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30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고리대금업자는 좀 다르다. 최민식, 김하늘, 한채영 등 인기 연예인이 그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려주고 있다. 이들 연예인이 등장하는 광고를 보며, 잔인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고리대금업자(사채업자)를 소재로 제작한 드라마 '쩐의 전쟁' 방영에 맞춰 '쩐의 전쟁', 이건 알고 보세요'라는 제목의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드라마 속 상황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자료다. 이 자료는 드라마가 처음 방송된 다음날인 지난 17일 처음 발표됐으며, 18일과 25일에도 나왔다. (☞관련기사 : "'사채업자는 왜 '사채업자' 소리 듣기 싫어 할까", "드라마 '쩐의전쟁' 제대로 알고 보세요")
민주노동당은 이 자료를 드라마 방영에 맞춰 연재 형태로 계속 배포할 예정이다. 정당이 텔레비전 드라마 방영에 맞춰 활동을 진행하는 사례는 드문 일이다.
이 자료를 작성한 임동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국장이 보다 자세한 내용을 담아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이 글에서 임 국장은 음지에 있던 사채업자들이 버젓이 텔레비전 광고에까지 진출하게 된 상황은 '대부업 양성화론'을 내세웠던 재정경제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급전이 필요한 서민에게 필요한 것은 고리대금이 아니라 대안적인 금융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소득과 신용등급이 낮아서 제도권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장기저리대출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마이크로 크레딧' 부르는 드라마 '쩐의 전쟁') 다음은 임 국장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경제활동 인구의 11.9%, 금융 사각지대에 방치돼
출근시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광고는 눈에 잘 들어온다. "쉽고 빠른 대출". 광고 속에서 미모의 연예인이 미소 짓는다. 그러나 이런 미소는 많은 이들에게 어두운 유혹일 따름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의 수는 280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8%, 경제활동인구의 11.9%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배제돼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돈이 필요해도 은행 문턱을 넘을 수 없다.
미모의 연예인이 등장하는 대부업체의 달콤한 광고문구 뒤에 연 66%이 이자가 덫을 놓고 있다. 물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카드 빚독촉, 학자금 대출 상환압박, 압류통보장, 사기죄로 고소한다는 추심원의 목소리가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 이런 사실은 금세 잊혀진다. 연 66%라는 이자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고리 대부업체가 고객으로 삼는 대상은 이렇듯 제도권금융기관에서 배제된 저신용자, 저소득층이다. 실제 사금융시장을 이용하는 사람 중 37~60%가량이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대부업체를 찾고 있다. 그리고 부도 상태인 이용자가 31%에 이르며, 정상이용자 중에서도 8~10등급 저신용 이용자 비중이 40%에 달한다.
어린이 채널까지 장악한 대부업 광고…과장 광고에도 정부는 "나 몰라라"
한국 사회에서 고리대 자본이 급팽창한 계기는 1998년 1월 '이자제한법'의 폐지와 2002년 10월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의 시행이다.
'이자제한법' 폐지되기 전, 3천여 개였던 대부업체는 현재 4만5천여 개로 늘었다. 2006년 6월말 기준으로 등록 대부업체는 1만 6367개다. 무등록 대부업체는 약2만5000여 개에서 3만여 개 사이로 추정된다.
높은 금리는 곧 대부업체의 고수익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들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은 해당 지자체가 맡고 있다. 금융 비전문가인 이들의 부실한 감독 탓에 현행 대부업법이 규제하고 있는 연 66% 법정이자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재 고리 대부업체의 평균이자는 연 200%에 가깝다. 대부업체들은 땅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텔레비전을 켜면 대부업체의 어두운 유혹은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유명 연예인을 앞세운 대부업 광고가 텔레비전 방송시간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 심지어 어린이 전용 케이블 채널에서조차 연 66%의 고리대 광고가 흘러 나온다.
더구나 방송 광고를 비롯한 거의 모든 대부업체 광고는 연 66%라는 이자율 문구는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노출한 뒤, "40일·60일 무이자"나 "누구나 대출해준다"는 등의 내용만 부각시킨다. 전형적인 허위·과장광고인 셈이다.
광고법(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상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의 단속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는 "허위·과장광고 단속은 우리 영역"이라면서도 대부업체 광고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나 몰라라' 행정을 틈타 대형 대부업체들은 자신의 실체를 유명연예인의 이미지 뒤에 숨긴 채 한계상황에 다다른 서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광고 상의 '누구나 대출'은 현실에서 우량고객을 대상으로 한 '골라서 대출'로 변하고, '40일 무이자'는 연 66%의 살인적 이자율로 바뀐다.
재경부, 대부업법 제정으로 사채업자에 면죄부
임승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중소형이나 개인 대부업자는 워낙 원가 수준이 높아 지금도 한계 상황에서 영업하거나 불법 영업 중"이라며 "대부업법상 이자율을 급격히 낮추면 오히려 서민 돈줄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대부업법 상 금리상한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한 셈이다.
한계 상황에 처한 대부업체를 걱정하는 임승태 국장의 발언에서 고금리와 불법추심에 시달리는 서민가정의 고통을 의식한 흔적은 찾기 힘들다. 서민이 계속 고금리 돈줄에 의지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뜻일까.
아버지의 카드빚과 고리사채로 부모와 가정을 잃은 주인공이 사채업자로 변신해 세상에 복수한다는 내용의 드라마 '쩐의 전쟁'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 속 살인적 고리대, 욕설과 폭행을 동반한 불법 추심(빚 독촉)은 사채·대부업체 이용자들이 현실에서도 가장 많이 겪는 일이다. '쩐의 전쟁'을 본 재경부 관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런데 고금리에 시달리는 서민에게 무관심한 재경부의 태도는 이미 오래된 것이다. '대부업 양성화론'을 내세우며 대부업법을 제정한 게 바로 재경부였다. 대부업법이 제정되면서 음지에 있던 사채업자들은 대부업이라는 건전한 이미지의 명칭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버젓이 텔레비전 광고까지 진출해 "아무런 문제없이 쉽고 편하게" 이용해도 되는 것처럼 홍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급전이 필요한 서민에게는 고리대금이 아니다. 재경부는 '대부업 양성화'가 아니라 '대안적인 금융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아야 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최근 사채의 위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계기로, '드라마 '쩐의 전쟁', 이건 알고 보세요'라는 제목의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은행 문턱 못 넘는 서민 위한 대출 제도 절실
그런데 이 자료는 고리대부업자에게 피해를 입은 개인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뭘까.
첫 번째 할 일은 금리 상한선을 대폭 낮추는 것이다. 현행 66%의 고금리는 대부업체들의 난립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고금리 시장을 확장시켰다.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 더 높은 금리를 받아내는 악순환 구조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순환 구조를 깨려면 대부업체뿐만 아니라 카드사, 상호저축은행의 금리 상한을 과거 이자제한법령의 상한인 연 25%로 제한하고, 1000만 원 이상 고액 대출에 대한 금리상한은 연 20% 범위 내로 제한해야 한다.
두 번째 할 일은 관리감독의 강화다. 대부업체가 불법적인 고금리를 받는 것, 그리고 불법 추심행위는 사실상 부실한 관리감독의 결과다. 대부업체에 대한 일상적 관리감독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장은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12조 규정에 따라 등록한 대부업체에 대한 방문검사를 실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 비전문가인 지방자치단체가 대부업체를 관리감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금융당국은 법률 개정을 통해 대부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직접행사해야한다. 이게 세 번째 할 일이다.
네 번째 할 일은 서민의 급전 수요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다. 서민들이 급히 돈을 써야 할 경우는 보통 병원비·교육비·당장의 생계비·긴급운전자금 등이 필요한 경우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은행 문턱은 높다. 결국 높은 금리를 무릅쓰고 대부업체를 찾게 된다. 그리고 한 번 고리대에 의지하는 순간, 빚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 이런 악순환 구조를 깨려면 '저소득층에 대한 생활안정자금 대출제도'와같은 장기저리대출제도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대부업체 종주국, 일본은 지금 '대부업 양성화' 대가 치르는 중 한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고금리 대부업체의 상당수가 일본계다. 그렇다면 이들의 고향인 일본은 어떨까. 일본 금융청은 지난 2월 21일 자국 내 고금리 대부시장 때문에 서민들의 피해가 가중된다고 판단, 형사 처벌되는 법정최고금리를 100만 엔 이상 대출시 연 15%로 인하하는 등 법제도 정비에 나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는 고금리 대부업 영역을 더 이상 사적 자치에 맡길 수 없으며,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이자 제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고금리 대부시장을 양성화한다며 현행 대부업법이 정하고 있는 연 66%의 이자율 제한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고금리를 규제하기 위해 ①이식제한법 ②대금업 규제법 ③출자법 등의 법률을 운용 중이다. ① 이식제한법은 "△원금 10만 엔 미만에 대해서는 연 20% △원금 10만∼100만 엔 미만에 대해서는 연 18% △원금 100만 엔 이상에 대해서는 연 15%의 이자율을 초과하는 이자를 무효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이자율은 이식제한법 상 최고 금리다. ② 대금업 규제법은 '대부업체가 빌려줄 수 있는 금액의 상한을 50만 엔 또는 연 소득의 10% 상당액'으로 못박는 내용을 담고 있다. ③ 출자법은 대부업자가 연 29.2%를 초과하는 이자 계약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식제한법의 규정을 넘어 금액에 따라 연 15~20% 이상의 대출을 해도, 출자법이 제한하는 연 29.2%의 금리를 넘지 않으면 형사처벌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이식제한법 최고금리를 초과하되 출자법상의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금리 범위(금액에 따라 연15~29.2%)를 '그레이존(Gray zone) 금리 문제'라고 부른다. 일본 금융청은 대금업자가 이식제한법을 넘는 금리를 취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그레이존 금리'를 철폐하는 법 개정에 착수할 방침이다. 결과적으로 대부업체의 연간 이자제한 금리를 이식제한법상의 최대금리인 20%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 금융청은 여러 부서에서 분할 관리하고 있는 대금업의 3개 법제도 개정과 함께 종합적으로 대부업자를 규제하는 가칭 소비자신용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일본은 과거 대금업을 합법화하고 대금업자들이 '비즈니스맨'으로 행세하면서 거대기업을 일궜다. 그리고 그 후유증 치료를 위해 일본 정부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대부업 양성화론'을 주장했던 한국 재경부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영국·독일·프랑스, 대부업에 대한 엄격한 규제 영국에는 소비자 신용법이 있다. 이 법에 의해 '일방적으로 폭리를 취하는 신용 거래'라고 인정된 경우 법원은 대부 계약의 재계약을 명한다. 그리고 소비자 신용 사업, 즉 대부업을 하려면 공정거래정장의 인가를 받도록 하는 등 그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는 금전 대부업을 하기 위해서는 은행법에 의한 면허제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고금리 대금업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의 금리상한은 민법 및 판례에 따라 규제하며, 시장평균금리의 2배를 넘는 이자약정은 폭리이고 무효다. 프랑스 역시 금융법에 근거한 면허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고금리 대금업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초고금리 시장은 거의 소멸된 상태다. 프랑스의 금리상한은 소비자법전(Code de la Consommation)에 규정돼 있다. 이에 따르면 프랑스은행(중앙은행)에서 3개월에 한 번씩 소비자 금융, 부동산 금융, 사업자 금융 등의 시장평균금리를 조사 발표하며 시장평균금리의 1과 1/3배(133%)를 초과하는 금리는 폭리대차 이율로 규정한다. 이러한 금리규제를 위반한 자는 2년의 금고형 또는 30만 프랑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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