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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몸으로 보여준 이 땅의 인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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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몸으로 보여준 이 땅의 인권 현실

[전태일통신 33] "삼성은 무슨 명예를 훼손당했을까?"

허겁지겁 오전 우유배달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이 울렸다. 부산교도소 담당 직원이었다. "오늘 영등포 교도소로 이감했습니다. 오전 9시 조금 넘어서 갔는데 날씨가 비도 오고 월요일이고 하니 좀 늦어지지 않겠습니까." 그 동안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웠다는 인사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까운 교도소로 이감 오니 좋겠다고?
  
   실로 1년 2개월만에 수도권으로의 이감이었다. 3월10일 대법원 판결이 기각으로 결정되어 5개월의 실형이 확정됨으로써 3년의 집행유예 기간까지 감옥살이를 하라는 사법부의 결정이 있고나서 꼭 한 달 만의 이감이었다. 여기저기 김성환 위원장의 이감 소식을 알리자니, 가까이 와서 좋겠다는 인사말이 대부분이었다. 가까이 오니 좋겠다고? 김위원장의 부인인 내게 딱히 해 줄 말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말해서 위로를 하는 것이겠지만, 도대체 무엇이 좋단 말인가.
    
   2005년 2월 22일 울산지방법원에서 법정구속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감옥살이가 이렇게 오래 갈 줄은 정말 몰랐었다. 2003년도에 발간한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고, 2003년 6월 5일 <울산 삼성SD I 노동자 분신기도 사건>의 진상을 알리려는 행위가 삼성SDI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검찰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김성환은 법정구속됐다.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는 말 그대로 삼성 관련 노동자들이 지난 세월, 그리고 최근까지 어떻게 탄압을 받아 왔는지, 그리고 삼성재벌의 무노조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여러 가지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울산 삼성SDI 노동자 분신기도 사건>은, 삼성재벌이 노무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치러져야 할 노사협의회 선거마저 개입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어처구니없는 선거 개입에 대한 저항과 분노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법적'으로 단순방화 사건으로 결론이 나고 분신기도 당사자들은 실형을 살아야 했다. 이렇게 끝나서는 또다른 분신기도 사건이 속출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김성환 위원장은 울산, 부산 지역에서 사회, 인권단체들과 함께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각계각층에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노력을 계속했을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이나 인터넷 매체 등을 이용해서도 꾸준히 진상규명을 외치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허위사실 유포로 삼성의 명예를 훼손했다 하여 고소당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법정구속에 이어 급기야 실형이 확정됐다.
 
   도대체 삼성은 무슨 명예를 훼손 당했을까?
     
   도대체, 삼성재벌에게 훼손될 만한 명예가 있기나 한 것인가 ! 나는, 남편이 구속되기 전까지는 그가 오랫동안 맞붙어 싸우고 있는 대상(삼성)에 대해 사실 잘 몰랐었다. 어떤 사람들은 10년에 걸쳐서 삼성과 싸우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하기도 한다. 삼성에 다니던 김성환 위원장은 삼성에서는 기업내 노동조합이 현실적으로 조직되기가 힘들자 삼성일반노조를 조직했고 그의 활동반경은 전국적이 되어버렸다. 민주노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있는 곳에는 지역을 불문하고 뛰어다녔다. 등에 메고 다니는 가방에는 늘 코펠과 버너가 들어 있었고 라면도 항상 지니고 다녔다. 늘 돈이 없어서 12월에도 여름 샌들을 신고 다녔고 바지 혁대가 없어서 집회 때 머리에 두르는 붉은 머리띠를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다녔다. 삼성 아르네, 신세계, 삼성전자, 삼성SDI, 그 외 삼성관련 하청업체, 협력업체들을 불문하고 삼성에 민주적인 노동자 조직을 만들고 자주적인 노동자들의 조직의 씨앗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물론 내가 아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어떤 삼성그룹 산하의 회사에서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가슴 설레어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노조가 와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회사 측 인사팀에서 노조 지도부들을 대상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압력을 행사하여 결국은 스스로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는 노조 설립의 마지막까지 노심초사하며 당장 다음날 구청에 설립신고만 하면 드디어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노조건설이 실현될 것만 같았는데, 정작 당일 5분 먼저 회사 측에서 소위 '유령노조'를 구청에 신고해 신고필증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삼성재벌이 어떠한 방법으로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악랄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지, 듣고도 믿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납치 감금은 기본이요 해외로 발령, 해외로 출장, 전국으로 끌고 다니기, 거액으로 매수(일개 노동자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을 준다!!), 철저한 감시와 미행으로 동료들과 격리하기, 가족에게까지 협박, 회유 등등…. 게다가 작년 여름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것은, 삼성이 대한민국 안에 있는 것인지 대한민국이 삼성 안에 있는 것인지 도무지 헷갈리게 하는 사건이었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국민들의 불같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은 뜨거운 감자가 되어 누구도 손을 못대는 양 방치되어 있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내 남편-은 있지도 않은 삼성재벌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1년 하고도 3개월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형 만기가 2008년 10월 초라고 한다.) 그동안 어머님과 아버님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평소에 자식 노릇 한번 제대로 못했는데 임종마저 모시지 못한 아들의 마음이 어떨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지금도 감옥 안에서 삼배를 드린다고 한다. 그는 지금 영등포 교도소 병사에 갇혀 있다.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해도 정상 혈압이 되지 않는지라 병사에 있는 모양이다. 부산교도소나 울산구치소에 비해 너무나 형편없는 조건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창문도 없고 운동시간도 짧고, 게다가 운동기구도 하나 없이 운동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 땅의 현실이 민주화와 인권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그러나 삼성재벌의 노동자 탄압 진상을 알리려는 그의 멈추지 않는 마음은 감옥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김성환을 감옥에 가두고 일개 노동자를 처벌해 달라고 삼성SDI 대표이사가 항소심 재판부에 탄원서를 내기까지 했지만, 그래서 대한민국 법이라는 잣대로 그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과연 그런다고 해서 삼성의 악랄한 노동자 탄압의 실상이 덮어질 수 있을 것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지금도 김 위원장은 감방 안에서 <울산 SDI노동자 분신기도 사건>을 은폐하려는 SD I회사측의 <금품수수 의혹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요구를 각계각층에 하고 있다. 그것은, 김 위원장 구속 수감생활의 억울함을 알리는 것이고 결국 무죄석방을 촉구하는 것이며, 또한 울산 SDI 분신기도 사건 노동자 당사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자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삼성재벌의 노동자 탄압의 진상과 현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길일 것이다.
    
   남편의 구속 수감생활로 인해 그가 그동안 삼성재벌을 상대로 얼마나 모질게 살아 왔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96년 삼성계열사에서 해고된 이후로 남편은 가정경제를 위해서 거의 10년 동안 돈벌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이 집안의 경제적 부담은 온통 내 어깨로 내려와 앉았었다. 한동안은 그의 가정과 자식들에 대한 무심함에 대해서 불만도 많았었다. 그런데 지금, 어찌 보면 그의 구속이 내게는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상대해 온 삼성재벌이라는 대상에 대해서 그 실체를 똑바로 알 수 있게 되었고, 김성환을 명예훼손 혐의로 감옥살이를 시키는 이 땅의 현실이, 결코 민주화와 인권을 입에 올릴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라일락 피는 철에 '남편과 만날 날'을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4월 15일날 이사를 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의 연탄보일라 집이다. 허름하지만 텃밭도 있고 개도 키울 수 있다. 요즘은 마당 한 쪽에서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먹는 상상을 해 본다.
    
   오늘은 오전 우유배달을 끝내고 오는 길에 무슨 향긋한 꽃냄새가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아니, 라일락꽃이 활짝 피어 있지 않은가! 세월이 이렇게도 무심하게 흐르다니…. 순간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다. 작년에도 꽃이 피고 지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오는 사계절을 남편 없이 보냈는데…. 또 반복해서 개나리가 피고 그 예쁜 진달래꽃이 뒷산을 물들이고, 이제는 멀리까지 향기가 퍼지는 라일락꽃이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골목골목마다 피어나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약해지지 말라고, 흔들리지 말라고….
 
   그래, 내게는 건강한 세 자식이 있고 감방 안에서 여전히 펄펄 뛰는 남편이 있지 않은가. 감옥 문을 박차고 그가 나왔을 때 부끄럽지 않은 나를 보일 수 있도록 오늘도! 힘을 내자!
  
  * <전태일통신>은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참여가 있어야 운영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투고를 부탁드립니다. 투고할 곳은 chuntaeil@chuntaeil.org, 전화 02-3672-4138, 팩스 02-3672-4139, 주소 [110-542] 서울시 종로구 창신 2동 131-106 전태일기념사업회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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