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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엠네스티 양심수'가 아무 의미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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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선 '엠네스티 양심수'가 아무 의미 없나요?"

김성환 삼성노조 위원장 가족 1인시위 벌여

"이번에는 정말 꼭 나올 줄 알았어요. 저희집 밥솥이 4인용이거든요. 세 남매와 저까지 하면 꼭 한끼 식사가 맞아요. 그래서 남편이 나오면 모자랄 것 같아서 큰아들 시켜서 7인용짜리 새 밥솥도 주문했어요. 꼭 나올 줄 알았는데…."

삼성일반노동조합 김성환 위원장의 부인 임경옥 씨가 하던 말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덤덤하게 말했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 듯 했다.

지난 9일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을 맞아 특별사면·복권 대상을 발표했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박지원 전 청와대비서실장, 권노갑 전 국회의원 등 경제인과 정치인을 포함해 434명이 사면·복권됐다.

그러나 지난 6일 한국 최초로 노동자 중에 국제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양심수로 선정된 김 위원장은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면 발표 전 시민사회단체들은 김 위원장을 포함한 1000여 명의 양심수 사면을 요구했고,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김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청와대 앞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면도 안 됐는데, 또 단식을 한다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도와줄 방법도 없고, 고통에 같이 동참하자는 생각에 이렇게 나왔죠."

임 씨와 세 자녀는 12일 서울 구로구 영등포교도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지난 2005년 2월 김 위원장이 구속된 이후 임 씨가 1인시위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김성환 위원장은…

지난 1996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이천전기에 입사한 이후 2001년 삼성의 해고자들과 함께 삼성일반노조를 만들어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하는 삼성과 싸워온 인물.

김 위원장은 지난 2003년 삼성SDI 노동자들의 분신방화 사건과 관련해 실형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인 2005년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를 만들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다시 실형 5개월을 선고받아 현재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부모님 돌아가셨을 땐 형량 못 채워 못 나간다더니…"
▲ 영등포교도소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 중인 김성환 씨 가족들. ⓒ민중의소리 전문수

지난 6일 김성환 위원장은 일곱번 째로 옥중 단식에 들어갔다. 삼성에스원 영업전문직의 대량해고 사태 이후 이들의 복직 투쟁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13일간 진행했던 여섯번째 단식을 마친 지 일주일 만이다. 이번 단식을 시작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1월 냈던 귀휴(휴가) 신청이 기각됐기 때문이었다. 임 씨는 기각 결정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거듭 말했다.

"남편이 수감 중이던 2005년 4월과 8월에 어머님,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당시 형량의 반을 못 채웠다는 이유로 귀휴 신청이 기각됐죠. 이번 귀휴 신청은 두 분 영전에 제사라도 한번 모실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였는데 또 기각됐어요."

김 위원장이 귀휴 신청을 낸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곧 두 아들의 졸업식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임 씨는 "작년 큰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못 갔다"며 답답한 듯 말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결정이예요. 이제 형량의 반 이상을 살았고, 또 엠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됐는데, 이 정도도 안 되는 건가요?"

"반인권적인 분류심사 거부했을 뿐"

김 위원장의 귀휴 신청이 기각된 것은 그가 분류심사제도를 거부했기 때문. 재소자를 1급부터 4급까지 분류해 급수에 따라 면회와 전화통화권 등을 제한하는 이 제도에 대해 그는 인권침해를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일 작성한 개인 성명서에서 "분류심사는 이를테면 '자위행위를 몇 회 하는지' 하는 식의 반인권적인 질문을 모든 수감자에게 던진다"며 "설문 내용을 보면 내가 강간범인지 마약사범인지, 잡범인지 조폭 등의 죄로 잡혀 왔는지 판단이 서지 않으며, 결국 분류심사가 올바른 교도행정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반인권적인 모멸감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설문을 왜 받아야 하는지 양심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분류심사를 거부한 그는 현재 4급수로 지정돼 있다.

"교도소 측은 분류심사를 거부해도 개인적인 불이익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수차례 말해 왔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는 (심사를 거부해) 급수가 올라가지 않아서 귀휴 청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김 위원장은 지난 6일 귀휴 신청이 기각된 그날 저녁부터 항의의 뜻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귀휴 신청에 대한 허가와 함께 반인권적인 분류심사제도의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다.

"도대체 엠네스티 양심수란 아무 의미가 없단 말인가?"

이런 남편을 지켜보는 임 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예전보다 이번엔 걱정이 더 많이 되요. 지난번 단식이 끝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됐고, 이제 나이도 쉰이 넘었어요."

그래서 1인 시위를 결심한 임 씨를 한나(21), 갈음(20), 대무(14) 세 남매가 도왔다. 전날 종일 피켓을 만들었다는 임 씨와 막내 대무 군은 "저것 만드느라 혼났다"며 마주 보고 빙긋 웃었다. 1인시위를 하는 임 씨 옆에서 세 자녀도 나란히 섰다. 한나 씨는 "처음 피켓을 들어본 거지만 크게 대단한 일도 아닌 걸요"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갈음 군과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대무 군의 졸업식은 오는 14일이다. 엠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돼 사면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임 씨는 두 형제의 졸업식을 꼭 챙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아버지 나오시면 갈음이 졸업식 가라고 하고, 난 대무 졸업식 가려했는데. 아버지 안 나오면 누구 졸업식도 안 갈 겁니다."

아이들에게 건네는 임 씨의 말에 안타까움이 배어나왔다. 임 씨는 기자에게 "도대체 한국에선 엠네스티 양심수란 아무 의미가 없단 말이냐"며 되물었다.
▲ ⓒ민중의소리 전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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