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두 나라 정부의 '짜고 치는 고스톱'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제 미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대폭 완화해 갈비까지 수입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그나마 부분반송으로 물러났던 '뼛조각' 문제조차 도마뱀 꼬리 자르듯 은근슬쩍 사라지고 말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은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과학적인 근거와 국제기준에 따라 전문적인 기술검토를 거쳐서 결정할 것"이라며, 대국민용 립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터무니없이 비과학적이고 불공평한 OIE 기준
이번에 미국이 광우병 통제국가 등급을 받게 된 OIE의 광우병 예찰기준을 보자. 24개월령 이상된 소의 사육두수가 100만 두 이상인 국가의 경우, 7년 동안 누적점수가 30만 점 이상이면 기준을 통과하는 것으로 판정을 받는다.
그런데 5만~100만 두까지 세분해서 나누던 기준이 갑자기 100만 두 이상에서는 수동적 광우병 검사는 30만 두, 능동적 광우병 검사는 15만 두만 검사하도록 돼 있다.
미국은 현재 1억 두 가량의 소를 사육하고 있으며, 24개월령 이상의 소가 약 3500만~4000만 두 가량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수동적 광우병 검사를 300만~600만 두, 능동적 광우병 검사를 150만~300만 두에 대해 실시하는 것이 옳다.
유럽에서는 24개월령 이상의 소는 거의 대부분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연령에 관계 없이 모든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도축 소의 0.1%인 35만~45만 두 가량만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정도의 검사로는 광우병 소를 검출할 가능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이미 지난 2006년 국제수역사무국 총회에 "이러한 검사 방식으로는 100만 마리 당 연간 광우병 발생이 10마리 이하인 국가에서 광우병 소의 검출이 불가능하다" 는 의견을 제시했다.
농림부는 제발 침대의 길이에 사람을 맞춰 몸을 늘이거나 잘라내는 '프루크루테스의 침대'처럼 미국의 입맛에 맞는 엉터리 기준을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권위 있는 국제기준이라고 우기지 말기 바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한미 FTA는 별개란 개그는 이제 그만
이제는 '과학적인 근거와 국제기준에 따라 전문적인 기술검토'를 거쳐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을 바꾸겠다는 농림부의 립서비스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들은 별로 없다. 그동안 정부의 입에 발린 거짓말을 숱하게 들어 온 국민들은 이제 쭉정이와 벼를 가리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가 한미 FTA의 4대 선결조건이라는 주장을 괴담이라고 우겨 왔다. 어디 그 뿐인가. 노무현 정부는 괴담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광우병 쇠고기 문제와 한미 FTA는 전혀 별개라는 '같기도 개그'로 미국 대표단까지 웃기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 최종 연장 협상 마지막날 밤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한국은 성실히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협상에 있어서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를 존중하여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합의에 따르는 절차를 합리적인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으로 확인해줬다"고 밝혔다.
게다가 노 대통령은 친절하게도 "정부는 이 약속을 지킬 것이고, 이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면 쇠고기의 수입이 가능한 시기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을 기한을 정한 무조건적인 수입의 약속이라고 하거나 이면계약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자의적인 해석까지 덧붙였다. 이쯤되면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농림부가 국제수역사무국에 제출한 비공개 의견서 (강기갑 의원 공개) 첫째, 미국의 이력추적제가 완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2005년과 2006년에 잇따라 광우병 소가 발생했으나 어느 농장에서 발생했는지 밝히지 못했다. 둘째, 미국은 광우병 예찰이 의무사항이 아니라 농가 자발적이므로 규정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셋째, 미국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을 폐기하지 않고 비반추동물의 사료로 사용하므로 교차오염의 우려가 있다. |
정부는 한미 FTA 협상 막바지에 미국에게 갈비를 포함한 쇠고기 수입을 약속하는 한편, OIE에는 미국이 광우병 통제국가 판정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위의 상자 기사 참조)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국민들에게는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부의 1인3역은 연극 '같기도' 하고, 개그 '같기도' 해서 국민들은 도무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헷갈리고 있다.
정부는 OIE에 제출한 문서를 비공개로 한 이유가 "미국이 OIE에 사전 대응할 가능성이 있으며, 5월 OIE 총회 이후 한미 협상과정에서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진정으로 정부는 미국도 알고, 우리 정부도 알고, OIE도 알고, 일본 정부와 국민들도 모두 알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우리 국민만 새까맣게 모른 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진실을 아는 것이 한국과 미국의 협상과정에서 어떤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단 말인지 도무지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1년 6개월 걸렸던 8단계 위험평가를 2~3개월로 줄인 '원천기술'을 밝혀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바꾸기 위해서는 8단계의 위험평가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모두 거치려면 빨라야 1년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1단계 절차를 거치는데만 2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
실제로 OIE의 기준에 따라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를 수입하라고 요구했던 아르헨티나와 EU 같은 경우에는 1단계 수입허용 가능성 검토를 하는 예비위험평가 기간만 2년이 넘게 걸렸으며, 아직까지도 1단계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은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 협정문에 사인을 하게 될 오는 6월 30일 이전에 8단계 절차를 모두 끝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아무리 절차를 생략하더라도 기본적으로 2~3개월은 걸린다며, "합의에 따르는 절차를 합리적인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을 굳게 약속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최소한의 기간은 수입위생조건 입안예고 기간만 20일이 소요되는 등 형식적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는 기간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8월~9월 경에는 갈비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로 수입되어 추석 명절상에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9월 정기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으므로, 미국산 갈비의 수입 조치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은 비슷한 시기에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식탁을 '광우병 허브'로 만들 작정인가?
문제는 미국에게만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해주는 것은 특혜에 해당돼 불공정 무역으로 WTO에 제소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캐나다, EU,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도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더군다나 현재 정부는 EU와 캐나다를 상대로 FTA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칠레와는 이미 FTA를 체결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FTA 허브' 정책 탓에 우리네 식탁은 온갖 나라에서 들어오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오르는 '광우병 허브'가 되게 생겼다. 국민들은 러시안 룰렛 게임이나 지뢰 찾기 게임을 하듯 "내가 먹고 있는 쇠고기가 혹시 광우병에 걸렸으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안고 매일매일 밥상머리에 앉아야 할 운명이다.
그나마 집에서 먹는 쇠고기는 원산지를 확인해서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는 급식이나 남편과 아내가 회사에서 먹는 급식에서는 어느 나라에서 수입된 쇠고기인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먹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한미 FTA 협상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식탁안전을 광우병 위험에 빠뜨리는 '광우병 허브'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미래를 끔찍한 광우병 공포에 빠뜨리게 할 '광우병 허브'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한미 FTA 협상을 원천무효로 만드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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