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200여 좌석이 이른바 '일심회' 사건 첫 공판을 보러 온 방청객들과 기자들로 가득 찬 가운데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된 장민호(미국명 마이클 장)ㆍ이정훈ㆍ손정목ㆍ이진강ㆍ최기영 씨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첫 재판은 여느 재판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공소요지를 설명하면 피고인이 재판에 임하는 심정을 밝히는 모두진술(冒頭陳述)을 하고, 이어 피고인의 변호인이 모두진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보통 첫 재판은 피고인이 구속수사를 받으며 언론이나 대중에게 자신의 입장을 거의 알리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공개된 법정에 나서는 기회이기 때문에 세인의 집중을 받게 되며, 그만큼 재판의 의의도 크다. 이날 재판도 장민호 씨를 시작으로 손정목, 이정훈, 이진강, 최기영 씨가 차례로 법정에 나서서 모두진술을 통해 자신의 간첩 혐의를 부인하는 동시에 국가보안법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피고인에게 박수 치고 환호 하다 '감치 명령'
그런데 피고인들을 지지하는 방청객들이 피고인들이 입장할 때 박수를 치며 환호를 올리고, 모두진술이 끝나면 다시 박수를 치고, 피고인이 퇴정할 때도 박수를 치는 바람에 재판부가 수차례 제지하다 일부 방청객에게 감치 명령을 내리는 상황으로까지 번지고 말았다.
형사합의 25부 재판장 김동오 부장판사는 방청객이 박수와 환호를 보낼 때마다 "다시 부탁드리는데, 박수 치는 것은 재판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제해줄 것을 부탁했고, 법원 청원경찰과 직원들도 방청석 이곳저곳을 돌며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부 방청객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힘내십쇼"라며 피고인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재판부의 거듭되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장민호, 손정목, 이정훈, 이진강 씨가 차례대로 입정하고 퇴정하는 2시간여 동안 박수와 환호가 그치지 않았고, 마지막 모두진술을 한 최기영(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씨 때도 마찬가지로 박수와 환호가 계속됐다. 마치 '떠들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면 다시 떠드는 초등학교 교실 같았다.
이에 재판부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최 씨가 퇴정할 때 일어나 "사무부총장님 힘내십시오"라며 소리치던 30대 남성을 재판부 앞으로 불러내, 여러 번 경고에도 불구하고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즉석에서 감치명령을 내리고 법정구속했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법원은 법정질서 문란 행위자에 대해 직권으로 20일 이내의 감치명령을 내리거나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으며 즉시 구속할 수 있다. 법원은 최근 법정 내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해 재판에 방해가 되자 법정 입구에서 휴대전화를 보관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등 법정 질서 유지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추세다.
감치명령이 내려지자 박수와 환호를 보내던 일부 방청객들은 "재판장은 지금 뭐 하자는 거냐", "지금이 파쇼 정권 때냐", "두고 보자". "민노당원들 다 구속하라"며 거세게 항의를 했고, 일부는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에 재판부는 휴정을 선언하고 법정을 잠시 떠나 오후 4시40분부터 20분간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법정이 혼란스러워지자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방청객에게 자제를 당부했고, 재판부는 방청객들에게서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감치명령을 취소하고 오후 5시5분께 법정구속했던 남성을 석방하면서 소동은 끝을 맺었다.
피고인에 대한 진정한 응원은?…법정에서의 성숙한 태도 아쉬워
50여 일의 구속기간 뒤에 피고인들을 맞이한 지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날 검사와 피고측 변호인의 논란 과정에서 소란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재판 진행에 크게 방해가 됐다고 볼 수도 없으며, 법정의 엄숙주의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거듭되는 '정중한 부탁'을 무시하고, 재판부의 적법한 권한 행사에 대해 급기야 감정적인 욕설을 퍼부으며 재판부를 비난하는 것이 과연 피고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피고인들은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한 공안당국의 혐의 발표에 맞서 묵비권 등을 행사하며 저항하다 이제야 법정에서 자신을 직접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이정훈 씨는 작정한 듯 장문의 모두진술을 준비해 20여 분 동안 낭독하기도 했다. 그리고 진실은 법정에서 어느 정도 가려질 것이다.
진정 피고인들의 지지자라면 환호와 박수를 통한 맹목적 응원보다는 법정에서 오가는 말에 귀 기울이고 재판부의 재판진행을 따르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당장 22일자 신문에 이번 첫 재판이 어떻게 보도될까. 이날 소동이 이번 사건에 대한 진지한 보도 대신 일부 보수언론의 꼬투리잡기의 빌미를 제공할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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