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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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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인터뷰] '옥중 단식' 진행한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지난 12일 서울 청와대 근처 청운동사무소 앞에서는 언론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기자회견 하나가 열렸다. 오는 8.15 특별사면에서 구속노동자를 비롯한 양심수들의 사면과 복권을 촉구한다는 내용으로 지난 6월 출범한 '구속노동자 석방과 사면·복권을 위한 공동행동'이 개최한 기자회견이었다.

2007년 한국, '구속노동자'라는 단어는 '빨갱이'보다 어쩌면 훨씬 시대와 동떨어진 단어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는 정반대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들어 파업 도중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된 노동자는 966명(6월 30일 기준), 수용된 이는 50여 명에 달한다. 김영삼 정부 당시 632명, 김대중 정부 당시 892명보다 오히려 많은 숫자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를 "참여정부라는 문패를 단 현 정권의 아이러니"라고 지적하며 8.15특사의 대상은 전경련이 특사명단을 작성한 재계 인사가 아닌 구속노동자와 양심수들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아이러니'의 정점에 서 있는 이가 있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1996년 이후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비판해온 김 위원장은 지난 2003년 '업무방해' 죄로 실형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집행유예 기간이던 2005년 또다시 그가 제작한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가 '삼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실형 5개월을 선고받아 2005년 2월 이후 총 3년5개월 형을 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국제앰네스티 본부에 의해 양심수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 관련 기사: "삼성은 국민 정신 지배하는 물신이 됐다")

최근 김 위원장은 15일간 옥중단식을 벌였다. 주류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는 가운데서도 그는 수감 생활 동안 꾸준히 단식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알려왔다. 이번이 벌써 여덟 번째 단식이었다. 지난 26일, 영등포교도소에서 일반면회인 자격으로 김성환 위원장을 만났다.

"갇힌 것도 억울한데 왜 또 단식이냐고?"
▲ 김성환 위원장 ⓒ손문상 화백

"(단식을 두고) 감옥에 간 것도 억울한 사람이 또 억울하게 싸우려 하냐고들 한다. 그런데 구속된 지 1년 정도가 지난 노동자들은 1번 이상씩 각자 나름대로 단식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다. 밖에서는 KTX 여승무원 사태해결을 위해 집단 단식을 한다고 하지, 이랜드 문제도 있지… 교도소 내 환경도 마찬가지다."


그간 김 위원장은 단식을 벌였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삼성 이건희 회장 구속 처벌, 삼성의 부당노동 의혹 조사 등 외부 사안들도 문제였지만 내부에서 겪게 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단식을 보름 이상 지속하게 됐던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6월 발생했던 취재 방해 문제였다.

지난 5월 무릎 수술을 받은 뒤 병상에 누워있던 김 위원장을 인터뷰하고자 <미디어오늘>의 한 기자가 그를 찾았다. 그러나 병원에 있던 교도소 담당자들은 교도소장에게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자의 면회를 거부했다. 다음날 그 기자는 사전 허가를 구한 뒤 병원을 찾았지만 여전히 '면회는 되지 않는다'는 담당자들과 2시간가량 설전을 벌인 끝에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퇴원 뒤 교도소 측에 언론 취재와 관련된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거기에서 기자의 취재를 막을 수 있는 때는 수용자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을 경우와 수용자가 기자와의 면회를 원치 않을 경우라고 나와 있었다. 둘 다 아니지 않았나.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서울지방교정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들의 조사 과정은 더 어이가 없었다. 진정을 한 나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피진정인만 조사하고 '잘못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닌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재진정서를 냈다."


이처럼 조사 과정을 지켜보던 김 위원장은 교도소 측에 직접 항의하는 뜻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결국 16일만에 소측으로부터 앞으로 교도소 담당자를 비롯해 교정청 조사관들과 협력해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는 답변을 들은 뒤 단식을 풀었다고 한다.

"비합리적인 구조, 교도관들의 노동조건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

"청원이나 민원을 기만하는 교도소의 행태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본다. 군부독재 시절의 비민주적인 관행이다. 노조가 없는 교도소에서는 한 명이 잘못해도 연관된 직책에 있는 이들이 모두 벌을 받게 된다. 상명하복 구조에 얽매여 교도관들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에서 불필요한 민원이 생기는 것이다."

수감 생활을 하며 김 위원장이 맞닥뜨렸던 교도소 내 불합리한 관행은 한둘이 아니었다. 예산이 없다며 환자들이 갇혀 있는 병사에 창문이 없는 문제, 수용자들이 담요를 털 수 있는 시간을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는 문제, 7시 이후에는 TV를 전혀 보지 못하는 문제 등 그가 보기에 아무 이유없이 '관행'이라는 이름 하나로 지속돼 오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마다 항의하며 때로는 단식을 통해 개선을 요구했던 김 위원장은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들이 교도소 내 구조가 비합리적이라는 점을 비롯해 교도관들의 노동조건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동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반말을 쓰는 교도관들 때문에 힘든 경우도 많다고 한다. 현직 교도관들이 수용자를 배려하려면 그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으면 어렵다. 교도관들은 잔업을 해도 70시간 이상을 근무해야 수당이 나온다. 피곤해 죽겠는데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꼴이다. 그런 직업 환경에서 수용자들에게 말 한 마디 제대로 나가겠나.

이런 가운데 취재 방해 같은 불합리한 처사도 나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봤다. 지난해 6월에 그랬고, 이번에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하던 짓 계속 해야지 않겄소."
▲ 지난 3월 3.1절 특사 대상에서 김성환 위원장이 제외된 뒤 노동·인권단체들은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김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하며 삼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프레시안

김 위원장을 답답하게 하는 건 소내 문제뿐만 아니었다. 편지로 다른 구속노동자들과도 교류를 지속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7월 △한미 FTA 반대 △비정규직 투쟁 지지 △장기사업장 투쟁 격려 등 세 가지 공동목표를 만들어 10여 명의 다른 구속노동자들과 공동 단식을 진행했다.

올해에는 작년처럼 연대 의사를 모으지는 못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KTX 여승무원과 이랜드 사태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혼자서라도 단식을 통해 연대 의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해 파업으로 인해 구속된 울산건설노조 조합원들도 고 하중근 열사 1주기 추모기간 동안 옥중단식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김 위원장에게 전해왔다.

"(구속노동자들의 옥중 단식은) 소리없는 메아리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16일, 15일, 12일씩 단식을 해야 하는 것, 어떻게 보면 슬픈 얘기다. 오죽했으면 감옥에서까지 저렇게 하는가. 이런 것에 대해서 관심을 두는 언론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앞으로 구속노동자들은 계속 늘어날 거다. 비정규직들의 싸움을 봐도 그렇다. 억울한 사람이 억울하니까 싸움을 하는 것 아니겠나."


그는 면회 내내 "구속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둬달라"며 거듭 부탁했다. 계속 늘어날지도 모를 노동자들의 구속, 구속된 뒤에도 크고 작은 문제로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상황을 사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 7월 1일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고 나서 전개되는 양상은 김 위원장의 호소에 설득력을 얹어준다. 최근 홈에버 서울 상암점과 뉴코아 강남점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던 이랜드 노동자들 중 128명이 연행됐으며 이랜드공동투쟁본부 김경욱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3명의 노조간부가 구속됐다. 또 한 달 80만 원이 채 못 되는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매장을 점거하는 농성을 벌일 경우 각각 100만 원씩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사측을 고발한 노동자는 '명예훼손' 죄로 구속되고, 자신들을 내쫓으려는 사측에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노동자는 '업무방해'를 한다는 이유로 월급보다 많은 과징금을 요구받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책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의 제목처럼 2007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동자들을 '싸울 수밖에 없는 다윗'으로 만들고 있는 듯 하다. 그 싸움은 좀처럼 끝이 보이질 않는다.

가능성은 점칠 수 없지만 8.15특사가 성사된다면 김 위원장은 오랜 감옥살이를 끝내게 된다. 그는 앞으로의 생활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을까?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답하는 그의 말은 너무나 간단했다.

"하던 짓 계속 해야지 않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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