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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영화'로 모자라 '코미디'까지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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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조폭 영화'로 모자라 '코미디'까지 하려나?

[기자의 눈] 김 회장과 한화의 안타까운 '연출력'

"김 회장의 자식 사랑은 1981년 갑자기 29세에 아버지를 일찍 여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그의 부정(父情)은 이 시대 사라진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화가 아닌가 싶다."

이 문장은 어느 신문 미담면에 실린 게 아니다. 이는 놀랍게도 지난 29일 한화그룹이 보복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김승연 회장과 관련해 언론사에 배포한 '참고자료'에 버젓이 실린 문장이다.

재벌 회장이 경호원을 앞세워 자신의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들을 찾아내고 보복 폭행한 의혹이 핵심인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들은 한편의 '조폭 영화'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각본, 연출, 주연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 김승연 회장과 한화그룹의 '난감한 대처'는 영화 장르를 '코미디'로 바꿔버리고 있다.

추리…"누구 말이 '진실'인가?"

김승연 회장 등 등장인물들의 실명이 알려진 27일 이후 이 사건에 쏟아지는 국민적 관심은 한 마디로 뜨겁다 못해 폭발적이다. 게다가 피해자와 한화 측의 증언이 계속 엇갈려 사건의 진실이 미궁에 빠져 있다는 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사건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한다.

지난 24일 언론을 통해 이번 사건의 윤곽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김 회장과 한화 측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언론들은 이 사건을 'H 그룹' 등 익명으로 보도했다. 그러다 지난 27일 한 신문이 김 회장에게 맞았다는 술집 종업원들의 인터뷰를 전격적으로 다루면서 김 회장과 한화그룹은 더 이상 뒤로 숨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피해자들이 "청담동, 청계산, 북창동에 김 회장이 모두 있었고 청계산에서는 김 회장이 물리적 폭력과 협박을 가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화 측의 반응은 일단 부인 일색이었다. "김 회장은 청담동과 청계산에는 간 적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애당초 폭행 사실 일체를 부인했지만 경찰이 김 회장의 경호담당 임모 부장과 김모 과장으로부터 김 회장이 북창동 폭행현장에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자 한화 측은 한발 '양보'해 "김 회장이 북창동엔 있었다"고 마지 못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폭행 현장에 권총이나 회칼이 등장했다는 소문, 위로금 매수설, 폭력배 동원설 등이 난무하는 가운데 피해자와 한화 측의 주장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진실찾기의 숨바꼭질을 계속해야 할지 난감한 대목이다.

숨박꼭질…"김 회장의 행보는?"

대다수 '조폭 영화'와 마찬가지로 경찰 역시 이 사건에 흥미를 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과 김 회장 역시 한판 숨박꼭질을 벌이는 형국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이 사건이 만천하에 알려지자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된 수사를 안했다"는 비난을 받은 경찰은 '갑자기' 수사 속도를 높여 김 회장에게 지난 28일 출석을 요구했다.

경찰이 28일 오전 11시와 오후 4시 두 차례에 걸쳐 출석을 요구했지만 김 회장은 이를 모두 거부했다. 국민들은 과연 김 회장이 시간에 맞춰 경찰서로 나올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실 재벌 총수가 정치자금이나 탈세 등 화이트컬러 범죄가 아닌 폭력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돼 일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된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결국 경찰이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내놓자 김 회장측은 30분만에 '내일(29일) 나가겠다'고 알렸다.
▲ 김 회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서울 남대문경찰서 복도에 진을 친 취재진의 모습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보여줬다. ⓒ프레시안

결국 지난 29일 오후 4시. 김 회장은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출두했고 진술 번복의 위험성이 있는 이들을 대할 때 쓰인다는 진술녹화실에 들어가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약 11시간동안 조사를 받았다. 만약 김 회장이 계속 혐의를 부인할 경우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것으로 간주돼 구속수사로 이어질 경우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 회장의 귀가 여부를 알 수 없던 기자들은 밤새 경찰서에 진을 치고 기다려야 했다. 100여 명의 취재진들이 경찰서 복도 바닥에 앉아 기약없는 브리핑을 기다리는 모습은 김 회장의 폭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를 실감하게 했다.

김 회장이 저녁식사를 할지 말지 궁금했던 기자들은 수사실로 들어가는 중국집 배달원을 붙잡고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다.

뒤늦게 김 회장에 대한 '엄정 수사'를 강조하던 경찰은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인 김 회장 둘째 아들이 중국으로 출국한 것에 대해선 '눈 감아 줬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체면을 구기게 됐다. 표면적인 숨바꼭질 뒤에 숨은 늑장수사와 눈 감아주기 등 수사기관의 구태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재벌과 폭력…"최고의 흥행소재"

결국 이 모든 코미디적 요소들은 "재벌 회장이 자신의 아들이 맞았다는 이유로 술집 종업원들을 외진 곳으로 끌고 가 직접 폭력을 행사했고 경찰은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 준 것으로 보인다"는 말로 요약된다.

어느 영화 홍보 카피 못지않게 '국민적 흥미'를 자극할 만한 스토리 전개다. 국민들은 그간 영화, 소설 등을 통해 '상상'만 했던 재벌가에 의한 사적 제재를 2007년 현실에서 직접 접하게 됐고, 그 동안 주식 편법증여 등 당최 이해하기 힘든 뉴스로나 접했던 재벌들의 진하다 못해 비뚤어진 자식 사랑의 실체를 확인했으니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더욱이 경찰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미궁 속에 있던 사건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분노 쪽으로 급격히 이동하는 것도 당연한 일로 보인다. '재벌 회장과 경찰은 사실의 실체가 뻔히 드러나고 확인된 뒤에까지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말이냐'는 항간의 저항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예컨대, 지난 28일 경찰은 종업원과 그의 동료 3명이 1차 보복 폭행을 당한 장소가 청계산이 아니라 현재 건설중인 청계동 도로변 3층 상가 건물 지하실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일 경찰의 현장검증 때 무슨 일인지 궁금해 몰려나온 주민들에게 한화 측 일행은 길을 가로막고 나서서 '아무 일도 아니니 들어가라'며 공공연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북창동 현장의 목격자들은 사건 당시 김 회장 일행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술집에 들이닥쳐 순식간에 이곳을 장악하는 장면이 '조폭간 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전했다.

"그만 해라. '조폭 영화'로 충분했다"

이렇게 한번 못물 터지듯 드러나기 시작하면 거짓말로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닌 게 '진실의 다이나믹스'다. 그 흐름을 거스르다간 더욱 큰 화를 자초하는 법이다.

그러나 "유별난 부정으로 유명한 김승연 회장은 셋째 아들의 (아시안게임) 경기를 보려고 부인과 함께 카타르로 건너가고 특히 세 아들의 졸업식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할 정도로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해명 자료를 내놓은 한화그룹과 김승연 회장 자신은 국민의 공분을 아직도 잘 모르는 듯 하다.

30일 새벽까지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 김 회장은 한술 더 떠 경찰조사 내내 폭행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배석한 변호인의 '눈치'를 보면서 청계산 폭행 건을 부인했으며 북창동 폭행조차 자신은 "화해를 시키러 갔을 뿐"이라며 부인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는 연일 매진을 이루는 영화를 방불케 한다. 김 회장과 한화가 이런 관심을 잠재우고 싶다면 방법은 단순하다. 그가 늘 강조했던 것처럼 '남자답게'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남들과 똑같이 그에 해당하는 사법적 처벌을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그것만이 김 회장이 '유별난 부정(父情)' 때문에 저질렀다는 일들에 최소한의 용서를 구하는 동시에 이 한 편의 '저질 코미디'를 그나마 조용히 마무리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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