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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김성환-황우석-지율'로 돌고도는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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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김성환-황우석-지율'로 돌고도는 세상 속에서

[기고]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께 보내는 편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8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한국 사회를 상대로 '로비'를 한 상황에서 지율 스님의 천성산 홈페이지에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의 글이 올라와 있어 눈길을 끈다. 김성환 위원장은 '무노조 경영'을 하는 삼성에 맞서 10년 가까이 홀로 싸우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3년5개월의 형을 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김성환 위원장은 최근 천성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이 땅은 천민자본가들이 접수했고 자연이니 생명이니 인간다운 삶이니 상생이니 하는 말들도 돈으로 계산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며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천성산도 도롱뇽도 그 어떤 자연의 생명도 인간과 더불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여지는 없다"고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김성환 위원장의 이 글을 읽고 이계삼 씨가 〈프레시안〉에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이계삼 씨는 삼성, 지율 스님, 황우석 등을 통해 '좌절'과 '희망'의 갈림길에 선 이 땅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다. 〈편집자〉

김성환 위원장님께.

저는 경남 밀양에 사는 서른네 살의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전교조 지회 사무국장을 맡아 이런저런 일들을 거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여러 매체에 생태와 교육에 관련된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위원장님께 편지를 쓰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어제 천성산 홈페이지(www.cheonsung.com)에 들어갔다가 위원장님께서 지율 스님과 천성산 일을 염려하여 쓰신 글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게시판 목록을 훑어보다가 '김성환' 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보고는 흠칫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또 금세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는 김성환이라면, 삼성 일반노조 위원장으로 지난 10년 간 삼성과 홀로 싸워 온 분이지만 지금 옥에 계신데 어떻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후다닥 그 글을 클릭했습니다. 우선 주루룩 훑어내렸습니다. 제 머릿속의 '검색엔진'이 중요 단어를 찾아 위잉, 급하게 발진했습니다. 이 분이 혹시 천성산 홈페이지에 놀러 왔다가 뭔가를 '배설'하고 가는 그 많은 '안티들' 가운데 하나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몇 줄 지나니, '물신(物神)'이라는 표현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홍세화 선생이 칼럼에서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 그래, 안티는 아니겠구나, 참 어찌 보면 서글픈 일이지만, 몇 초 만에 저는 안심했습니다. 그리고 마우스 스크롤로 쭉 훑어내렸습니다. 마지막 줄, "나무아미 천성산, 부산교도소에서…." 저도 모르게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맞구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님이 맞구나!" 저는 이번 지율 스님의 다섯 번째 단식을 지켜보았던 지난 한 달 중에서 이번처럼 큰 감격을 맛본 적이 없습니다.

***삼성, 김성환, 지율 스님**

제가 왜 그렇게 느꼈을까요? 제가 출입하는 게시판들에, 위원장님이 삼성과 싸워 온 사연을 다룬 〈작은책〉, 〈오마이뉴스〉의 글, 그리고 위원장님이 천성산 홈페이지에 쓰신 글을 묶어 올리고는 담배를 피우며 제 감격의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돈의 제국' 삼성에 '인간'으로서 맞선 거의 유일한 사람. 그래서 지난 10년 간 고소와 고발, 그 유명한 '휴대폰 위치추적'까지 당하면서, '가난'을 옷으로 입고 살아 온, 결국 그들이 바라는 대로 '갇혀버린' 김성환 님. 이런 '시대의 은인'이 지율 스님과 천성산을 알아주셨다는 것이 제 감격의 원천이었습니다. 저는 그 감격의 속살을 글로 써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위원장님께 보내고, 한번 면회라도 가봐야지, 이런 다부진 결심을 그때 했습니다.

사실, 속내는 이렇습니다. 위원장님의 글을 읽기 전까지는 지율 스님이 살아난 기쁨과 안도감 말고는 뭔가 외로웠습니다. 스님이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나는 일을 우리가 지켜보았는데, 스님이 이런 엄청난 고행을 또 했는데,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나, 하는 인간적인 타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 마음 속으로 스님의 5차 단식의 의미를 자꾸 허물어뜨리는, 소설가 김곰치 씨의 표현을 빌자면 '교활한 지식'이 자꾸 공격해와서 마음이 어지럽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믿을 만한 분이 나의 이 혼돈을 명쾌하게 정리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저는 지율 스님의 네 번째 단식까지는 지인들에게 호소도 하고, 심지어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 동료 선생님들과 스님의 단식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마음을 모아보려고 딴에는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 단식은 그렇게 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모두가 많이 지쳐버린 것 같았고, 저 또한 '스님이 이제 완전히 죽으려 하시나보다' 하는 체념이 더 짙었거든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제가 혼자 상상해봤습니다. 아마 이랬을 겁니다. "지율 스님, 이제 그만하고 좀 넘어갑시다. 스님 당신도 할 만큼 했잖소. 충분히 우리도 알아들었으니, 이제 당신도 목숨 보전하고 좋은 일 하면서 앞으로 잘 살아요. 천성산? 벌써 그만큼 공사했는데, 나라에서 저렇게 밀어붙이는데, 안타깝지만, 어떡하겠소. 천성산만 산이오? 대한민국이 다 공사판인데, 이걸 어떡하라고…."

KTX를 이용한 고객이 5000만을 넘어섰다 하고, KTX의 그 놀랄만한 편익을 만끽한 이 세상 사람들이 스님의 호소에 별로 공명해줄 것 같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방관자의 이기심이랄까, 사람들은 스님의 고행이 자기 내면 어두운 곳에 똬리 튼 죄의식을 건드리는 것이 심히 불편한 모양이었습니다.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지요. 이제 와서 어떡하자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그 죄의식을 뭉개고 말았을 거예요. 그래서였는지 용감한 발언들도 많았습니다. 언필칭 진보언론이라는 한 신문의 논설위원조차 스님을 박근혜와 동류의 '근본주의자'로 몰아세우는 칼럼을 쓰지 않았습니까.

***"지율 스님의 고통, 그 이해의 크기가 이 땅 희망의 크기입니다"**

위원장님. 저도 스님의 이번 단식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 방식에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스님 당신은 언제나처럼 "나를 보지 말고, 무너지는 이 땅의 산천을 봐달라"고 하셨지만, 무너지는 산천을 응시할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스님의 육신밖에 보이질 않으니, 제발 이 끔찍한 고행은 그만 두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아무리 반칙에 반칙을 거듭해도, 심지어 벌써부터 천성산 터널 공사현장에 물이 마르는 재앙의 징후가 알려져도, 보수언론이 지율 스님을 엉터리 사실로 몇조 원 세금을 축내는 '요승'으로 몰아가도, 세상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부정과 불의가 있다 한들, 그 폭력의 주체가 누구건 '경제', '국익', '발전'이라는 가치를 등에 업고만 있으면 우리는 저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완벽한 체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황우석 사태를 보세요. 그가 지난 몇 년간 정신나간 사람처럼 벌여 온 그 숱한 사기행각의 '팩트'들이 한꺼번에 까발려졌지요. 그 중에서도 제가 제일 마음 아팠던 것은 그의 연구팀이 한 여인에게서 무려 네 번이나 난자를 채취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분노로 몸이 떨리고 치가 떨렸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황우석에게는 가능한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위원장님. 우리에게도 '적당함의 안락'이 뿌리 깊습니다. 적당한 절망과 해를 덜 입을 만큼의 행동. 그것으로도 양심은 충분히 위태롭지 않고, 그런 양심이 끼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그래도 이 사회에 그럭저럭 살아 있으니까요. '하자는 사람'과 '하지 말자는 사람'이 '상식'이라는 적당한 금을 미리 그어놓고, 서로 할 만큼만 했다 여겨지면 서로 가질 것을 챙기고는 악수하고 헤어지는 관행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적당한 선'을 훌쩍 뛰어넘는 용감한 개인이 나타나면 '근본주의자'라는 무시무시한 딱지를 붙여버리고…. 제게 정치적 좌파와 우파, 권력자와 그 반대자의 대립은 그저 '배역의 차이'로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율 스님은 그간 숱한 유형무형의 폭력에 시달렸지만, 그 세목에는 새로운 것도 있습니다. 바로 '상식의 폭력'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이야깁니다. 제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침대에 손님을 들여서는 그 크기에 벗어나는 것이라면 팔이건 다리건 사정없이 잘라버리는, 제 상식 범위 안의 행동만을 강요하는 상식의 폭력. 그리고 그 선을 넘어선 '용기'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 철저한 교만. 지율 스님은 이 당대인들로부터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마음 격할 때는 이런 상상도 스쳐갔습니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 그 당대인들도 예수를 "죽지 못해 환장한 사람"으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성'이라는 이 땅의 실질적인 지배자와 지난 10년 간 집요하게 싸워 온,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 '삼성' 앞에 굴복해야 한다"는 시대의 불문율을 깨뜨린 죄밖에 없는, 그리고 그 때문에 옥에 갇힌 김성환 님께서 천성산 게시판 어느 한 모퉁이에 조용하게 김성환 이름 세 글자를 걸고 발언해 주셨으니…. 그래서 저는 전율했고, 탄성을 내질렀던 것입니다.

위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지율 스님이 천성산 도룡뇽의 생명을 지키고자 한 단식이 이제는 죽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왜 스님이 그럴까 하는 마음보다 이 땅의 천민적 교양에 찌든 물신의 하수인들은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지율 스님의 죽음에 이르는 단식에 대한 공범자가 아님을, 자신은 무관하다고 지껄이고 있는 이 현실…."

정확한 통찰이었습니다. 위원장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 땅은 (…) 이미 자연이니 생명이니 인간다운 삶이니 상생이니 하는 말들도 돈으로 계산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신에 의해 돈의 많고 적음에 맞는 조작된 환경에 대한 광고가 부끄럼 없이 선전되고 있습니다. (…)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천성산도 도룡뇽도 그 어떠한 자연의 생명도 인간과 더불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여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렬한 한 마디 말씀을 남겼습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을 통한 죽음에 이르는 생명의 화두는 이 땅 삶의 깨달음에 대한 좌절과 희망입니다."

옳습니다. 위원장님. 그리고 이제 저는 위원장님의 말씀에 정확하게 이렇게 공명하겠습니다. "지율 스님의 고통, 그 이해의 크기가 바로 이 땅 희망의 크기다"라구요.

***"늙지 않는 희망을 찾고 싶습니다"**

위원장님은 "이 땅 삶의 깨달음에 대한 좌절과 희망"을 말씀하셨습니다. 좌절. 제게도 세상에 대한 좌절이 있습니다. 제 기질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술자리에서 늘 의분에 차서 흥분해서는 좌중을 썰렁하게 만들기가 일쑤였고, 그것이 객쩍어 아주 가까운 지인들이 아니면 세상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전부터 교사로서 어떤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삶의 가혹함을 지금 열 일고여덟 살 때부터 진득하게 맛보고 있을 아이들에게 내가 세상의 아픔이나 어두움을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삶은 기쁘고 밝은 것인데, 이 아이들은 지금 얼마나 빛나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데 나는 아이들 앞에서 왜 이리 세상 어두운 이야기를 많이 할까, 이것이 교사의 자세로 옳은 것인가, 하는 자책 말입니다.

이제 인생이 뭔지 좀 알 것도 같은데, 세상이 너무 암담합니다. 제가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는 작가 조세희 선생을 시위 현장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지난 12월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서울에서 민중대회를 하던 날이었는데, 영하 10℃가 넘을 것 같았습니다. 경찰은 물대포를 쐈고, 저도 맞았습니다. 머리가 꽁꽁 얼어붙고 옷이 순간적으로 뻣뻣해졌던 그때 내 옆으로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는 조그마한 체구의 초로의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조세희 선생이었습니다. 엉겁결에 인사를 드렸더니, 저를 모르는 선생은 그래도 "아이구, 다 얼었네. 어쩌나…. 어디 가서 얼른 좀 녹여요"하며 밝게 웃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도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몸만 늙는 게 아냐. 다 늙어. 사랑도 늙고, 분노도 늙어. 내 희망도 늙는 거 같고. 그때마다 내가 소멸해간다는 느낌을 받아. 태어나서 자라고 반목과 갈등을 계속하다, 이대로 끝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해. 내 성격이야. 1960년대 이후로 한국사회의 흐름과 반목을 해 왔어. 너무 긴 세월이야. 40년이 넘었으니까…."

저는 조세희 선생을 지금도 존경하지만, 저는 선생처럼 세상과의 반목을 견뎌낼 지구력도 용기도 없습니다. 솔제니친의 표현처럼 '이렇게 어둡게 사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저는 정말 '늙지 않는 희망'을 찾고 싶었습니다.

지율 스님, 이 분을 2003년 초여름 무렵 처음 뵙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주저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3년 전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올 때 절대로 '전국구'로 살지 않고 '지역구'로 살겠다고 굳게 결심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는 밀양에도 참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지, 내가 뭐라고 이런 전국적인 사안에 간여하나, 그냥 어떤 분인지 한번 뵙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을 알게 되고, 천성산 일을 겪으면서 저도 여기에 빠져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율 스님의 인간적 향기에 매료된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위원장님의 표현이 적확합니다. "이 시대의 좌절과 희망의 빛."

사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상을 한 눈으로 파악할 상징 기제들을 하나씩은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입 수험생의 '대학 배치표', 외판사원의 '닳은 구두', 신용불량자의 '전화벨 소리', 그러나 이들은 세상의 어느 한 모습이지만, 결국 자기 세계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천성산과 지율 스님', 이것은 이 시대의 가장 의미심장한 상징이며 좌절과 희망의 근거입니다. 1970년대의 '청계천 평화시장'과 '전태일'이 그러하듯이. 전태일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이고 지율 스님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천성산 도롱뇽'입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며, 그러나 여전히 살아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며, 또한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일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시장에서 시대의 현장을 보았듯이 이제 천성산의 운명을 지켜보아야 하고, 1970년대 이후 사회운동이 전태일에서부터 출발했듯이 지금 우리는 지율 스님으로부터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스님의 '고통의 빛'에 비추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틔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명한 상식을 의심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만남'과 '발견'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이 '생명'을 알아모시고, '생명'이 '노동'을 알아모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스템이 개인을, 개인이 희생을, 희생이 노동을, 노동이 밥을, 서로 알아보고 서로 낮아져 그렇게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위원장님. 그 만남의 시작을 천성산 게시판에 오른 위원장님의 글 앞머리에서 발견했습니다. 위원장님의 글은 이렇게 시작하지요. "독거방 벽에는 지율스님의 2006년 1월 16일의 모습이 붙어 있습니다."

위원장님은 아마도 신문에서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오려 붙여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면벽하여 바라보았고, 스님의 고통을 헤아려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원장님 당신의 실존을 거기에 대입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님의 얼굴에서 이 세상의 모습, 위원장님 당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제 두 분은 만났습니다. '전태일의 평화시장과 지율의 천성산'이 이제 '천성산의 지율과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김성환'으로 새롭게 만났습니다. 그것이 고맙습니다. 기쁩니다. 김성환 위원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사회운동을 집어삼킨 '힘'의 논리가 무섭습니다"**

위원장님. 이제 제가 생각하는 사회운동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 사회운동을 집어삼킨 이 '힘'의 논리가 무섭습니다. 근본의 문제는 피해가면서 자꾸 '힘'만 키우자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아주 강경한 건설사 노조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풀뿌리 공동체를 해체하는 것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원자력발전 노조는 새로운 발전소 건설에는 침묵합니다. 교원노조는 교원평가를 막기 위해서는 연가투쟁을 하지만,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연가투쟁을 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힘'이 아니라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불철저하거나, 있다 해도 그것을 자기 내심 깊은 곳에서는 자신조차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 있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주기를 바랍니다. 위원장님은 이런 제 이야기를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법이건 제도건, 혹은 정당이건, 권력자건, 힘 있는 누구건 '남'이 대신 해주는 일은 없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믿는 '나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쪽수'가 힘이 아니라 '믿음'이 힘이고, '진실'이 힘이고, '비폭력'이 힘이고, '사랑'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율 스님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김성환 위원장님이 그러했듯이.

힘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운동에는 삭막한 논리가 있지요. 이를테면, 시위 현장에서는 참으로 눈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 있습니다. 나이 어린 전경들이 우리 대오 안으로 끌려들어와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전경 아이들의 헬멧을 기어코 벗겨내고, 방패를 빼앗아 발로 지근지근 밟아버리는, 방어적인 폭력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분출' 그 자체인 모습들. '비폭력'을 굴욕으로 여기고, 밀리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기어코 '뭔가를 보여주고 마는' 문화가 있습니다. 혹여 밀려날지라도 그 자리에 오래도록 주저앉으면 되는 것을, 끝까지 오래 오래 버팅기면 되는 것을, 기어이 뚫고 나가자는 선동들, 귀에 쟁쟁거리는 '군가'같은 투쟁가들. 그 앳된 전경들과 '전투'는 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그게 무슨 '적들과의 대리전'입니까. 그저 호전적인 투쟁논리일 뿐인 것을…. 이 문화에서 저는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위문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지요. '힘'의 논리는 신념을, 진정한 의미의 '행동'을, 개인의 가치를 운동의 변두리로 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율 스님과 위원장님 같은 분을 우리 시대의 '은인'이라 생각합니다. 아주 평범한 이유입니다. 두 분은 이 세상에 대한 당신들의 사랑을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으로 '신념'으로 '비폭력'으로 추구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 분들처럼 살 수 있는 용기가 없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은책〉과 〈코리아 포커스〉를 통해 지난 10년 간 위원장님의 사모님 임경옥 선생님이 얼마나 어렵게, 그러나 한결같이 위원장님의 주변을 추슬러 왔는지를 보았습니다. 사모님은 위원장님과 똑같은 '그림자 노동'을 수행해 오신 것입니다. 위원장님의 공판을 지켜보기 위해 새벽 두 시에 오토바이로 우유를 배달하고, 또 하루 두 번 우유 배달의 중간 시간에 삼성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는 사모님의 헌신은 우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사모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한 그릇 밥의 힘'을 믿습니다"**

위원장님, 이제 제 이야기를 슬슬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위원장님께서도 옥중에서 두 차례에 걸쳐 32일 간 단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율 스님은 지난 4년 간 다섯 차례, 도합 400일에 가까운 단식을 해 오셨습니다. 스님이 이번에는 정말로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스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너무나 기쁘고 좋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 또한 '밥'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그릇 밥의 진실, 지금 스님의 육신을 무서운 속도로 살아나게 하고 있을 그 '곡기'를 생각해 봅니다. 날마다 먹고 자시는 한 그릇 밥이 참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톨스토이는 물었지만, 그 '형이상학적인' 물음에 이 순간만큼은 '형이하학적'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밥으로 산다"고. 한 그릇 밥. 대통령도, 공사판 아저씨도, 탤런트도, 축구 선수도, 말기 암환자도, 알콜 중독자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이 공평한 진실, 한 그릇 밥. 어느 전직 대통령이 남긴 '명언'처럼 "굶으면 죽는 거는 확실하다"는 이 완강한 진실이 바로 '한 그릇 밥' 아니겠습니까.

조세희 선생님을 만났던 지난 12월 민중대회의 일이었습니다. 그때도 지율 스님의 단식은 계속되고 있었지요. 격렬한 전투는 그 날도 여전했습니다. 그렇게 시위가 끝나고 대오는 흩어졌습니다. 열차를 타기 위해 광화문 네거리에서 덕수궁을 거쳐 서울역으로 오는 길 위에서 저는 또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도열한 전세버스 앞에서 빨간색 조끼 앞뒤에 구호가 적힌 커다란 스티커를 붙인 노동자 아저씨들이, 좀 이어서 늙수그레한 농민 아저씨들이, 덕수궁 담벼락 곁에 쪼그리고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습니다. 다 식은 육개장을 훌훌 떠 넣으면서. 그리고 몇 걸음 더 나아가니 이제는 닭장차 앞에 정렬한 앳된 전경들이 또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말도 없이, 후루룩 후루룩 밥과 국을 떠 넣고 있었습니다.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서 격렬하게 싸운 뒤끝에서 한 길 위에 나란히 앉은 한 그릇 밥. 그래서 고맙고, 그래서 엄하고 무거운, 한 그릇 밥. 정말, 저는 그때 "밥 한 그릇에 세상만사가 다 들어 있다"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을 진실로 느꼈습니다.

위원장님. 일상 속의 우리는 한 끼도 굶기 어렵습니다. 한 끼도 굶을 수 없는 우리들과, 너무나 많은 끼니를 걸러 스스로 죽음의 목전까지 갔던 지율 스님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한 끼도 굶기 어려운 제가 그리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한 그릇 밥'을 걸고 마음 다잡아 세상에 정의와 사랑을 호소하는 위원장님과 스님이 귀하고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한 끼도 못 굶는 평범한 인간과 1200끼를 굶은 스님은 밥의 진실 앞에서 모두 소중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어렵고 복잡한 세상사 이야기를 '한 그릇 밥'의 이야기로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춘향전〉 연극이 끝나면 분칠을 벗고 신참 배우 변학도가 선배 여배우 성춘향이에게 술을 따르며, '누나, 뺨 맞느라 힘들었지?' 하듯, 이 '연극처럼 서글픈 세상' 바깥에 그런 세상이 꼭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꿈을 꿉니다. '그 세상'을 '이 세상'으로 끌어오는 꿈을. 전투경찰과 농민과 노동자 아저씨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전투모를 벗고 조끼를 벗고, 머리띠를 풀고 같이 밥 먹는 세상. 이건희가 나이 들어 도저히 어렵다면 그의 아들 이재용이라도 위원장님께 무릎을 꿇고 소주 한잔 따르며 용서를 비는, 그래서 위원장님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그래요, 괜찮아요, 이제 같이 잘 살아보아요, 하면서 용서해주는 세상. 혹은 고속철도공단 본부장이, 문재인 청와대 수석이 지율 스님을 모셔 밥 한 그릇 둘러 먹고, 도롱뇽 알을 찾아 천성산 계곡을 헤매는 상상, 밥 한 그릇으로 맺어지는 대동의 세상….

아니, 이 모든 것이 정말로 '꿈'같은 것이라면 당장, 노동운동가와 환경운동가들이, 혹은 NL이고 PD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2박3일이고 3박4일이고, 할 일도 작파하고,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 부르며 같이 뒹굴 수 있다면…. 이것이 꿈같은 소리가 아니라, 실은 마음 문 바깥으로 한 발짝만 나서면 되는 일인 것을….

김성환 위원장님이 버텨오신 그 진실도 결국 '한 그릇의 밥'의 진실이었으리라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 밥, 돈과 욕망으로, 고마운 줄도 모르고, 우겨넣는 탐욕의 밥이 아니라, 목숨의 밥, 희생의 밥, 바로 그 노동의 밥말입니다. 그래서 백무산 시인은 이렇게 읊지 않았습니까.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으리라
먹은 대로 깨끗이 목숨 위해 쓰이고
먹은 대로 깨끗이 힘이 되는 밥
쓰일 대로 쓰인 힘은 다시 밥이 되리라
살아 있는 노동의 밥이

목숨보다 앞선 밥은 먹지 않으리
펄펄 살아오지 않는 밥도 먹지 않으리
(백무산 '노동의 밥' 中)

위원장님.

저는 이제 이 긴 글을 마무리하고 물러갑니다. 다시 한번 천성산 홈페이지에 올려주신 그 글에 대하여, 위원장님의 마음과 이해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달여, 저 또한 마음 무거울 때가 많았지만, 지율 스님과 김성환 위원장님, 이 어두운 시대에 환하게 빛나는 두 분의 은인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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