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합의에서 빠진 민주노총은 즉각 로드맵 합의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복수노조 허용을 한국노총이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와 맞바꿨다"고 비판하며 이번 합의가 '야합'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야합을 수용할 수 없다"며 11월 대규모 총파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이미 복수노조가 만들어져 있는 일부 사업장의 현장 노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노동자 70.9% "회사가 복수노조를 노조 약화의 기회로 활용할 것"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2일 금속 사업장, 증권산업 사업장 등 현재 사실상 복수노조가 만들어져 있는 공공부문 26개 사업장의 노조 조합원 4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면접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결과 전체 응답자의 70.9%가 회사가 복수노조를 노동조합 약화의 기회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복수노조 허용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86.4%가 이 같이 답변했다.
또 응답자의 68.4%는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회사의 부당노동행위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새로운 노조 설립의 주도세력으로 노조 내의 생각이 다른 세력(33.4%)보다 회사(52.8%)를 더 많이 꼽았다.
이처럼 현장 노동자들은 회사가 현재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책으로 복수노조를 활용할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다.
반면 복수노조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복수노조가 노동조합의 조직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며 노조 조직 운영의 민주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또 복수노조의 찬성자들은 반대자와 달리 복수노조 허용시 정규직 노조 보다는 비정규직 노조가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복수노조, 그 양날의 칼…거스를 수 없는 대세에 대한 현실적인 우려
이번 조사 발표에서 복수노조 자체에 대한 찬반의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응답자의 70% 가량이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회사가 이를 노조 약화의 기회로 이용할 것이며, 회사의 부당노동행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보인다.
더욱이 이번 조사 결과는 이미 복수노조를 경험하고 있는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현장 노동자들의 이같은 '우려'가 머릿속의 걱정이 아닌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문제이자 고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국제 노동계가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시급한 시행을 촉구하고 있고, 민주노총 지도부 또한 복수노조가 하루라도 빨리 허용돼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이번 조사결과는 결국 복수노조 시대가 그 자체로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날 토론회의 토론자로 나온 석치순 국제노동자교류센터 운영위원장도 이미 초기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돼 왔던 일본의 사례를 통해 복수노조 시대에 마주하게 될 각종 문제점 또한 만만치 않음을 지적했다.
석치순 운영위원장은 "일본을 보면, 복수노조 시대에는 노조 간 경쟁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노조가 정권이나 사용자보다는 다른 노조와의 투쟁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전투적 노동운동이 노사 협조적인 노조에 점점 패배해가는 과정"이라고 우려했다.
복수노조 시대의 개막이 자칫하면 노동운동 전반의 침체를 가져올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막연한 시행 요구 넘어 부정적 효과 줄일 구체적 노력 절실한 시점"
결국 이번 토론회는 막연히 복수노조 시행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복수노조 허용으로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줬다.
복수노조 시대가 가져올 부정적인 효과를 줄일 수 있는 대안과 관련해 가장 일반적인 것은 산별체제로의 빠른 전환이 꼽힌다. 노조 간 차별과 대결 구도의 형성, 전투적 노동운동의 몰락으로 대변되는 일본의 사례가 기업별 체제 하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산별체제로의 전환은 복수노조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대비책이 될 수 있다.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기업별노조의 연합 형태인 '무늬만 산별체제'를 넘어 형식보다는 내용의 면에서 산별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이름만 '산별노조'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교섭과 조합원의 요구에 대한 지도부의 이해 등 내용의 면에서 산별노조로 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각종 새로운 상황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통해 관련 법.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국제협력실장은 "복수노조 시대를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노사가 서로 물리적 힘을 통해 상대를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교섭 문화"라며 "양측 모두 안정적인 교섭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통해 이런 우려를 줄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수노조 찬반 결과 빠진 조사결과 발표, 그 까닭은? 이번 발표에서는 복수노조 자체에 대한 현장 노동자의 찬반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그러나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조사의 응답자 가운데 60~70%가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관계자도 이같은 '소문'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이같은 결과가 "복수노조의 조속한 시행을 요구하는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정서를 읽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되는 것은 극도로 경계했다. 조사의 내용과 달리 본질적인 부분을 제외한 이같은 분석이 나올 것을 우려해 굳이 발표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상학 원장도 "이번 조사는 복수노조 시대가 열린다는 전제 하에 그로 인해 발생할 문제점과 예상되는 형태 등을 묻기 위한 조사였던 만큼 찬반 비율을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60~70%가 복수노조에 반대한다'는 소문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조사대상 사업장이 이미 복수노조가 실현되고 있는 곳이었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일 삼성이나 포스코 등 회사측이 만든 이른바 '유령노조'만 존재하는 사업장까지 대상으로 했다면 찬반 비율은 다르게 나왔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조사 목적이 찬반을 묻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사대상도 달라진 것이고, 이 때문에 이번 조사로 현장 노동자들의 복수노조 자체에 대한 생각을 가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도 "이미 민주노조가 설립돼 있는 현장의 경우 복수노조 허용으로 새로 만들어질 노조는 친자본 노조밖에 없으니 반대가 높을 가능성도 그만큼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IMF 이후 노동자들의 처지와 조건도 다양해졌고 이에 따라 각각 다른 요구들이 일부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이 전체 노동계급 차원의 요구와 늘 일치하은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복수노조 허용이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으며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 차원에서 절실한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는 조합원들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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