원장은 "이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석행 위원장은 "파업을 위한 파업은 나도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는 노조의 고유한 무기이고 필요할 땐 반드시 써야 한다"며 "민주노총은 97년 이후 투쟁다운 투쟁을 못했다. 싸움다운 싸움을 제대로 해야겠다. 자본 및 권력과 붙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다시 "기본은 대화와 협상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라며 "협상력을 극대화시키고 높이기 위해선 전술적 수단이 필요하다. 그 전술적 수단으로 투쟁력 강화, 대중성 강화를 꼽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라며 "민주노총만 가지고는 힘들지 모르니 양대 노총이 함께 대차게 붙는 것이 어떻겠나"라고 제안했다.
다만 이용득 위원장은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평화집회도 했고, 외자유치를 하면서 한국노총은 합리적 운동을 걷는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투쟁한다고 했을 때 그 파괴력과 영향력은 훨씬 크다"고 재차 '대중성'을 강조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노조가 우리 기업 발전을 위해 뭔가 일을 해 보려고 하면 어용노조로 몰린다"며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것이 노동운동의 원칙이어야 하는데 그런 사용자의 분야고 몫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형태가 편협해지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이석행 위원장의 '투쟁 의지'는 단호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임기 내에 내가 무기징역을 살더라도 한 번 총파업을 하려고 한다"며 "위원장이 되자마자 재벌총수와의 만남을 제안하고 특사를 보내기도 했지만 일방적인 메아리에 그쳤다. 정부도 실무팀에서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투쟁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대화를 하자고 해도 안 나오고 출두 요구서가 13개나 날아오고, 나에게 110억 원의 손해배상이 걸려 있다"며 "국가가 민노총에 대해 이런 정도의 인식이라면 국가 골간을 뒤흔들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실태, 양대 노총 공동으로 조사하자" 이용득, 이석행 두 위원장은 정부와 사용자 모두 노조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행태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많은 중소기업들이 무노조의 삼성처럼 되고 싶어 한다"며 "노조가 우리 기업에서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 기업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인식"이라며 "그러나 삼성, 현대 등이 세계적 일류기업으로 올라서기까지 경영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대통령이 정권 창출 전에는 노동자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처럼 공언하지만 집권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변한다"며 "노조를 마이너 조직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없었으면 좋았을 조직이라고 인식하고 거치적거리는 상대로 생각해왔지 진정한 파트너로 여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닥친 노동현안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연대투쟁을 하자고 합의를 했다. 우선 두 위원장은 지난 7월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외주 용역화 등의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공동으로 펼치기로 합의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위한 특위가 노사정위에 만들어졌지만 사용자들이 비협조적이라 특위원장이 한달 전 사표를 냈다"며 "실태조사 특위를 구성해서 정확한 조사를 벌여야 한다. 실태조사를 위해 양노총이 따로 만들자"고 말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원청 사용자성 인정이 안돼서 용여고하가 물불 안 가리게 되는 것"이라며 "비정규직법에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사용사유제한 등의 조항이 바뀔 수 있도록 투쟁하는데 한국노총도 함께 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사용사유 제한'에 대해서는 두 위원장이 여전히 시각차를 갖고 있었다. 이석행 위원장은 "사용사유제한 제도 사유는 4가지면 된다"고 말했으나, 이용득 위원장은 "일반적으로 비정규직들은 사용사유제한만 되면 다 해결되는 것 마냥 착각한다"며 "현재 민주노총에서는 비정규직법을 철폐하라고 나오는데 그러면 원점으로 돌아가 노동계는 비정규직법 철폐, 사용자는 법 이전의 상황으로, 이렇게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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