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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8천억 헌납이나, 이병철 한국비료 헌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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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8천억 헌납이나, 이병철 한국비료 헌납이나…

〈전태일통신 23〉삼성과 삼성 노조, 누가 반성해야 하나

2005년 2월 22일 아침 9시 30분. 1심 선고 재판이 있는 날이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울산지방법원 101호 법정으로 들어선다. 법정 의자에 앉는 순간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올가미에 내가 걸려 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지난 10년간 삼성 재벌의 무노조 노동자 탄압에 맞선 싸움에서 지금까지는 운좋게 빠져나오지 않았던가. 언젠가는 가야 할 감옥이고 징역살이가 아니던가. 애써 마음을 달래며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성 동료의 걱정스런 눈길을 그냥 모른 채 외면하고 소지품을 가방에 넣는다.

판사가 부르는 내 이름이 아득히 낯설기만 하다. 어색한 몸짓으로 여성 동료에게 가방을 맡기고 판사 앞에 선다. 빠르고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린다. 판사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다.

"피고인을 징역 10월에 처한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이방인처럼 그냥 멍하니 서 있기만 한다. 제복 입은 사람이 내게로 오고 그리고 나는 끌려간다. 나는 이른바 법정구속이란 것을 처음 체험하는, 악명높은 삼성재벌 노동자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2005년 4월 28일. 나는 내 평생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을 맞았다. 분노와 함께 또다른 새로운 다짐을 나날이 벽에다 새기며 울산구치소 독거방에서 꼼짝없이 징역을 살고 있던 내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형집행정지로 5일간 석방되었지만 임종도 못하고 장례도 제대로 못치른 불효자식은 그냥 어머님 영정 앞에서 피를 토하며 무릎 꿇고 울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삼우제를 마치고 다시 내 발로 감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날, 삼성재벌 총수가 고려대에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갔다가 학생들로부터 망신만 당하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4개월만에 아버님도 돌아가셨다. 나는 정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돌아가신 날이 토요일이라 법관들이 노는 날이라고 형집행정지 석방 서류에 서명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발인이 다 끝난 뒤에 무덤으로 아버님을 만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아버님 무덤에 절을 하면서 나는 분노보다는 오히려 허탈함을 넘어서서 차분해진 내 스스로가 놀랍기만 했다.

석방되던 날 저녁, 서울로 올라오자마자마자 나는 삼성 본관 앞에서 개최된 삼성재벌 규탄 X파일 촛불집회에 참석해서 연설을 했다. 나는 삼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있지만, 삼성은 훼손당할 명예도 없는 범죄 집단이라고, X파일만으로도 당연히 삼성 이건희는 구속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또다시 5일만에 내발로 감옥으로 들어갔다. 실형 5개월에 먼저번 집행유예 취소된 것까지 도합 3년 5개월짜리 징역을 살기 위해….

2003년 삼성재벌의 노동자 탄압 사례를 모아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 백서』라는 책을 발간했다는 게 내가 저지른 이른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의 범죄행위다. 그리고 또 하나 2003년 6월 5일 울산 삼성SDI 노동자 분신 사건의 진실을 사회에 알리고 삼성재벌을 비판, 규탄했다는 것이 내가 저지른 허위사실 유포의 범죄행위다. 삼성SDI는 나를 고소하고 검사는 기소하고 판사는 "(…)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주관적 판단으로 사이트에 게시하고 경멸적 감정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삼성재벌을 비방할 목적이 있다 판단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나뿐만이 아니라 만천하의 무수한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나에 대한 유죄선고는 이미 삼성재벌이 결정하였고, 재판이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1996년 이천전기에서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징계해고됐다. 이천전기는 1993년부터 주식을 사모으기 시작한 삼성에 의해 1997년 3월 삼성계열사로 편입됐다. 이천전기에는 어용노조가 있었는데, 노사협의회 위원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나는 어용노조의 민주화와 삼성으로 넘어갈 경우 발생할 대규모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점심시간에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이때 삼성계열사가 되기도 전에 이미 삼성의 위력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회사는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게 나를 해고하고 동료들로부터 철저히 고립시켜 버렸다.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나는 삼성의 해고자 신세가 되어버렸고 삼성과의 질긴 그 인연이 이제 10년이 되어간다.

삼성에 편입되자마자 들이닥친 IMF 외환위기 앞에서 이천전기는 곧바로 퇴출기업으로 선정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10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었다. 말이 그렇지 하루아침에 수천의 가족을 거느린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오갈 데 없는 실업자로 전락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이들과 함께 삼성을 상대로 정리해고 철회와 고용승계를 위해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나라고 왜 고민이 없었겠는가.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솔직히 그때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을, 그것도 삼성같은 세계 1류를 부르짖는 기업에서 그 거대한 힘에 눌려 아무 말도 없이 물러선다는 것을 도저히 내 양심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삼성과 싸우다보니 자연히 이천전기뿐만 아니라 삼성재벌 전체를 상대로 범위가 넓어졌다. 삼성으로부터 버림받은 해고자는 의외로 엄청나게 많았다. 나는 삼성SDI, 삼성중공업, 삼성생명 등 삼성계열사 해고자들과 함께 2000년에는 '삼성그룹 해고자 원직복직투쟁위원회'를 결성했고 2003년 초에는 삼성일반노동조합을 설립해 삼성의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에 맞섰다.

삼성해복투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나는 삼성이 조직적으로 미행, 감시, 도청 등 사찰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렇다할 구체적 증거도 못찾았고, 또 대응방법도 몰라 그냥 감시는 일상적인 당연한 것으로 알고 활동을 했었다.

2003년 MBC 피디수첩이 '불패신화 무노조 삼성'을 촬영할 때 비로소 나는 현장노동자들을 통해서 내 이메일이 해킹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04년 3월에는 나와 만나고 있던 산업재해 유족을 위치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내가 만나는 삼성SDI 노동자들이 누군가에 의해 핸드폰이 불법복제되어 죽은 사람 명의로 위치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1998년부터 노조설립에 관계한 20여 명의 삼성노동자들이 위치추적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4년 7월 나는 즉각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7월 13일 검찰에 1차 고소했다. 피고소인은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 삼성SDI 대표이사 김순택 등이었다. 수원의 삼성SDI 현장노동자들은 '성명불상자'로 자신을 위치추적한 누군가를 고소했다.

그런데 고소하자마자 참으로 희안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삼성SDI는 현장노동자들이 고소한 성명불상의 누군가가 당연히 자신들이라고 인정하듯이, 고소한 다음날부터 온갖 회유와 협박, 1m 그림자 감시, 미행, 인간관계를 동원한 압박 등을 하며 고소취하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검찰은 8개월 동안 수사를 했다. 수사 결과는 혐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수사결과 발표 6일 뒤인 2월 22일 오히려 나는 거꾸로 구속되고 말았다.

2004년 5월 25일 삼성전자 노동자 김규태 씨 등이 수원시청에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했다. 그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김규태 씨는 인사팀 차장 성준석에 의해 사무실에 강제로 격리 감금된 채 노조설립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대라는 협박을 당해야 했다. 김규태 씨는 견디지 못하고 강제사직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성준석 차장은 강제사직이라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금품지급 각서까지 써주었다. 김규태 씨는 그러나 곧바로 양심선언을 하면서 언론에 이 각서를 폭로했다. 2004년 삼성일반노조와 김규태 조합원은 검찰에 삼성전자 대표이사 이건희와 성준석 인사팀 차장을 고소했다.

2005년 1월에는 또 한 명의 수원 삼성전자 강제사직자 홍두하 씨가 국회기자실에서 삼성전자 노조탄압과 금품수수에 대한 양심선언을 발표했다. 홍두하 씨는 2004년 8월 노동조합 건설을 위해 그동안 만나오던 삼성계열사 노동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 개별 가입을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가입사실을 알았는지 광주 출장 중이던 홍두하 씨를 성준석 인사팀 차장이 불러 격리 감금한 상태에서 금속노조 탈퇴를 강요하고 다른 가입자들을 이야기하라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결국 홍 씨도 견디지 못하고 똑같이 강제사직 당하고 말았다. 성준석은 마찬가지로 강제사직을 합리화하기 위해 금품을 주겠다고 각서를 써주었다. 홍 씨 또한 언론에 각서를 공개하고 수원지방 노동사무소에 부당노동행위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내가 2월에 법정구속 당해 징역을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으로부터 감옥으로 연락이 왔다. 김 위원장이 구속당해 있는데, 너무나 미안하지만 정말 너무 힘들어서 삼성전자를 고소취하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잠적했다고 한다.

법정구속되기 훨씬 전인 1심 재판 때 나는 삼성SDI가 나를 고소할 때부터 삼성재벌이 나를 엮어 구속시키려 한다, 이번에는 꼭 구속시킨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김 위원장 주소지가 인천인데 주소지에서 수사받겠다는 요청을 거부하고 왜 굳이 울산에서 검사조사 받고 재판을 받게 하겠느냐, 울산법원은 삼성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김 위원장을 구속시키기가 쉽기 때문이다 등등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데, 그리고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나의 구속 사실은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현실이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삼성재벌이 내 구속을 결정하고 재판은 요식행위란 말인가.

울산 삼성SDI 노동자 분신과 관련된 2심 재판을 하면서 검사 기소내용인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의 그 허위사실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그런데도 판사는 허위사실에 의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죄로 판결했다.
2003년 6월 5일 삼성SDI 울산공장에서 노사협의회 위원 두 명과 현직 과장 등 4명이 회사가 노사협의회 선거에 개입한 사실을 규탄하며 분신 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삼성은 이 사건이 노동자들 사이의 자리다툼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며 오히려 회사가 피해자라고 대외적으로 선전을 해댔고 분신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나를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이 사건과 관련된 내 재판 과정에서 삼성SDI가 분신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건 관련 가족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의혹 사실이 확인되었다. 2004년 5월 출처불명의 거액이 입금되었던 것이다.

나는 판사에게 추가사실 확인과 증인 신청을 요구했다. 그러나 판사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그냥 재판을 종결시켜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인심 쓰듯이 실형 6개월을 3개월로 감형 선고하고 말았다. 며칠 전 나는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2003년 6월 5일의 분신사건 진실 규명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언론사에 보냈다.

지난 2월 7일 삼성재벌의 기자회견 소식을 들었다. 지난 시절에 대한 잘못된 관행을 반성, 사과하는 의미에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 8000억 원을 사회에 헌납하고 사회공헌 활동도 대폭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헌법소원도 취하하고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취하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눈을 씻고 보고 또 보고 귀를 씻고 듣고 또 들어도, 어디에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자행된 시대착오의 무노조 노동자 탄압과 인권유린을 그만두겠다는 얘기나 노동자들에 대한 소송을 취하한다는 얘기는 없었다. 아마도 이런 것은 그야말로 삼성재벌에게는 '잘못된 관행'이나 '삼성의 여러 현안' 축에도 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 발표를 보면서 참으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반삼성 국민정서의 뿌리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세금없는 족벌 세습 경영이고, 또 하나가 전근대적인 무노조 경영이다. 이 둘이 사실상 삼성의 온갖 불법비리와 범죄행위의 근원이 되는 악의 축이다. 그럼에도 이런 반삼성 정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전환없이 당연히 세금으로 냈어야 할 돈의 일부를 사재라며 헌납하고 사회공헌 어쩌고 생색을 내는 것은 지금 당장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언정 바른 해결책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마치 삼성을 일으켜 세운 이병철 회장이 부정축재자로 구속되자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한 것을 연상시키면서 오히려 삼성에 부정적인 정서만 더 확산시키는 촉매제 역할밖에 더하겠는가. 나같이 감옥에서 푹 썩고 있는 노동자도 생각하는 이런 상식을 세계적인 일류 삼성이 모른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8000억 원으로 일반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인 것이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된다. 삼성이 사재를 추가 헌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반성이라면, 진정 사회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노동자들을 죽이고 분신하게 하고 가슴에 피멍들게 하는 이런 원한과 원한의 대물림부터 상생과 화해로 바꿀 생각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삼성이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 꼽징역을 살고 있는 나 역시, 그리고 삼성노동자들 역시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

2006. 2. 15. 물의 날(수요일)에 부산교도소에서 물로 불을 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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