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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태, 그가 돌아오는 날까지 재판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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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지태, 그가 돌아오는 날까지 재판을 거부합니다"

[인권오름]한 인권 활동가가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

국방부는 13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계획을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8년까지 기지 이전을 마무리하겠다는 애초의 계획이 무리였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이로써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궜던 평택 강제철거와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한편에서는 이번 발표가 평택 일대의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느라 분주하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 당분간 평택은 '뉴스'가 안 되겠구나"하면서 관심을 돌린다.
  
  하지만 이런 분주한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지난 7월 10일 열린 대추리와 도두리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평화대행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 받은 대추리 이장 김지태 씨, 그리고 같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사연이 그렇다.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지태 이장은 현재 안양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달 30일 "김씨는 평화시위의 권리를 행사했을 뿐,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는데도 그의 신념이나 신분 때문에 구속됐다"며 김 이장을 '양심수'로 선정했다. 하지만 과거의 군사독재를 떠올리게 하는 '양심수'라는 낱말이 현재형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었다. "국제법에 따라 한국 정부는 양심수를 구금할 권한이 없다"는 국제 앰네스티의 주장은 금세 잊혀졌다.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박진 씨는 이런 상황이 못내 안타까왔다. 박 씨도 김지태 이장과 마찬가지 이유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박 씨는 재판을 거부할 생각이다. '양심수'를 만드는 법정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박 씨는 김지태 이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사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서 박 씨는 지난 7월 10일 대추리 평화대행진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양 측이 모두 크게 다쳤지만 "20여 명이 넘는 사람을 법정에 세우는 동안, 그와 유사한 형태의 폭력 피해자를 양산한 경찰은 단 한 명도 재판정에 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이런 불균형이 우연히 빚어진 게 아니라고 여겼다. 법원이 국방부나 청와대, 그밖의 힘있는 이들과는 가깝지만, 사회의 약자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헐값 매각했다는 의혹에 관한 사건으로 검찰이 여러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법원에 의해 기각된 사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에 관한 사건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검찰 측에 유죄 입증을 하기에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증거 재수집과 제출을 명했던 사례 등이 박 씨의 이런 판단을 뒷받침했다. 론스타와 삼성을 예로 들며 박 씨는 "저토록 엄격한 법집행이 과연 김지태 이장과 같은 농민과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된 적이 있던가 궁금했다"고 토로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박 씨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박 씨는 자신의 재판 거부 행위가 충분히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편지를 마치며 박 씨는 '재판을 거부하는 불복종, 작고 보잘 것 없는 외침'이 법원과 법조인들에게 '작은 공명'이 되길 기원한다며, 법원이 자신을 가두더라도 소신을 접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 실린 박 씨의 편지 전문이다. <편집자>
  
  김지태 이장에게 실형 2년을 선고한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의 성지용 판사에게 편지를 씁니다.
  
  저 역시 김지태 이장에게 '공권력 경시풍조를 만연시키고 폭력적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크게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법적 책임을 묻는다'고 했던 그 법정의 같은 판사에게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지난해 7월 10일 평화대행진 당시 있었던 건의 피의자로서 김지태 이장과 같은 혐의를 받고 있지만, 재판을 거부하기 위해 편지를 씁니다. 김지태, 그가 황새울로 돌아오는 날까지 돌팔매질같은 저의 저항을 접지 않겠습니다.
  
  성지용 판사님.
  
  혹시 황새울에 다녀와보셨습니까? 문정현 신부님은 대추리와 도두리를 잇는 넓은 들 황새울의 사계절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봄·여름에는 초록색 바다, 가을에는 누런색 바다, 겨울에는 하얀색 바다라고 말입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들에는 억척스런 농부들의 땀과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국민들의 통곡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그 논을 보면서 저는 평화가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 내가 사는 것, 마침내 생명을 일궈 곡식이 되고 푸르름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4일 이후 논두렁을 대신해 들어선 국방부의 철조망을 보면서는 절망과 폭력을 배웠습니다. 내가 나서 자란 나라의 군대가 국민을 향해 든 총부리가 이라크의 자이툰과 같았고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 군대와 같았습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수행한다는 잔혹함이 황새울에 있었습니다.
  
  평화와 전쟁이 함께 공존하는 곳, 평화적 생존권을 외치는 대추리 주민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절규가 가서 서 있는 곳. 그곳에 판사님이 한번 들러 보시기를 원합니다.
  
  주한미군 기지가 들어서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이 되기 전에, 늙은 주민들이 팔백일을 하루같이 촛불을 들고 눈물 흘리고 있는 이때, 꼭 한번 다녀오세요. 그러면 성지용 판사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판사님이 어떤 망설임 끝에 김지태 이장에게 실형 2년을 선고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정말 김지태 이장이 폭력을 휘둘렀으며, 폭력을 선동했다고 믿고 있는지. 그래서 그가 대화의 길을 찾기 위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감옥에 2년 이상 갇혀 있어야 할 만큼 중죄인이라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이라는 중차대한 국책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청와대나 국방부의 정치적 외압 때문에 당신의 소중한 소신이 꺾인 것을 괴로워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성지용 판사님.
  
  당신은 너무 먼 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과 너무 먼 거리. 청와대나 국방부와는 너무 가까운 거리. 그곳에 당신이 계시기 때문에 저는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김지태 이장, 소처럼 성실하고 다부진 농민을 2년 동안 가둔 장본인이라는 것만을 기억합니다. 김지태 이장의 어머니 황필순 여사는 자신 가슴을 열면 검은 먹물만 나올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저는 그것만을 기억합니다.
  
  김지태 이장의 구속영장 청구소식을 전할 수 없어 마을 주민들에게 아직 결과가 안 나왔다고 거짓말한 김 이장의 친구, 농민들의 시커멓게 탄 속마음…. 그걸 전혀 보지 못하는 당신의 근시안과 차가운 펜 끝만을 말입니다.
  
  제가 재판을 받게 된 사건인 지난 7월 10일. 황새울에는 커다란 충돌이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경찰과 시위대가 크게 다쳤습니다. 그 사건으로 김지태 이장이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이 저와 함께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나 돌아가는 길에 막무가내로 연행되어 재판을 받게 된 저는, 어느 사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검찰조서에 보니, 보지도 못한 의경이 낚시대인지 죽창인지를 자신에게 휘둘렀다고 진술한 문서가 끼어 있더군요. 저는 그의 거짓 진술로 기소가 되었고, 어떠한 결정적 증인과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아마도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어지러운 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까짓 것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 저나 제 동료들이 국가로부터 받아야 할 대우는 불공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20여 명이 넘는 사람을 법정에 세우는 동안, 그와 유사한 형태의 폭력 피해자를 양산한 경찰은 단 한 명도 재판정에 서지 않았습니다.
  
  작년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경찰 시위진압과정에서 사망한 것을 밝힌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있었음에도 아직껏 검찰과 법원은 단 한 명의 경찰책임자도 사법처리하지 않았습니다.
  
  경찰폭력에 의해 시력을 잃고 거리에서 목숨을 빼앗긴 많은 이들의 피해는 어떻게 구제할 양입니까.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으로 검찰이 여러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법원에 의해 기각되는 것을 보면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사건 재판과정에서 법원이 검찰 측에 유죄 입증을 하기에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증거 재수집과 제출을 명했던 것을 들으며, 저토록 엄격한 법집행이 과연 김지태 이장과 같은 농민과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된 적이 있던가 궁금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회가 있는 것인지, 김지태 이장에게 가혹한 선고를 하신 성지용 판사님은 답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두렵습니다. 오는 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김지태 이장이 또다시 성지용 판사님과 같은 재판부를 만날까봐 두렵습니다. 그를 석방하려는 국제앰네스티의 양심수 후원 행동 계획이, 반전 어머니 신디 시헨과 같은 평화운동가들이 외치는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되돌아올까 겁이 납니다.
  
  그리고 그가 석방되기 전까지 당신 앞에서 변론의 기회를 스스로 접은 제가 구속되는 것도 두렵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과 저를 위해서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법은 공정하고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스무 살 법학도 시절, 거리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웠듯 여전히 저는 법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인간의 권리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을 거부하는 나의 불복종. 작고 보잘 것 없는 제 외침이 이후 성지용 판사님의 법조인 삶에 작은 공명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성지용 판사님.
  
  저는 제가 다니는 다산인권센터 사무실과 노동자 농민, 소외되고 차별받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과 여전히 거리에 있겠습니다. 그리고 제 딸아이와 아침밥을 먹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김지태 이장이 일찌감치 석방된다면, 그때는 제 작은 저항을 접고 재판정에 서겠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김지태 이장이 석방되기 전까지는 당신이 저를 가둔다 하더라도 소신을 접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안부와 평화를 빌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2006년 12월 13일 박진 드림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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