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프레시안>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에서 보낸 공문이 왔다. 지난 19일자 기사 "한국노총 정책연대, 이명박 때문에 '삐걱'"에 대한 한나라당의 이의신청에 대한 심의 결과였다.
<프레시안>은 이 기사에서 "한국노총의 대선 정책연대가 이명박 후보로 인해 삐걱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책연대의 핵심사업이었던 대선 후보 초청 TV토론회가 이명박 후보의 불참으로 인해 불발로 끝난 것이 이유였다. 한나라당은 이 보도에 대해 지난 20일 중앙선관위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는 22일 열린 제16차 위원회의 결과 "이 기사가 공직선거법 제8조 및 인터넷선거보도 심의기준 제3조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했으므로 공정보도협조를 요청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공정보도협조'는 정정보도문이나 경고문의 게재, 경고, 주의 등에 비해 가장 낮은 조치다. <프레시안>의 이 기사가 불공정했으니 앞으로 공정하게 보도하라는 얘기다.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보도는 할 수 없다?"
심의위원회는 이 공문에서 "결정문을 받은 다음날까지 재심청구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심의기준을 읽다 보니 '재심청구가 의미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터넷선거보도 심의기준 가운데 <프레시안>이 위반했다는 제3조(공정성)는 "인터넷언론사는 선거보도를 함에 있어 그 내용과 구성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한 보도의 기준으로 기사의 내용이 사실(Fact)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들어있지 않다. 오직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지만을 기준으로 공정 여부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가조작 혐의로 김경준 씨가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는 BBK가 "나와 관련이 없다"는 이명박 후보의 말과 달리 이 후보의 것이라는 '팩트'를 확보하더라도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까? 혹 BBK의 주가조작이 이명박 후보가 직접 지시한 것이라는 물증을 발견한다면 어떨까?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이명박 후보의 주가 조작개입이 진실로 확인된다면 이는 분명 '팩트'다. 물론 이 후보에게 치명적으로 불리한 '팩트'다. 이 경우 보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보도해야 한다'이다. 대선 과정에서 언론이 후보들의 입만 보고 있어야 한다면 언론의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같은 규정은 언론의 자유로운 보도를 가로 막는 '재갈 물리기'가 될 수 있다.
주최측 "이명박 후보 때문에 토론회가 무산된 것이 맞다"
한국노총 주최의 TV토론을 거부한 것은 분명 이명박 후보다. 물론 한나라당은 '거부'가 아니라 '못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거나 불참 의사를 밝힌 것은 분명하다.
이 기사가 나간 직후 이명박 후보의 방송 스케줄을 담당하는 방송전략실 팀장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 해명은 이랬다. "그날 <CBS>에서 80분 간 잡힌 방송 스케줄이 있어서 못하게 된 것일 뿐, 거부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한국노총으로부터 TV 토론 관련 공문을 받은 것은 11월 9일이고 그 이후 확인전화 한 통 없었다"며 "의견 조율 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사실 확인도 없이 '거부'라고 기사를 작성하면 어떻하냐"고 따져 물었다.
방송전략실과 한국노총 사이에 TV 토론과 관련된 실무협의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10여 차례에 걸쳐 전재희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이 문제를 놓고 협의를 벌였다. 심지어는 지난 14일에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이명박 후보를 직접 만나 TV 토론 참가를 요청하기도 했다.
장대익 한국노총 정치기획단장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여러 경로로 토론회 참가를 요청했지만 한나라당에서 대리자 간 토론 등을 얘기해 방송사가 이는 어렵겠다는 입장을 최종 보내온 것"이라며 "이명박 후보 때문에 토론회가 무산된 것이 맞다"고 말한 것은 이런 과정 뒤에 나온 발언이었다.
생각해 보자. 두 사람에게서 저녁 식사를 초대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겹치던 터라 한 쪽의 초대에만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다른 한 쪽에는 정중하게 초대를 거절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거절'이라는 표현 외에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스케줄이 겹친다는 CBS 일정은 23일 밤 8시부터 9시 20분까지였고 한국노총과 문화방송(MBC)이 공동주최하려던 TV토론의 예정 시간은 10시였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TV 토론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22일에도 방송 당일에 와서 "BBK공방을 중심으로 한 일체의 토론에 응하지 않겠다"며 예정됐던 <MBC100분토론>에 불참을 통보했다. 방송 5시간 전이다. 이 후보는 지난 9월에도 "질문내용에 대한 사전 협의가 없고 토론 방식이 패널 형식"이라는 이유로 KBS TV토론회 참석을 거부한 바 있다.
결국 TV 토론을 무산되게 만들어 '불리한' 기사가 나가게 한 것은 이명박 후보 스스로였다. 그런데 이를 알고도 공정한 보도를 위해 '꾹' 참아야 했던 것일까?
그래서 필자는 문제의 이 기사가 '팩트'에 근거한 공정한 기사였다고 아직도 믿고 있다. 선거보도심위원회에서도 앞으로 기사의 공정성을 판단할 때는 특정후보에 대한 유ㆍ불리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팩트'에 근거한 것인가 아닌가를 따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 후보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혹시 노동 관련 현안을 놓고 TV에서 토론을 벌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은 아닌가? 이 후보의 '진심'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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