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가 지난 23일 방송시장 개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조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던 언론단체들의 입장은 딱 한발만 물러섰을 뿐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4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조창현 장관 규탄을 위한 1차 결의대회'를 열었다. 대회에 참석한 KBS, MBC, SBS, EBS, YTN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PD 연합회 등 방송노조와 언론단체들은 2, 3차 대회에도 적극적으로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노조의 한 관계자는 "일단 규탄 집회를 열겠지만 향후 조창현 위원장이 제대로 처신하지 않으면 규탄운동이 퇴진운동으로 번지고 투쟁 강도가 점점 높아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방송위의 위상·성격, 이해는 하고 있는지…"
언론단체들은 무엇보다도 조 위원장이 방송과 방송위 성격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은 방송법이 직무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방송위원에 대한 내사 지시야말로 그 단적인 예라고 밝혔다.
언론노조 관계자는 "조 위원장은 방송위가 독립적인 합의제 기구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며 "방송위의 위상과 성격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결의대회에서 김환균 PD연합회장은 "조창현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내가 장관인데 왜 사무실 크기가 작냐', '장관인데 전용엘리베이터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등의 발언을 했다"며 "장관을 원하면 장관 대접을 해주겠다"고 비난했다. 방송위원장이 장관급 예우를 받는 자리이지만 독립적인 합의제 기구라는 점에서 행정부처와는 성격을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조 위원장은 지난 9월 건강상의 이유로 돌연 사퇴한 이상희 위원장의 뒤를 이어 임명됐다. 당시에도 중앙인사위원장을 맡았던 조 위원장에 대해 방송이나 언론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우려가 도처에서 제기됐다.
당시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현재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과제를 앞에 둔 방송위원회에서 갈등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위원회를 이끌어 갈 리더십 및 행정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방송에 대한 전문성 보다 행정력을 고려한 인사였다는 얘기다.
그 이후 방송위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한미 FTA, 경인방송 문제, 롯데쇼핑의 우리홈쇼핑 인수 등 방송계 현안 곳곳에서 언론단체들과 의견 차이로 마찰을 빚었다.
한 언론단체 관계자는 "조창현 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에 세운 정책의 성격은 한마디로 무료보편적인 지상파 서비스를 약화시키고 영리를 추구하는 방송사업자들을 과도하게 지원하는 것이었다"면서 "방송법의 기본 정신인 공공성, 공정성, 정치적 독립에 어긋나는 방향이었다"고 비판했다.
"방송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 듣고 놀랐다"
언론단체들이 조창현 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굳히게 된 계기는 지난 16일 언론노조, PD연합회, 기술인연합회 대표 등이 참석한 조 위원장과의 면담에서였다.
방송시장 개방,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등을 논의한 면담이 끝난 뒤 언론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방송위원장의 대답은 그가 방송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며 "그는 지난 3개월의 공부가 아직도 모자란 듯, 몇몇 의제에 대해서는 정확한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언론노조 관계자는 "면담에 참여했던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실망했다', '이러다간 방송위가 망가지겠다'고 말했다"며 "그간 설마설마 했던 부분들이 확인되면서 이러다가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모아졌다"고 밝혔다.
더욱이 이날 면담에서 오간 내용과 연관해 조 위원장이 최민희 부위원장에 대한 내사를 지시한 것이 언론단체들을 분노하게 했다. 면담에 참석했던 또 다른 인사는 "면담 자리에서 이야기가 오갔던 내용을 문제삼아 유출 의혹을 제기하는 건 대체 무슨 의도인가"라면서 "내부 조사 사실이 밝혀진 뒤 경악했다"고 밝혔다.
"지상파 방송사업자 재허가 추천심사 우려 높다"
이들은 당장 불거진 방송시장 개방 문제에 대해 조 위원장이 '개방 불가'라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조 위원장에 대한 반대 입장을 쉽게 접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방송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조 위원장의 행보는 결국 방송 행정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언론노조 관계자는 "가장 우려되는 것은 올해 하반기에 3년에 한번씩 이뤄지는 지상파 방송사업자 재허가 추천심사가 있다는 점"이라며 "(조 위원장이) 임명 뒤부터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으로 미뤄봤을 때 대선과 맞물려서 이뤄지는 추천 심사가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는 계기로 변질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언론단체 관계자도 "대선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말도 안되는 사람을 추천하고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반대하는데도 인사를 밀어붙인 까닭이 없지 않겠나"라며 "적어도 그동안 보여준 움직임과 발언들을 종합해볼 때 우리가 믿고 신뢰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방송위가 실시하는 재허가 추천 심사는 결과에 따라 방송사의 정파도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권한이다. 이로 인해 2004년 재허가 심사 당시 SBS에 대한 조건부 재허가 결정이 내려졌을 때도 특정방송에 대한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한편 내사 지시에 대해 조 위원장은 지난 19일 방송위 상임위원회의에서 "행정기관 수장으로서 당연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송위 관계자는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내사 지시라기보다는 방송위 행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위원장으로서 여러가지 말이 나오니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안다"며 "최 부위원장도 오해를 풀었고 23일 전체회의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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