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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숙 사태는 '새로운 비극'의 출발점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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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효숙 사태는 '새로운 비극'의 출발점일 뿐

[기자의 눈] 반복되고 있는 '정치의 사법화'

퇴임을 앞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나의 재임기간은)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이뤄진 시기"라고 했다.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문제가 난마처럼 얽힌 현재의 상황과 맞물려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굳이 지난 1988년 1노3김의 정치적 타협으로 탄생한 헌재의 역사적 연원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노무현 정부만큼 정치적 갈등이 헌재를 통해 표출된 기간도 드물기 때문이다.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심판 등 정권의 명운을 바꾼 굵직한 일들이 이어졌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전효숙 사태'는 지명절차의 적법성 문제를 둘러싼 법리 공방을 중심으로 전개돼 왔고 현재 야3당의 중재안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논의는 결국 정치적 타협을 통한 해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사태의 키워드는 '정치의 사법화' 혹은 '사법의 정치화'라고 할만한 상황이다. 요컨대 '전효숙 사태'는 정치권력의 장악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두 집단 간의 권력 쟁투가 사법의 영역을 빌미 삼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전투구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여야의 얄팍한 법리+정치 공방은 이런 본질을 가리는 가면일 뿐이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본질
  
  지난 2004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한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의 본질은 정치권력 장악에 실패한 정치집단들의 상실감이 빚어낸 광기였다.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사법의 정치화가 필연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 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도 기록될 만했다.
  
  정치적으로는 완벽한 '역풍'이 일었다. 국민여론은 들끓었고 그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이라는 과반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적 심판'은 완벽하게 이뤄졌다. 만약 이런 바탕이 없었으면 헌재가 총선 한달 뒤인 5월14일 탄핵 심판에서 탄핵안 기각이라는 '사법적 결론'을 낼 수 있었을까?
  
  권력상실 집단이 사법적 수단을 통해 현존권력의 무력화를 꾀한 두 번째 시도는 같은 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심판청구소송이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하향 곡선을 그리는 와중에 헌재는 2004년 10월 21일 '관습헌법'이라는 기괴한 논리를 내세워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민의 상식이나 통념에 '관습헌법'이라는 신조어를 붙여 '명문헌법'과 같은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결과로만 따지면 두 정치권력이 맞붙은 싸움에서 심판 역할을 한 헌재는 1승1패의 기계적인 공평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때그때의 정치적 분위기와 승패 판정이 일치했던 것이 정말 우연이었는지는 곱씹어볼 일이다.
  
  두 차례의 드라마가 마감된 뒤에도 정치권은 '사법의 정치화'를 위한 국지전을 전개했다. 신행정수도 위헌판결로 뒤통수를 맞은 여권은 헌재를 '수구집단'으로 몰아붙이며 "이 참에 헌재를 폐지하자"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나왔다.
  
  이런 정서가 제도적인 앙갚음으로 실현된 것이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을 모두 국회 청문대상으로 포함시킨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었다. 사법부 및 행정부 등 고위 공직 수행자에 대한 검증의 엄격화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헌재의 신행정수도 위헌판결에 따른 '헌재 흔들기'라는 보수진영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은 새 헌법재판소장에 전효숙 후보자를 지명함으로써 누적된 갈등이 다시금 수면위로 표출됐다. 지명 당시부터 편법 논란이 극심해 보수진영의 반발이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효숙 카드를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던 여권의 강공논리는 앞서의 흐름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노 대통령과 사시 동기를 꼬투리 삼은 보수 진영의 '코드인사' 매도가 식상하기는 했지만, 전 후보자가 역사상 가장 우스꽝스런 결정으로 남을지도 모를 '관습헌법' 판결에 동참하지 않은 유일한 재판관이었기에 한나라당의 '결사반대' 역시 정치적 선택이기는 마찬가지라고 할 만했다.
  
  물론 적당한 기폭제가 없었다면 전효숙 논란은 그저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보수 야당의 의례적 반발로 비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전 후보자에게 새로 6년의 임기를 부여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꼼꼼하게 챙기지 않은 오류가 한 노정객에 의해 뒤늦게 발견된 이상 한나라당은 본심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결과는 강대강 정면충돌이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일각의 '정치적 타결'을 주장하는 유화론은 당내의 거대한 저류에 밀려 '안이한 인식'으로 낙인 찍히면서 철퇴를 맞았다. 같은 의미에서 여권이 전 후보자의 자진 사퇴나 지명 철회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거의 제로다.
  
  문제는 해법이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둘러싼 양측의 의도가 명백한 이상, 야3당이 내놓은 '전효숙 해법'은 꽉 막힌 정국을 에둘러가는 하나의 아이디어는 될지언정 근원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만약 여당과 야3당이 공조해 표결처리를 하더라도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그대로 물러설 리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전 후보자의 업무정지를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만 봐도 징후가 역력하다. '정치의 사법화'는 이미 제 바퀴를 달고 계속 굴러갈 채비를 이미 끝낸 것이다.
  
  정치적 논란이 정치의 영역에서 종료되지 못한 채 사법의 영역으로 고스란히 이월되는 정치는 민주주의의 미성숙을 보여줄 뿐이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라는 전대미문의 궤도 위를 경쟁적으로 달리고 있는 두 정치집단은 브레이크를 마련해 놓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정치의 사법화'를 다시 이 나라 정치의 전면에 불러낸 전효숙 사태는 노무현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빚어질 새로운 비극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한나라당은 '면서기 논리'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이 절차의 문제를 빌미로 교착정국의 장기화를 꾀하고 있는 대목에 대해서는 그 방식의 저열함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 동원한 논리는 크게 4가지다. △민간인을 헌재소장으로 임명한 것 △전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사임 요청은 헌법재판관 독립성의 훼손이라는 것 △청와대의 요구를 수용한 전 후보자는 헌재의 독립성을 지킬 자질이 없다는 것 △전 후보자가 노 대통령의 사법시험 동기라는 것 등이다.
  
  기본적인 사실을 하나하나씩 따져보면 이 주장들은 근거가 대단히 박약하다. 첫째, 1988년 헌법재판소가 다시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장을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특히 이번에 퇴임하는 윤영철 소장은 변호사업을 하고 있다가 헌재소장에 임명된 케이스로, 이번의 전효숙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지명 당시에 민간인 신분이었다. 그러므로 '헌법재판관 중에서 헌재소장을 임명한다'는 헌법규정이 한나라당의 해석처럼 좁은 의미로 지켜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둘째, 법률원칙에 '큰 것은 작은 것을 포함한다'는 것이 있다. 큰 사안을 해결하다 보면 작은 사안이 저절로 해결될 경우에는 큰 사안과 작은 사안을 묶어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법 절차와 자원의 낭비를 막기 위해 정리된 원칙으로서 동.서양 어느 나라 법정에서도 통용된다.
  
  절차법은 실체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래서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다가 절차상의 미비점이 발견되었을 경우에 그것이 재판 당사자 중 일방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느냐 여부를 기준으로 보정하는 방법을 택한다.
  
  만약 절차법을 엄격하게 따르는 것이 재판 당사자들에게 불편만 더할 뿐이고 실체적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절차상의 하자는 무시된다. 축구의 어드밴티지 룰과 마찬가지다. 그 룰은 축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사법재판이나 행정조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에 비해 후진국이나 관료주의 독재국가에서는 '면서기 정신'이 지배한다. 70년대와 80년대에 우리나라 관청에 제출하는 서류는 숫자 하나만 틀려도 전부 다시 해 오라고 퇴짜를 맞았다. 이처럼 미미한 기술적인 착오를 가지고 본 안의 진행을 모두 정지시키고 고비용을 발생하게 하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면서기 정신'이다.
  
  셋째,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보장의 원칙은 '헌법재판관은 임기 중에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임기 도중에 사직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다. 헌법재판관뿐 아니라 사법부의 모든 재판관에게 적용된다.
  
  이 원칙에서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라는 것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하다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고등법원에 사표를 내야 한다. 대법원장이, 정당이, 혹은 대통령이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면 지명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고등법원에 사표를 낸다. 그러면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것은 법관의 신분보장 원칙을 훼손한 것인가?
  
  전효숙 재판관이 대통령의 헌재소장 지명의사를 통지받고 헌법재판관 직에 사표를 낸 것과 현직 고등법원 판사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어서 법원에 사표를 낸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이다. 한나라당은 '민정수석의 전화 한 통으로'라고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의사전달의 매체가 전화이든 이메일이든 본질은 대통령의 통지를 받은 것이다.
  
  넷째, 코드인사니까 안 된다고 한나라당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아마도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판결 시 전 후보자가 '관습헌법'에 손을 들지 않은 유일한 재판관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된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상식에 비추어도 전 후보자가 법률원칙에 의해 결정을 내린 유일한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또한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부분 위헌 결정을 내린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판정을 보면 전효숙 재판관이 다른 재판관보다 더 많이 정부 역성을 들어준 사람도 아니다.
  
  따라서 한나라당도 그가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다거나 헌재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우길 때 그의 판결 기록을 근거로 삼지 못한다. 다만 '청와대 민정수석의 전화 한 통으로 임기가 보장된 헌법재판관직을 사임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권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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