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를 비롯해 김 이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가 구속될 사유가 없음이 명백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20일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개최된 범대위 기자회견에서 평택기독인대책위원회의 백창욱 목사는 "죄목만 보면 김 이장이 마치 흉악무도한 범죄자처럼 보인다"며 "국방부는 폭력과 거짓말, 회유만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지태 이장의 석방은 이제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지난달 국제 앰네스티는 김지태 이장을 '양심수'로 선정했다. 또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열린 '인권옹호자대회'에서 참가자 70여 명은 서명을 통해 미군기지이전 재협상과 김 이장의 석방을 요구했다. 역시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대표적 평화운동가 신디 시핸은 "김지태 이장은 누구보다 용감하고 훌륭한 아들"이라며 김 이장의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러나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상황은 오히려 암울해지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고등법원은 평택 대추리, 도두리 일대의 주민들이 해당 토지를 국가에 넘기라며 국방부의 '인도단행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설계계획도 없이 기지이전을 밀어붙였던 국방부의 대국민사기극이 드러났고 이전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어떤 이유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김 이장의 2심 재판을 앞두고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이 재판부에 보내는 탄원서가 공개됐다. 그는 "갈등을 평화적이고 성숙한 방법으로 해결하고,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데 사법적 권능이 분명히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그런 기여를 위한 첫 번째 조치가 바로 김지태 이장을 하루속히 석방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호소했다. 다음은 김종철 발행인의 탄원서 전문이다. <편집자>
김지태 이장을 석방하여 주십시오
재판장님께
저는 격월간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입니다.
팽성읍 대추리 김지태 이장의 조속한 석방을 탄원하기 위해 재판장님께 글을 올립니다.
이미 재판장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현재 주한미군과 국방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주한미군기지 재배치' 및 이에 따른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및 확장'은, 이 땅 한반도의 평화에 대단히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입장과 생각의 차이를 떠나, 앞으로 한반도의 미래와 평화에 관련된 이토록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좀 더 차분하고 합리적인 분위기 속에서 검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향후 오랫동안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를 놓고, 함께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마치 무엇에라도 쫓기듯이 우리사회가 이렇게 갈등으로 내몰려야 하는 걸까요.
더군다나 오직 맨손으로 일구고 가꾸어 온, 자식과도 같은 땅을 힘없는 농민들로부터 하루아침에 빼앗아, 그것을 미군기지로 제공하기 위해 이 나라 정부와 국방부는 왜 이토록 조급하게 밀어붙이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미 2008년으로 완료가 예정되어 있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및 확장이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적어도 5년 이상 그 계획이 연기될 수밖에 없음을 국방부조차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경위야 어떠하든 간에 이러한 상황은 주한미군기지 이전 및 재배치에 관해 한미 양국이 재협상 등을 통해 그 규모와 일정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사회 내부의 좀더 차분하고 냉정한 성찰과 토론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국방부의 폭주를 견제하는 데 사법권력이 나서야 합니다
재판장님,
제 눈에는 그동안 국방부가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 특히 땅을 빼앗기고 하루아침에 그 땅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한 힘없는 농민들의 의견은 전적으로 무시한 채, 오직 일방적인 '폭주'에만 골몰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입장과 생각의 차이를 떠나, 우리 국민 누구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매우 우려스러운 폭주였습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삼권분립의 원칙과 정신이 엄연히 살아 있는 민주공화국에서, 이 같은 국방부를 비롯한 행정권력의 일방적 폭주에 '견제'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그 길에 재판장님을 비롯한 사법권력이 나서 주셔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갈등을 평화적이고 성숙한 방법으로 해결하고,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데 사법적 권능이 분명히 기여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한 기여를 위한 첫 번째 조치가 바로 김지태 이장을 하루속히 석방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이미 누차 밝힌 바, 이분들은 언제라도 국방부와의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습니다. 주민들은 더 이상의 폭력도 갈등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대화에 지금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김지태 이장에 대한 구속 상황임은 재판장님도 알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주민들의 울음과 한숨, 불면의 밤이 분노와 불신으로 터지지 않도록
재판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거니와, 지금 우리에게는 갈등의 꼬인 실타래를 풀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그 무엇보다도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과 관대한 조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김지태 이장을 하루속히 석방하여 주십시오. 남아 있는 빈집들에 대한 철거를 강행하려는 국방부와,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마을을 지키겠다는 주민들 사이의 일촉즉발의 긴장과 불신을 풀고, 이 문제를 좀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김지태 이장의 조속한 석방으로부터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지태 이장이야말로 마을의 진정한 대표로서 국방부와의 대화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일꾼이며, 김지태 이장이 석방되지 않고서는 주민 가운데 어느 누구도 국방부를 신뢰하지도, 대화에 응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구치소에 갇혀 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는 늙은 어머니, 아버지의 울음소리와 한숨소리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마을 전체의 큰아들이자 든든한 일꾼인 이장을 구치소에 보내놓고, 오늘도 상심과 미안함에 잠못 이루고 있는 늙은 농민들의 주름진 얼굴을 살펴보아 주십시오. 이분들의 울음과 한숨, 잠못 이루고 뒤척이는 불면의 밤들이 더 이상 분노와 불신으로 터져나오지 않도록 너그러이 선처하여 주십시오.
김지태 이장의 석방은 개인에 대한 선처가 아닙니다
김지태 이장을 석방키로 용단을 내리신다면, 다시 한번 말씀드리거니와 그것은, 김지태 이장 한 개인에 대한 선처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설움과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시는 일이 될 것이며, 나아가 주한미군기지 재배치 및 평택기지 확장을 둘러싼 우리사회 전체의 갈등과 반목 상황을 해결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얼마전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가 김지태 이장을 국제적 '양심수'로서 지정한 취지와 배경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심사숙고하여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지금 비록 김지태 이장이 1심 재판의 결과로 2년형을 선고받아 옥에 갇혀 있는 몸이지만, 그를 '양심수'로 지정하고 석방을 촉구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재판장님과 사법부가 긍정적으로 화답하시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 사법부의 독립성에 관한 우리 사법부의 역량과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의미있는 조치가 될 것이며, 국내외적으로 큰 환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과 용단을 호소합니다.
2006년 12월 18일
탄원인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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